만나

2/25

아빠와 함께 2025. 2. 25. 18:38

지체의 다양함(160203.주일오전예배)

 

나의 주체가 주님의 주체로 바뀌게 됩니다. 이 말을 달리하게 되면 교회는 가운데 구멍이 있어야 돼요.

 

중앙에 큰 구멍이 있어야 되고 중앙부분을 놓고 서로를 마주봐야 돼요. 중국집에 코스요리 먹으러 가면 테이블이 중앙을 두고 돌게 되어 있지요. 커다란 구멍이 교회 중앙에 나 있어야 되고 서로를 볼 때 직접 보면 안 되고 구멍을 경유해서 봐야 되고 십자가를 경유해서 상대를 봐야 됩니다. 이렇게 볼 때 내가 보는 것이 아니고 내가 보고 싶어도 십자가를 통해서 보면 주님의 지체로서, 주님이 코로서, 주님의 눈이 된 내가 주님의 코를 바라보게 되고, 주님의 발이 된 내가 주님의 눈을 바라보게 돼요.

그러면 그것은 주께서 모이게 하신 것이고 주께서 건져내신 사람의 집합, 다시 말해서 우리는 다 같이 공통된 하나의 무덤, 막벨라 굴을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아브라함도 들어갔고 이삭도 들어갔고 야곱도 들어갔고 요셉도 들어갔던 그 무덤, 그 죽음의 무덤을 통해서 내 인생 내가 책임진다는 그 주체는 날라 가버리고 누가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책임자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 구멍을 통해서 바라보게 됩니다.  

나는 죽고 그 다음부터 사는 것은, 스스로 기어 나올 수가 없는데 주체를 죽이고 주체의 머리 부분이 날라 간 상태에서 건져줬다면 우리는 건져준 분을 위해서 살아가는 그것, 이것이 이방인에게 온 성령의 은사고 이것을 가지고 성령의 세례라고 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증인 되라고 아직도 이렇게 살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주여, 더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마시고 이렇게 기도하세요. “왜 저를 아직도 살려두십니까?”  내가 나를 그리스도로 인하여 보는 것처럼 이상하게 나는 나로 인하여 사는 것이 아니고 주님 덕분에 살았다는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  갑자기 둘 사이에서 큰 십자가를 우물이 발생될 때 이게 바로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말하는 그 말씀, 그 말씀의 실제화가 이렇게 일어나는 것을 체험할 수가 있어요.

아하, 성경말씀이 그냥 행하라는 명령이 아니고 이미 지금 진행되고 있는 실제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 둘 사이의 공간을 엮어주는 것은 이유 없는 낯선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말은 이렇게 사용하는 거예요. 주체가 날라 간 상태에서 주님 거저주신 사랑만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맺어질 때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 계명 하나, 사랑이라는 계명 외에는 아무것도 우리와 서로를 엮어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눈에 보이는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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