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지을 시기
2013년 7월 7일 본문 말씀: 학개 1:1-6
(학 1:1, 개역) 『다리오 왕 이년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학 1:2, 개역)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학 1:3, 개역)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학 1:4, 개역)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학 1:5, 개역)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지니라』
(학 1:6, 개역)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사람은 자기와 관련된 것 아니면 관심 없습니다. 하나님의 집짓기가 자기 집 짓기가 아닌 이상 거기에 마음 두고 싶은 않는 것이 당연한 현상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벌리신 계획과 사업에 관심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벌리시는 모든 사역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언약을 앞장 세워서 진행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성전 짓기도 하나님의 언약과 관련지어집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본격적으로 집중되는 시기는 아브라함을 통해서입니다. 시편 105:41-45에 보면, “ 반석을 가르신즉 물이 흘러나서 마른 땅에 강 같이 흘렀으니 이는 그 거룩한 말씀과 그 종 아브라함을 기억하셨음이로다
그 백성으로 즐거이 나오게 하시며 그 택한 자로 노래하며 나오게 하시고 열방의 땅을 저희에게 주시며 민족들의 수고한 것을 소유로 취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그 율례를 지키며 그 법을 좇게 하려 하심이로다 할렐루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이라는 특수한 나라의 등장은 현 거주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함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일찍감치 약속한 그 내용대로 성취시켜 나가기 위함입니다.
그 성취의 취지 속에서 ‘율례를 지키며 그 법을 좇게 하려 하심이라’로 표현되는데 그 완성은 바로 성전의 나타남입니다. 즉 아브라함의 언약의 투입은 국가 이스라엘의 등장과 더불어 율법과 법도도 그 나라에 퍼부어지게 됩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만났던 그 시대산에서 무슨 산사태로 일어난 것처럼 산 정상에서 하나님이 법이 마구 쏟아집니다.
마구 쏟아진 그 내용은 바로 제사와 관련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한 희생제물을 잡아 죽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흘러진 피를 따라서 자기 백성과 만나겠다는 겁니다. 달리는 만나지를 않겠다는 겁니다. 여기서 당연히 이스라엘의 긍지나 자부심은 대단할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이방나라에서의 하나님 만남이란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네들의 종교적 품성에 입각해서 거룩함과 경건함과 성스러움을 조작해낸 환경을 통해서 신을 불러오려는 시도로 종교생활을 하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서 깨끗5한 피를 요구했습니다. 피로 시작해서 피로 마감하시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설계하시는 그 성소의 제일 은밀한 곳은 하나님의 언약판과 피의 만남입니다. 바로 그곳에만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는 곧 인간들이 산 채로 하나님을 만날 경우는 없다는 뜻입니다. 죽지 않고 산채로는 하나님께서 만나주시지 않겠다는 겁니다. 피, 곧 죽음 앞에서는 모든 인위적인 인간적인 의미로 용납되지 못합니다.
어쨌거나 이스라엘에게는 성소나 성전이 자기네에게만 독점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그들로 하여금 천하 제일의 자긍심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성전이 있음으로서 자기네들만큼은 살았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의 언약이 취지를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언약의 취지를 알려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 성전을 스스로 멸망시켜 버립니다.
이것은 하나님 모시기에 사활을 걸었던 이스라엘 자체의 멸망으로 간주할 수가 있습니다. 신을 자기 품 안에 모실 수 있다는 발상은, 아무리 하나님이 주신 아이디어라고 하지만 성사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물의 피 안에서 당연히 복받겠다는 당사자들도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참된 하나님을 만나면서도 그 분을 대하는 방식은 이방식이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의 취지를 알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은 그들이 완전히 멸망했다고 여기고 우상을 섬기는 적의 나라에 포로생활할 때입니다. 거기서 그들은 언약 성취가 어떤 절차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습니다.
망하면서 성사되는 것이 언약입니다. 망하지 않고서는 언약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로 보건데 아브라함의 언약이 율법과 법도를 유발시켰고 그 유발된 율법이 제사법으로 나타나며 그 완성은 성전의 완공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전과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도 같이 망했다는 말은 진정한 성전은 하나님께서 새롭게 만들어내시는 사람들에게만 제공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미리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전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성전을 만들므로서 자신이 만든 성전에 사람들은 집착하게 되는데 그 성전의 멸망과 덩달아 거기에 마음을 둔 자들까지 같이 망해야 될 자라를 점을 나타냅니다. 성전이 찍찍기의 일정이나 파스 같은 기능을 한 것입니다. 찍찍이나 파스는 곱게 그 자신만이 떨어지지 않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이후 나라인 바사나라 초대 왕인 고레스왕에서 성전을 짓도록 조치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까지 본토로 돌려보냅니다. 그것이 기원전 538년입니다. 535년부터 성전을 짓기 시작했지만 동시에 방해 책동과 같이 진행됩니다. 사람들은 성전 짓는 것을 남의 일로 여기서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자기네들 밭과 집이 따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6절에 나와있는 말씀처럼, “만약에 성전 짓기를 지연한다면 생활고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는 엄포와 더불어 그들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고레스왕의 차기왕인 다리오왕 2년부터 학개 선지자는 본격적으로 성전지으라고 독려합니다. 그 때 기원전 520년입니다.
첫 번 계시가 기원전 520 6월 1일이었고 그날 6월 15일 성전 재건 공사가 16년만에 개시되었고, 두 번째 계시가 7월 21일에 주어졌고 세 번째, 네 번째 계시가 9월 24일에 주어졌고 드디어 기원전 515년 3월 12일날 완공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성전은 언젠가는 무너져야 될 임시적 성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영원한 성전은 사람 손으로 지어지지 아니한다고 예언하셨고(스가랴 4:6) 요한복음 2장에서는 예수님께서 46년동안 짓고 있는 성전을 헐어지게 될 것이라고 하시고 그 대신 자신의 몸이 성전이라고 하십니다. 사흘 동안 짓게 되는 성전이지만 이 성전에는 단절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그 어떤 자도 지을 수없는 성전을 지으시는 겁니다. 그 이유는 이미 성전은 지상을 떠나 하늘에 영원히 안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생명은 여기에 없음을 편하게 생각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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