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0강-YouTube강의(이단 로마서 1:6)20240507-이 근호 목사
제470강, ‘이단’. 보통 이단이라 하면 자기하고 뜻이 다른, 다른 사람들, 자기하고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을 이단이라 생각하기 쉽죠. 그런데 성경에서 이단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자신보고 이단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우리 자신부터.
왜 우리 자신이 이단이 되느냐?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만큼 기적과 능력을 행하지 못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어도 산이 뽑혀서 바다에 빠져야 되는데 우리는 그런 재주와 능력이 없잖아요. 그게 우리가 이단이라서 그런 거예요.
기본적으로 성경에서는 예수님 빼놓고 다 이단이에요. 하나님의 영광이 되지 못하고요. 죄가 전혀 없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구약의 제사장들도 마찬가지에요. 그들이 아무리 제사장해도 그들은 그것으로 하늘나라에 못 갑니다. 엘리야도 마찬가지고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에요. 자기의 행함과 자기의 능력으로 구원받지 못해요. 아담도 물론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이단이라고 언급했을 때, 현재 네 안에 들어있는 내용이 네가 이단이라고 이야기하고 서술하고 있고 나열하고 있는 그 이단성 있는 내용이 지금 네 안에도 같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겁니다. 성경에서 이단이라는 것을 언급할 때는 ‘너 말고 다른 사람’ 이런 취지가 아니에요. 너도 이단과 똑같은 성정을 가진 자고 똑같은 본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성경에서 이단이라 하고 그 이단 속성이 나하고 같을 때, 어때요? 우리는 기뻐해야 돼요, 슬퍼해야 됩니까? 기뻐해야 되죠. 왜? 우리는 마귀한테 속아서 철저하게 나만은 이단 아니고 나만은 구원받을 수 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들었단 말이죠. 이미 태어나면서 죄인이라고 아무리 성경이 이야기해도 사람은 안 듣습니다. 안 듣고 ‘저들과 같지 아니하니’ 하는 식으로 자기만큼은 구원받고자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예수님이 보시는 것하고 우리 인간들이 보는 것하고 달라요. 인간들이 보는 자체가 이단적이에요. 자기가 자기를 건지려고 보고 자기가 지옥에 안 빠지려고 보고 있는 거예요. 이것은 하나님 뜻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바가 되는 겁니다.
모든 인간이 다 이단 같으면 그럼 천국 갈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아니한가, 흔히 그런 상투적인 반박이 나오죠. 거기에 대해서 로마서 1장 6절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했어요. 이 문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지 아니하면 그냥 이단 그대로 있습니다.
그럼 나는 이단 안 되고 나는 정통적인 성도가 되어서 천국 가고 싶다 할 때는 어떻습니까? 이것이 그리스도의 소유성을 나타냅니까, 아니면 자기 인생을 자기가 다루려고 하는 쪽이에요? 어느 쪽의 뉘앙스가 강하죠? ‘나는 저처럼 이단 안 되고 나는 정통으로 구원받아야지.’라는 의식 자체가 그 기본적인 마음 자세가…. ‘나는 이제 내 것 아니야. 나는 이제 손 뗐어. 나는 나한테서 손 뗐어. 나는 뭘 해도 소용없어.’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다면 나는 내 것이 아니라는 그런 의식을 지니고 있습니까?
자, 생각해보세요. 내가 내 것 같으면요. 때 되면 밥 먹여야 되죠. 정신이 뭐 좀 혼란스러울 때는 병원도 가야되고. 왜? 내 것이니까. 내가 날 챙기지 않으면 누가 날 챙겨줘요? 못 챙겨주죠.
그런데 사고를 한번 바꿔보는 거예요. 내가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다. 이 말 자체가 뭐냐 하면 내게 필요한 것, 나의 미래, 나의 과거 처리, 지난 날 어떻게 살았던 간에 그 모든 것을 누가 처리해준다는 말입니까? 그리스도가 처리해주죠. 그럴 때 그리스도의 것이 되잖아요. 그리스도의 소유물이 된단 말이죠.
그리스도의 소유물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책임지실 분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소유물이 된 나 자신이 나 자신에 대해서 그렇게 뭐 탄식하고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괴로워하고 좌절할 필요가 있어요, 없어요? 없죠. 내가 내 것이 될 때는 좌절해야 돼요.
그래서 이렇게 생각합시다. 모든 인간이 이단인데 이단 중에서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만 자기가 이단인 것을 알고, 나머지는 이단인 줄 모르면서 이단이 되는 것. 정리됐죠? 그렇게 정리되는 거예요.
그럼 제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무엇이 또 듣고 싶은가 하면 ‘그럼 내가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다는 증거가 뭐냐?’ 이것이 이제 또 잔뜩 궁금한 거예요. 거기에 대해서 로마서 1장 16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이렇게 되어 있죠.
여기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옵니다. 무엇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복음으로 인하여 또는 복음에 대해서 복음과 함께 있음으로서 전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했습니다. 아까 제가 초반에 이야기한 것과 연결시켜봅시다. 이단이 아닌 자가 어떤 자라고요? 이미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죠.
그러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안다 했습니까? 이미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그 소유가 된 사람 안에 복음이 잔뜩 들어오죠. 복음이 잔뜩 들어오면 그리스도의 것이 된 사람은 이 땅에서 어떠한 사태가 일어나더라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죠. 예수님에 대해서도 물론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죠. 당당한 죄인이에요. 당당한 죄인. 할 줄 아는 게 죄 짓는 것 외에는 없기 때문에.
이 말이 무슨 뜻인지를 여러분들이 안다면 말이 이렇게 바뀐 질문에 대해서도 답변이 되어야 돼요. 만약에 복음을 모른다면, 달리 말해서 그리스도의 것이 아니라면 그 사람의 삶은 매사가 부끄러워서 그 부끄러움을 제거하고 없애고 그 부끄러움이 생기지 않도록 단단히 자기에게 압력을 가하고 자기를 훈계하면서 부끄러운 요소가 들키지 않는 쪽으로 살려고 아등바등 모든 신경을 거기다 쏟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사는 것이 자유입니까, 자유 아닙니까? 자유 아니죠.
본인이 본인을 늘 단도리하고 억압해야 되니까 자유롭다고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부끄러운 것이 들어있는데 이게 행여나 들킬까 싶어서 오버하죠. 과도한 행동을 그다음부터 하게 되는 겁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그런 사람들이죠.
끝으로 요한계시록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9절에 보면 “보라 사단의 회(會)” 악마의 모임이죠,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이렇게 되어 있죠.
자, 유대인이 자칭 유대인이라 해서 악마에 의해 모임으로 등장하는 그 자들의 바깥 활동은 어떤 식으로 대표적으로 나타난다는 말입니까? 유대인식으로 나타난다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들 아시다시피 도대체 유대인이 내세우는 게 뭐에요? 어떤 걸 내세우는 겁니까? 유대인이 내세우는 것은 ‘하나님 믿고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한 삶을 살자’ 그거죠. 그게 유대인이죠.
그 유대인, 바리새인 잘했던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사도 바울이었잖아요. 사도 바울이 뭐라고 합니까? 로마서 1장 16절에서.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왜? 더 이상 자기는 자기 것이 아니고 누구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에 뭐로 가득 차 있어요? 또 자기 잘남으로 가득 차있으면 안됩니다. 복음으로 가득 차야 되는 거예요. 십자가 복음으로 가득 찬 사람. 그 자만이 이단이 아닌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