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 있었던 이야기를 그 뒤에 태어나게 만들어놓고, 그것을 통보해준다
그러면 우리 쪽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과, 이것이 서로 충돌, 또는 마찰이 일어나게 된다 .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의 언어로 우리 인간에게 다가오신다 .
인간은 그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자기 중심의 언어로 해석한다. 자연재해는 왜 일어나나? 하나님이 일으키신 의미를 모르므로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라고 답한다.그 뜻이란 의미를 모르기 떄문에 동원된 것일 뿐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나를 만들었다" 라고 하는데, 하지만 정답은 뭐냐 하면, "나는 내가 없는데서 나왔다" 라는 것인데, 그렇게 자기가 없는데서 자기가 나왔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겠다" 라는 것을 가리기 위해서, 우리는 뭐가 필요하냐 하면, 자기 쪽에서 하나님께 다가가는 언어가 필요했다 .즉 성경을 통해서 신에게 접근한다 그것이 다 엉터리고 속임수이다. 정작 해답은 모르고 있으면서도, "여기는 해답을 아는 나다" 라고 하는데, 그러니 그 사이에서 속임수가 필히 나오게 되어있다 . 그것이 '틈' 이라는 것인데, 즉 빈곳이라는 겁니다.
(막 13:24)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막 13:25)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막 13:26)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막 13:27) 또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이 말씀이 과연 과학적으로 설명되고 성립이 됩니까? 중성적인 인간의 언어로서 이것이 과연 증명이 될까요? 아니 해가 왜 어두워지고, 달이 왜 빛을 내지 않고, 그리고 하늘의 별이 왜 떨어지지요? 그것이 과연 과학으로 설명이 됩니까?
'영적 전쟁' 이라는 전제가 먼저 설명되어야 한다 . 우리 인간이 배제된 전쟁, 그게 바로 영적 전쟁이다..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즉 메시야와 악마와의 싸움이. 그러니까 주님 쪽에서 우리에게 들어온 것인데, 결코 우리가 먼저 다가갈 수는 없다
(눅 16: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마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천국이란 것을, 고정적으로 "여기 있다. 믿어라" 라고 하면 왜 안 되느냐 하면, 천국이 올 때는 우리가 결코 중성적인 존재인 것을 천국 자체에서 용납하지 않는다 . 왜냐하면 영적 전쟁이 되려고 하면, 선한 쪽도 있어야 하지만 악한 쪽도 반드시 맞은편에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전쟁이라는 것이 성립하게 된다 .여자의 후손은 무조건 선이고, 뱀의 후손은 무조건 악인데, 이 선과 악 사이는 인간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있었던 이야기이기 때문에, 즉 인간이 개입되기 이전부터 있었기 때문에, 그 전쟁의 가운데서 "저는 중성인데요. 저는 아무 나쁜 것도 없습니다" 라고 하면서 주제넘게 끼어들지 말라는 겁니다. 우리는 그 전쟁 여파로 나온 결과에만 순응하면 된다 .천국이 침투하게 되면, 인간들이 형성한 천국이 침노를 당하게 된다 .구약 때는 율법과 선지자들이 공격했다 그런데 신약 때는 누가 하는고 하니, 성도가 인간세계를, 즉 성도가 인간들의 천국관을 완전히 파괴시켜버린다 .그러면 성도가 어디 있느냐 하면, 성도는 없다. 인간들이 쓰지 못하는 언어 속에서 비로소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까지 강의한 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새로운 언어 " 즉 하나님이 의도하신 참 뜻을 가진 언어!. 동일한 천국, 영생, 율법, 인간, 악마, 선, 악, 교회, 그리고 에베소서에 나오는 창세 전, 특히 예정, 이러한 수많은 용어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용어들이 반드시 어떻다는 겁니까? 여기에는 두 개의 기능이 모두 다 포함이 되어있다는 말이죠.( '파괴'와 '창조'를 포함한 언어) 쉽게 풀이하면 충돌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해석과 인간의 해석.
그러면 어떻게 풀어내는 것이 창세 전의 언어, 즉 창조된 언어를 활용한 사례가 될 수 있을까요?
성경에 그게 나오는데, 해가 떨어지고 별이 떨어지는 것이 바로 단 하루에 이뤄진다는 말이죠. 인자가 오는 것이 단 하루에 온다는 겁니다. "단 하루에 온다" 라는 것은, "모든 인간의 긴긴 시간이 단 하루 안에 응축이 된다" 라고 하는, 그런 의미이라는 것이죠. 이것을 달리 이야기하면, "단 하루에 일어난 일이 그동안 확장되었고 펼쳐졌다" 라는 것인데, 시간의 응축 ("속도가 빨라지면 모든 무게라든지 질량이 축소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한 날에 자기가 준비한 모든 것을 다 승부를 내버린다 . 그러면 그 하루, 그냥 'One day' 라는 말이죠. 그 하루가 언제인고 하니, 그것이 사도행전 1장에 나온다 .
(행 1:6)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행 1:7)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이 '단 하루' 란 성령이 나오는 곳, 즉 '자리'를 말한다 . 성령이 나오는 자리니까, 이것은 시간이 아니고 공간이 된다. 공간과 더불어 무엇이 나오는고 하니 시간이. 벌려놓은 시간을 하나의 공간으로 잡아 당겨버리면, 시간도 빨려오고 공간도 빨려와서, 한 날, 한 지점으로 모든 것이, 그렇게 진리가 통하게 된다. 사도바울의 편지에서 단 하루, 이 장소를 무슨 장소로 보느냐 하면, 그게 바로 '예수님의 죽음' 이라는 말이죠. 인간에게는 죽음이란 없다는 말이죠. 자기 죽음도 모르는 것이 인간이라는 겁니다. 인간은 죽는데, 그렇게 인간은 모두 다 죽기 때문에, 죽음은 인간의 자기 일이 아니라는 말이죠. 자기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은 죽음을 모른다.인간에게 죽음이란, 자기가 살아있는 한 인식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인간에게는 죽음이라는 것은 없다는 말이죠. 이 세상에서의 죽음은 단 하나의 죽음 밖에 없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겁니다. 그것이 곧 십자가죠."GO, GO! 가자!" 라고 하는데, 예수님의 죽음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거기에 바로 무엇이 기다리는고 하니, 시공간을 넘어서, 시공간에 저촉 받지 않는 새로운 세계가 있다 . 새로운 시공간이 열리게 된다 .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 라는 베드로후서의 이야기도 그 근거가 뭐냐 하면, 예수님의 죽음 안에 있는 창세 전의 언어 활용을 인간이 쓰고 있는 언어와 겹쳐서 우리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게 침투하는 말씀인데, 우리에게 쳐들어오는 말씀이라는 것이죠. (벧후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 정신병자인데, 다루지 말아야 할 대상을 자기가 다루려고 시작한 것에서부터 이것은 비현실적이다. 자기 역할은 자기의 담당이 아니라, 자기 무의식 세계의 일이기 때문에, 자기가 무의식을 다룰 수는 없다
그것은 충동이 자기를 다루는 것인데, 자기가 충동을 다룬다면 그것은 충동이 아니라는 말이죠. 기껏해야 본능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겁니다. 여기서 '충동' 이라는 말은, "내가 없던 자리가 나를 장악하고 있다" 라는 것인데, 즉 "내가 없던 자리", 그것이 "나다, 아니다" 라는 경계선이 없던 자리에서 자기를 장악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사십을 살았던 오십을 살았던 간에, 평생토록 정신병을 더욱 더 공고히 하면서 살았다는 말이죠.
다시 이야기를 해보면, 인간이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 다가설 때 제일 먼저 맞닥뜨리는 게 뭐라고 했습니까? 그것이 자기를 둘러싼 뭐라고 했습니까? 그것이 바로 자연인데,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의 과학이라는 말이죠. 즉 자연 질서를 만난다는 겁니다. 우리가 그런 자연 질서를 만나도 거부감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은 곧 "내가 착하냐 나쁘냐는 것을 내가 결정하도록 나한테 맡긴, 즉 나는 여전히 중성적인 존재인 것을 자연이 거기서 호응하고 있다" 라고, 그렇게 자기가 그 증거를 수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성' 이란 것은, 영적 싸움이 없다는 겁니다. 이런 영적 싸움이 없으면 무엇이 안 되느냐 하면, 이게 매개자가 아니라는 말이죠. '매개자' 라는 어려운 말이 나왔는데, 매개자란 무엇인고 하니, 연결자! .은혜성과 연결되어야 하는데, 이미 그 끝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물론 시작도 알아야 하고 말이죠. 그런데 우리 인간은 어떠한고 하면, 자기 쪽에서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얻고, 또 질문을 던지고 답을 얻고 한다 그러니 인간은 매개가 아니고 자기가 주체가 된다는 겁니다. 매개가 아니라는 말이죠. 매개의 반대는 주체고, 이 주체의 반대는 매개라는 겁니다.
주님이 여기 에베소서 1장에서 매개로 제시한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라는 것인데, 그러니까 예수님이 매개자가 되고 중보자가 되어버린다 즉 아버지가 계시고 예수님 자신이 매개 대상이 되면서, 그 중간에 매개자로서 성립된다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주로부터 시작해서 주로 말미암아 주께로 돌아가는 노정, 그 경로가 설치된다 . 그런 경로가 설치되어서 순환을 하고 있는데, 그런데 여기에 그만 인간이 끼어드니까 어떻게 됩니까? 정상일 수가 없는데, 그래서 그것이 바로 정신병이고, 우리 인간은 모두가 정신병자라는 말이죠. 인간이 빠진 상태 . 즉 창세 '전' 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주님이 우리 인간을 보고 "너는 아픈 사람이니까 빠져있어. 내가 창세 전에 다 이루면 너에게 통보를 해주겠다" 라는 것인데, 즉 "내가 알려줄게. 성령을 통해서 너에게 알려줄게" 라고 하는, 이것이 바로 주님의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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