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음녀 세상

아빠와 함께 2026. 7. 9. 08:57

음녀 세상

2026년 7월 8일                   본문 말씀: 열왕기하 8:25-29

(8:25)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제십이년에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니
(8:26) 아하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아달랴라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더라
(8:27)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니 저는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음이러라
(8:28) 저가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아람 왕 하사엘로 더불어 싸우더니 아람 사람들이 요람을 상하게 한지라
(8:29) 요람 왕이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울 때에 라마에서 아람 사람에게 맞아 상한 것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더라 아합의 아들 요람이 병이 있으므로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이스르엘에 내려가서 방문하였더라

역대하 21:16-17에 보면,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과 구스에서 가까운 아라비아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키사 여호람을 치게 하셨으므로 그 무리가 올라와서 유다를 침노하여 왕궁의 모든 재물과 그 아들들과 아내들을 탈취하였으므로 말째 아들 여호아하스 외에는 한 아들도 남지 아니하였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유다 나라에 대해 외세 침입으로 인한 왕궁에 비극이 초래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비극이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서 일어난 일이라면 그래도 하나님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남부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언약이 얼마나 큰 저항에 부딪쳤는지를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하나님 백성들이 바알 종교에 심취해 있습니다. 그것은 바알 종교를 이념으로 하는 권력층에 국가의 권력이 모조리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을 바알 신의 권력뿐이니 전 백성들은 그 권력에 굴복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사건 하나가 터집니다.

더 정확히 말해서, 하나님께서 사건 하나를 터지게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아람 나라와 북이스라엘이 전쟁을 하는 가운데 북쪽 이스라엘 왕이 병들게 되었고 거기에 이념적으로 한 통속이 된 남쪽 유다 왕이 병문안에 갔다가 북이스라엘에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서 북쪽 왕, 남쪽 왕 모두가 몰살 당한 일입니다. 

이것까지는 그냥 정치적 변고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자기 아들 유다 왕이 북쪽 왕 병문안 갔다고 그쪽 변란으로 인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왕의 엄마가 그 죽은 아들의 아들을 다 죽여버렸다는 것이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언약의 실상을 보여주는 영적 내용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아달랴라는 남쪽 유다 왕 모친와 아들에 대해서 본문은 이렇게 알려줍니다. “모친의 이름은 아달랴라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더라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니 저는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음이러라”(왕하 8:26-27) 우리는 여기서 아달랴라는 여성이 권력의 최정점에 올라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여인은 행한 것은 역대하 22:7-12에 나와 있습니다. 아하시야가 요람에게 가므로 해를 받았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아하시야가 갔다가 요람과 함께 나가서 임시의 아들 예후를 맞았으니 그는 여호와께서 기름을 부으시고 아합의 집을 멸하게 하신 자더라
예후가 아합의 집을 징벌할 때에 유다 방백들과 아하시야의 형제의 아들들 곧 아하시야를 섬기는 자들을 만나서 죽였고

아하시야는 사마리아에 숨었더니 예후가 찾으매 무리가 예후에게로 잡아다가 죽이고 이르기를 저는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던 여호사밧의 아들이라 하고 장사하였더라 이에 아하시야의 집이 약하여 왕위를 지키지 못하게 되니라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가 그 아들의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유다 집의 왕의 씨를 진멸하였으나

왕의 딸 여호사브앗이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의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도적하여 내고 저와 그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게 한고로 아달랴가 저를 죽이지 못하였더라 여호사브앗은 여호람 왕의 딸이요 아하시야의 누이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더라 요아스가 저희와 함께 하나님의 전에 육 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대하 22:7-12)

왜 이 여인은 죽은 아들의 아들들을 다 죽였는가? 그것은 남쪽 유다 나라의 왕족을 멸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은 그녀가 북이스라엘 이세벨의 딸이라서 바알 종교 중심의 권력으로 사상적 통합을 노렸던 겁니다. 여호와 종교의 씨를 말리겠다는 겁니다. 이것을 권력으로 밀어붙이는 겁니다.

일자(日者)는 내재성 밖에 없습니다. 이는 최고 권력자에게는 모든 권력망이 한 곳에 집중되어 있기에 자기 권력망 밖에 남아 있는 것이 없게 됩니다. 이 권력이 실제적인 권력으로 효력을 내는 것은 바로 ‘신분증’입니다. 국가 단위로 각 개인과 각 가정의 모든 것을 장악해서 국가의 권력망 위에 등록시키는 겁니다.

실제로 아달랴는 국가의 힘으로 자기 아들의 집안을 작살내어버렸습니다. 아하시야는 그런 모친 밑에서 1년만 통치하고 그 요아스 왕은 실제는 ‘죽은 자’로서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 이렇게 되면 과연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은 역사 위에서 소멸되는 것일까요? 언약대로 생겨야 될 하나님의 백성은 과연 영원히 없어지는 걸까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방식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알려집니다. “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호 1:2) 왜 의도적으로 선지자로 하여금 음란한 자식을 생산케 하신 걸까요?

“내가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를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대저 저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호 2:4-6)

즉 하나님께서는 언약 체계 안에 의도적으로 음녀를 생산하고 그 음녀가 어떻게 언약 백성으로 전환되는지를 친히 실시하십니다. 그것이 호세아 6:1-2에 나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자기 차가 아니라 남의 차에 대신 기름 넣어줄 때는 자기 차를 놔두고 그 남의 차를 운전해서 연료를 채워야 하듯이,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해서 백성되시고자 십자가 죽으시고 그 다음에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사흘 만에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음란한 권력 안으로 생겨난 우리 안에 예수님의 그 생명을 가득 부어주셨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자신의 신상에 대해 걱정한 권리가 없는 겁니다. 내 차가 아니니까요.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안에 주어진 생명으로 인해 이 세상과 차이 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23강-열왕기하 8장 25-29절(음녀 세상) 260708-이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열왕기하 8장 25절에서 229절까지입니다.

열왕기하 8:25-29

“아하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이세라 예루살렘에서 일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아달랴라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더라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니 저는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음이러라 저가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아람 왕 하사엘로 더불어 싸우더니 아람 사람들이 요람을 상하게 한지라 요람왕이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울 때에 라마에서 아람 사람에게 맞아 상한 것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더라 아합의 아들 요람이 병이 있으므로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이스르엘에 내려가서 방문하였더라.”

오늘 본문에 등장인물들이 몇 명 됩니다. 북쪽 아합의 아들 요람이라는 사람이 등장하고 남쪽에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등장합니다. 아합의 아들 요람 한 사람, 그다음에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 두 사람, 이 둘 다 남자고 왕입니다. 그런데 열왕기하 8장 26절에, “아하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이세라 예루살렘에서 일년을 치리하니라…” 여기 보면 아하시야가 통치를 1년밖에 하지 않았어요.

“…그 모친의 이름은 아달랴라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더라.” 여기에 아하시야의 모친 이름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해서 세 명이에요. 그다음 마지막으로 28절에, “저가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아람 왕 하사엘로 더불어 싸우더니 아람 사람들이 요람을 상하게 한지라.” 여기에 아람 왕 하사엘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총 네 명이 등장합니다.

아람은 지금의 시리아죠. 그리고 북쪽에 이스라엘이 있었고 남쪽에는 유다 나라인데 그것은 ‘남이스라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시리아인 아람 왕 하사엘, 그리고 북쪽의 여호람, 남쪽에 두 명이 등장합니다. 아하시야와 그의 어머니 아달랴. 총 네 명이 어떤 사건 안으로 휩싸이게 되느냐?

사건입니다.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지평에 일어나는 전쟁사건을 가지고 영적인 것, 세상적이 아니고 자연적이 아닌 영적인 요소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평소에 길을 간다. 누가? 내가 길을 걷는다. 전혀 영적이 아닙니다. 그런데 내가 길을 가는데 갑자기 말씀이 생각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14).

길 가면서 마태복음 7장의 그 성경 말씀을 생각한다고 해서 속도가 더 나고 몸이 더 편해지고 그런 것이 있습니까? 없지요. 몸이 있어서 길을 걷는다, 하나. 그런데 길을 걷는 그 순간에 뭔가 영적인 생각, 말씀 생각이 나더라, 둘. 이 땅의 생각과 하늘의 생각이 길을 걸어가면서 겹쳐져서 같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교회에서 듣는 것이 아니고 평소에 길을 가면서 그 생각이 떠올랐다는 그 말이지요. 그럴 때 집에 가서 “너 오늘 무슨 일이 있었나?” “길을 걸었어.” 그 말이 틀리지 않고 맞지요. “그런데…” “그런데 뭐?” “길을 가면서 좁은 길로 가야 영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것은 영적이지요.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서 ‘아람 나라와 북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있었다. 거기에 누가 끼어들었는가 하면, 남쪽 아하시야 왕이 끼어들었다. 세 명이 한 전쟁에 관여되었다.’ 네 번째 여자는 영적인 요소기 때문에 뒤에 등장해요. ‘전쟁이 있었는데 아람 나라(지금의 시리아)한테 북이스라엘이 패배하면서 아합의 아들 요람 왕이 다쳐서 병이 났다. 그때 남쪽 여호람 아들 아하시야 왕이 병문안하러 갔다.’(왕하 8:28-29) 그 이야기거든요.

자, 이 이야기하면서 여기서 영적인 것을 찾아보세요. 하나의 퀴즈처럼. ‘세 명이 만나서 전쟁했는데 여기서 영적인 것을 찾아보세요.’ 영적인 것을 찾는다 할 때 정답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영적인 것을 찾을 때는요, 반드시 ‘그 전쟁을 통해서 죽었다’가 될 때 영적인 요소가 돼요. 전쟁하다 왕의 몸 다치고 병이 나서 전쟁이고 뭐고 치우고 들어앉아 있는데 병문안 한다고 남쪽 왕이 등장했어요.

그때 갑자기 북쪽 이스라엘에 쿠데타가 일어났어요. 예후라는 자가 사정없이 자기의 왕을 죽였어요(왕하 9:24). 자기의 왕을 죽였으면 그만인데 병문안 온 다른 나라 왕 남쪽 왕도 같이 죽였습니다(왕하 9:27). 함께 죽여버렸다는 말이지요. 한국의 대통령이 병이 났을 때 일본 총리가 위문하러 왔는데 그때 북한군이 내려와서 대통령 죽이고, 일본의 총리도 같이 죽였다는 식이예요.

아직 영적인 것은 아닙니다. 아직 전혀 영적이지 않습니다. 그냥 세상 역사의 사건이에요. 그런데 그 소식을 듣고 병문안 왔던 남쪽 유다 나라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의 다른 형제가 하나도 없어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데 그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병문안 차 남쪽 서울에서 북쪽 평양에 갔다가 평양에서 쿠데타가 일어나는 바람에 죽었습니다.

죽고 난 뒤에 남쪽에는 왕이 없잖아요. 왕의 엄마인 아달랴가 있어요. 여기부터 영적이 됩니다. 아하시야는 죽었는데 아달랴가 그 죽은 왕이 낳은 자식을 다 죽여버렸습니다(왕하 11:1). 다시 이야기합니다. 육적인 것이 영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뭐가 들어간다? 죽음이 들어가야 돼요. 죽는 사건이 일어나야 돼요.

왜 육적인 것을 영으로 해석할 때 죽는 사건이 없으면 해석이 안 되고 왜 반드시 죽는 사건이 개입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성경에서 죽는다는 것은 백 프로 이 세상 권력이 하나님의 약속, 언약에 의해서 진행되는 그 현장에서 권력이 언약을 중단시키고 절단시킬 때 참혹한 죽음 사건이 일어나는 거’예요. 일반적인 전쟁 사건이었는데, 보통 누가 봐도 ‘이것은 아람 나라와 이스라엘이 싸운다.’ 이렇게 되는 데 여기에 뭐가 개입되느냐?

여호와가 아닌, 아합왕이 믿었던 바알신, 바알종교가 여호와의 약속이 있는 여호와 종교를 그냥 탱크로 밀어버린 거예요. 압도적인 권력으로 여호와 계통의 씨를 말렸어요. 할머니가 손자 다 죽였습니다. 아들은 병문안하러 갔다가 북쪽에서, 평양에서 죽었다고 했지요. 남아 있던 차기 왕 후보감들을 완전히 탱크로 밀어서 다 씨를 말렸어요. “우짜노? 세상에 이런 일이!”

자, 여기서 생각해 봅시다. 왜 할머니가 손자들을 다 죽입니까? 왜 몰살시킵니까? 이 할머니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되어 있어요. 열왕기하 8장 26절에, “아하시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이세라 예루살렘에서 일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아달랴라 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더라.”

그 모친의 이름은 아달랴라 이스라엘 왕 오므리이의 손녀더라. 27절에, “아하시야가 아합의 집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니 저는 아합의 집의 사위가 되었음이러라.” 이것을 간단하게 정리하겠습니다. 국가 단위가 집안 단위를 작살냈습니다. 국가 단위가 집안 단위를 작살냈다.

국가 단위는 무엇으로 형성되느냐 하면, 국가는 권력의 결합체지요. 복잡하지만 쉽게 하려고 애를 쓰겠습니다. 국가는 권력의 집약체에요. 그 국가에 누가 있느냐, 수장(首長)이 있기 마련이에요. 수장은 뭐냐? 모든 권력이 거기에 집약되어 있는 것이 권력자지요. 이 권력자를 지칭할 때 어렵지만 이 한 문장만은 반드시 기억해야 돼요.

‘일자(一者)에는 내재성(內在性)뿐이다.’ 일자, 최고 지도자지요, 최고위에 앉아 있는 일자, 신과 같은 것을 일자라 합니다. ‘일자에는 내재성뿐이다.’ 내재성뿐이라는 말은, 외부의 다른 것은 일체 없다. 일자에는 내재성, 내용물, 자기가 통치하는 내용물뿐이지 최고 지도자 바깥의 다른 것은 허용이 안돼요. 그런 것은 아예 없어요.

‘내재성뿐’이라는 이 말을 왜 굳이 해야 하는가?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 인간은, 특별히 과학 하는 사람들, 인간은 주체와 객체로 생각하면서 세상을 살아갑니다. 주체와 객체. 과학 하는 사람이 과학 하잖아요. 망원경으로 별을 보잖아요. 별은 객체에요. 별 바라보는 것은 관찰자, 자기가 주체입니다.

이 세상 모든 인간들은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주체가 ‘나는 여기 있고 저 사람은 남이네’ 해서 주체와 객체를 항상 연관시키면서 인생을 살아갑니다. 우리가 보통 다 그렇게 살아가요. 이야기가 어렵기 때문에 쉽게 예를 들겠습니다. 2차 대전 당시에 독일 나치가 네덜란드를 점령했습니다. 독일 나치가 점령하기 전에 그들에게는 자기만의 가족이 있고, 자기만의 인생이 있고, 자기의 생계 수단도 있고, 각자 사업이 있었어요.

‘이것은 내 것이고 저것은 남의 것이다.’ 주체와 객체를 나눕니다. 그런데 나치가 네덜란드를 지배해서 게슈타포가 암스테르담에 들어와서 신분증을 발급합니다. 그러면 발급한 그 신분증은 누가 그렇게 했는가? 독일 나치가, 정권을 잡고 있는 독일 정부가 했어요. 내용만 있는 그 일자(一者)의 명령을 듣고 비밀경찰들이 암스테르담에 들어와서 “신분증 봅시다!”

2차대전 때의 그 숨 막히는 현장에 여러분이 있다고 해 봅시다. 여러분이 길을 갑니다. ‘나는 주체다. 어, 저기 꽃이다. 수국이 있네. 저것은 토끼네. 나는 주체고 저것은 객체, 꽃이고 토끼고, 저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이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일상적이고 상식적이잖아요. 그런데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 신분증 봅시다.”

어떤 사람이 신분증을 제시하니까 “이것은 한 달 전 신분증입니다. 갱신한 신분증 봅시다.” “없는데요?” “당신 유대인이지? 체포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고 가서 가스실에서 죽여버립니다. 자, 신분증이 뭡니까? 주체-객체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 일상이 그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신분증입니다.

국정원에서 와서 “신분증 봅시다.” 그런데 북한 간첩이 옛날 신분증 꺼내 보이면 “이것은 옛날 것인데 당신 간첩이지?” 잡아갈 때 그 간첩이 주체와 객체를 구분하는 그럴 권리가 있습니까? 없어요. 없습니다. 이걸 다시 이야기합니다. 일자(一者)는 내재성(內在性)뿐이에요. 그런데 그 일자의 내재성 안에 들어 있는, 그 최고를 최고 권력이라고 드러내는 권력 밑에 들어가 있는 인간은 ‘아, 난 자유롭다.’ 이렇게 착각을 하는 거예요. 자유롭다고.

인간들은 권력이 없으면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갑니다. 그런데 최고 권력자가 권력을 쥐고 신분증을 배부한다는 말은 그 신분증에 걸려든 거예요. 그 권력의 망에 걸려든 겁니다. 그래서 암스테르담의 그 유대인은 어떻게 되는가? 나치의 비밀경찰이 그 사람이 가진 재산, 숨겨놓은 다이아몬드까지 다 찾아내서 압수해요. 평생 주체로 살았던 그 주체가 신분증 하나에 완전히 말살되고 다 날아가요.

그러면 신분증이 없으면 어떻게 되느냐? 나는 죽지요. 여기서 다음과 같은 간단한 결론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권력 쥔 사람만 살고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죽음 대기상태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죽음 대기상태. 죽음 대기상태니까 어떻게 돼요? 그냥 죽은 거예요. 죽은 시체인데 옷만 걸치고 있는 거예요.

바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는데 여호와와 그리고 여호와를 거부하는 다른 사상을 갖고 있는 사람과의 전쟁을 일으키는데 그 전쟁에서 누가 패배하느냐? 이 여호와를 믿는 왕이 패배했을 때 얼른 그것을 누가 접수하느냐? 바알 신을 믿는 쪽에서 여호와를 믿던 권력체제를 옴팍 압수해서 다 가져가요. 권력을 다 가져간다고요.

이제부터 여호와에 대해서 언급을 하는 사람은 7월 4일부터 벌금 백십억 때려버립니다. “목사님,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 과해요? 진짜 과합니까? 평양 보세요. 일제 당시 평양을 동양의 예루살렘이라 했어요. 교회가 그렇게 많았어요. 그런데 그 평양 어떻게 되었습니까? 누구든지 성경책 들고 있는 사람, 심지어 외국인이라도…, 캐나다 사람 성경책 들고 있다 죽었잖아요.

성경책 들고 있다든지, 본다든지, 소지한다든지 하는 사람은 그냥 죽여버렸습니다. 세계적인 콩쿨에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평양 관현악단 수석 바이올리니스트가 성경 소지하고 들어왔다고 죽여버렸습니다. 공개적으로 사형시켰습니다. 이게 무슨 시대? 아달랴.

하나님께서 아달랴로 하여금 모든 여호와 믿는 것은 숨을 못 쉬게 만들어요. 왜 그렇게 하느냐?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음녀가 권력을 쥐고 있는 상태에서 비로소 하나님의 언약이 제대로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여호와를 믿는다는 이스라엘은 반드시 바알의 권세에 의해서 멸망당해야 됩니다. 이스라엘이 멸망 당할 때 비로소 그때 뭐가 나오느냐 하면, 여호와의 적이 음녀라는 호칭을 가지고 등장하게 되어 있어요.

여호와를 믿는 데 거기에 뭐가 침범한다? 여호와 말고 여호와와 전쟁하는 바깥 세력이 여호와를 침몰시켜요. 침몰시키면 이 땅에서 여호와를 제대로 믿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어야 돼요. 주께서 인위적으로 그렇게 상황을 만들어가시는 겁니다. 성경에 보면 여러 군데 나와요. 여호람 아들 아하시야가 북쪽 요람이 병들었을 때 병문안 간 그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되어 있어요.

역대하 21장 16-17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과 구스에서 가까운 아라비아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키사 여호람을 치게 하셨으므로 그 무리가 올라와서 유다를 침노하여 왕궁의 모든 재물과 그 아들들과 아내들을 탈취하였으므로 말째 아들 여호아하스 외에는 한 아들도 남지 아니하였더라.”

여호아하스는 아하시야를 말합니다. 같은 사람이에요. 한 사람은 남았다는 말은 나머지 형제들 다 죽었다는 그 말이지요.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어요. 왜? 자기 엄마가 아달랴거든요. 바알 신을 섬겼거든요. 바알 신을 섬기니까 하나님께서 유다, 여호와를 믿어야 될 유다 나라, 여호와를 믿어야 될 북쪽 이스라엘, 그 양쪽 집안이 하나님에 의해서 적들이 쳐들어와서 다윗의 자손들이 간들간들하게 다 죽여버리는 거예요.

아하시야는 자기 엄마가 아달랴고, 아달랴는 자기 엄마가 이세벨이잖아요. 이세벨은 음녀에요. 음녀의 딸이 음녀가 되어서 북쪽 조지고 남쪽 조지고 다 조지고. 그런데 그렇게 하신 것은 누가 했다?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셨다. 왜? 하나님 믿는 나라에 함몰 지역을 만들기 위해서. 빵꾸가 난 거예요. 함몰 지역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왕이 있던 권력의 자리를 바알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침공하게 해서 완전히 접수하게 만들어요. 그리되면 여호와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결국 사람들은 ‘여호와 종교는 끝났다. 이제 여호와 종교는 끝났어.’ 끝났을 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그것을 안타까워했는가? ‘여호와 믿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 그래서 과연 안타까워했을까요? 안타까워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참 이게 정말 신기한 거예요. 이것은 뭐냐? 음녀로 나타났지만 사실 이것은 여호와를 공격하는 요소의 그 권력체가 나타난 거지요. 인간들은 여호와를 믿고 있어도 여호와 말고 다른 권력의 종이 된 채, 다시 말해서 주체가 있지만 그들은 모두 한통속으로 음녀가 만드는 세계의 일원으로서 그냥 신분증 발급받으면서 여호와 모르는 그 권력이 살려주는 한 고분고분하면서 그 권력 안에서 겨우겨우 숨 붙이고 사는 형편, 이것을 두 자로 ‘현실’이라고 합니다, 현실.

여러분, 이 말씀을 보면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면 이것은 성경 말씀 잘못 보고 있는 거예요. 성경 말씀은 우리의 현실을 깊이 있게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에 입각해서 파고 들어가서 ‘현실을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각자 신분증 있지요? 없으면 어떻게 돼요? 간첩으로 몰리지요. 어떻게 됩니까? 그냥 사형당하지요. 북한 같은 경우에.

그러면 오늘날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대한민국 사람에게 물어봅시다. “당신은 주님의 권력에 속합니까, 아니면 세상 권력에 속합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는 거예요. 청문회장이다. 국회의원이 묻습니다. “‘예, 아니오’로 답변하세요. 당신은 여호와가 왕이십니까, 아니면 자유민주주의 헌법 권력이 왕이십니까?”라고 물으면 뭐라고 답해요?

“저는 교회 다니기 때문에 여호와를 믿습니다.” 그러면 “신분증 봅시다.” 하나님이 주신 신분증이 있어야 돼요, 하나님이 주신 신분증. 신분증이요, ‘나’예요. 신분증이 ‘나’라고요. 신분증이 없는 ‘나’는 이 세상에서 ‘나’라고 인정을 안 해줘요. 태어날 때부터 이미 권력의 망에 소속이 된 겁니다. 이것은 회사 취직해도 마찬가지거든요.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권력이 없는 장소가 없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이야기 한 것을 이 문장으로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살 수 없는 곳에 억지로 살고 있다.’ 그다음에 한 문장 더 ‘살 필요도 없는 곳에 우리가 억지로 살려고 애를 쓰고 있으니까 나만 힘들다.’ 주님께서 이야기했어요.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눅 9:58).

그래 놓고 훌쩍 떠났어요. 주님은 훌쩍 떠났다고요. 군대도 안 갔어요. 주님은 신분증도 없어요. 그냥 훌쩍 떠났어요. “날 잡아라.” 해서 날 잡아 죽게 해서 훌쩍 떠났다고요. 그리고 이야기합니다. “너는 나를 따라오너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막 8:34). 이거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니에요? 우리는 이 세상에서 대장질을 못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권력이 있는 한 대장질을 못 해요.

자, 그러면 남은 문제는 이거거든요. 하나님 믿는 사람도 없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지배하기를 원하는 사람도 한 사람도 없어요. 투표하면 100% 다 자유민주주의 찬성이에요. 북한도 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에요. 겉으로는 다 그래요. 그렇다면 아무도 하나님 믿는 사람 없고 하나님이 지배하기를 원하는 사람도 없고, 다 똑같아, 마음이 다 똑같아요.

‘그냥 목숨만 살려준다면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고, 직장을 위해서 충성 다 하겠습니다. 제발 국가 단위로 내 가족, 애 둘이 있고 한 그 가족 단위를 부수지는 말아주옵소서. 내가 무슨 짓을 다 하든지 간에, 국가 단위로 내 가족 단위의 마지막 남은 행복마저 작살내지는 말아주옵소서.’ 뭐 이런 식으로 호소하죠. 호소해도 소용없어요. 작살낸다고 하면 작살을 내겠다는데요, 뭐.

우크라이나 청년들, 러시아 청년들 국가에서 도망치는 거 봤죠, 전쟁터에 안 가려고. 도망쳐 봐라, 소용없어요. 국가 단위가, 가정에서 다복하게 큰 나를 국가 단위가 압살해버린다고요, 압살! 이게 현실이에요. 그러니까 여기에서 예수 믿고 하나님 믿고, 이거 거짓말하는 거 같애…, 믿을 수가 없어요. 믿는 자가 있을 수 없는데 무슨 예수를 믿어요?

자, 그렇다면 이제 남은 문제는 뭐냐? 이렇게 절망적인데, 그러면 하나님의 자기 언약대로 어떻게 달성되느냐? 언약이 달성되면 뭐가 나오느냐 하면, 천국 백성이 만들어져요. 현재 천국 백성은 없어요, 죽여버리니까, 아달랴가 죽여버렸으니까, 이 음녀가 죽여버렸으니까. 그러면 없는 천국 백성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언약이 언약대로 정상적으로 가동이 돼야 하거든요.

언약이 가동되려면 이 음녀의 권력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숨도 못 쉬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되느냐?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게 아니에요. 언약이 어떻게 하느냐 하면, 호세아에 나옵니다. 호세아 1장에서 14장까지 있는데, 전체 내용을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선지자…, 자, 선지자가 어디에 속하느냐 하면 영적인 쪽에 속해요. 영적인 호세아에게, 너는 말만 하지 말고, 네가 누구와 결혼 해야 하느냐 하면, 음녀와 결혼해야 해요. 음탕한 여인과 혼인하고, 혼인해서 그냥 살기면 하면 안 돼요. 애를 낳아야 해요. 애를 낳게 되면, 애 세 명 다 뭐냐? 더러운, 간음한, 여호와를 버린 간음한 여인의 자식이 선지자의 자식으로 등록이 됩니다.

출발점이 뭐냐 하면, 출발점이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식들로 출발해요. 호세아 2장 4절, “내가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하나님께서 이 저주받은…, 남쪽 북쪽 다 마찬가지예요. 저주받은 이쪽, 여호와를 버린 이쪽, 바알 종교가 지배하는, 권력을 장악한 그 나라에서, 선지자는 의도적으로 음탕한 여인과 결혼해서 자식을 낳습니다. 그러면 출발점이 뭐냐? 음란한 자식이다.

호세아 2장 5절, “저희의 어미는 행음하였고 저희를 배었던 자가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대저 저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연애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저희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느니라.”

가나안 땅에 있던 모든 생산물을, 주시기는 여호와께서 그 땅을 주셨는데 그 땅에 사는 주민들은 바로 바알의 권력, 바알의 권력에 자처하여 빠져서, 그 권력에 ‘꼼짝 마라’ 해서, ‘모든 것은 바알신이 주셨습니다’…, ‘바알신이 주셨습니다’ 하는 말을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여호와께서 일방적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는 뜻이에요.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고, 바알 종교의 원칙에 따라서 그냥 자기가 노력하면 주어지는 그런 대가 덕분에 우리는 이렇게 잘 사는 거니까 그딴 거 여호와 버리고, 여호와 말고 여호와의 약속이 들어있지 않은 일자(一者), 절대자, 총체자에게 있는 그 권력 안에서 우리는 고마워하면서 살자’ 이런 식으로 한 것이 바로 호세아의 사모님, 호세아의 부인이에요.

그게 호세아 2장에서 줄곧 이야기하는 거예요. 호세아 2장 15절에 보면,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호세아 2장 16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여러분, 아까 본 인물들, 남쪽 왕 아하시야도 그렇고 북쪽 왕 요람도 그렇고 그 등장하는 인물들, 아달랴도 그렇고 전부다 바알의 정신에 입각해서 남북 나라를 다 통치했어요. 요아스는 지금 죽어있어요, 사실은. 왜? 숨겼으니까(왕하 11:2-3). 존재 자체도 몰랐어요. 그러니까 호세아 2장 17절에서,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저의 입에서 제하여 다시는 그 이름을 기억하여 일컬음이 없게 하리라.” 이렇게 이야기가 되어 있어요.

그다음에 호세아 4장에 1-2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 호세아 4장 6절에 보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주님께서 계속 언약과 율법을 이야기합니다. 자, 그 이야기가 지금 계속되는데요, 우리가 지금 궁금한 게 ‘책망만 할 게 아니고, 간음했다는 그거만 계속 지적하지 말고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여호와의 백성이 되느냐?’ 지금 그 이야기가 우리는 궁금한 거예요. 호세아 6장 1절에서 그걸 설명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그다음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아! 이겁니다. 주님의 십자가 이야기가 튀어나오죠. 아버지가 아들을 죽였으나 아버지는 자신이 죽인 아들을 사흘 만에 부활시킵니다. 이 진리 때문에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일체 하나도 없고,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사람도 아예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 판명 났어요, 판명 났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열두 사도들이 외쳤던 것이 이거예요. “예수님이 죽었다. 아버지가 사흘 만에 살렸다, 끝! 이 복음을 믿느냐?!” 그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너, 마귀 권력에 지금 맛 들었어, 마귀 권력에 맛 들었어!” 이 말이에요. “너는 너 자신을 알아? 네가 뭐 주관적이고 객관적이고 어쩌고, 과학을 연구해? 네가 뭐 피아노를 쳐? 네가 미술을 해? ‘내가 주체자로서…’ 아니야, 너는 이 세상에 하나님을 모르는 악마의 권세의 신분증을 갖고 있어.”

그 권세 앞에서 개인적인 어떤 기대감과 재능, 국가가 달라지면 사상이 달라지면 그건 아무짝도 소용없어요. 세계적으로 피아노 우승한 그 사람도 성경책 갖고 있다고 사형시키는 세계, 국가의 이념이 개인의 주관적인 생각을 완전히 뭉개버리는 그러한 세계, 이걸 두 자로 ‘현실’이라고 합니다. 이게 현실이에요.

일자(一者)에는 내재성(內在性)밖에 없습니다. 국가가 곧 신(神)이에요, 국가가 곧 신이에요. 이걸 모든 인간이 원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사고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고 모든 백성들의 소망, 소망이 대통령이라는 것. 그리고 위대하신 지도자, 태양 같은 지도자로 뭉쳐진 거예요.

고린도후서 6장 14절에, 성경은 얼마나 냉혹하게 이걸 바라보고 지적하는지, 고린도후서 6장 14-16절에 이런 말씀 나옵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아, 냉정하죠. 우리보고 지키라는 얘기가 아니죠. 우리가 못 지킨다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주께서 우리를 찢어버립니다. 우리를 찢어버려요. 찢어버리고 살려요. 사람들은 그동안 교회 다니면서 주의 말씀을 지켜서 예수님을 본받고자 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어요. ‘말씀 보고 말씀 지켜서 예수님 형상을 본받고…’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께서 대신한다’라고 했거든요. 예수님이 대신한다는 게 뭐냐 하면, 쉽게 하면 이런 이야기입니다. 내가 누구 차에 기름이 없어서 기름을 넣어주는데, 내 차 몰고 갑니까? 안 되잖아요. 지금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누구 차가 앵꼬가 나가지고 기름을 넣어주는데 내가 내 차를 몰고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넣어주면, 이거는 내 차에 기름이 들어가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해요? 주님께서 주님 차 버리고 누구 차를 가지고 가야 돼요?

‘나’라는 육신을 가져가서 거기에 생명을 만 땅, 예수님의 생명을 만 땅으로 넣어주는 거예요, 만 땅으로! 그것도 공짜로! 우리 차를 끌고 간다. 끌고 가서,

“내가 넣을게요.”
“가만있어, 찢어버릴라!”
“제가 열심히 말씀 지키겠습니다.”
“가만있으라니까! 내가 대신 집어넣는다니까, 예수님의 그 생명을! 다 이루심을.”

호세아 6장 1절에,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절에,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도대체 우리가 복음에 대해서 더 이상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습니까? 이것보다 더 확실한 게 어딨어요? 주께서 사시다가 하늘로 갔어요. 우리는 못 갑니다. 그런데 그분이 성령을 통해서 오셔가지고 “네 헌 차 가져와, 가져와, 가져와! 내가 생명 넣어줄게.” 일방적으로 생명이 콸콸콸콸콸콸콸콸, 4만 들어간다, 그리고 5만…, 콸콸콸콸, 새 생명이 들어가니까 “너는 이제는 이 땅에서 어떤 수모를 당하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너는 이미 살았어, 이미 살았어. 죽어도 살았어.”

따라서 여러분, 끝으로 이 말씀 드립니다. 여러분, 우리 신상에 대해서 우리가 걱정할 권리는 없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세상이 온통 은혜의 세상인 것을, 이미 그 낌새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벌어졌음을 저희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여호와 믿는다, 하나님 믿는다’가 끽소리 못 하고 아무짝도 소용없이 된 이 현실을 제대로 보게 해주시고, 그런 가운데서 십자가 복음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나로 살던 나’가 이제는 ‘말씀의 사람’으로 살게 된 것을 주께 찬양하고 감사하며 살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수요설교(260708)요약 열왕기하 8장 25-29절(음녀 세상)

수요설교 요약해보겠습니다. 수요설교에서 본문 내용의 족보가 좀 복잡해가지고, 말씀 연구하지 않는 사람 같으면 ‘왜 이리 등장인물이 많나?’ 할 수 있는 부분이라 설명이 약간 길었어요. 길었는데, 거기서 우리가 봐야 될 것은 ‘현실’이에요. 현실이라는 것에 집중해야 돼요.

현실은 인간과 인간과의 만남이잖아요. 그 외에 없죠. 뭐 산속에 가서 참새나 연구하고 그게 아니잖아요. 현실이라는 것은 인간과의 만남에서 소위 현실감이 확 옵니다. 혼자 집에서 혹은 혼자 산속에서 있으면 현실감이 뚝 떨어지잖아요.

현실에서 인간관계인데, 인간관계가 뭐 만나서 이야기한다, 또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얘기, 과학 이야기해봐야 다 ‘아이고, 잘났다. 그래, 헤어지자.’ 그러면 끝나는 거예요. 우리 인간관계는 그런 식으로 처리를 해왔단 말이죠.

그런데 어제 수요설교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이런 말했어요. ‘육에서 영으로 갈 때는 반드시 죽음을 동반한다.’ 죽음을. 죽음을 동반할 때, 정치사에서 갑자기 누가 누구를 죽인다는 말은 죽일 힘이 있을 경우에만 누가 죽죠.

그리고 정치인들이 ‘사람 막 죽이고 싶어 미치겠다. 사람 저거 짐인데….’하고 길가에 노인네 있는 거 죽이고 이렇습니까? 깡패도 그런 짓 안 해요. ‘저 인간 내가 죽여버린다. 저 인간 내가 가만두지 않는다. 저 인간이 국회에서 저런 발언을 하다니. 내가 교도소 가는 한이 있더라도 가만두지 않는다.’ 이런 거요. ‘민주당? 가만두면 안 돼. 계엄하자.’ 이런 거.

죽일 힘이 있을 때, 힘을 그냥 썩혀두면 안되잖아요. 힘을 발휘하면서 뭐가 되느냐? ‘일자(一者)는 내재성만 갖는다’는 뜻이에요. 왜냐하면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그 순간 누가 최고 정점에 있어요? 권력을 행사하는 자기가 최고 정점에 있고, 그 위에는 아무도 없어요.

국회의원들 청문회하게 되면, 청문회하는 사람이 말하려고 할 때 “말하지 마! 말하지 마. 내가 말할 거야.”하죠. 발언 자체가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거예요. 그럴 때 발언하려는 너희들은 전부 다 내가 최고라는 것을 구성하는 요소로서만 거기 있어야 돼. 요소로만. 이게 권력입니다.

따라서 그 최고의 자리, 오직 내재성만 있고 일체의 외재성은 작살내는 그 최고의 자리를 위해서 인간은, 음녀는 어떻게 했느냐? 권력의 힘을 가지고 옵니다. 북쪽(이스라엘)은 이미 바알 종교화되었잖아요. 그럼 자신(아달랴)은 북쪽 왕, 선대(先代) 왕의 딸이잖아요. 딸이니까 나라를 자기 집구석으로 만들어요, 집구석으로. 그래야 이념이 통하고 사상이 통하는 같은 식구가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서 교회를 만들어놓고 교회 권력을 누구한테 물려준다? 자식한테. 그럼 교회가 뭡니까? 자기 가족 회사가 되겠죠. 그런 식으로 하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이념에 방해되는, 성전 있다고 으스대는 유다나라의 여호와를 어떻게 하느냐? 없애버린 겁니다.

그런데 그 아달랴가 여호와를 싫어하느냐? 여호와를 싫어하는 게 아니고, 자기 권력을 사랑했죠. 그게 바로 ‘여호와냐, 바알이냐’ 종교문제를 떠나서 현실은 센 권력과 그 센 권력처럼 되지못한 약한 권력의 관계망이라는 겁니다. 사람들은 그걸 권력의 망, 역사로 보는 거예요.

성경은 그걸 의도적으로 거론한 이유가, 이스라엘은 그래서 망한 거라는 거예요. 현실에 너무 충실해서 망한 거예요. 이스라엘은 뭘 찾아야 돼요? 현실을 초과하는 최고의 자리는 누구다? 임금님이다? 아니요. 백성이다? 아닙니다. 누구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이미 최고의 권력자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이 현실의 문제점은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는 게 문제에요.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는 게 문제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처리하는 방법은 국민이 갖고 있는 권력을 뺏으면 되죠. 뺏는 자가 국회의원들이에요. 국회의원 특징이 직업이 없는 거예요. 할 일이 없어요. 할 일 없이 1억, 2억씩 챙기는 방법은 국회의원 되는 수밖에 없어요.

자기들끼리 노는 모임에 법을 만들어서 국민들에게 신분증을 제시하도록 했어요. 어제 신분증 이야기했죠? 2차 대전 때 나치에 굴복당한 네덜란드의 처참한 현실. 뭐 경찰이 아무나 보고 신분증을 보여 달라 해요, 신분증을. 모르는 사람인데. 경찰이 아는 사람이에요? 모르는 사람이 와서 말을 거는데, 하는 말이 신분증 보여 달라는 거예요. 그게 권력행위에요.

소박한 내 가정, 세 식구, 네 식구 사는 이 가정에 갑자기 들어와서 “서류 있습니까? 이 가게 여는데 허가받았어요?” 누가 이렇게 이야기해요? 권력이 있기 때문에, 권력이 있는 공직에 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사적으로 소박하고 진짜 행복하기 짝이 없는 우리들만의 가정 단위에 국가 단위가 수시로 침범해요. 이게 뭐다? 두 자로 ‘현실’입니다, 현실.

똑같은 현실에 살면서 이걸 영적으로 사람이 해석해내질 못하는 거예요. 이게 문제라는 거예요. 이게 음녀인데. 공장하든 사업하든 전부다 허가 나야 하잖아요. 길거리에서 좌판 열고 장사 못합니다. 구청에서 와서 “이거 세금 냈어요?” 허가받아야 돼요. 허가받아야 됩니다. 세금내고. 그걸 그들은 공정세라 해요. 인간으로 태어나서 가족끼리 살려고 해도 현실은 우리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힘의 관계망으로 구성된 현실에 우리가 놓여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끝으로 한 말씀드린다면, 가족만이 이렇게 소박하게 하하호호 살면 참 좋겠죠? 그런데 가족 중에 애가 네 명인데 하나가 되게 못 살아, 나중에. 시집가서 장가가서 못살아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부모와 나머지 세 명의 자녀가 협조해서 밥이나 먹고 살라고 하겠죠. 그러면, 같은 말인데 바꾸겠습니다. 세 명이 다 망했어요. 그런데 하나가 의사 개업해서 돈을 많이 벌었어요. 그러면 온 식구가 어디에 매달리겠습니까? 하나에 매달리겠죠.

이게 뭐냐 하면, 가족의 화목? 아니죠. 정? 아닙니다. 자본의 힘이죠. 돈의 힘. 이게 바로 현실입니다. 누가 악하다, 누구 대통령이 나쁘다, 장관이 나쁘다? 아니에요. 누가 나빠요? 이 현실을 구성하는 내가 못지않게 나빠요. 왜? 나는 돈, 권력을 지금도 추구하니까. ‘음녀에 협조하는, 음녀의 구성원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이게 이번 수요설교였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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