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엘리야 같은 선지자가 필요하다.’ 그것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엘리야가 능력이 많았다. 엘리야가 기도하면 3년 6개월 동안에 비가 안 올 정도로(약 5:17) 그렇게 능력이 많은 분이 우리 곁에 있으면 우리가 얼마나 안심할 수 있겠느냐?’ 하는 거예요.
이것은 형식주의입니다.
“하늘나라로 가고 싶어?”
“예, 가고 싶습니다.”
“엘리야가 간 그 나라에 합류하고 싶어?”
“합류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네 형식을 버려라. 너의 잘남과 너의 가능성, 내 가능성은 이 정도라고 자기 가능성을 증빙할 수 있는 그 형식을 버려라.”
어떻게 버립니까? ‘나라는 존재는 존재 자체의 심판과 저주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내 가능성으로 천국 가지 못한다는 것, 막혀있다는 것, 분명한 것은 내가 막혀있다는 것, 내 식대로 생각하고, 내 식대로 행해서 구원받는 이것은 차단돼 있다’라는 것을 분명히 해 두는 그것, 그것을 발견하면 돼요.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예요! 어떤 사람은 생각할 거예요. ‘야, 엘리야가 벗어놓은 겉옷을 엘리사가 흔드니까 요단강이 갈라졌다지? 나도 그 겉옷을 후딱 취해서 흔들면 요단강 갈라지겠네. 그런 것 있으면 우리도 참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겠죠.
사도행전 19장 12절에,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이렇게 돼 있어요. 그러면 사람들이, 사도 바울의 그 손수건과 앞치마를 박물관에 기념물로 해놓고 그런 걸 따라 하면, 거기서 고유한 능력이 막 나오는 겁니까?
누가복음 8장 44절에 보면, 어떤 혈루증 걸린 여인은 몰래 와서 예수님의 옷 가를 만졌어요.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예수님이 십자가 지고 떠나고 난 뒤에 예수님의 그 옷만 만지면 전부 다 구원받습니까? 주님의 능력이 그 안에 살아 있어요?
엘리야가 벗어놓은 그 겉옷을 엘리사가 쥐고 흔들어서 요단강 건넜다면, 그다음부터 엘리사가 그 겉옷 가지고 계속해서 능력을 행했습니까? 안 했습니다. 이게 뭐냐? 형식을 버린다는 것은 엘리야도 그렇고 엘리사도 그렇고요, 내 가능성을 발휘할 수 있는 소유될 만한 것은 일절 없다는 거예요.
소유 당해야 하죠. 나는 주님의 기능과 주님의 일하심에 소유 당하는 것이지, 내가 주님의 사람인 것 티 낸다고 능력 될 만한 것을 소지하는 것,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 걸 누가 바라고 있었느냐? 엘리야 승천할 때 그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제자들이나 그런 걸 찾고 있었던 거예요. ‘스승님의 시체와 함께 있으면 계속 능력이 나오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에요.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딱 하나예요. 우리 존재의 바닥을 보세요. 우리 존재의 바닥을 보게 되면, 우리의 존재 바닥은 저주요, 죽음이고 심판이 있습니다. ‘죽고 난 뒤에는 좋은 나라에 가겠지.’ 자꾸 이렇게 죽음을 극복할 생각하지 말고, 자기를 찢을 수 있어야돼요. 죽음을 두려워하는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쪽으로 나오려면…, ‘이미 너는 네 능력으로, 네 가능성으로 천국 못 간다’가 확정이 된 사건이 있어요.
그 사건이 뭐냐? 바로 십자가 사건이고 그게 언약궤예요, 언약궤의 완성입니다! 주의 십자가는 우리보고 죄인이라 하고, 우리 힘으로 죄를 씻을 수 있는 능력, 가능성은 아예 없고 ‘주님의 그 피가 우리의 죄를 용서했다’라는 그 ‘불가능성’이 우리의 남아 있는 인생에서 주님의 일을 하는 새로운 능력이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바로 엘리야고, 우리가 바로 이 시대의 엘리사로서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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