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설교

음부로 가는 길(겔31;10-14)이근호140409

아빠와 함께 2014. 4. 10. 11:47

음부로 가는 일(에스겔 3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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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호 14-04-09 21:45 
음부로 가는 길


2014년 4월 9일                        본문 말씀: 에스겔 31:10-14

(31:10)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의 키가 높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아서 높이 빼어났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은즉

(31:11) 내가 열국의 능한 자의 손에 붙일지라 그가 임의로 대접할 것은 내가 그의 악을 인하여 쫓아내었음이라

(31:12) 열국의 강포한 다른 민족이 그를 찍어버렸으므로 그 가는 가지가 산과 모든 골짜기에 떨어졌고 그 굵은 가지가 그 땅 모든 물 가에 꺾어졌으며 세상 모든 백성이 그를 버리고 그 그늘 아래서 떠나매

(31:13) 공중의 모든 새가 그 넘어진 나무에 거하며 들의 모든 짐승이 그 가지에 있으리니

(31:14) 이는 물 가에 있는 모든 나무로 키가 높다고 교만치 못하게 하며 그 꼭대기로 구름에 닿지 못하게 하며 또 물 대임을 받는 능한 자로 스스로 높아 서지 못하게 함이니 그들을 다 죽는데 붙여서 인생 중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와 함께 지하로 내려가게 하였음이니라

힘 있는 자를 사모하고 그의 곁으로 모여드는 것은 전 인류 사회에 있는 생리입니다. 거대한 파라솔 같은 제국의 그늘 밑에서 숱한 소국들이 자리잡고 있으면서 온갖 아양을 다 부리게 되어 있습니다. 전체 국제사회에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천사같이 아이들이 모여있는 학교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위 ‘짱’은 어디에서 있게 마련입니다. 본인이 짱을 되겠다는 경우도 있지만 주변 아이들이 자진해서 그 아이를 짱으로 모시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한 학급의 구조는 졸지에 피라밋형태가 됩니다. 다른 아이들은 그 최고의 아이 밑에 포진해있게 됩니다. 싸움을 잘하든지, 집안이 대단하다든지, 공부를 잘하든지, 언변이 좋은 아이들 주변에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게 마련입니다.

자기에게 없는 요소를 타인이 갖고 있으면 그 덕을 보겠다는 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이것을 누가 감히 나서서 탓하겠습니까. 인간 사회의 보편화된 현상이 됩니다. 가정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인간 세상의 질서는 이런 식으로 조성되게 됩니다. 직장이나 군대, 병원, 공직,  국가 대 국가, 스포츠 세계나 그 어느 곳이라도 인간이 있는 곳이라면 자기보다 더 많은 힘을 가진 자 곁으로 다가와 그 덕을 보려고 하기 마련입니다.

강대국이 등장했다는 것은 약소국가가 처신할 경우는 뻔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당대의 최고 제국인 앗수르가 처참하게 망하게 된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의지했던 강자가 망하면 곧장 말을 갈아타기에 급급합니다. 오늘 본문을 두고서도 사람들은 자기 구원과 직접 상관없다고 여기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취지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 속에서는 ‘나만이 구원받으면 됐지’라는 생각이 얼마나 하나님의 취지가 다른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개인 구원 챙기기’라는 시도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전반적인 하나님의 뜻에 포함되면서 구원됩니다. 그 뜻에 의해서 앗수르는 망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노골적으로 앗수르는 왜 망합니까? 더 나아가서, 왜 하나님께서는 망해야 할 나라를 이 땅에 구태여 등장되게 하시는 겁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앗수르는 교만해서 망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가 교만하지 아니하면 안될 조건은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것입니다. 그 모든 인간도 일단 자신이 만족해하는 상황이 되다가 그것이 졸지에 상실하면 불만을 갖게 마련입니다. 얼굴이 예쁜 처녀가 갑자기 화상을 입게 되면 인생을 끝내려고 할 것입니다. 화상입은 그 얼굴도 은혜라고 여기지 않는 한 그것은 교만이 됩니다.

사이좋던 부부사이가 불화로 갈라서게 되면 서로를 향하여 원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모습도 교만에 해당됩니다. 누구나 교만할 수 밖에 없는 요인을 품고 있기에 너나 할 것없이 그 당시 최고의 강대국인 앗수르를 부러워하면서 그 그늘 밑으로 들어오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망하게 하시는 겁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조건’을 만드신 분이 아니라 ‘세상의 조건’을 만드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앗수르 주변에 모여든 나라들과 더불어 앗수르가 지하 세계로 앞장 서서 이끌게 됩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음부’ 곧 지옥을 이 현실 세상에서부터 만들어 나가시려는 겁니다.

특정 인간이 누구냐가 아니라 아예 세상 전체를 하나의 방으로 만들어서 통째로 지옥으로  변모시키려는 겁니다. 방이란 폐쇄된 공간입니다. 밖으로 나갈 마음이 전혀 생겨나지 않는 영역입니다. 사나 죽으나 그 안에서 꼬물거리게 합니다. 앗수르가 경계선을 만들고 그 제국의 품 속에서 많은 나라들이 앗수르의 가진 힘을 부러워하고 선망하면 그들만의 세계를 형성합니다. 그곳이 곧 지옥이라고 불리워지는 겁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지옥이라는 방을 만드시고 또 다른 방을 만드십니다. 그것은 바로 천국입니다. 예레미야 50:18-19에 보면, “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앗수르 왕을 벌한 것 같이 바벨론 왕과 그 땅을 벌하고 이스라엘을 다시 그 목장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가 갈멜과 바산에서 먹을 것이며 그 마음이 에브라임과 길르앗 산에서 만족하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을 앗수르 제국이나 바벨론 제국과는 달리 다루시겠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이방민족과는 달리 음부, 곧 지옥이 어떤 조건 하에서 갈 수 밖에 없는가를 압니다. 시편 9:17에 보면, “악인이 음부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 하리로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악인은 지옥에 갑니다. 이 원칙이 언약을 받은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이방민족에게 다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다음과 같은 언약적 원칙이 적용합니다. 시편 16:10에 보면,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원래 애굽 안에 숨겨져 있는 나라였습니다. 언약의 개입이 있어야만 그 숨은 나라가 구체화됩니다. 출애굽을 시도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는 전체 할례를 행하게 하셨습니다. 할례란 혈육을 끊는 의식입니다. 인간의 육으로부터 오는 모든 것을 차단시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인간대 인간의 관계는 끊어지고 만다면 그 끊어진 자리에 무엇으로 조인트 될까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문설주를 ‘어린양의 피’를 바를 것을 지시하십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과의 관계는 끊어져도 하나님이 제시한 약속, 즉 어린양의 피로 인하여 새롭게 구성되게 됩니다.

그 어린양은 죽기 전에 이미 가족품에서 1년 간 더불어 살던 양입니다. 이 어린양의 죽음은 곧 하나님께서 유발하신 최종적 죽음에 이스라엘이 이미 가담된 형국을 만들어주시는 겁니다. 심판과 죽음의 사자를 어린양이 먼저 마중을 합니다. 자신의 죽음으로만 맞이하게 됩니다.

이로서 하나님께서는 천국이라는 방을 ‘어린양’ 중심으로 만들어 내십니다. 세상에서는 힘의 제국이 대표하지만 천국에서는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대표합니다. 이로서 하나님께서 개인의 조건을 제시하시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세상의 조건을 직접 만드십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개인 윤리가 소속으로 구원이 판정됨을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