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2/18-세 개의 공간

아빠와 함께 2026. 2. 18. 08:54

엘리야와 엘리사 사이에 더 추가된 의미가 있어요. ‘요단강에서 승천, 요단강에서 승천 못 하면 최종 약속의 세계에는 들어가지 못함’, 그렇게 되는 거예요. 다르지요? 옛날 여호수아 때는 수평적이에요. 요단강을 건너면 약속의 땅이 바로 그 옆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 시대의 요단강은 ‘옆’에 있는 것이 아니고 ‘위’에 있는 거예요.

정리하면 공간이 몇 개인가?

공간이 세 개가 되는 거예요.

우선 엘리야가 간 공간, 천사가 와서 불수레 태워 올라간 그 공간입니다.

두 번째는 엘리사가 멀뚱히 바라만 보고 그대로 서 있는 이스라엘이라는 그 공간입니다. 두 개밖에 없는 나머지 세 번째 공간은 무엇인가?  이 세 번째 공간이 어려워요.

엘리사가 알게 된, 엘리사가 경험한 새로운 이스라엘 공간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엘리사가 자기의 겉옷을 벗어버리고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그동안 엘리사가 선지자 일을 했던 것을 형식화 시켜주는 것이 겉옷이었거든요. 엘리사의 시그니쳐지요, 특징적인 것, 그게 겉옷이었다는 말이지요.

그동안의 ‘나’라는 그 형식을 벗기고 하늘에서 입혀주는 불말과 불수레에 합당한 새로운 표현방식으로서 엘리야 선지자는 그 겉옷을 벗은 채 하늘의 옷의 형식을 띄고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엘리사가 그것을 딱 보고 어떻게 했느냐? 우리 스승이 하늘로 올라갈 때 그렇게 올라갈 수 있는 그 능력은, ‘아, 그동안 외부적으로 나타냈던 선지자의 형식 자체를 포기하고 버리는 것이구나’ 하고 알게 된 거예요.

좀 어렵게 하면 이렇습니다. 엘리야가 세상 하직할 때 다른 사람은 목숨이 끊어져서 하직하는 줄로 알았던 거예요. 그동안 엘리야가 선지자의 기능 때문에 살아왔기 때문에, 선지자 기능을 다 했을 경우에는 선지자 기능을 해왔던 그 옷을 벗는 것이 엘리야 입장에서 세상과의 하직의 표현입니다.

“이제 세상은 굿, 굿바이!” 좋은 헤어짐, 그런 의미로 옷을 벗는 거예요. ‘내 기능은 다했다.’ 그동안 선지자 기능이 나를 사로잡았는데 그 기능을 주께서 그동안 수고했다시면서 철수시키니까, 선지자 기능을 위해서 그동안 세상을 살았는데 그 기능이 벗겨진 이상 더는 세상에 있을 이유가 없잖아요. 그러면 이제 하늘로 올라가면 되는 겁니다.

이 점이 왜 중요한가? 여러분도 저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이 이 땅에 천구백몇 년도에 태어났잖아요. 다 생년월일이 있잖아요. 주민등록에 다 있지요? 그렇게 태어날 때 주님의 고유기능이 있어요. 그냥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주께서 할 일을 주셔서 태어나는데 그 할 일이 끝났을 때 여러분은 엘리야 되는 겁니다.

여러분도 ‘아, 나 죽는다’ 그게 아니고 세상 하직하는 거라니까요. 세상을 하직하는 거예요. 개만 키우다 하직하지 마시고요. 개 보험이나 넣고 그러다 하직하지 마시고요. 개키우는 그것이 우리 할 일이 아니잖아요. 주께서 성도에게 주신 기능이 있어요. 그 기능이 다할 때 주께서는 우리를 잡아당겨서 하늘로 보내는 겁니다.

엘리사가 그 힌트를 얻은 거예요.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내 눈앞에서 스승만 끌어올려서 하늘나라 보내고 나를 그대로 지상에 남겨두는 이유는 스승 엘리야의 선지자 기능이 아직 나에게는 마감되지 않고 연속적으로 주어져 있다는 것을 파악한 겁니다. 단지 그렇게 파악한 것으로써 자기도 나중에 스승님이 가신 하늘나라 간다는 그 보장은 안 되잖아요.

스승님 가신 그 하늘나라에 같이 합류되면서도 선지자 기능을 다하는 방법은 뭐냐? 현재 내가 입고 있던 그 옷을 찢어버려요. 입고 있던 그 겉옷을 찢고 그 자리에 뭐로 대체하느냐? 엘리야 선지자가 하늘로 올라가면서 남겨둔 그 겉옷을 후딱 집어서 어디로 가느냐?

스승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이리저리 헤치면서 요단강을 건넜거든요. 서쪽에서 동쪽으로 건너간 겁니다. 거기서 스승 엘리야는 하늘로 올라갔고 그 제자 엘리사는 멀뚱하니 남아 있는 거예요. 이제 엘리사는 거기서 다시 서쪽으로 넘어와야 해요. 건너오기 전의 그 지점으로 가야 한다고요.

그래서 다시 건너갈 때 그냥 가지 않고 스승 엘리야의 겉옷을 가지고 이리저리 강물을 헤치니까 갈라지네요. 그게 갈라져요. 여기서 엘리사가 걱정하지 않는 이유가 있어요. 스승이 벗어놓은 겉옷 가지고 물을 가르니까 물이 갈라졌다는 말은, ‘나도 스승님이 계시는 하늘나라에 합류한다’는 뜻이 되는 겁니다.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엘리사가 보고 소리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에 찢고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가지고 돌아와서 요단 언덕에 서서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가로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저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왕하 2:11-14).

지금 나를 데려가지 않는 이유는, 스승님이 해온 그 선지적 기능이 나에게 이전되었기 때문입니다. 후계자로서 나에게 이전되었기 때문에 그 기능이 유지되는 한 나는 이 세상을 떠날 수가 없어요. 그 일이 일어난 곳이 요단강이에요. 다시 말씀드립니다. 요단강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넘어야 할 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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