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2/27-우리 자신의 형질화

아빠와 함께 2026. 2. 27. 10:16

주님이 인간 자체를 물질로 본다는 생각을 제자들은 감히 생각을 못 한 거예요. 자기는 살아있는 생명체니까, 누룩은 무생물이니까. 자기가 무생물이란 생각을 못 한 거예요. 그래서 “예수께서 아시고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마 16:8-9).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고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주님이 이야기했잖아요. 이 대목에서 주님께서 고개를 싹 돌려서 우리를 보면서 “이 대목을 보면서도 아직도 너희들도 깨닫지 못하느냐?!” 동일한 책망을 우리 보고 하는 것 같습니다.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지 못하느냐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마16:9-11).

떡, 누룩에 관한 이야기를 누가 끄집어냈냐면, 예수님이 먼저 끄집어냈어요. 그러니까 그 누룩이라는 소리를 듣는 제자들은 ‘누룩’이라는 것은 ‘떡’과 관련된 속성이고 요소니까 그저 떡으로 생각한 겁니다. 왜? 예수님이 먼저 ‘누룩’을 언급했으니깐요. 그런데 이제 와서 예수님이 딴 이야기를 하십니다.

“어찌 떡에 관한 이야기냐. 누룩은 무엇과 관련돼 있는 것이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잘못된 교훈, 잘못된 사고방식, 잘못된 정신 상태와 관련돼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 관점에서, 레위기에 나오는 누룩, 소금, 모조리 전부 다 우리 자신의 형질화, 우리 자신이 ‘흙’이라는 형질화 된 안목을 가지고 구약성경을 다시 봐야 해요.

우리가 ‘나는 인간이다. 인간인데 어떻게 살까?’ 하지 말고, ‘그냥 껍질이고 흙이고 무생물이고 돌멩이다’라고 했을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이 됩니다. “돌 같은 나, 흙덩어리인데 주여, 제가 어떻게 천국 백성, 영생을 얻는 천국 백성 되겠습니까?” 그런 질문을 하면서 성경을 보시라는 거예요, 그런 질문을 하면서! 그러면 주께서 “내가 너한테 소금을 줄게.”

이게 소금에 관한 이야기일까요? “소금요? 집에 소금은 좀 있는데요.” 지금 그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누룩 이야기할 때 ‘누룩’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소금 이야기할 때 ‘소금’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교회 조금이라도 다닌 사람이라면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이 이야기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잡지도 그런 잡지가 있어요. ‘빛과 소금’이라는 잡지.

마태복음 5장 13절에 보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소금이다. 이 소금의 의미가 뭐냐? 마태복음 5장은 소금의 의미가 잘 안 나타나요. 소금의 의미가 잘 나타나는 것은, 골로새서 4장 6절입니다. “너의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이게 뭔 뜻이냐 하면,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 율법은 내 것을 가지고 사랑하는 게 아니다. 너도 흙이고 나도 흙이고, 너도 돌멩이고 나도 돌멩이고, 너도 무생물이고 나도 무생물인데, 무생물 된 우리를 천국 백성, 영생을 얻는 진짜 백성 되게 하는 것은, 소금 같은 동일한 언약, 주님의 소금 언약에 의해서, 네 것도 내 것도 아닌 주님의 같은 공로, 같은 혜택을 입고 있음을 공유할 때, 이웃 사랑은 저절로 되고 그 이웃 사랑이 되는 사람만이 하나님 사랑으로 간주돼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친 백성이 된다’는 겁니다.

이게 제사의 완성이에요. 레위기 제사의 완성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끼리 어떻게 사랑합니까? ‘서로 쪼다’라고 보면 되잖아요. 서로 쪼다.

“너 뭐야?”
“나, 물이다. 그리고 너도 물이다.”
“그런데 어떻게 천국 백성이 되는가?”
“주님의 표적이지.”

주께서 날마다 말씀으로 우리를 파괴하고, 우리의 그 환상을 파멸시키고 파탄시키는 그 은혜, 우리가 그 은혜를 받으면 우리는 바로 창세기 2장 7절로 돌아가요.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그러면 우리는 제일 기본 바탕의 자리가 되지요. 가장 근본의 자리, 기원의 자리에, 기초의 자리에 서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무게 중심이 하나도 없어요.

제일 낮은 자리에서 모든 것이 고요요, 모든 것이 평화요, 모든 것이 안정됨이요, 모든 것이 화목됨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화목 제물, 십자가의 화목 제물의 그 고마움을 풍성하게, 날마다 늘 받아 누리는 그런 표적의 연속, 표적의 혜택을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에게 문제 있는 것도 모르고 왜 세상 살기가 빡빡한지, 얼마나 우회로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는지, 참 말할 수 없습니다. 되지도 않는 존재, 자기 주제도 파악 못 하는 존재, 주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가 마땅히 파괴되어야 할 존재인 것을 새삼 기뻐하는 감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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