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받게 되어버리면 드디어 시공간을 초월합니다. 누가복음2장28절,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그리고 34절,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무슨 뜻이냐 하면 아까 예수님 중심으로 양은 양대로 지옥은 지옥 갈 사람들, 예수님 오셔서 주님에 의해서 그게 분류가 되는 일을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시므온이 이런 얘기할 때 시므온은 지금 시공간을 초월한 거예요. 예수님의 할 일을 시공간 초월해서 끝을 본 겁니다. 시작과 끝을 성령이 임해서 시므온은 알아버린 거예요. 시작과 끝을. 그러니까 세상을 더 안 살아도 되는 거예요. 이제는.
시작과 끝은 뭐다? ‘시작도 주님이 하셨고 끝도 주님이 하셨고 구원 받을 사람, 천국 갈 사람을 예수님이 다 정해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이 사실이 성령을 통해서 시므온 내부 속에 빈 통속에 들어가 버리니까 시므온 자체가 자기가 구원의 징조가 되는 겁니다. 증상이 되는 겁니다.
시므온과 안나가 오늘날 성령을 받은 우리한테 해당되는 거예요. 그리고 오늘 본문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나오는 사도 바울에게도 같이 해당되는 겁니다. ‘시공간이 성령에 의해 새롭게 다루어짐을 이제는 파악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시 한번 읽어보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미 시간과 공간 초월했죠. 십자가 못 박힌 곳은 골고다 언덕이잖아요. 그때 사도 바울은 어디 가있었습니까? 다른 데 엉뚱한 데 있었어요. 공간을 초월한 거예요. 그때 그 십자가 사건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모든 사람 속에 귀신이 들어온 것처럼 다 이루심이 우리 속에 들어오는 거예요.
【곧 과거에 발생된 십자가 사건이, 성령을 통해서 성도 안에서 현재화하여 계속되는 것이다. 성도가 예수님과 만나는 것은 오직 십자가에서만 가능하다. 다른 만남의 장소는 전혀 없다.】성도가 예수님과 만나는 것은 십자가 일어난 사건의 현장에 의하여 날마다 주님과 함께 할 수가 있습니다.
'아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나의 죽음을 붙들고 산다 (0) | 2024.03.05 |
---|---|
시공간을 초월한 안목 (0) | 2023.12.27 |
다윗언약-하나님의 아들이 아버지께 바쳐지는 회로 (0) | 2023.12.12 |
똑 딱 (1) | 2023.12.11 |
영적 싸움 (2) | 2023.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