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2강-YouTube강의(그리움 사무엘하 3:16)20240604-이 근호 목사
제472강, ‘그리움’. 상당히 소박하죠. 개인마다 그리움이 있다는 것은 자신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조심스럽게 착실하고 야무지게 살아왔다는 자기에 대한 긍정입니다.
‘나 지금까지 잘 살아왔어. 따라서 누군가를 나는 소유하거나 이렇게 잘 살 수 있는 그러한 자격이 나한테는 있어야 돼.’ 살아가면서 자꾸 그런 생각이 들어요. 열심히 살아온 만큼 나는 살만한 가치가 충분히 충족된 사람이라는, 자기에 대해서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그런 아집 같은 것이 발생됩니다.
참 위험한 생각이거든요. 그렇게 성경에서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키웠다, 키웠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자기가 그만큼 애쓰고 노력하고 희생하고 고생한 게 들어있으면 그 덕을 보려고 하는 거예요. 내 고생한 것에 대해서 어떤 보상 같은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따내려고 하는 거예요. 이것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내 중심의 전형적인 생각입니다.
성경에서 그런 예가 나와요. 뭔가 자기는 열심히 살려고 하는데 주변에 되어가는 상황이 내 뜻대로 안 되어가지고 울게 된 남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무엘하 3장 15절에서 16절까지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이스보셋이 보내어 그의 남편 라이스의 아들 발디엘에게서 취하매 그 남편이 저와 함께 오되 울며 바후림까지 따라왔더니 아브넬이 저에게 돌아가라 하매 돌아가니라”
이 두 구절 가운데서 한 명, 두 명, 세 명, 네 명의 사람 이름이 등장하죠. 이 두 구절 가운데 네 명의 이름이 등장했으니까 이 등장인물이 누구인가를 제가 반드시 설명해야 되겠죠.
여기 아브넬부터 시작합시다. 아브넬은 사실 배신자에요. 아브넬은 장군이거든요. 장군 중에서 최고의 신하입니다. 사울과 다윗 사이에서 사울은 죽고 다윗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미 정권의 맛을 본, 권력의 맛을 본 사울이 쉽게 다윗에게 정권 이양을 할 생각이 없습니다. 사울은 죽었지만 누구는 남아 있는가? 사울의 가문은 남아 있잖아요. 사울의 가문은.
그래서 나라가 다윗으로 아직까지 통합되지 않았어요. 나라가 둘로 나뉘어져서 서로 지향하는 왕이 달라요. 한쪽은 사울이 그동안 왕 했기 때문에 왕 집안에서 자식이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야 된다는 보수 측이 등장하죠. 왜냐하면 줄곧 사울 집안에서 왕을 했으니까 어떤 급작스러운 변화에 백성들이 쉽게 적응을 못해요. 사울 집안에서 왕 나왔으니까 그냥 그 아들이 해서 어떤 변화의 소지를 줄이는 것이 우리들 삶에 편하겠다는 보수적인 태도죠. 거기에 반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다윗을 의도적으로 지금 강력하게 밀고 있는데 다윗이 이렇게 실질적으로 이방나라와의 싸움에서 승리했고 다윗이 왕이 되어야 된다.
어쨌든 간에 왕이 비어있지는 못하고 다윗이 왕이 되었어요. 왕이 된 상태에서 사울의 집이 언뜻 거기에 동의를 못하는 거예요.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인데 거 뭐 이름도 별로 없는 집안이 감히 왕가를 대적해서 지가 왕이 돼? 안돼. 이거는 용납할 수 없어.’ 하고 두 집안 사이에 티격태격하겠죠.
여기서 집안끼리 싸운다는 것은 서로 추종하는 군대 중 어느 편이 강력하냐가 이제 문제가 되겠죠. 여기 사울의 아들 이름이 이스보셋입니다. 이스보셋에게 아주 대단한 장군이 있는데 충실한 신하가 아브넬이에요. 아브넬과 이스보셋이 한패 먹었고 다윗과 요압이 한패 먹었고. 이렇게 두 세력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스보셋의 사울 진영에서 신하인 아브넬의 권세가 사울 집에서 점점 더 실권이 더 높아지기 시작한 거예요. 왕보다 장군이 더 큰소리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브넬 장군이 자기보다 권세 있는 자가 없으니까 왕을 얕잡아 볼 수밖에 없죠.
그래서 사울에게 첩이 있는데 그 첩을 건드렸어요. 첩을 건드리니까 이스보셋이 화가 나서, 네가 왜 건방지게 주제넘게 네 권한을 넘어서느냐? 왕의 첩을 건드린다는 것은 이건 왕만이 할 수 있는 권한을 신하가 하니까 이스보셋이 자기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여겼던 거죠.
그러니까 아브넬이 발칵 일어나가지고 ‘당신과 사울의 집안을 아직까지 건재하게 한 게 누구 덕인데 여자 하나 건드렸다고 나한테 그렇게 대들어? 그렇다면 나는 너네하고 안 놀고 현재 대세인 다윗에게 붙겠다.’ 하고 다윗에게 통보했어요. 배신한 거죠. 적의 최고 신하가. 그러니까 다윗이 하는 말이, 좋다. 좋은데 그렇다면 다윗 자기가 사울 집안을 이기고 다윗이 따로 자기가 왕 되기는 싫고 ‘내가 원래 사울 집안 맞잖아. 내가 원래 사울의 사위 맞잖아.’ 이렇게 된 거예요.
백성들로 하여금 다윗이 왕 되고 난 뒤에 되지도 못할 사람이 왕이 되었다는 오해는 듣기 싫은 거예요. ‘내가 원래 사울 집안이잖아. 사울의 사위였잖아. 그러니까 그걸 백성들에게 증명하기 위해서 사울의 딸 미갈을 나한테 데려오게 되면 아브넬 네가 진정 내 쪽으로 귀순한 것으로 인정하겠다.’ 그렇게 협상을 본 겁니다.
그럴 때 아브넬이, 오케이 하고 미갈을 데려온 거예요. 그런데 미갈이 다윗하고 헤어지고 난 뒤에 결혼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결혼했죠. 결혼한 남편이 15절에 “그 남편 라이스의 아들 발디엘에게서 취하매” 발디엘이라는 사람이, 다윗과 헤어지고 난 뒤에 다윗의 처 미갈이 새로 결혼한 남편이에요.
이거 뭡니까? 자기 아내를 다윗에게 보내는 것이 자기 뜻이었어요, 정치적 상황입니까? 이거는 자기가 힘이 없고 권세가 없으니까 정치적 상황 속에 자기가 약자가 되어서 어쩔 수 없이 아내를 다윗에게 돌려주게 되었죠.
그때 16절에 “그 남편이 저와 함께 오되 울며 바후림까지 따라왔더니” 그러니까 남편이 찔찔 울면서 아내를 따라오는 거예요. 그래서 아브넬이 “어이, 저리 가.”하니까 아무소리 못하고 남편 발디엘이 아내 빼앗기고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간 거예요.
이럴 때 이제 우리가 봐야 될 것은 이 남편이 울었다는 거예요. 왜 울죠? 남편이 왜 울었습니까? 아내를 사랑하니까 우는 거죠. 그게 그리움이죠. 그리움이라 하는 것은, 아까 처음에 이야기했듯이 자기가 지금껏 살아왔을 동안 문제가 없었죠. 자기 인생에 대해서 최선을 다했죠. 그런데 그게 외부환경에 의해서 사랑하는, 사랑하니까 우는 거잖아요, 사랑하는 아내를 강제로 빼앗겼잖아요. 그러니까 그리워서 우는 거예요. 그리워서.
이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이 세상은 개인적인 행복, 개인적인 그리움, 개인적인 소박한 인생을 안정되게 보장 못하는 세계입니다. 이 세계가. 우리가 ‘나는 뭐 욕심 없어. 우리 가정만 잘하면 되지.’ 이거는 하나님께서 우리 외부의 환경을 어느 정도로 안정적으로 보장해줬기 때문에 생긴 결과지, 마땅히 내가 행복해야 될 권한은 우리한텐 없습니다.
이 영적 세계에서 ‘나는 당연히 행복해야 돼. 왜?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욕심입니다. 그냥 하나님께 이 정도라도 감사하고 고마워해야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