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 제2강-다니엘: 제국주의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내부 전쟁은 싸우는 게 아니고 평준화하는 거예요. 평준화시킨다, 또는 균등화시킨다. 내부 전쟁 자체적으로 하는 거예요. 그래서 평준화시키고 균등화하기 때문에 내부 전쟁의 목표는 뚜렷합니다. ‘모든 인간은 그저 인간이다.’ 이것을 증명하는 거예요. 그래서 유난히도 인간보다도 독특하게 더 특출한 인간이 있다면 그게 목표가 돼요. 대번에 이렇게 돼요. ‘저것 잡자. 내가 노릴 거야.’
그래서 왕이 자꾸 바뀌는데 왕이 바뀌어봤자 전쟁 양상이나 거기에 대한 신화나 그렇고 그런 인간들로 계속해서 변동이 일어날 뿐입니다. 바다가 고요합니까, 파도칩니까? 고요하지요. 고요한데 바람 불면 어떻게 됩니까? 물결이 일잖아요. 물결이 일 때 제일 높은 곳과 낮은 곳 이 사이가 약간만 시간만 지나면 언제든지 다시 평준화돼요. 이거는 똑같잖아요.
약간 시간만 지다면 다시 그렇고 그런 거기서 거기인 아무것도 새로운 게 없습니다. 다만 모양새가 항상 유동적이 변화무쌍하다는 뿐이지 그 본질에 대해서는 똑같아요. 이게 인간의 내부 전쟁입니다. 이게 인간이거든요. 이게 인간의 역사고.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에요. 약간 올라갔다, 약간 내려갔다. 꼭 주식 같아. 전부 다 거기서 거기고 그렇다 이 말이죠.
이 사실을 현재 이래서는 자기들끼리 소소한 전쟁, 이렇게 맨날 싸우는데 바깥에서 봤을 때는 이것은 뭐가 되느냐 하면 평준화, 균등화라 했지만 꿈이 시선에서는 동일한 시간대로 간주하는 겁니다. 이게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바로 바다에서 온 짐승이 어디로 올라오느냐? 땅으로 올라와요. 그러면 땅의 세계는 시간의 세계에요.
시편 115편 16절에 보면 이런 말씀 나옵니다.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인생에게 주셨도다” 하늘과 땅을 구분 짓고 있습니다. 명쾌하게 구분을 짓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과 땅의 세계가 완전히 구분되는데 땅의 세계는 인간에게 주셨다. 인간들은 그 땅의 세계에서 뭘 느끼느냐? 시간 안에 갇혀 있는 거예요. 시간 안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시간의 세계에 갇혀 있으면 시간이 흘러야 되는데 이 짐승은 어디서 올라오느냐?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와요. 바다라 하는 것은 땅에 집중했을 때 땅의 배후, 땅의 뒤쪽에 바다가 있는데 이 땅은 시간의 의미가 있을 때 시커먼 바다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시간이 없는 바다짐승이 땅으로 올라오게 돼요. 다니엘 7장에.
바다에서 짐승이 올라온다? 이것은 뭐냐 하면 이 땅이 아까 시편 115편에 하나님이 주신 땅이잖아요. 땅의 의미는 약속이 구현되는 본래 목적이 있어요. 목적이 구현되는 장소가 땅입니다. 약속을 구현하는 목적을 지닌 장소가 땅이에요. 그럼 이 목적을 구현 받게 된 상대는 누구냐 하면, 이스라엘이었어요.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언약이 주어지면서 약속의 땅에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본래의 땅과 하늘이, 땅에서 진리가 올라오고 하늘에서 정의가 내려온다는 시편 말씀처럼 땅은 하늘의 영광을 위해서 구현해야 될 자기의 사명이 있어요. 그 이스라엘, 유다나라는 어떻게 됐어요? 율법에 의해서 파괴되고 난 뒤에 그래서 땅의 의미는 날아갔는데 율법에 의해서 땅이 파괴되었다, 라는 그 뜻을 위해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바다에서 짐승이 올라옵니다. 짐승이 올라와서 땅을 접수하고 땅을 점령해버려요. 어떻게? 언약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땅을 접수해버립니다. 개판이죠. 완전히 개판돼버린 거죠.
그러면 다니엘에서 핵심부분에 우리가 접근하는데 이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의 땅에서의 목적은 뭐냐? 바로 인자의 자리에 앉는 거예요. 인자의 자리에 앉는 걸 적그리스도의 자리를 앉는 거예요. 이 자리에 앉기 위해서 땅에 인자의 자리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말씀에 의해서 확보돼 있어야 되고, 확보된 그 자리를 적그리스도가 공격해서 이 자리를 차지하는 거예요. 이렇게 돼버리면 적그리스도, 인자의 자리 이것은 뭐냐 하면 꿈의 용어에요. 꿈의 개념이에요. 이거는 현실적 개념이 아니고 꿈의 개념입니다. 그야말로 영적 싸움이기 때문에.
아까 제가 이야기했지요. 첫째 시간 끝에. 현실에 있어서 현실을 현실로 봤을 때 결국 핵심이 뭐였습니까? 인간이 상호 협력하고 협조하는 거예요. 인간은 믿을 자가 인간밖에 없어요. 그리고 인간을 도와줄 자가 인간밖에 없습니다. 남이 도와주지 않으면 내가 살 수가 없어요. 서로 의지하고 살아야 돼요. 그게 인간 세계입니다. 그걸 두 자로 뭐라고 하느냐 하면 ‘경제’입니다.
경제가 추상화되면 이게 정치가 되거든요. 정치는 경제를 바탕으로 했을 때 추상화된 게(어떤 때는 상상화라 하는데) 정치에요. 그래서 국회의원들은 월급을 받으면 안 돼요. 자기 돈으로 정치를 해야 됩니다. 저 북유럽처럼 명예직으로 해야 돼요. 그런데 경제가 안 되는데 정치를 해버리면 어떻게 돼요? 정치를 통해서 경제를 얻으려고 하지요. 맨날 데모만 하다가 정치해서 뭐합니까? 돈벌이에 나서고 권력을 쥐고 요직에 자기 사람 심으려고 하겠지요. 이러니까 문제가 되는 겁니다.
경제가 실질적이고 이거는 추상화된 거예요. 그런데 정치하고 대통령 되어서 한 몫 잡으면 어떻게 돼요? 추상화된 게 경제를 확보하는 담보하는 하나의 수단이 돼버리면 모든 국가의 경제는 누구 눈치 보느냐? 최고의 재벌 된 대통령을 바라보는 그런 현상이 되겠지요. 그러면 거기에 대해서 국민들은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요구합니다. ‘우리 것 빼앗지 말고 네가 전쟁해서 남의 나라 노예와 재산을 빼앗아 약탈한 걸 우리한테 분배해주면 당신 왕으로 인정해줄게.’
그럴 때 왕은 뭐냐? ‘그래 좋아. 그 대신 내가 전쟁할 때 너희 자녀들은 내가 군사로 모집할 때 무조건 협조해야 돼.’ 그래서 전쟁을 일으키는 거예요. 그 제국들이. 바벨론, 메대, 바사, 헬라, 마케도니아, 로마제국. 전부 다 그런 겁니다. 제국이에요, 제국. 제국은 우리를 보호해준다면 당신의 약탈을 우리가 용인하겠다는 그 백성들과 왕, 정치꾼들 사이에 하나의 계약 같은 게 성립된 것이 제국입니다.
이 제국이 뭐로 바뀌느냐 하면 제국주의로 바뀌어요. 이건 뭐냐 하면 제국이 있을 때는 모든 국가가 하나의 이빨 속에 다 들어가요. 그런데 제국이 제국주의로 파생돼버리면 여기서 새끼들을 쳐내요. 이게 뭐냐 하면 주권을 가진 나라들이 출현돼요. 이 나라가 현재 전 세계에 몇 개국이냐? 220개 나라가 주권국가가 돼요. 그래서 주권국가가 되지 아니하면 이런 기존의 나라, 같은 형제의 나라에서 그 나라를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권국가답게 하려면 주권을 가진 남의 나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돼요. 인정받기 위해서 어떻게 하느냐? 여성을 보호하고 여성에게 히잡을 씌우지 말고 여성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주고 이게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에요. 탈레반이 처음 할 때와 달라요. 여성들을 대학도 보내주고 그래요. 시리아는 처음에는 히잡 안 쓰면 죽인다 하다가 이젠 히잡 쓰는 강제법을 금지하겠다고 나와요. 왜냐하면 남의 나라에서 인정받지 아니하면 그건 국가로 성립이 안 되고, 이 전체가 뭐냐? 하나의 제국주의에 입각한 주권을 가진 통합된 하나의 제국이 되는 겁니다.
이게 요한계시록 17장에 음녀가 나오는 거예요. 이 추상적인 나라의 바탕은 뭐가 됩니까? 경제. 나라와 나라 사이에 각자의 뭐를 상품화시키느냐? 자본주의 경제는 뭐냐 하면 시간을 상품화시켜요. 지금 미래의 시간까지 내 신용도는 계속 갑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음의 신용도를 제가 사겠습니다. 사는데 뭘 사느냐 하면 국채를 산다. 주권을 가진 든든한 나라의 국채를 사는 거예요. 현재 미국의 국채가 4.3%에요. 국채가 높아지면 금리는 낮아져야 되는데 지금 국채가 높아졌는데 금리는 더 높아요. 4.6%로 더 높아져 있어요. 이거는 미친 거예요.
금리를 낮추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나라를 믿고 안심하고 돈을 풀어야 되는데 금리를 낮추기 위해서 국채를 높게 해도 사람들이 저축을 더 해요. 돈을 내놓지 않는다고요. 왜 그러냐 하면 전 세계의 특징을 아기를 안 낳아요. 그러면 생산할 인구가 그만큼 줄어듭니다. 생산할 인구가 줄어들게 되면 나이 많은 사람들이 일 안 하고 연금 먹고 살래, 이런 식으로 빠져서 저축을 하게 된다고요. 현재 중국이 저축률은 50%나 된다고요. 일해서 전부 다 저금하고 있어요. 나라도 못 믿겠다고 된 겁니다.
보세요. 모든 것이 뭐냐? 미래에 내가 어떻게 살 수 있느냐? 뭘 삽니까? 시간을 상품화하는 거예요. 신용 있는 시간을 상품화하는 겁니다. 따라서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되려면 ‘금값 오릅니다, 석유 값 오릅니다. 사세요.’ 라는 미래의 시간에 신용을 치는 그것이 오늘날 자본주의의 아주 멋진 상품이 되는 시대에 우리가 놓이게 된 겁니다.
그러면 정치는 뭐냐? 우리가 이런 신용을 살 수 있도록 든든한 뒷배가 되어 달라. 그게 바로 인간들이 정치권에게 요구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되면 어떻게 돼요? 모든 인간은 어떻게 됐습니까? 평준화됐지요. 모든 인간은 힘의 의지에 의해서 생존의 의지에 의해서 평준화된 겁니다. 시간을 사고파는 거예요. 신용도를 사고파는 거예요. 신용이 없다 싶으면 이자가 좀 높고, 신용이 있다 싶으면 이자 낮고, 그런 식으로 해서 신용도를 사고파는 겁니다.
이게 바로 땅에서 사는 인간들의 생리였습니다. 속성입니다. 그런데 사이존재, 인자, 그리고 다니엘 이 사람은 현실에 속하지만 어디도 속했어요? 꿈의 세계에 속하지요. 꿈의 세계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습니다. 신용이 필요 없어요. 꿈의 세계에서는 사자 굴에 넣는다 하면, ‘사자 굴에 넣으세요.’ 너 불 속에 넣는다고 하면 ‘불 속에 넣으세요.’ 이렇게 돼요.
왜냐하면 죽고 사는 것은 내 육신에서 죽고 사는 개념은 성립되지 않아요. 죽고 산다는 것은 어디서 나와야 되느냐 하면 바로 꿈의 세계, 하나님의 약속에서 산다와 죽는다는 개념이 성립되는 겁니다. 꿈의 세계에서 산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의미하고, 꿈의 세계에서 죽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의미하는 거예요. 인간은 죽었다, 살았다를 규명할 수 있는 권한조차 없습니다. 이게 원래 하나님의 율법과 언약 안에 담긴 내용이었어요.
요한복음 5장에 보면 이런 말씀 나오지요. 모든 인간은 주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요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이미 죽고 난 뒤에 다시 주님 앞에 소환됩니다. 그들의 무덤을 열고 다시 심판대 앞에 오나니 그때 비로소 뭐냐, 산다는 것은 뭐냐? 천국 가는 걸 의미하고, 죽는다는 것은 뭐냐? 영원한 저주에 가는 것을 의미하는 거예요.
이 결정을 누가 하느냐?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심으로 결정해놨거든요. 여기의 결정에 의하면 영원한 저주받아 죽게 된 그 대상자가 나옵니다. 그것도 역시 영적인데 그것이 적그리스도에요. 마귀는 어떤 식으로 해도 이미 천국에는 못 들어가고 마귀를 위해서 유황불이 마련돼 있어요. 따라서 적그리스도가 경제에 기초한 정치에 둔 인간들 앞장세워서 그들로 하여금 영적인 음흉한 목적성을 인간의 힘에다 실어서 계속해서 공격해 갑니다.
공격하면 어디에 부딪치겠습니까? 다니엘 11장 보겠습니다. 다니엘 11장에 쭉 내용이 나와요. 남방 왕, 북방 왕 나오지요. 이거 사람 취급 안 합니다. 그냥 전쟁기계기 때문에 남방 왕, 북방 왕 일어나는 거예요. 네 개의 뿔로 돼 있던 헬라, 알렉산더가 죽고 난 뒤에 장군 네 명이 남았어요. 그때 알렉산더가 서른셋에 죽으면서 이런 이야기했어요. “땅은 힘센 자가 차지하라. 오케이?”
셀레우코스, 프톨레미, 카산드로스, 리시마코스 이 네 명의 장군들이, 그러니까 새끼 뿔이죠, 염소에서 나온. 염소란 다니엘 8장에 나오는 겁니다. 헬라의 본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뿔 네 명이 나옵니다. 뿔이니까 따로 나오는 뿔이 아니고 몸체에서 나오는 혹 같이 솟구쳐 오르는 거예요. 힘의 의지에서 전쟁하는 기능의 달인들, 이유도 없고 그냥 상대를 삼키고 무너뜨리고 자빠뜨리고 부러뜨리는 그 기술만 배운 것들이 장군들이에요. 특화시킨다 할까?
짐승의 특징, 바다에서 온 짐승, 율법도 없고 하나님의 계시도 없는 꿈과 전혀 무관한 짐승들이 바다에서 올라옵니다. 바다에서 올라와서 시간이 있는 땅을 서서히 접수해갑니다. 접수해가면서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말려들었어요. 원래 시간이 없는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와서 시간이 있는 땅을 기어 다닌다는 말은 어떤 역사를 형성한다는 말은 그들의 숨겨진 목적이 땅에서 노골화된다는 뜻입니다.
결국 아까 뭐라 했어요? 인간 전쟁의 마지막 목표는 어디라 했습니까? 인자의 자리, 하나님의 자리를 그들이 접수하는 것, 그게 목표지요. 그러나 일반 백성들은 그게 목표가 아니에요. 그냥 자기는 밥 먹고 살면 돼요. 적그리스도 못 돼서 환장하는 그런 것 없어요. 그러나 이 짐승들은 하다 보면 어디를 건드리게 돼 있습니까? 결국 건드리다, 건드리다 뭘 건드리느냐? 하나님의 지성소를 건드리게 돼 있습니다.
땅에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의 장소를 건드리는 쪽으로 하나님이 유도해가는 거예요. 점점 더 가까이, 가까이 가는 거예요. 최고의 자리. 빨간 선을 끊을 것인가, 파란 선을 끊을 것인가? 에서 주인공 탐 크루즈(이단 헌트 역)가 노리는 게 있어요. 마지막에 세계를 폭파시킬 폭탄을 해체하는데 온갖 고생고생을 하면서 마지막에 빨간 선, 또 파란 선을 끊을 것인가, 하는 그 선, 그 지점. 지성소에 있는 이것을 부술 것인가, 그대로 건드리지 않고 보존할 것인가?
그걸 한쪽은 악마가 하도록 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는 행동을 주시하면서 위에서 내려오는 겁니다. 아래쪽에서는 시간을 타서 적그리스도 자리의 지정, 지성소 자리에 접근하고 있고, 위에서는 지금 어디까지 왔나 하면서 적당한 때를 노리면서 낙하산 타고 그 지점에서 딱 마주치도록 하는 거예요. 악마는 하나님을 죽였다, 라는 사실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하나님은 계산된 계획 하에 짐승을 땅에 살게 만드는 겁니다. 모든 인간을 전쟁으로 만들어놓고.
그러니까 A타입, B타입, C타입. A타입은 씨족사회, B타입은 제국들의 제국타입, C타입은 제국주의. 국가가 담보함으로써 지폐를 발행하고, 지폐로 발행된 달러에 힘이 실려서 일반 주권국가보다 미국이 발행한 달러에 힘이 실리는 달러로 통용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건설, 이 모든 것이 열 개의 뿔을 가진 로마의 정신이 오늘날 이 시대까지 그대로 파급됩니다.
기원전 539년에 바벨론 멸망하고 난 뒤에 313년에 바사 나라 멸망하죠. 168년에 헬라 나라 멸망하고 로마가 건국해서 현재까지 열 개의 뿔을 가진 것은 자본주의라는 단일국가 하나로 통합이 되는 겁니다. 다른 국가는 없어요. 그러면 이 로마가 왜 다른 짐승은 필요치 않고 마지막 짐승이냐? 로마는 더 이상 삼킬 제국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삼킬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적이 있어야 뭔가 싸움이 되는데 로마에는 적이 없어요. 모두가 한 마음이 됐기 때문에 돈을 쟁취하는 자가 승자라는 그 마음으로 통일돼 있고 균등화돼 있고 평준화돼 있기 때문에 이게 북한이든 중국이 되던 한국이 되던 필리핀이 되던 국가 자체가 자본주의 국가에요. 국가가 뭘 발행합니까? 국채를 발행해서 많은 외국의 돈을 흡수통합해서 강대국 되겠다는 거예요.
국가가 뭐냐? 회사에요. 주식회사가 된다는. 국가가 회사가 되고 그 회사의 직원들은 소위 대기업이 되고 가난한 나라의 직원들은 이거는 중소기업보다 하청기업이 되는 거예요. 아이티, 세계에서 제일 못 사는 나라에요. 진흙쿠키 이야기 들어봤어요? 아이들이 먹을 게 없어서 진흙 구워서 쿠키처럼 만들어서 먹는 그 나라. 스리랑카,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 그런 나라의 돈을 누가 원합니까? 아무도 원하지 않아요. 우리나라 돈 줄까요? 아니요. 달러 주세요. 제일 큰 나라의 지폐를 국가가 보장해주니까.
이미 유통되는 것은 돈의 유통으로써 인간들은 다른 아이디어가 다른 욕망의 매체가 더 이상 모든 것이 끝났어요. 돈을 모으는 욕망 외에 다른 욕망은 전부 다 없습니다. 오직 그 하나로 모든 나라가 통일되었어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가는 것도 돈 벌기 위해서 북한군이 갔고요. 시리아도 돈 문제고요. 모든 국가는 전부 다 돈 문제 하나로 통일돼 있는 거예요. 돈이 없으면 왜 안 되는가? 신용도가 없어요. 신용도가 없다는 말은 뭐냐? 당신이 내일모레까지 또는 한 달 뒤에 어떻게 될지 우리가 뭐로 보장받느냐? 은행에 잔고가 없는데 당신을 뭐로 믿느냐? 이렇게 되는 거예요.
시간이란 상품을 가질 수 없는 자는 인간 대우를 못 받습니다. 3년 뒤까지 우리의 돈은 남아 있습니다, 할 때 신용도가 높은 거예요. 그거는 국가가 그런 것을 보장해야 되고. 이 세상의 모든 나라가 돈으로 하나로 언어가 통일돼 있어요. IMF 터졌을 때에 한국에서 란제리 사서 콜롬비아 가서 장사했다는 이야기,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이란 영화입니다. 나라에서 하도 관세를 세게 때리니까 밀수해서 한국 의류업체들이 떼돈 벌었다는 그 이야기.
중요한 것은 그런 모든 이야기가 우리에게 납득이 된다는 거예요. 다니엘서는 전혀 납득이 안 돼요. 보면 볼수록 잠만 와요. 보기 싫어. 그러나 어떻게 해서 틈새시장에서 돈 벌었다는 이야기는 잠을 깨게 만들어요. 바로 그거지. ‘살림살이 보태려면 어떻게 해서 돈을 벌지?’ 그 이야기. 그게 로마입니다. 단 하나의 국가로 모든 게 종결됐어요.
왜 다른 국가는 없습니까? 하나님을 죽였으니까요. 다른 국가가 더 이상 나타날 필요가 없지요. 로마가 하나님을 죽였잖아요. 본디오 빌라도가. 죽였으니까 더 이상 다른 대책이 필요치 않아요. 이미 악마의 적그리스도의 속성을 드러날 대로 다 드러났기 때문에. 그래서 요한계시록 13장 16절에 유명한 말씀이죠.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그다음에 뭘 못합니까? 매매를 못한다. 바코드 이야기 아니에요. 문신 그게 뭐라고. 바코드 이야기가 아니고 바코드 하나, 안 하나 이미 모든 인간들은 이걸로 땅에서 자기의 수명을 연장하겠다고 생각하는 이 땅에서 좀 더 살아남겠다는 여기는 자들은 전부 다 마귀의 자식이에요. 태어날 때부터 이미 마귀의 자식으로 태어난 거예요. 그러니까 동일한 언어가 통용되는 겁니다.
여기서 짐승이라 하는데 짐승은 약속 개념이기 때문에, 꿈의 개념이기 때문에 짐승이란 현실적으로 아무리 분석하고 철학적으로 경제학적으로 분석해도 짐승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짐승이 나타나려면 영적 개념, 꿈의 개념이 밀려올 때 비로소 현실 말고 현실이 알 수 없는 다른 세계에 소속된 영적인 안목이 있을 때나 짐승이 되지 이 세상은 짐승은 존재하지 않아요. 귀신이란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돈이 힘이 된다고 여기는 인간의 의지밖에 없어요.
대통령, 왕 필요 없습니다. 나한테 월급 주는 사장이 나의 대통령이고 나의 사장님이에요. 사장님 이번에 어디 찍었는데? 그건 사장님 마음대로지. “나 이번에 여기 찍었는데 찍어라.” “예.” 이게 내 의지가 무슨 소용 있습니까. 돈 앞에 나의 의지가 돈도 안 되는 의지 무슨 소용 있어요? 돈 되는 쪽의 의지에 따라 붙어야지요.
그게 A타입 아닙니까. 그분은 나에게 자리를 마련하고 직장을 마련해주고 우리는 고분고분 의지함으로써 그 사람의 똘마니가 되는 그런 안정감을 얻는 것, 그러면 됐지 뭐요. 뭘 더 원해요? 취직을 안 시켜줘서 문제지 우리한테 자애를 베풀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서 문제지 자애를 베푼다면 기독교, 복음, 종교 언제든지 갖다버릴 만반의 준비돼 있습니다.
이 요한계시록이든 다니엘이든 반드시 그 꿈이라는 실제성을 가지고 봐야 비로소 개념이 제자리를 찾아가요. 하나의 모자이크 그림이 된다고요. 타일 그림이 생성이 된다고요. 그 영적인 안목으로 보지 않고 십자가 영적인 안목, 하나님이 사람에게 맞아죽었다는 그 세계가 없으면 성경은 아무 의미가 모조리 다 감춰져 있습니다. 이렇게 지금까지 서론 했어요. 이제 본론 들어가겠습니다. 본론은 쉬워요. 서론 했기 때문에 본론은 쉽습니다.
다니엘 1장 보겠습니다. 포로를 잡아오는데 다니엘이 86세 때까지 살았어요. 바벨론 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살았어요. 그다음에 바사 나라에 약간 더 살았고, 그 정도에요. 오랫동안 바벨론 나라, 첫 번째 짐승의 등짝에 달라붙어 있어요. 누가 누굴 삼키는지 구분이 안 돼요. 그만큼 바벨론이 철딱서니가 없다. 건들지 말아야 될 것을 건드렸다는.
그래서 건드릴 때 어떻게 건드리느냐? 3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의 몇 사람 곧 흠이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모실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이 관점, 철저하게 현실적 관점이에요.
힘이 필요한 국가에 힘이 되고, 힘이 된다는 말은 힘을 덧붙일 수도 있고 힘을 절약할 수 있는 자, 능률적인 사람인데 그걸 알기 쉽게 말하면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 아이큐가 높은 사람을 재주 있는 사람으로 뽑아서 고급공무원으로 부려먹기 위해서 사는 거예요. 그걸 국가행정기계에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행정기계를 능률적으로 잘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약탈하고 보호하려면 세금을 거둬서 상비군을 유지해줘야 약탈이 가능하고, 그다음에 그것에 필요한 세무공무원들이 필요하고, 그걸 하려면 머리가 잘 돌아가야 돼요. 열 사람이 할 것을 한 사람이 해야 월급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어디 가도 비리비리한 것은 공무원도 하면 안 돼요. 똑똑한 것을 뽑아서 어떤 사람도 관계없이 그렇게 한 겁니다.
예를 들어서 바사 나라 같은 경우에는 무려 80개 민족에서 똑똑한 사람을 뽑은 거예요. 그중에서 예쁜 사람을 모았을 때 제일 예쁜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에스더에요. 대단한 비율을 뚫고 미스 바사 나라 된 거예요. 바사 나라 되면 뭐합니까? 짐승인데 뭐. 자기 남편이 짐승이잖아요. 그냥 전쟁하는 것만 생각하고 힘의 의지만 생각하는데.
그래서 어쨌든 간에 그렇게 뽑았을 때 여기서 1장부터 초를 칩니다. 다니엘이 지시 받고 세 친구와 임금님이 관리하라 했으니까 다른 뽑힌 사람과 너희들을 비교해서라도 얼굴이 빛이 나야 내가 맡은 업무에 충실할 수 있다. 그러니까 8절에,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여기서 나온 게 무슨 주의? 채식주의가 나옵니다. 아버지한테 얻어맞아서 채식주의가 아니고. 그런데 채식주의는 율법에 부합된 게 아니에요. 율법에 부합되려면 약속의 땅에서 나온 채소를 먹어야 되는데 벌써 약속의 땅 망해버리고 멀리 온 이 사람들이 채소를 먹어봤자 어느 나라 채소입니까? 바벨론 채소에요. 바벨론 채소는 율법에 합당하다 그런 것 없어요. 그런데 뜻을 정했다는 말은 여기서 초를 치자. 그들이 요구하기 때문에 나는 거절한다. 현실 세계에서 요구하기 때문에 꿈의 세계는 거절한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현실 세계에서 요구하는 것은 뭐냐 하면 네가 몸이 튼튼하고 얼굴빛이 좋아서 똑똑한 애들이 우리가 이렇게 관리해서 건강하다고 왕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사람 하나 관리 잘하네. 승진해라.’ 그런 걸 노린단 말이죠. 그런데 그걸 알고, “내가 너희들 지시를 따를 것 같아? 안 돼. 나는 너희들 지시를 좌하면 우하고, 우하면 좌할 거야.” 하는 식으로 채소만 먹겠다고 해서 내기를 합니다.
내기를 해서 드디어 채소만을 줬어요. 주고 난 뒤에 어떻게 됐습니까? 10일 동안 시험을 했더니만 15절에,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인지라” 벌써 현실적인 서열, 현실 계급 그 자체를 다니엘과 세 친구는 그들의 타입, 서로 협조하고 협동해서 나라 만들자, 라는 그 목적과 원칙을 위에서 눌러버리는 거예요.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잡혀온 이 또한 하나님의 네가 포로 잡히리란 뜻을 구현하기 위해서 여기 온 것이기 뿐이기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킨 하나님이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멸망시킨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 이것이 다니엘과 세 친구의 뜻입니다. 우리를 망하게 하신 살아 계신 하나님이니까 우리를 망하게 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참.
그러니까 어떻게 돼요? 내가 있고 하나님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무슨 뜻이 있어서 내가 여기 있겠지, 망했겠지, 아프겠지, 포로 잡혀갔겠지 그 또한 존중하리라.’ 이런 자세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뭐 다니엘과 세 친구 감당 못하지요. 거기다가 아이큐까지 높지요, 일 사무 잘 보지요, 뛰어나지요.
그러니까 다른 민족들이 왕의 법을 대들면 처벌받지만 다니엘과 세 친구 앞에선 이게 없어요. 뭐가 없느냐? ‘감히’라고 말할 수 있는 대상은 다니엘과 세 친구 앞에서 그런 인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감히 자기한테 지시를 내렸기 때문에 그 지시 중간에 인간이 끼어들 자리를 인정하지 않는 걸로 돼 있어요. 다니엘과 세 친구에서는.
여러분도 다 그렇게 살고 있지요. ‘목사님, 그렇게 사는 방법은 뭡니까?’ 방법은 간단하지요. ‘안 살래, 나. 나 그만 살래.’ 그러면 되지요. 자꾸 살려고 하니까 고개를 숙이는데 나 그만 살래. 살고 죽는다는 것은 내가 그 의미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면 사는 거고, 예수님이 죽었다는 그거는 죽음이고. 이미 위에서 확정이 된 개념을 그대로 인수인계 받으면 되지 내가 목숨 끊어져 죽는구나, 좀 살면 살만하다, 이 개념은 하늘나라에 안 통합니다. 그건 현실에서만 통하는 거죠.
2장. 다니엘 할 게 엄청 많습니다. 2장 보겠습니다. “느부갓네살이 위에 있은지 이년에 꿈을 꾸고 그로 인하여 마음이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지라” 꿈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느냐 하면 다니엘부터 시작된 게 아니고 저쪽부터 현실 국가의 왕부터 꿈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뭐냐 하면 바벨론은 유다를 공격했는데 바벨론이 유다를 삼켰는데 삼킴을 당한 유다나라가 바벨론을 지금 공격하고 있는 거예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유다나라가 망할 때 유다의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너희는 언약에 의해서 망해야 했다. 이 말은 같은 말로 너희 안에 언약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너희 안에 언약은 유효하게 살아 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뭐냐? 언약만 계속 밀어내면 되지요. 이게 새로운 언약 전달 방식이에요.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라는 게 있는데 꼭 달착륙선, 화성 착륙선 같이 생겼어요, 착륙 발까지 있고. 이게 박테리오파지인데 미생물인데 이 껍데기는 단백질로 돼 있고 이 안에는 뭐가 들어있는지 학자들이 궁금했어요. 이 안에 RNA가 들어있는지 DNA가 들어있는지를 몰랐던 겁니다. RNA가 들어있다면 유전인자는 RNA가 되고, 이게 DNA가 들어있다면 DNA가 된다는 그걸 실험할 때 박테리오파지가 동원되는 겁니다. 나중에 보니까 이 안에 DNA가 밑에 내려왔어요. 그래서 단백질은 껍데기에 불과하고 안의 내용은 DNA고 DNA가 유전자라고, 1953년도 전에 이게 밝혀졌어요.
**1952년 단백질과 핵산 중에서 핵산이 유전 물질임을 밝히는 알프레드 허시(Alfred Day Hershey)와 마사 체이스(Martha Cowles Chase)의 실험에서 박테리오파지가 쓰였다.
이것과 똑같이 다니엘은 뭐가 됩니까? 껍데기고 안에 뭐가 실려 있겠어요? 다니엘과 세 친구 안에는 하나님의 언약이 유효하게 있어서 이스라엘 나라는 졌지만 언약은 지는 게 아니고 어느 나라를 몽땅 다 접수한다, 정복한다. 그게 바로 꿈의 공격으로 바벨론 나라가 이제는 공격받는 처지에 놓이게 됐습니다. 건드리지 말아야 될 걸 건드렸다, ‘네가 유다나라를 건드린 게 아니고 언약이 함께 있는 나라를 건드렸다’가 되는 겁니다.
이게 신약에 보면 예수님도 그런 이야기했고, 갈라디아서 5장에도 그런 말씀 나오지요. 누구든지 형제를 미워하면 심판 받는다, 그런 구절도 있고 그들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 해서 이 박테리오파지를 생각하게 돼요. 성도를 건드린 것은 안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유전인자, 하나님의 DNA를 건드린 거예요. DNA가 누구겠어요? 바로 예수님이죠. 예수님이 인간의 껍데기 안에 들어오신 것이 바로 오순절 성령이 온 걸 의미하죠.
오순절에 와서 이 착륙선 같은 게 어디 있느냐? 오늘날 짐승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를 이들의 안목만 언약을 아는 사람만 비로소 보일 때 성도는 사이존재, 또는 중간 중첩된 존재, 양쪽 다를 보면서 예수님의 성육신하심으로 하는 일을 그냥 복제를 하듯이 오늘날의 예수 그리스도로서 하나님께서 존재하게 하실 때까지 존재하는 거예요.
성도에게 일어나는 모든 개념은 언약적 개념을 경유해서 개념이 정리돼야 되지 ‘어떻게 하면 내가 구원받습니까, 밥 먹고 삽니까?’ 이런 개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은 몰라도 된다는 게 아니고 꼭꼭 그걸 알면서 양쪽 다를 알고 있어요. 양쪽 다 알고 있어야 내가 복음 알아서 구원받는다는 소릴 못하게 만들어요. 내가 십자가 알아서 구원받는다는 소릴 못하게 만들어요. 오히려 십자가가 우리를 이용해야지 내가 십자가 이용해서 내가 천국 가는 그런 것은 짐승의 종교입니다.
그게 바로 이단이죠. 딴 게 뭐 있어요. 나 구원받기 위해서 예수님 이용하는 것, 하나님이 시다바리입니까? 무슨 그런 하나님이 다 있어요? 없어요. 어떻게 이용해먹을 대로 이용해먹는가? 그러면 하나님이여 저를 이용해 달라고 다니엘이 그렇게 기도했습니까? 안 했어요. 가만있는데 누가 먼저 건드려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 일을 벌이니까 지체 없이 다니엘이 그 일에 말려든 겁니다.
이 느부갓네살이 꿈을 꿨는데 꿈을 꾸지도 않고 꿈 근처도 안 간 다니엘에게 그 불똥이 튀는 거예요. 만약에 여러분들이 그 현장에 있어 보세요. 얼마나 억울합니까? 남의 나라에서 공무원해서 호강까지는 아니지만 안정되게 밥 먹고 살고 결혼해서 잘 살겠다, 싶은데 갑자기 왕한테 호출되어 “누구든지 내가 어젯밤에 무슨 꿈을 꾸었는지 모르게 되면 여기 있는 내 월급 받는 공무원 말고 점쳐주는 공무원들, 월급 받는 박사들, 점쟁이들 내가 다 죽인다.”
그러니까 신하들이 겁이 나서 “임금님, 그건 하나님이 할 일이지 사람에겐 무리한 요구입니다” 하니까 임금이 할 말이 있어요. “그동안 나한테 월급 받을 때 누구 이름 빙자했어? 신의 이름 빙자했잖아. 그동안 신의 이름 빙자해서 이렇게 해야 됩니다, 저렇게 하셔야 됩니다. 청와대 있지 말고 용산으로 옮겨야 됩니다. 그것 신의 이름으로 다 그렇게 했잖아. 이제 와서 뭐 모르겠다고? 이게 어디서 구라 친 거야? 죽어 마땅해. 다 죽여 버려. 그동안 나를 속인 죄를 너희에게 묻노라!” 이런 식으로 나서게 된 거죠.
다니엘도 난처하기 짝이 없습니다. 꿈을 뭐 알아야 이야기하지요. 자기는 그냥 단백질인데요. 단백질이 어떻게 DNA를 관여해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관리해야지. 안 되는 거예요. 답답하지요. 답답하기는 다 답답해요. 현실 속에 있는 느부갓네살과 박사들과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 모조리 다 답답해요. 이 답답함을 가지고 잘 주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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