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 제1강-다니엘: 꿈과 현실
(강의:이근호 목사)
기도하고 합시다.
저희들 사랑해주셔서 말씀을 떠나지 않고 여전히 말씀에 관심을 갖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그냥 관심으로 끝나지 않게 하시고 말씀이 우리 마음 밖에서 이젠 마음 안으로 들어오는 귀한 시간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우리가 이번 수련회 하는 것은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어떤 내용의 책이냐 하면 다니엘은 구약성경 전체를 총 정리하는 책으로 보면 돼요. 나중에 다니엘 다 끝나고 난 뒤에 다니엘이 무슨 내용이냐고 혹시 묻거든 이렇게 설명하시면 되는 겁니다. 첫째 시간, 1분 만에 전체를 다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크게 쓰겠습니다.
꿈에서 시작한 현실이 다시 도로 꿈으로 소환되는 내용이 바로 다니엘서입니다. 끝났지요, 끝났어요. 여기서 현실은 꿈에서 만들어지는 거예요. 3D프린터가 제품 만들잖아요. 플라스틱으로 만들 때 네모난 선반 위에 새로운 안 보이던 제품이 나오지요. 네모났으니까 빈 공백. 빈 공백인데 정보 집어넣고 플라스틱 재료 집어넣으니까 약간 조잡해 보이는 플라스틱 물건 하나 나오지요. 3D프린터 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것은 정교하지 못해서 그래요. 조잡해서 그렇다, 내용이.
현실 자체가 조잡해요. 꿈이 현실이 되고, 현실은 도로 꿈으로 소환됩니다. 그러면 현실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은 성립되지 않고, 현실 이전에 다니엘은 어떤 꿈을 꾸었느냐가 중요한 모티브가 되겠지요. 이것은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이 꿈을 꿨고 그 요셉 이후의 모든 현실은 그냥 꿈에서 3D프린터로 제품 하나 계속해서 영글어 나오는 식이에요.
꿈은 보이지 않는 세계, 현실은 무슨 세계입니까? 보이는 세계. 다시 보이는 세계는 어디로 귀환되느냐? 다시 보이지 않는 세계, 꿈으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질문할 수 있는 것은 왜? 현실이란 걸 왜 만들었느냐? 그냥 꿈으로 있으면 되는데 꿈이 왜 현실화돼야 될 그 이유가 어디 있느냐? 이것을 다니엘은 본 내용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현실에 속해 있는 건 뭐로 구성돼 있느냐 하면 인간들이 현실 속에 있지요. 그래서 인간들이라 하는 것은 현실이 만들어낸 게 아니고 꿈에서 현실 만들어지면서 덩달아 만들어지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우주에서 은하가 멀리 멀리 달아나는 것이 아니고 은하가 박혀있는 시공간 자체가 팽창되니까 거기에 은하도 같이 딸려가서 멀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보기에는’ 할 때 ‘우리’가 누굽니까? 인간들이죠. 인간들이 우리 보기에 할 때 갑자기 여기서 무슨 놀이하느냐? 주인 놀이하는 거예요. 이걸 관찰자라 합니다. 관찰자 입장에서 볼 때 자기중심에서 은하가 많이 달아나고 있다 이 말이죠. 그러면 무엇이 되느냐? 시공간 자체는 보이지 않는데 은하, 별들이 달아나니까 우리는 별들이 달아나는 걸로 이해하는 겁니다. 시공간 자체가 팽창하는 걸로 보지 않고.
왜 별들이 달아나는 걸로 이해하고 싶냐 하면 인간들 자체가 시공간이 찢어지기 때문에. 찢어진다, 또는 해체한다. 무엇으로 어디까지 해체되느냐? 그건 몰라요. 알 수 없습니다. 이게 구경꾼의 한계에요. 인간은 구경할 뿐이지 구경한다고 내가 누군지 밝혀지진 않습니다. 인간은 관찰자고 구경꾼이에요. 구경꾼이기 때문에 전체 세계에 대해서 알 길이 없습니다. 알 길이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거예요. 왜? 현실은 현실 안에서 파악되지 않기 때문에.
현실은 어디서 파악된다 했습니까? 꿈에서 파악돼야 되지요. 그러면 현실에서 꿈으로 나아가면 되지 않겠느냐? 이게 느부갓네살 왕의 한계였습니다. 꿈은 꿨는데 무슨 꿈을 꿨는지 본인이 몰라요. 무슨 꿈을 꿨는지는 모르겠는데 뭐는 감을 잡느냐? 지금 중요한 대목에 와 있어요.
어떤 게 중요한 대목이냐 하면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꿨는데 꿈을 꿨다는 기억은 있는데 무슨 꿈을 꿨는지를 몰라요. 모르면 그냥 넘어가면 되잖아요. 왜 자기 꿈 꾼 것 알게 하라고 엉뚱하게 신하들 닦달내면서 모르면 다 죽여 버린다, 라는 그런 횡포를 부리는 것, 이게 다니엘 초반에 나온다 이 말이죠. 그냥 모르면 되잖아요. 우리 아는 것, 구경꾼은 자기가 아는 것만 알아서 살면 되는데 왜 굳이 그걸 알려고 하느냐?
그거는 느부갓네살 왕도 답답해요. 평소에는 자기가 아는 것만 알았어요. 그런데 이번에 꾼 꿈을 본인을 가만두지 않고 본인을 해체시켜버립니다. 내가 아는 인간은 인간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어요. 인간이라는 이것이 서로가 같은 인간들끼리 구경꾼들끼리 관찰해서 내린 결론이라면 이것은 오류가 있고 이건 진리가 아니란 말이죠.
인간이란 현실을 보려면 현실 밖에 나가서 다른 눈, 다른 시선에서 ‘너 이런 사람’이라고 딱 지적할 수 있는 다른 현실이 필요한 거예요. 안 그러면 서로가 서로 인생 관람하다가 끝나니까요. ‘우리가 아는 현실 속에 있었다.’ 그래서 뭐, 뭐요? 그게 진리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현실은 어디서 나오는지 몰라.
그러면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가? 모르면 모르는 대로 살았어요. 이게 진짜 중요한 데요. 모르면 모르는 대로 살면 되는데 뭔가 꿈 쪽에서 ‘너 몰라서 되겠니’라고 자꾸 자극을 해주는 거예요. 다니엘이 꿈 해몽하기 위해서 돈벌이 하려고 돌아다닌 사람이 아니에요. 그냥 공무원으로 생활하면 되는데 괜히 느부갓네살 왕이 다니엘을 자극하는 거예요.
이건 요셉도 마찬가지지요. 요셉은 자기 밥벌이하면서 그냥 살고 싶어요. 억울하게 교도소에 갇혔지만. 기회 있어서 자기 억울함을 호소해서 빠져나오려고 애를 썼는데 타인의 꿈이 요셉을 가만두지 않고 기어이 요셉으로 하여금 꿈과 현실 사이의 그 한계선을 경계선을 다 같이 겹치게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꿈과 현실이 같이 있으니까 이건 뭐가 되느냐 하면 중첩이 되겠지요. 중첩에는 뭐가 있느냐? ‘사이’라는 것, between사이가 형성돼요. 밤늦게 하는 라디오프로에 이런 게 있었어요. <꿈과 음악 사이에> 꿈과 음악 양쪽 그 사이에, 꿈인지 생시인지 잠자듯이 듣는 그 시간. 사이존재, 중첩존재를 함으로써 꿈과 현실 두 개 다 설명하는 겁니다.
그러면 현실이 뭐냐, 이걸 말씀드리겠습니다. 현실이란 모든 인간의 의식은 하나, 숫자로 하면 1이다. 모든 인간의 의식은 하나다. 튀는 의식? 이것 필요 없어요. 동일해요. 그런데 이 세상에 인간은 개성이 있고 각자 따로 논다고 하는 거예요. 따로 노는 의식이 사실은 전부 다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이 뭐냐 하면 바로 전쟁입니다.
전쟁을 함으로써 모든 인간은 똑같아요.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여하는 북한군인이나 여기 남한에서 북한군인들 죽어가는 걸 즐기고 있는 남쪽 청년이나 전쟁을 통해서 똑같은 겁니다. 모든 인간은 의식이 똑같다. 똑같으려면 개성 해체하고 해리시키고 하나의 전쟁에 집어넣으면 되겠지요.
그러면 이 일을 뭔가 해야 될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누구냐? 전쟁기계에요. 사람을 죽이는 것을 목말라하는 자. 그러니까 8강, 4강, 그러나 히딩크한테는 뭡니까? ‘아직도 목마르다, 배고프다’는 거죠. 4강까지? 안 돼. 우승까지 나가야 돼요. 알 수 없이 계속 갈증, 갈망을 느끼는 거예요. 어디로 향할지 본인도 몰라요. 그냥 갈증을 느껴요.
전쟁할 때 전쟁기계의 특징은 이빨에 있어요, 이빨. 이빨의 특징은 부서뜨리는 거예요. 그러면 상대를 부서뜨리면 상대는 더 이상 내가 부서뜨리기 전에는 인간이었지만 내가 부서뜨리면 나의 먹잇감이 되면 너는 내 앞에 사람이 아니에요. 사람이 없어지는 거예요. 내 앞에서 사람을 없애는 그러한 투쟁, 전쟁의지로 말미암아 그게 어디서 나오느냐? 꿈에서 나왔고 꿈은 모든 인간을 하나의 의식으로 만들어서 꿈 앞에서 ‘인간은 없다’가 돼요.
현실 속에는 인간들이 있는데 꿈 앞에는 현실이 없습니다. 따라서 현실을 꿈속에 하려면 여기서 어떤 절차가 필요한데 인간이었던 자가 뭐로 바뀌느냐 하면 모조리 다 전쟁기계 속의 부속품인데 어떤 부속품? 톱니바퀴. 그 기능은? 상대방 적군의 군사들은 으깨고 부서뜨리는 전쟁기계로 전환되는 겁니다.
다니엘 7장과 8장에 보면 그 전쟁기계의 특징들이 뭐냐? 이빨에 있어요. 물어뜯는 거예요. 물어뜯으면서 전쟁을 하는데 바빠요. 굉장히 바빠요. 바쁘기 때문에 그냥 몸으론 안 되니까 뒤에 날개 두 개, 네 개씩 다 달고 있어요. 그래서 이 전쟁기계는 성질이 급해요. 누구 닮아서 그런지 굉장히 급해요. 1 - 2 - 4 - 10개로 네 번째 짐승, 이빨 네 개는 세 번째 짐승, 두 개는 두 번째 짐승, 첫 번째는 하나. 짐승 넷이 전쟁기계 네 개로 나타납니다.
그들의 활동은 꿈에서 꿈으로 갈 때까지 중간경로를 이 네 마리의 짐승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이의를 걸면 안 되는 이유가, 이 시선이 어디서 나온 시선이냐? 꿈에서 나온 시선이에요. 관람객이 성립이 안 됩니다. ‘다니엘을 해석하자.’ 이건 성립이 안 돼요. ‘다니엘에서 은혜 받자.’ 성립이 안 됩니다. 사람도 아닌 게 왜 은혜를 받아요.
다니엘은 꿈의 이야기지 현실 속에 있는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이건 다니엘뿐만 아니고 모든 성경도 그런 거예요. 다니엘서 해석 자체가 시작부터가 잘못돼 있는 겁니다. ‘다니엘에 있는 현실의 내용을 알자.’ 알면 안 돼요. 이게 아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현실을 구성하는 게 아니고 없는 현실이 꿈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현실에 있는 인간들의 특징은 제국들, 국가들의 특징은 있는 현실을 더욱더 우리가 살기 편하게 새로운 현실로 잘 살기 좋은 현실로 우리가 힘을 합하여 만들자는 식으로 나가요. 현실은 우리 인간이 만드는 게 아니에요. 왜냐하면 우리는 현실의 한계를 모르는 이상 현실을 만들 자격이 안 돼요. 현실은 현실 바깥에서 손대서 만드는 것이지 현실 속에서 주물럭거리며 형성되는 건 아닙니다.
다니엘에 있어서 현실 만들기란 게 없어요. 다니엘과 세 친구의 특징은 현실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고 자기를 구원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사이존재, 어떤 꿈과 현실 사이에 중첩된 그 경계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양쪽을 다 보여주는 그런 계시적인 역할을 하는 겁니다. 그 다니엘의 이름이 이제 등장합니다. 다른 인간들은 인간도 아니니까 이름도 없어요. 이름도 필요치 않아요.
여기 다니엘에게는 유일하게 이름이 주어집니다. 그 이름은 한자로 쓰겠습니다. 아주 어려운 한자, 人子입니다. 예수님을 자신을 가리켜 말하기를 ‘인자’라 합니다. 그런데 다니엘에서 다니엘을 인자라고 불러요. 인자라 하는 것은 사람의 아들이다. 꿈에서 미리 예상된 그 인간 계통이다. 따라서 인자와 인간의 차이점을 네가 사이존재로서 그걸 보여줘야 된다는 거예요. 인간은 해리되고 해체되고 없어지더라도 영원히 남는 인간은 인자란 이름이 붙은 다니엘을 통해서 보여주는 겁니다.
다니엘은 무슨 자격으로 이렇게 하나님의 계시를 증거하느냐? 그거는 두 개의 세계를 다 보여주는 임무 때문에 인자라는 그 이름은 예수님 때까지 계속 이어져야 되는 겁니다.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가 아니라 두 개의 세계가 있었는데 그 관계는 어떻게 시작했고 어느 것이 중간이고 결국 모든 것이 소멸하면 남는 것은 꿈의 세계만 남는다는 이 중간 과정에 등장하는 두 개의 서로 상반되는 세계를 인자라는 인간 존재를 통해서 다 보여주는 거예요.
그렇게 보니까 다니엘이 참 쉽지요. 굉장히 쉽지요. 구경꾼, 관람객, 관찰자 이 인간들의 한계를 다니엘을 통해서 알면 돼요. ‘그동안 내가 내 자체에 대한 주인공으로 여겨서 남을 분석하고 평가하고 그걸 통해서 나를 평가해서 나한테 뭔가 영적으로 이익이 되는 식으로 내가 머리를 굴렸구나’ 하는 그 생각이 아무리 좋아보여도 전체 인류가 말려드는 전쟁에서는 그게 아무 짝도 소용없다는 거예요.
‘내가 살려고 하는 그것은 나는 너와 다르다’ 하는 이것을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너나 나나 전쟁기계 속에 다 들어가면 고춧가루 빻듯이 완전히 빻아버리면 하나의 의식으로 나오는 거예요. 전쟁 짐승의 의식에 전부 다 통합이 되고 복종하게 돼 있습니다. 여기 만약에 북한이라고 여기고 지금 강의하고 있는데 저 뒤에 김정은이 왔다. 어떻게 됩니까? ‘전부 다 일어서세요.’ 이래 될 거예요. 김정은이 왔는데 거기다가 여동생 김여정부터 자식들, 또 자기 자식들 달고 와서 손 통통한 축구공 같은 꼬마한테 절하라 하면 이걸 안 할 수 있어요?
아주 북한 자체가 흥미로워요. 어떤 점이 흥미로우냐 하면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모든 생각하는 것이. 이성을 초월해서 이게 내 몸에 습관화되면 나는 그 구조에 복종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게 북한을 전제국가라 하거든요. 그래서 참 북한을 이상하다 하지만 옛날에는 이상하지 않아요. 왜 이상하지 않느냐 하면 옛날 조선시대 때 그랬고, 고려시대 때 다 그랬어요. 느부갓네살 왕 때 그랬고, 옛날에 왕이 있을 땐 다 그랬어요.
이순신 장군이 백성을 위해서 싸웠습니까, 왕을 위해서 싸웠습니까? 하나, 둘, 셋 왕을 위해서 싸웠지요. 왕을 위해서 싸웠어요. 안중근 의사, 어느 과 전문의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안중근 의사가 싸웠던 것은 조국을 위해서입니까, 국민을 위해서입니까? 조국이죠. 상징적 존재에요. 추상적 존재. 통합된 의식 하나.
이것은 바로 안중근 의사가 이야기했던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라고 외칠 때 이것이 어떤 경우에 이 사고방식이 성립하느냐 하면 게임 속에 있을 때나 가능한 의식이에요. 전쟁 속에 있을 때. 적이 없을 땐 그런 의식이 안 나타나요. 반드시 게임이 있어야 되고, 게임에서는 뭐가 있느냐? 모든 인간의 공통적 의식이 나와요. 그 의식이 무슨 의식이냐 하면 제왕적 의식.
모든 인간의 공통점은 제왕적 의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인생은 뭐냐? 오자성어로 ‘왕위쟁탈전’이에요. 가정에서나 나중에 사회에 나가나 전부 왕위쟁탈전. 어떻게 하면 왕의 자리에 내가 머물 수 있는가? 그것에 대해서 인간들은 본능적으로 의식이 나오는 겁니다. 이 의식을 의식으로 만드는 여기에 전에 뭐가 있느냐 하면 니체란 철학자가 잘 말해줬어요.
인간의 의식이 있다. 의식은 아주 중립적이고 순수해 보이죠. 그러나 그 앞에 있는 게 뭐냐 하면 힘의 의지에요. 권력에 대한 갈망이 있어요. 권력에 대한 갈망으로 인하여 인간은 그 사회를 왕위쟁탈전의 전쟁터로 만들고 그게 제왕적 의식에서 모든 인간은 통일돼 있는 거예요. 현대인은 안 싸웁니까? 싸우면서 과연 누가 왕위, 제왕의 자리에 앉는가를 늘 검토하고 올라서면 그다음부터는 단점을 파악해서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안 당하려고 계엄선포하고 또 공격하고 모조리 다 그래요.
대통령의 부인이 못 생기면 못 생겼다고 험담하고, 예쁘면 예쁘다고 어디 출신이냐 따지고. 모든 의지가 그렇게 함으로써 이게 나 자체가 곧 뭐냐 하면 현실다운 현실인 것을 확인하고 싶고 증명하고 싶은 거예요. 느부갓네살 왕도 그런 거고요. 그러니까 모든 인간이 어디 갇혀 있습니까? 꿈에 갇혀 있는 거예요.
그리고 현실을 현실 되게 하는 꿈은 어디 있느냐? 그거는 궁금하지도 않아요. 그게 왜 궁금해요. 내가 왕이 되면 그만이지 그것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요. 내가 왕으로 왕 행세하면 그걸로 된 것이지 일단 왕 자리에 앉고 그걸 지키기 위해서 공격하는 자에 대해서 수비 자세에 나서고 그 자리에 오래 있는. 나중에 더 오래 있으면 자식에게 물려주고. 그래놓고 ‘내 인생 멋지게 잘 살았다.’ 그게 인간의 소망 아닙니까?
모든 의지가 그런 힘이 먼저 있고 그 힘에서 나, 자의식이니까 나라는 것은 힘이 있을 때나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권한이 생겨요. 힘이 없는 주제에 ‘나는’이란 말을 붙일 수 없어요. 어떤 회사에서 회의하는데 전부 다 임원진들, 간부급들 손들고 하는데 이제 신입이 인턴 와서 ‘저는요’ 하면 ‘손 내리세요. 힘도 없는 주제에 왜 발언을 하십니까? 당신 주제파악하세요. 당신이 말할 자리가 아닙니다. 그냥 남이 힘으로 결정하면 수긍만 하고 받아들이는 게 도리입니다. 손 내리세요.’ 이렇게 돼요. 힘이 있는 자가 그런 겁니다.
그렇게 직장에서 설움 받고 집에 가장으로 술 먹고 들어가서 ‘아빠 왔다’ 고함지르는. 자기 집에선 제왕이죠. 밖에 나가면 힘없이는 사람 구실 못하는 겁니다. 이게 전쟁터란 말이죠. 그러니까 다 꿈에서 막혀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이야기가, “우리는 어떻게 이 현실 속에서 왕이 됩니까?” 왕이 됩니까, 라는 말을 하면 안 돼요. 우리는 사이존재, 꿈과 현실 둘 다를 중첩적으로 경험해야 돼요. 그 경험한 자가 누구냐? 바로 인자 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 노선과 계열만 되면 됐지 예수님 계통인데 나는 어떻게 뭐 돼있다, 그거는 반칙입니다. 그런 것은 아예 소망해서도 안 되고 기대해서도 안 돼요. 사이존재라고 점잖게 했는데 이걸 현실적으로 보면 사이존재가 아니고 무슨 존재냐 하면 ‘끼인 존재’ 어쩔 수 없는. 계시 받고 난 뒤에 다니엘이 수일 동안 앓았다고 했어요. 누가 계시 달라 했습니까? 계시가 오니까 자기 몸은 아픈 거예요. 현실과 계시 사이에 끼어있으니까.
그러면서도 다니엘이 계시 받고 알게 된 것은 뭐냐 하면 현실은 존재하지 않고 꿈만 존재하는데 꿈이 꿈 되기 위해서 현실을 꾸역꾸역 3D프린터처럼 뭔가 가현체로 없는 데서 현실이 생성되고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다니엘은 아는 겁니다. 그런데 그 만들어진 현실의 내용이 꿈에 점점 접근하면서 이것들은 점점 살벌해지고 처참해지고 잔인해지고 서로 상대를 그냥 물어뜯는 거예요.
심지어 다니엘 7장과 8장에 나오는 두 번째 짐승 곰은 아예 이빨에다 갈빗대 세 개를 물고 다녀요. 그래서 저는 그게 양 갈비인지, 아니면 LA갈비인지, 소갈비인지 그걸 자랑스러워한다고요. 전리품처럼. 세 개의 나라를 했다는 거죠. 메대와 바벨론과 이집트, 세 개 나라를 내가 물었다. 나는 페르시아거든요.
바사 나라라고 나한테 이야기하지 말고 내 안에 어떤 나라가 내 힘에 의해서 내 의지에 의해서 으깨졌는가가 나라고 지칭해 달라는 거예요. 짐승의 특징은 이름이 없어요. 그것은 인자 외에는 이름을 붙일 가치가 없어요. 그냥 기계니까. 기계의 특징은 동작하는 거예요. 어디서 멈출지 본인도 몰라요. 그냥 존재하는 자체가 폭력입니다. 우리 십자가마을은 폭력적이지 않지 않습니까, 하는데 다 지금 그걸 속에 억누르고 있는 거예요. 스프링이 말을 안 들을 때는 튕겨 나옵니다. 억누르고 꾹 누르고 있는 거예요. 인간성이 좋아서 누르고 있는데….
교회에서 폭력적인 것이 언제 나타나느냐 하면 보통 교인들은 자기의 폭력성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교회 와서 하는 요령이 뭐냐? 아무것도 안 해요. 그런데 철이 없고 교회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교회 와서 뭘 하느냐? 봉사를 해요. 봉사를 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느냐? 자기만 쪼다에요. 아무도 교회 신경 쓰지 않는데 자기가 봉사하면 자기가 모범이 되어서 다른 사람도 자기 따라서 봉사하는 화목하게 서로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면서 그렇게 될 줄 알았지만 ‘니가 다 해라’ 다 빠져버려요.
처음에는 한두 달은 참습니다. 나중에 6개월만 하면 극한에 이르지요. 그때 뭐가 나오겠어요? 폭력이 나오는 거예요. “다 나가라. 이 의자 내가 했다.” 실제 있는 실화에요. “이 교회 내 돈 주고 내가 다 했다. 다 나가, 다 나가.” 이런 것처럼 사람의 봉사는 공짜가 아닙니다. 반드시 티를 내게 돼 있어요. 사람이 노동을 하면 티내게 돼 있지 꾹꾹 누르고 참고 있지 그게 언제 폭발할지는 누가 옆에서 건드리면 폭발하게 돼 있습니다. 세상 자체가 그래요.
그래서 여기 처음에 바벨론, 그다음에 1에서 2, 메대와 바사 두 나라거든요. 그다음에 헬라, 마케도니아 네 나라. 그다음에 몇 나라라 했습니까? 지중해 근방에 있는 섬들을 다해서 열 개의 섬을 했어요. 이 나라의 특징은 뭐냐? 그건 의미 없어요. 마지막에 있는 네 번째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를 자기 뱃속에 다 이빨로 부서뜨렸다는 거예요. 세 번째는 첫 번째와 두 번째를 이빨로 부서뜨렸다. 두 번째는 첫 번째를 부서뜨렸다.
그럼 첫 번째는 뭘까요? 나는 꿈의 세계를 물었다. 꿈의 세계는 뭐냐? 이스라엘이에요. 이스라엘을 바벨론이 물었던 거예요. 건들지 말아야 될 것을 건드린 거예요. 이거는 뭣도 모르고 건드린 거예요. 하나님의 언약이 있는 나라를 그들은 신나게 건드린 겁니다. 첫 번째 바벨론나라가 유다나라를 건드림으로써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짐승에서 뭐가 되느냐 하면 사람이 돼요. 느부갓네살로선 천만다행이죠.
그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 다니엘 7장에 나옵니다. 4절에,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사람의 마음을 받았다고 돼 있어요. 그럼 사람의 마음은 어떤 마음을 말하느냐? 다니엘 5장 21절에 어떤 마음이냐? 너는 짐승보다 못하다는 마음, 그 마음을 받았던 거예요. 왕이지만 짐승 레벨, 짐승 같은 수준으로 처참하게 내려앉은 겁니다.
5장 20절에, “그 왕위가 폐한바 되며 그 영광을 빼앗기고 인생 중에서 쫓겨나서 그 마음이 들짐승의 마음과 같았고 또 들 나귀와 함께 거하며 또 소처럼 풀을 먹으며 그 몸이 하늘 이슬에 젖었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할 때 몸은 해체되고 해리되어 사람 취급 못 받지만 뭐는 알아요? 사람이라는 도리가 뭐냐? 내 몸을 내가 사람답게 유지하는 게 사람의 진정한 마음이 아니라 자기는 부셔지고 흙이 되어가면서도 이런 일을 누가 했다?
‘하늘에 계신 저 높으신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할 때 그게 하나님이 원하는 이 현실 세계 속에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왜? 내가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내 뜻이 아니고 꿈의 뜻이기 때문에 그냥 꿈을 경유함으로써 짐승 같은 내가 꿈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하나님이 원하는 인간으로 달라졌다면 그걸로 사람이라는 사람의 마음을 받았다는 명칭을 얻게 됩니다.
그러면 다니엘의 세 친구는 뭐냐? 다니엘의 세 친구는 불 속에 들어가서 사람이 됐지요. 그 다니엘의 세 친구를 불에 집어넣을 때 불에 집어넣던 그 옆의 사람들이 불이 뜨거우니까 소방관들이 입는 방화복을 입었잖아요. 그런데 불 조절을 못한 것 같아. 옆에 붙은 방화복을 입은 자들의 죽었어요. 불에 타서 죽었어요. 그런데 다니엘의 세 친구는 특징이 있어요. 몸의 피부, 단백질 세포가 타는 정도가 아니고 입었던 옷 자체가 타질 않아요. 이것 어느 방직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입은 옷 하나도 불에 그슬리지도 않았어요.
이걸 설명하는 개념은 재료가 무엇인가, 어떤 재질인가를 설명하는 것으로 설명이 안 됩니다. 뭐로 설명되는가? 장field, 인간이 있으면 인간을 둘러싼 고유의 영역 안에 지금 다니엘 세 친구가 있는 거예요. 영역, 일종의 캡슐 같은 거죠. 어떤 캡슐로 다니엘의 세 친구를 보호하는데 현실에서 불길은 다니엘 세 친구를 잡아넣는 그것을 불태울 정도로 강렬했지만 현실 말고 현실과 중첩된 꿈의 세계에서는 이 불은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겁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불 속에 있는 꿈을 꾸신 적 있어요? 지금 아니더라도 몇 년 전이라도 있었어요? 불 속에 들어갔다 나오고 난 뒤에서 꿈에서 깨고 난 뒤에 혹시 피부에 이상이 있다든지 옷이 탄다든지 그런 경험 있습니까? 없지요. ‘꿈은 꿈일 뿐 따라하지 말자.’ ‘개그는 개그일 뿐 따라하지 말자.’ 이런 게 있어요. 꿈은 꿈일 뿐 그걸 현실화시키지 말자.
그러니까 꿈은 현실 속에 통하는 인간의 언어로 통할 수 없는 세계, 그게 바로 꿈이 세계에요. 헬라어? 히브리어? 백날 공부해보세요. 꿈은 못 파고 들어갑니다. 꿈은 파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파고 들어가는 방법은 뭐냐? 다니엘에 의하면 우리로 하여금 왕위쟁탈전 속에 우리가 던져지는 거죠. 짐승들의 의지에 대해서 우리는 갈아 먹히는 거죠.
어떤 사람은 이빨 엘에이 갈비 열 대를 물고 돌아다니고, 어떤 짐승은 다섯 대의 갈비를 물고 다니고요. 어떤 사람은 자기 몸에다 날개를 네 개나 달고, 누군 열 개나 달고 팡팡 날아다녀요. 주식 하지, 비트코인 하지, 펀드 하지, 땅 부동산 투기하지, 날개 몇 개쯤 되죠? 막 날아다녀. 왜? 왕위쟁탈전에서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런 사람을 보고 뭐라고 하느냐? ‘부럽다. 좋겠다.’ 맞지요.
미국의 재벌, 누굽니까? 일론 머스크 보고 누가 욕합니까? 부럽다. 이제는 돈에다가 권력까지 날개를 달았으니 이거는 하나의 회사가 아니라 재벌이 국가의 경영까지 참여해서 날개를 달았는데, 보통 날개를 달았다는 건 뭡니까? 거칠 것이 없다는 뜻이지요. 근데 뭐 소소한 자기 반에서 4학년 2반에서 급장한 날개, 그 날개는 그때 통하고 이제는 크면 클수록 날개가 커져야 되잖아요. 큰 날개 앞에 작은 날개는 아주 제 빛을 발하지 못합니다.
바로 그 세계를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혹독하게 저와 여러분들을 거기에 집어넣어요. 사자 굴에 집어넣고 불 속에 집어넣고. 현실의 전쟁터에 우리를 집어넣습니다. 첫째 시간을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이 세상은 어떤 전쟁터가 있는지를 그걸 잠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현실입니다. 꿈은 잠시 멈추고요. 중첩된 사이존재 이것도 잠시 멈추고 현실을 관찰하는 관찰자 입장, 또는 구경꾼의 입장에서 현실은 뭐냐? 이걸 제가 잠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현실은 네 자로 이겁니다. 상호협조, 상호협동이에요. 내가 생산한 것과 네가 생산한 것을 교환하는 것, 주고받는 거예요. 이게 바로 현실입니다. 서로 상호 주고받으면서 여기서 추상적인 사회라는 것이 발생되게 돼 있어요. 줄 때 그냥 주는 자가 지도층이 되고 얻어먹는 자는 하층 계급이 돼요, 역사에서. 이것만 아시면 3초 내에 인류역사 끝납니다. 다 뗀 거예요. 그냥 줄 때 만약에 갚아준다면 이거는 전쟁입니다. 줄 때 고맙다고 받으면 사회질서가 성립돼요. 그냥 주는 쪽은 왕이 되고 밑에 받는 쪽은 신하가 되고 백성이 되는 거예요. 그럴 때 질서는 안정이 되는 겁니다.
이 사회를 보통 A type, B type, C type, D type라 하는데 D type는 잘 인정하지 않고. A type은 작은 씨족사회에서는 서로서로 돕는 거예요. 증여라 해요. 호혜적 관계. 주로 혈족관계에 있을 때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는 농심 마음 있잖아요.
B type은 뭐냐? B 형식은 약탈하고 그다음에 보호하는 것. 이거는 왕이 있는 국가, 제국입니다. 이건 아주 쉬운 이해로 조폭이죠. 조직폭력배가 제일 밑에 있는 신참, 양아치라 하잖아요. 가만 앉아서 다단계 하듯이 다 뜯어먹고 양아치한테는 점심 때 꼭 짜장면 사줘요. 그걸로 끝나요. 그래서 조폭영화 보면 주로 뭘 먹습니까? 사채업자가 앉아서 짜장면 먹지요. 그때 가끔 마동석이 나와서 전부 털고 나오지 않습니까. B type은 약탈하고 보호하는 거예요. 빼앗고 그다음에 지켜줄게. ‘네 장사 잘하도록 내가 지켜줄게.’ 이게 바로 제국형식이에요. 지금 여전히 제국형식이 모든 나라에 다 들어있습니다.
C type은 뭐냐 하면 남의 노동에 투자해서 투자금 회수하는 것, C type은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요. 자본주의 사회라 할지라도 A, B, C type이 전부 혼합돼 있어요. 현재 같이 다 돼 있어요. 약간 더 설명하면 자본주의가 되려면 B type이 있어야 돼요. 깡패 같은 오야봉 같은 나라가 있어야 내 신용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에 강한 나라의 자본체제가 약한 나라의 자본시장을 잠식하게 돼 있습니다.
이렇게 B type과 C type이 같이 있고, B type, C type이 같이 있을 때 약탈한 걸 누가 가져가느냐? 약탈한 걸 누가 가져가는 게 아니고 A type처럼 내가 돈 벌은 것 너희에게 사회적으로 기부를 함으로써 그 기부 받는 쪽이 회장님, 대표님 하면서 자진해서 굴복해서 국가의 질서를 유지하는 A, B type이 다 섞이는 이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짐승4, 짐승3, 짐승2, 짐승1이 따로 놀면서 동일하게 인간의 모든 의식은 하나로 모아진다.
그건 뭐냐? 권력에 미쳐서 싸대는 힘의 의지에 움직임이다, 흐름입니다, 이래 보면 돼요. 그게 현실 세계에요. 이건 뭐 출생한 순간부터 이 세계에 소속돼 있습니다. 빠져나올 수가 없어요. 현실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 하는 질문을 하지 말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현실을 살면서 현실의 한계를 충분히 우리가 온몸으로 느끼면서 하나의 나는 관찰자 입장이 되지 못하고 같이 섞여있는 입장인 것을 절감해야 되죠. 나는 사람이 아니무니다. 그냥 힘이고, 나도 전쟁기계의 부속품인 것을 절실하게 느껴져야 돼요.
전쟁기계, 하나에 힘의 의지 특징이 뭐냐? 잘했다, 못했다는 평가할 수 있는 자격 자체, 대상이 안 됩니다. 잘했으니까 오래 살고 못했으니까 일찍 죽는다? 이 자체가 성립이 안 돼요. 선과 악 자체가 성립이 안 돼요. 모든 인간은 똑같습니다. 이 현실은 도대체 어디서 올라왔는가? 그게 다니엘 7장, 다니엘 8장.
7장 2년 뒤에 8장이 나오는데 특징이 뭐냐? 바람이 불어서 바다에서 기어 나오는 짐승부터 시작이 되는 겁니다. 바다에서 나오는데 그러나 여러분 유념해야 돼요. 어느 바다입니까? 네 짐승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라고 묻지 마세요. 왜냐하면 7장 1절에서 다니엘이 침상에서 뭘 합니까? “꿈을 꾸며” 꿈이에요, 꿈.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꿈이에요. 현실을 지배하는 꿈이고 현실을 발생시킨 꿈입니다. 지금 다니엘은 우리에게 꿈 이야기를 해주겠다는 겁니다. 현실 배후에 어떤 꿈이 있었는지 그 이야기를 해주겠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려면 10분 뒤에.
'수련회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25수련회3강 출렁이는 정신 (1) | 2025.01.18 |
---|---|
25수련회2강 제국주의 (0) | 2025.01.18 |
겨울수련회 교재 2025 (3) | 2024.11.19 |
24여름수련회 교재(말과 말씀) (1) | 2024.05.30 |
24겨울-2강 통보 (0) | 2024.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