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뒤편을 소개할 수 있어서, 저는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로마서 3장 10~18절에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남을 두려워했지 언제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까? 이게 우리 존재의 뒤편이에요.
인간 속에서 인간 자체를 씨앗으로 해서 인자의 장미가 피는 거예요. 쓰레기 같은 인간을 밭으로 사용해서 복음의 씨를 뿌리면 거기에 인자라는 열매가 맺히는 겁니다. 여러분에게 또다시 간곡히 이 연사는 외칩니다. 가시면서 rose라는 팝송을 들어보세요. ‘Some say love~’ 이렇게 시작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사랑이란~’ 이렇게 시작하는 거예요.
사랑은 하나님의 자기 사랑이죠. 자기가 불쌍히 여겨놓고 그 사랑받은 당사자인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주님의 사랑과 바꿔치기해서 거기다 던져 넣는 겁니다. 인간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의 출생, 이 씨족사회의 출생에 의하면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에요. 있을 수 없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 불가능한 일.
가능했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거부했으니까. 45일이라는 이 인자의 시간을 통해서 겹쳐져서 “너 할 것 다했나? 더 할 것 없지? 더 내놓을 것 없지? 그러면 너는 지옥 가. 이제부터 내가 할 거야.” 지옥가야 마땅한 자, 화로다 망하게 된 마땅한 자에게 (구원이란) 십분의 일이 아니라 아예 없는 거예요. 아예 없는 데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우리라는 인큐베이터에서 하나님이 예수님의 자기 구원을 달성하는 거예요. 인자를 구원하는 거예요. 우리는 그 인자의 증인되는 겁니다. 성령을 받게 되면.
그래서 우리가 가는 나라는 뭐냐? 인간의 나라가 아니에요. 인자의 나라입니다. 천국 가면서 뭐 옷맵시 다듬고 적당히 예의 차리고 그렇게 가는 게 아니에요. 천국은 그냥 피 발라서 가는 거예요. 피 발라서. 이사야에 예언되어 있어요.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사 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