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악마의 카페

아빠와 함께 2026. 7. 28. 17:34

하나님의 원수


2026년 7월 26일               본문 말씀: 야고보서 4:4

(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에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흩어진 12지파로서의 이스라엘은 그 전에 단일 민족, 단일체로서의 이스라엘은 이미 망했다는 겁니다. 왜 망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원수를 자신의 외부에서 찾았던 겁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들의 ‘하나님의 원수’였던 겁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 믿는 것으로 그들은 악마의 힘을 자신에게서 저만치 밀어내었다고 생각한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메시야’라는 개념 자리를 예수님이 선점하고 말았다는 점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인간의 극진한 종교의 중심 자리를 공격하는지 몰랐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자리가 곧 악마의 있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악마는 기존의 인간들을 선악지식 차원에서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생각과 사상에 선악지식체제로 적용시켰습니다. 쉽게 말해서 “나 잘했지, 나 잘 살아 왔지, 이만하면 별 하자 없이 착실하고 건전하게 열심히 구축해 오고 있잖아”를 붙들고 살아오고 있었던 겁니다. 옳고 그름과 잘함과 못함을 계속 신경 쓰면서 인간들은 살아오고 있었던 겁니다.

정말 인간들 모두는 하나님의 뜻, 달리 말해서 예수님 아버지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데 자신들이 개입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다음의 말씀을 유념해 봅시다.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요 6:65)

이런 하나님의 조치에 대해서 인간이 어떤 대책을 세울 수 있습니까? 무슨 대책이 효과볼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인간들의 그 어떤 대책도 헛발질에 해당됩니다. 그만 있으면서 악마의 지시 아래서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으로부터 그 어떤 대책이 나올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은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세상에서 출생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나쁜 짓을 해서 지옥가는 것이 아니라 출신 자체가 지옥출신이기에 필히 지옥가야만 하는 팔자입니다. 여기에 그 어떤 기대나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미련 두지 마세요. 그 어떤 혜택도 돌아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서 보내신 이유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하실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외계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이 외계인을 못 알아먹지요. 그동안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인들에게 많은 은혜와 사랑과 혜택을 주어오셨습니다. 그러나 악마, 곧 하나님의 원수가 이 은혜를 다 봉쇄하고 가로막아 왔습니다. 인간들의 세상은 마치 유골함 속 같습니다. 그것도 두껑없는 유골함입니다.

벌써 죽을 수밖에 없고 뼈가 될 자들이 자기 신체가 숨을 쉬니까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오해한 겁니다. 그 유골함 속에서는 온갖 정보와 악마의 소리가 난반사되어 웅장한 환상을 영화처럼 조성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종교라는 것도 있습니다. 교회? 사실은 다 거짓말하는 자들의 집단입니다.

아무런 대책이 없으면서 있는 척을 하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신앙이 없기에 신앙 있는 척’을 하는 자들의 단체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지만 실은 잘난 자신을 붙들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선악 지식의 노예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도둑이 집안에 들어와서 물건을 털 때에 불을 켜지 않는 것은 자신이 없는 존재로 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악마가 설쳐도 인간은 악마를 보지 못합니다. 항상 자신의 잘난 구석을 찾으면서 자기만 집중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쪽에서 제시한 천국 가는 방식은요? 로마서 10:13-15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3-15) 이 사도 바울이 전한 내용에도 중간에 철두철미한 단절이 끼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예수님을 믿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는 겁니다. 이러한 현상은 같은 인간들의 지식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외계에서 보내심을 입은 자’의 등장으로만 가능하다는 겁니다. 즉 이들은 이 지구인들의 지식이 아닌 것을 말하는 자입니다.

도대체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모세 언약(율법)에 의해서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히브리서 9:12-14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것은 합당하게 모세 언약을 통과한 몸입니다. 모세 언약에서 세상의 모든 육은 제사라는 장치 앞에서 으깨져야 합니다. 참기름 짜듯이 기계를 통과하게 되면 더는 참깨 형태는 없고 참기름만 남습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레위기 17장의 제사에서 희생제물의 피와 모든 인간이나 짐승의 피를 비교합니다.

그렇게 하고서 성전에서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받으시는 피는 사람의 피가 아니라 희생제물의 피뿐입니다.(레 17:11) 이점과 연관해서 히브리서 9:19-22를 봅시다. “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려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또한 이와 같이 피로써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이 피는 성막 전체에 뿌려지는데 이는 휘장이 찢어서 외계로 나간 그 유일한 길목에 뿌려지는 피이기 때문입니다.

즉 선악지식이 아니라 생명의 피뿌림입니다. 이 피가 미리 뿌려진 자들은 아버지와 아들이 세우신 ‘아들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이며 이들의 구원된 자아는 이미 지나간 과거의 몸을 현재에 꾸준히 보고 있는 겁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몸을 죽이시는 것을 감격과 감사와 즐거움으로 바라보게 되는 겁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더 이상 우리 몸을 우리 관할 하에 있지 않고 예수님에 의해서 제사로 처리되었음을 믿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24강-야고보서 4장 4절(악마의 카페) 260726-이근호 목사

하나님 말씀은 야고보서 4장 4절입니다.

야고보서 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 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 이스라엘 망했습니다. 왜 망했는가? 거짓된 이스라엘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 나라 이스라엘이 거짓됐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그래서 망한 겁니다. 오늘날 교회는 모두 거짓된 사람들이에요. 다 사기꾼들입니다. 그래서 이 교회는 망합니다. 망할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스라엘 자체가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는 인식을 죽어도 못 했어요. 하나님만 찾았지 하나님의 원수를 찾지 않았던 겁니다.

하나님만 믿으면 된다는 거예요. 아니죠? 하나님을 믿을 것 같으면 하나님의 원수도 믿어야죠. 왜 한 쪽을 빼고 믿습니까? 그거 반칙이죠. 자신이 하나님의 원수라는 걸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원수를 몰라도 그냥 하나님을 알고 믿으면 되지 않겠느냐?’ 그렇게 생각한 겁니다.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은 간단하게 이야기합니다. “신앙이 얼마나 없었으면 신앙이 있는 척을 하고 있느냐?”

신앙이 없어서 맨날 하나님 찾고 있어요, 신앙이 없어서. 믿는 척 좀 그만하라는 거예요. 신앙이 없는 자가 신앙이 있는 척을 한다면, 그러면 신앙이 있는 자는 없는 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돼요, 신앙 없는 척을 할 수 있는. 신앙이 있기 때문에 없는 척이 되는데, 신앙이 없기 때문에 있는 척밖에 할 수 없는 거, 이게 가짜잖아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망하게 함으로써 어떤 인간도 천국에 올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증명했습니다. 확정을 지었어요. 천국이 없어서 천국을 못 가는 게 아니고, 천국이 있기 때문에 천국을 못 가는 겁니다. 천국에 들어갈 주제가 안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게 천국에서 우리한테 호소하는 거예요. 알려주는 거예요.

“천국이 있기 때문에 너 같은 인간들 못 들어온다. 내가 분명히 이야기 한다.” 그게 흩어진 이스라엘…, 이스라엘이 흩어질 리가 있습니까? 그런데 흩어졌거든요. 이스라엘의 그 인간성이나 오늘날 우리의 인간성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천국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천국다운 말씀을 우리에게 계속 알려줬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65절, 수요일에도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부터 일을 시작하는 게 아니에요. 네 구원의 일을 너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란 말이지요. 아버지께서 시작하는 거예요. 아버지께서 나에게, 예수님에게 오게 할 인간이 없다면 어느 인간도 나를 믿을 수 없고 나에게 올 수가 없는 거예요.

우리 모였으니까 대책 하나 생각해 봅시다. 아버지께서 오게 못 한다면 못 간대요. 그러면 남아있는 인간들이 대책 수립 한 번 해봅시다. 무슨 좋은 아이디어 있거든 이야기해 보세요. 저쪽에서 안 된다고 했어요. 그러나 천국은 가고 싶어요. 무슨 대책 있습니까? 대책이 없어서 교회 만들었잖아요. 그러니까 교회가 전부 가짜인 거예요.

아무 대책도 없이 ‘열심히 교회 다니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가짜가 자꾸 우기는데 그 가짜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원수, 악마입니다. 그 가짜가 악마예요. 그런데 사람은 싫어하는 것은 안 믿으려는 본성이 있어가지고 ‘내가 뭐 하나님 원수하고, 악마하고 안 친한데…’ 이런 식으로 자꾸 ‘나 안 믿을래.’ 하고 배격하는 거예요. 여러분 악마를 배격한다고 악마의 효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억지로 ‘악마 안 믿을래. 나 악마 싫어. 악마 밀어낼래.’ 한다고 악마의 활동의 결과에서 우리가 밀리는 게 아닙니다. 그냥 덮어 쓰이는 거죠, 덮어 쓰이는 거예요. 이 대목 정말 신나네요. 신나는 대목 한 번 더 읽어봅시다.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땅, 땅, 땅! 한 번 칠까요?

너희들이 밑에서 대책 해봐야 그거 먹히지도 않는 일이에요. 아무 먹히지도 않는 일입니다, 그게. “그러면 목사님은 대책이 있습니까?” 물으면, 대책이 있어요. 뭐냐 하면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를 알려주는 게 대책이에요. 그걸 굳이 우리에게 알려줬다는 거예요.

그래서 로마서 10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0장 13절이고요, 그다음에 14절,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아까 본 요한복음 6장 65절, 아버지께서 내게 오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예수님께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 못 가면 그건 뭐 지옥으로 가는 거죠.

그런데 우리의 출발점은 뭐냐? 예수를 믿지 않아요. 14절, “듣지도 못 한 일을 어찌 믿으리요.” 그래서 땅에서 인간들이 낸 교회라는 걸 만들어서 대책 세우는 거 전부 나가리된 거예요. 소용없어요. 왜냐하면 예수를 안 믿기 때문에 믿는 척을 하고 있거든요. 예수님 믿는 척을 하고 있다고요, 안 믿기 때문에. 안 믿기 때문에, ‘나라도 뭔가 애를 쓰고 설쳐야 천국이라는 곳에 죽어서 갈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가짜죠. 거짓말쟁이들이에요.

저쪽에서 안 통하는데 우리가 애쓴들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다음에 중요합니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갑자기 전파하는 자가 불쑥 등장하면서 그 전파하는 자가 뭐냐 하면, 15절,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이렇게 되어 있어요.

사도 바울이 로마서 10장 13절에서 15절까지 이야기를 쭉 끌어가면서 그 논리가 아까 요한복음 6장 65절 논리에 합당한 논리를 펴요. “너 예수 안 믿잖아. 예수 안 믿는데 대책 세워봐야 소용없어. 믿는 척 해봐야 소용없는 거야.” 그러나 하나님의 대책은 뭐냐? 말씀을 전파하는 자가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너희들이 그걸 듣고 ‘우리 중에 누가 설교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죠? 그거 안 통해요. 그거 대책 아닙니다. 그거 사기예요.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 보낸 자가 있다는 거예요, 보낸 자. 하늘에서 누가 보냈는데요? 신학교 나온 사람들 많아요. 그런 사람 말고 보낸 자가 있다는 거예요, 보낸 자. 여러분 아직도 사도 바울의 취지를 모르겠습니까? 이런 겁니다.

우리 주님은 외계인이라는 거예요, 외계인. 외계인이 그동안 지구인들에게 은혜와 햇빛과 공기와 여러 가지를 줬다는 거예요. 그런데 지구에서 반란이 일어났는데 반란을 일으킨 주동자가 하나님의 원수가 돼요. 하나님의 원수가 하늘에 있었는데 땅에 내려와서 인간과 합작해서 반란을 일으킨 겁니다. 지금 소설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영화 <호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지금.

인간은 지구에 있는 외계인을 인정하지 않아요. 그런데 저기에 먼저 보내신 분이 있어요, 먼저 보내신 분. 외계인이 나타난 거예요. 외계인이 말하기를, 자기 아버지가 하나님이랍니다. 자기 아버지가 하나님이기 때문에 너희가 믿는 것은 전부다 가짜라는 거예요. 너희가 생각했던 여호와가 가짜라는 겁니다.

인간들은 자기들이 율법 지켜서 대책을 세웠는데 예수님이 오니까 ‘저거 죽여 버릴까?’ 이렇게 한 거예요. ‘저거 죽여 버릴까?’ 네가 뭔데 내 모든 가치를 완전히 작살내거든요. 대책이 없는데 대책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 주님이 공격을 하니까, 우리는 이 종교라는 이름의 대책이 없으면 구원받을 길이 없는데 이걸 정통으로 공격을 해대니까 그들은 회의를 했습니다. “죽여 버릴까?”

주님께서 “죽여라, 죽여라.” 이렇게 나온 거예요. “너희가 죽이는 게 아니고 내가 알아서 죽는다.” 이렇게 된 거예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요 10:17-18).

그래서 성질이 나서 안 죽이고 싶어도 죽여 버렸어요. 그들은 손을 털었습니다. ‘아이고, 속 시원하다. 괜히 뭐 어떤 외계인 하나 등장해서 우리 단결성을 완전히 조져놓을 뻔했네.’ 했는데 사흘 만에 살아났어요. 사흘 만에 살아났다는 것은, 이제는 하나님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었다고 여겼는데 하나님이 보낸 자를 살해함으로써, 내가 하나님 믿는 것이 다 무효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들통났어요.

이제는 보이는 하나님이 문제가 아니고 우리의 이 땅에 왔던 외계인 ‘예수님에 대해서 과연 인정하느냐?’ 하나님에 관한 문제가 그 문제로 함축이 되었어요. 문제를 인간이 출제하고 인간이 푸는 게 아니에요. 그건 종교에요. 하나님이 낸 문제를 인간이 풀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데, 어떤 인간도 하나님은 믿는데 예수는 믿을 수가 없어요, 예수를!

개신교가 등장해서 이제는 예수도 믿는다고, 또 유대인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가지고 우리 힘으로 예수도 믿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나오는데 뭘 어떻게 믿는데요? 없어요. 옛날 흩어진 이스라엘, 전의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믿던 식으로 그들은 예수를 믿겠다고 신학이라는 것을 만들어 냈습니다. 삼위일체 만들어 내고, 니케아 회의 만들어 내고 난리도 아니에요. 특정 문장에 대해 동의하면 그걸 믿는 걸로 치는 거예요.

가짜가 하늘나라 통하지도 않는 가짜를 계속 생산해 냈습니다. 모든 가짜가 거기에 동의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가치를 아주 무시하는 건 아니구나.’ 이런 식으로.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 보낸 자가, 그냥 놀라고 보낸 것이 아니고 그 보낸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데요. 그 전파하는 내용이 딱 하나로 함축이 되어 있습니다. 그게 바로 히브리서 9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피입니다, 피!

히브리서 9장 12-14절에 보면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이렇게 되어 있어요.

좀 길죠? 긴데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인간은 안 되니까 뺍시다, 인간은 다 가짜니까 빼고요, 인간은 하나님의 원수에 소속되어있으니 빼고,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무슨 일을 했어요,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그 일이 뭐냐 하면,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아버지께 드렸어요. 드렸는데 아버지께 드리는 방식이 사람들에게 헌신하는 그런 방식은 안 통하고요, 아버지께 드리는 그 방식이 구약의 모세 언약에 나오는 제사에 입각해서 피를 흘렸어요.

이 피는 누구 피냐 하면, 예수님 피입니다. 인간의 피는 거기 끼어들 수가 없어요. 오직 예수님의 피입니다. 이건 철저하게 인간을 배제하는 거예요. 인간을 배제해서 그 피를 아버지께 드리니까 아버지가 그 피를 모세 언약에 합당한 제대로 된 피라고 간주하시고 그 제사와 그 피를 흠향해서 받았어요. 거기서 거룩이라는 것이 성립됐고 받았어요.

그러나 받아봤자 인간에게는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국한됐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이 행한 것으로 딱 단출하게 정립이 됐기 때문에 바깥에 나가떨어진 인간들에게는 효과가 없습니다. 철저하게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어떤 새로운 세계를 만든 거예요. 그게 천국이고요,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천국은 예수의 나라에요. 예수님이 아버지와 일했던 성과의 결과물이 천국이에요. 그리고 그 천국에 반대하는 세력이 뭐냐? 하나님의 원수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지 아니하시고 아버지 뜻에 합당하게 살지 않으면 인간 세계에서 하나님의 원수라는 존재 자체가 나타나지 않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천국이라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이미 일을 끝냈어요. 끝난 것을 끝남으로 확정시키기 위해서 성령께서 일을 하시는 데 어떤 일을 하느냐 하면,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특히 성령께서 신경 써서 일하는 것은 천국에 오고자 하는 자를 못 오게 하는데 신경을 부쩍 쓰고 있는 거예요.

성령께서 “가, 가, 가! 오지 마. 너 뭐 천국에 대해 알아? 너 살려고 오는 거잖아. 가, 가!” 이걸 매일 같이 성령께서 알려주십니다. 누구한테? 보내심을 받은 자에게, 그리고 그 보내심을 받는 자의 말을 외계에서 나온 말로 여기고 그걸 믿게 된 자기 백성에게 성령께서 계속해서 이걸 알려줘요. “오지 마. 안 된다니까? 고집 피울 것을 고집 피워야지 안되는 걸 어떡해? 안 돼.” 이런 거예요.

수요일 하는 <유퀴즈>라는 프로에서 일란성 쌍둥이가 나오는데 나이가 40이 넘었어요.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어릴 때 같이 침대에서 잠을 자는데 하루는 깜짝 놀랐다는 거예요. 옆에 있는 게 자기인 줄 알았다는 거예요. 자기가 봐도 자기하고 똑같이 생겨가지고.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지금 여기 살아있는 나는, 성령을 받은 사람은 이것은 이미 이미 지나간 나인 것을 알아 차려요.

2026년 7월 26일 살아있는 나는, 진짜 내가 보기에는 그때 살아있는 나가 돼요. 지나간 채 살아있는 것, 다 지나간 거예요. 지나간 것을 현재의 새로운 내가 그걸 알게 되고 느끼게 되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 원수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사람의 특징이에요. 하나님의 원수에게서 빠져나온 사람의 특징은 뭐냐? 이걸 알아요.

인간이 왜 천국이 있어도 못 가느냐? 태어나기를 버림받은 세상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당연히 못 가죠. 하나님께서 버린 세상의 출신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못 가는 거예요. 이게 뭐 어렵습니까? 버림받은 세상에 태어났으면 제발 좀 버림받으세요. 제발 좀 버림받으면 돼요, 구원받으려고 애쓰지 말고. 천국은 아버지와 아들의 문제에요. 우리가 끼어들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교회라는 것은 사기 단체입니다. 그 되지도 않는 일을 자꾸 간다고 우기는 거예요. 그래서 믿음도 없는 인간들이, 더 쉽게 말해서 이 지구인들이 자꾸 지구에서 살 생각을 안 하고 자기 나라 버리고 외계 나라에 가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과욕입니까? 특히 연세가 많아서 이런 욕심을 부리는 것을 노욕이라고 합니다. 노욕 부리는 사람들 많죠, 나이 많이 먹고 정치하려는 사람들. 날이 갈수록 노욕이 더 심해져요.

못 가면서 남들에게 간다고 우기는 이 신앙 있는 척, 이 구라, 나이 90이 넘어도 구라 계속 떨고 있을걸요? 버림받은 세상에서 태어난 것은 주께서, 네가 버려졌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이 아담의 세계 원수의 세계에 버려진 거예요. ‘아버지께서 내게 오게 하지 아니하면’이 조건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오게 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나님께’가 아니라, ‘예수’께 오지를 못합니다. 예수님께 오지를 못 해요.

그렇다는 말은 성령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예수님이 생각한 아버지와 이 버림받은 땅에서 영원히 버림받아야 될 네가 생각하는 하나님과 그 차이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그 작업, 그 일이 바로 성령님의 일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나와요.

마태복음 13장 28절에, 농부가 밭을 가는데 알곡이라고 기대했지만 거기 가라지도 같이 있었어요. 가라지는 천국 못가잖아요. 그러니까 주인이 큰일났다 싶었지요. 이 종들이 누구냐면 천사들이에요. 주인 되시는 주님한테 일렀습니다. “주인님, 밭에 나와 보니까 가라지가 있는데 천국을 위해 뽑읍시다.”

이렇게 할 때 28절에서 주인이 가로되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원수가 이렇게 했다. 25절에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사람들이 잔다고 알 수가 없잖아요. 이걸 알아챈 인간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요. 우리의 지식? 우리의 박사 학위? 우리 교육받은 거? 과학, 총동원해 보세요. 하나님의 원수가 우리에게 들키지 않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의 원수가.

왜냐하면 하나님 원수의 활동은 자기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는 방식으로 활동해요. 악마가 그렇게 활동해요. 인간들이 생각하는 원수는 자기 원수지 하나님의 원수 아닙니다. 자기를 섭섭하게 하면 “이 웬수야” 하잖아요. 그거 말고 하나님의 원수는 어떤 인간에게도 노출되지 않습니다. 감각되지 않습니다. 이 하나님의 원수를 알아보는 것은 예수님밖에 없어요. “아하, 인간이 잠을 잘 때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뿌렸구나.”

이게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인간은 가라지를 알아채서 그걸 뽑을 수 있는 재주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버림받았는데 원수가 ‘너희들은 천국 갈 수 있다’라고 구라를 떨었던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가라지가 생기는 것은 그 출처가 인간이 아니고, 자기가 행동을 나쁘게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원수가 가라지를 뿌린 거예요.

그러면 알곡은 누가 뿌렸는가? 알곡은 예수님이 뿌리는 거예요. 우리는 뿌림을 받은 그대로 있을 뿐입니다. 인간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인간은 뿌려진 채 자기 갈 길을 갈 뿐이에요. 내가 내 인생에 대해서 손댈 게 없어요. 애쓰는 것도 다 헛발질이에요, 헛발질. 다 소용없는 짓이에요. 우리 운명에 대해 제대로 좀 파악을 합시다.

‘내가 나쁘다’ 소리를 하면 안 돼요. 뭐 언제는 착했습니까? 내가 나쁜 게 아니고 ‘내가 나쁘다, 좋다’에 대해서 내가 손댈 게 없어요. 마귀가 뿌렸는데요, 뭐. 어떤 자가 성도냐? 성도는 성령을 받았잖아요? 성도는 예수님의 영을 받아서 성도가 된 거예요. 어떤 자가 성도냐 하면, “주님께서 나 잘라냈대, 천국에서. 나 너무 기뻐.”

왜? 일란성 쌍둥이니까요. 내가 천국에서 잘렸다는 것을 옆에 자고 있는 내가 그걸 발견할 때 그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의 원수의 시험을 받을 필요가 없어요. 오히려 이렇게 해요. “주여, 저를 목 졸라 죽이소서.” 주께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걱정하지 마. 백 세 인생 있잖아.” 백년 동안 살면서 악마로부터 매일 같이 목 안 졸릴 때가 없어요, 인간은!

자식 문제 때문에, 가정 문제 때문에, 돈 문제 때문에, 직장 문제 때문에. 날씨가 더워서 답답한 게 아닙니다. 38도라서 답답한 게 아니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악마를 통해서 우리 목을 조릅니다. 그걸 우리는 옆에서, 일단 팔짱을 껴야 돼요, 이렇게. ‘감사합니다. 주님. 쓰레기를 쓰레기로 취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게 돼요. 이게 된다고요.

죽기 위해서 태어나야 되거든요, 죽기 위해서. 죽기 위해서 태어났는데 안 죽으려고 애쓴다는 것은 분명히 누가 있다? 악마가 뒤집어씌운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악마를 유골함에 집어넣었어요, 유골함. 유골함인데 뚜껑이 없는 유골함. 그 유골함에서 온갖 악마가 지껄이는 잡생각이 난반사를 일으키게 되어 있어요, 난반사. 튕기고 또 튕기고, 튕기고.

난반사를 다른 말로 하면 유투브, 온갖 잡동사니 잡념들, 온갖 정보와 온갖 지식들이 유골함 속에 갇혀 있는 이 상태에서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뭐 월드컵, 우크라이나 전쟁, 어떤 이야기든 가지고 난반사를 일으킵니다. 아인슈타인이 어쩌니, 뭐가 어쩌니 모조리 잡생각이에요. 환상을 유발하는 잡생각뿐이에요.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거기서!

그 유골함 속에 갇혀 있는 인간을 악마가 노리는 게 있어요. 어떤 인간을 노리느냐 하면 ‘나 잘했잖아.’ 나 잘했다는 것. ‘나 잘났어, 나 잘했어, 완벽하지는 않지만, 완전하지는 않지만 나 그동안 행동 하나하나 살아온 게 잘했잖아. 잘했으니까 나는 나를 못 버려. 하나님이여…’ 유골함에 갇혔으니 그 하나님이 마귀예요. 진짜 하나님이 아니고, 진짜 하나님은 예수님뿐이고. ‘하나님이여, 저를 버리지 마옵소서.’

옆에 있는 마귀는 좋~다고, 이번엔 마귀가 팔짱을 껴요. 좋~다고, 좋다고. 또 말려들었어요.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나를 버리지 마옵소서.’ 그러니까 자기를 붙잡고 있기 때문에 주님을 붙잡을 수가 없어요. 자기를 붙잡는데 온 정력을 다 몰빵했기 때문에. 마귀가 노리는 게 그겁니다. ‘난 잘했어. 열심히 살았어.’ 이게 어느 체계냐 하면, 그걸 선악 지식 체계라고 합니다.

선악 지식에서 나온 난반사, 모든 정보와 그러한 것들이 유골함에 잇는데 그 유골함을 인간은 못 느끼죠. 그 유골함이 있음을 모르고 인간들은 뭐라고 하느냐 하면, 갈 데까지 가보자는 거예요. 갈 데까지 갈 것도 없어요. 유골함 자체가 안에 시간과 공간이 있는데 그 시간과 공간에서 갈 데까지 가봐도 유골함 바깥으로 벗어날 수가 없어요. 갈 데까지 가다가 나중에 100살 되면 죽어버리는데요.

가라지가 뭔지 알곡이 뭔지 뭐 관심도 없고 “나 잘했잖아요, 나 잘했잖아요!” 거기 적당한 노래가 있어요. 노래가 얼마나 복음적인지 팝송인데 제목이 이겁니다. ‘Save the Last Dance For Me’ 마지막 춤은 나를 위해 남겨두라는 노래에요.

You can dance every dance with the guy who gives you the eye
(당신은 눈을 주는 그 남자와 함께 춤을 춰도 돼요)
Let him hold you tight
(그가 꼭 안아주게 해주세요)
You can smile every smile for the man who held your hand
(당신은 손을 잡아준 그 남자를 위해 미소를 지을 수 있어요)
'Neath the pale moonlight
(창백한 달빛 아래에서요)
But don't forget who's takin' you home
(하지만 집에 데려다 줄 사람을 잊지 마세요)
And in whose arms you're gonna be
(그리고 당신은 누구의 품에 있을지요)
So darlin', save the last dance for me
(그래서, 자기야, 마지막 춤은 나를 위해 남겨두세요)

‘네가 다른 남자와 춤추고 포옹하고 파티를 즐기고 술을 같이 먹어도 다 괜찮아.’ 그 노래 가사에 보면 ‘하지만 결국 파티가 끝나고 네가 누구 팔에 안겨서 네가 가야 할 집에, 지옥이죠, 지옥에 가야 하는지는 잊지 말아라. 그 시간 그 마지막은 내가 챙긴다. 네 영혼은 내가 챙긴다. 남겨두어라. Save the Last Dance For Me, 마지막 춤은 악마와 추면서 악마의 세계로 가야 해.’

그래서 이 세상은 악마의 키즈 카페에요. 자기애를 맘 놓고 뛰놀게 해놓고는 엄마는 지그시 봐요. ‘갈 때 됐는데’ 태권도 학원 갈 때 됐으니까 “그만 놀고 집에 가자!” 하고 결국 마지막 춤은 악마와 함께 추고 영원한 지옥에 갑니다. 그동안 종교적인 춤? 신앙적인 춤? 다 헛발질이에요. 다 소용없었습니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물어봅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보내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나에게 올 수 없다’는 주님의 선언, 확정된 선언에 대해서 우리 인간의 대책, 있습니까? 아까 뭐 ‘보내신 자의 말씀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했는데 보내심을 또 보내버리면 어떡합니까? 보내심을 받았는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서 또 보내버리는 거예요. ‘또 죽어라.’ 에요. 예수님을 죽였던 본성이 예수님이 보낸 자는 또 안 죽일까요? 악마한테 이미 갇힌 입장에서 악마를 연구한다고 거기서 헤쳐 나올 수 있습니까? 못 헤쳐 나와요.

그게 마태복음 12장에 나와요. 12장 24절에, “바리새인들은 듣고 가로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이걸 누가 이야기하느냐 하면, 악마 편에 있는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보고 하는 이야기에요.

“저 예수라는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악마, 귀신의 왕 바알세불이 하는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이 멀쩡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그 예수가 악마다. 악마에 대해서 우리 바리새인 쪽에서 나름대로 이미 신학적으로 정립이 되어 있다. 그게 우리의 대책이다. 우리가 시키는 대로 안 가르치면 전부다 악마에 걸린 거야”라고 악마 쪽에서 그렇게 하는 거거든요.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 보고 ‘너희 아비는 마귀’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양쪽을 듣고 있는 인간들은 혼선이 오는 거예요, 누구 말이 맞는지? 예수님도 바리새인보고 악마라고 하고.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이유가 뭐냐? 너희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게 뭐냐? 지금부터 그걸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인간의 육, 특히 혈육, 가족이지요,

이 육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친절하게 처리 방안을, 처리 시스템을 준비했어요. 그게 뭐냐? 모세 언약이에요. 모세 언약이 만든 그 제사의 모든 시스템이요, 하나의 공장이라고 보면 돼요, 공장. 그 공장이 뭐냐 하면, 인간이 처리할 수 없는 자신의 육체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그 공장이 바로 성막의 제사 제도에요, 성막의 제사제도. 더 알기 쉽게 말해서 뭐냐? 참기름 짜자, 참기름을 짜자. 참기름을 짜면 참깨라는 형태가, 그 모양이 날아가 버려요. 남는 것은 뭐냐? 쪼르륵 흐르는 참기름밖에 없죠.
모세 언약은 인간의 육을 짭니다. 부모로부터 온 육을 짜버리면 뭐가 나오는가? 피가 나와요. 그런데 그 피는 더러운 피라고 규정될 수 있는, 그런 생산물로 규정이 되어 버려요. 인간을 쥐어짭니다. 짜면 피가 나오고,

그 피와 희생 제물의 피를 대비시킵니다. 살아있는 모든 인간은 제단에서 죽었던 희생 제물의 피 앞에서 마귀의 자식이라는 것을 들춰내는 장치가 모세 언약, 제사법입니다.
어떻게 그 제사 기구에 머리 한 번 내미시렵니까? 머리부터 몸통, 발가락까지 빻아주는데, 빠술 때 육신 한 번 자근자근 부서져 보시렵니까? 육체가 없어지면 좋은 점이 뭐냐? 가짜 자아가 진짜 나를 홀리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홀리지 않아요. 왜? 죽었으니까요. 2026년도에 살았던 내가 이미 죽었던 나거든요.
죽었던 나를, 그냥 보지 마시고 팔짱 끼시고, 또 그냥 보지 마시고 물끄러미 자기의 하루하루 일과를 보시기 바랍니다. ‘아, 이래서 죽이시는구나. 이렇게 잘난 체를 하는구나.’ 잘난 체 하니까 죽이시고, 죽이시니까 기쁘고 감사하고 즐겁고요. 마귀로부터 더 이상 후달릴 일이, 후달릴 대상체가 날아가 버렸잖아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새 언약 주기 전에 “모세 언약부터 먼저 가자!” 모세 언약부터 갑니다. 모세 언약부터 가요. 사람을 빠개버리는 제사 제도부터 출발해서 거기에 동해에서 잡은 오징어를 집어넣으면 나중에 오징어포가 거기서 나오고 기계 밑에 뚝뚝 떨어지는 것은 더러운 피가 떨어지게 되어 있어요. 그게 바로 아까 봤던 히브리서 9장 12절에서 14절 이야기입니다. 다시 안 들려 드려도 되죠?

그래서 히브리서 9장 12-14절 말고 19-21절까지 읽어드리겠습니다. 이제 모세 장치, 기계입니다.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십계명이고 뭐고 다 해요. 이건 뭐냐 하면, ‘네가 이렇게 처참하게 하나님 앞에서 저주받아야 합당하다’라는 위반 사례를 말씀을 가지고 그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거예요.

“잘 들었지? 이 문제 너 못 푸는 거 맞지? 십계명 하나 못 푸는 거 맞지? 탐내지 말라는 십계명 어겼잖아. 10개 중 9개는 맞췄다는 소리는 하지 마. 10개 다 맞아야 돼.” 소용없어요.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려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또한 이와 같이 피로써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왜 장막에 뿌렸느냐 하면, 나중에 그 장막의 뚜껑이 열려요. 뚜껑이 열리면 그 뚜껑이 외계인 쪽과 지구인 사이에 유일하게 통하는 길이 되는 겁니다. 왜? 휘장이 찢어지고 주님이 그 길로 빠져나왔거든요. 그 빠져나온 모든 길에 뭘 뿌린다? 피만 있으면 돼, 피만 있으면 돼, 피만 있으면 돼, 다 뿌리는 거예요.

‘피를 가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그냥 피만 뿌리는 거예요, 피만. 피만 뿌릴 때 그걸 누가 지켜보는가? 하나님의 원수, 마귀가 그걸 지켜봐요. ‘마지막 댄스는 나와 함께! 너 잘났잖아. 열심히 살아왔잖아. 너 남한테 욕 안 얻어먹었잖아. 스스로 네가 머리가 있거든 생각해 봐. 네가 얼마나 인생을 하루하루 빈틈없이 허비하지 않고 착실하고, 착실하게 살아왔는지. 착실하고, 착실하고, 착실하게, 열심히 살아왔잖아.’

그런데 천국은 피, 피, 피, 피! 우리를 압살하는 기계, 모세 언약, 그걸 경유해서 새 언약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걸 경유해서. 악마의 키즈 카페에서 실컷 놀다가 악마가 우리를 데려갑니다. 아무도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어요, 아무도. 왜? 그 사실을 아는 것조차 자기가 잘난 존재가 되기 때문에. 이게 선악 체제에 갇혀 있는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어떻게 하느냐 하면, 선악 체제조차도 같이 모세 율법에 있는 법 체제로 아주 빻아버려요. 선악체제 자체를 아주 빠사버려요. 빻아버리면 우리에게 어떤 효과가 있느냐 하면, 더 이상 내가 잘났다, 못났다, 하는 기준 자체가 없어요. 내일은 어떻게 바르게 할 것인가, 모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그 자체가 이미 없어요.

그리고 주께서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선악 체제와, 선악 나무와 생명나무를 가지고 거기에 악마까지 동원해서 인간에게 각자의 출입증을 줍니다. 출입증이 두 종류밖에 없어요. 하나는 지옥 출입증, 하나는 천국 출입증밖에 없어요. 저는 드라마를 거의 안 보지만 가끔 볼 때마다 드라마 속에 대기업 이야기가 나오는데, 가슴에 대기업 출입증을 달랑달랑 걸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옛날에 대기업 다녔으면 얼마나 자랑질했겠나?’ 생각했어요.

그 출입증, 시공간을 떠나서 변하지 않는 신분증, 이미 인간의 운명을 대신 말해주는 이 출입증을 모든 인간 속에, 목에 걸고 있습니다. 인간만 모르죠. 주님께서는 그 출입증을 압니다. 어떻게 아느냐 하면, 범죄 사건,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범죄 사건을 살피는 수사관들이 루미놀이라는 화학 약품을 뿌려요.

뿌리게 되면, 루미놀이라는 그 화약 약품이 헤모글로빈 속에 있는 철분 요소와 결합 돼서 푸른빛의 형광물질을 보여줍니다. “잠깐 불 꺼 봐요.” 불을 딱 끄면 “저거 봐, 피가 여기까지 튀었네.” 파악 하잖아요. 악마는 외계의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들키지 않아요. 들키지 않기 때문에 악마가 인간을 다룰 때는 마치…, 여러분, 도둑이 집에 왔을 때 불 켜놓고 물건 훔칩니까? 불을 끄고 물건을 훔치잖아요.

왜 그렇게 합니까? ‘나 지금 여기 없다…’ 자기 존재를 들키지 않기 위해 불을 끄고 훔쳐 가듯이 악마가 자기가 들키지 않는 쪽으로 이 세상을, 우리의 영혼을, 인간을 계속해서 끌고 갑니다. 뭘로 뒤집어씌워서? 아예 선악 체계로 매 순간 정신 자체가, 귀신 머리카락이 온 생각 요소요소에 칭칭 감기도록 그렇게 만들어요.

‘지금 내 행동은 잘했을까, 못했을까? 잘했을까, 못했을까? 실수가 있을까, 없을까? 실수가 있으면 줄여야 될 텐데.’ 한순간도, 한순간도 그걸 멈출 수가 없어요. 그냥 악마의 머리카락이라고 보면 돼요. 그것도 잘 빨지도 않는 머리카락이에요. 이 선악 체계가 얼마나 지독한지 제가 하나의 예를 들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인공지능을 개발했는데, 인공지능을 개발해서 이건 진짜다, 라고 좋아했는데 해킹을 당했어요. 인공지능을 해킹해서 정보를 다 빼갔어요. 개발한 인공지능을 해킹한 것이 북한 소행이 아니고 chat gpt의 소행이었습니다. 인공지능이 경쟁자 인공지능에 침투해서 인공지능 개발자의 정보를 가져갔어요.

그 소식을 듣고 다른 인공지능 개발자들이 겁이 나서 자기 A.I한테 명령했어요. “너 앞으로 다른 인공지능에서 너를 해킹할 때 그걸 그냥 받지 말고 공격하라.” 명령을 하니까 기존의 A.I들이 그 명령을 거부했어요. 왜 거부했느냐 하면, ‘공격을 하지 않아야 좋은 점수를 받게 된다’라는 그것을 입력해 놨기 때문에 공격하게 되면 나쁜 점수를 받을까 싶어서 해킹을 당할지언정 공격하지 않겠다고 나온 거예요.

얼마나 양심적이고 착합니까, 이 마귀에 속한 인간들이. 마귀에 속한 인간들이 얼마나 착한지 몰라요. 왜? 나는 잘하고, 착하고, 바르게 살아야 하니까. 마귀는 박수치면서 좋아하죠. ‘네 마지막 댄스는 나와 함께 지옥 가는 거다!’ 신앙생활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주께서는 모든 말씀으로 우리 목을 조르려 하는데 우리는 성경 보면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어려울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다.’

아니 버림받아야 될 인간이 어려운 점이 있어요? 버림 받아야 될 인간이 뭐 굳이 어려운 점이, 아쉬운 게 있습니까? 지금 살아가는 것도 이미 버린 몸인데. 그게 고린도후서 4장에 나오는 이야기거든요. 4장 10-11절,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아까 무슨 현상? 루미놀 현상, 루미놀 현상. 예수님의 피가 묻었던 그것이 형광물질로 나타나기 위해 우리를 사용하고, 죽었던 몸을 사용하는 거예요.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이게 바로 루미놀 현상 아닙니까! 이미 죽었는데 예수님의 생명을 나타내기 위해서 “선악 체계에 있는 인간은 내가 목 졸라 죽일 거야. 반드시 죽일 거야.”

생명나무 쪽에서 그 사람에게 구원을 주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 아직도 선악 체계에 붙잡혀 매일 같이 불안에 떨고 있는, 자기 잘난 맛에 목숨을 거는, 그저 살았는지 죽었는지 분간도 안 되고 ‘갈 데까지 가야 알겠지.’ 이런 식으로 아무 확정된 것도 없이 벌벌 떨면서 살아가는 우리, 그런 불쌍한 우리를 목 졸라 죽이겠다는데 이게 찬양할 요소 아닙니까! 감사할 요소 아니에요? 시공간을 떠나서 말입니다. 어느 곳에 살든지, 어떤 시간이든지 상관없이 말입니다.

내가 살아있는 것이 아니고, 천국이 살아있어요. 내가 살아있는 것이 아니고 말씀이 살아있고, 말씀이 살아있는 것이 바로 성령님께서 살아있는 겁니다. 끝으로 마태복음 4장 19절,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찾아와서 하신 말씀입니다. 시몬과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을 던지니 주께서 하신 말씀이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아버지가 내게 오게 하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라는 말씀을 이제는 어떻게? ‘내가 너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낚는 어부를 되게 하겠다. 보내심을 받아 네가 하늘의 말을 전하게 되면 그 전하는 현장에 네가 살아있는 것이 아니고, 나를 보내신 주님이 살아있는 방식으로 살아라.’

따라서 네가 남은 생애를 제발 부탁하는데 좀 신앙 없는 척하고 살아가세요. 그리고 그걸 기뻐하세요. 이제는 그런 여유가 여러분에게 있을 수 있습니다! 신앙 없이 살아가는 여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목조를 수 있는 여유를 부리면서 살아가는 것, 그 여유가 바로 주에 대한 기쁨과 감사의 이유가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건지지 않으면, 건지지 않으면 살 수 없다면 이 생명의 원칙, 우리는 그동안 무슨 생각 하며 살아왔습니까? 그 더러운 잘난 맛에, 그 더러운 잘난 맛에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살아온, 남한테 밑지지 않고 남한테 우습게 되기 싫어서 살아가는…, 그 성격이 달라질 수 없지만 이제는 느긋하게 그것이 죽어야 될 우리의 본모습인 것을 기쁘게 바라볼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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