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 너는 되고 왜 우리는 안 되는데?’ 이 내용이 율법과 계명에 함축된 내용입니다. ‘이 계명을 사적으로 내가 지키면 된다’가 아니라, 그래서 계명을 못 지킬때 그것이 위반이 아니라, 율법 자체가, 계명 자체가 특정 인물로 쏠리게 하는 것, 그것이 계명 안에 들어 있는 핵심이에요.
아주 쉽게 이야기해서 계명 안에 라인이 있어요. 계명 안에 라인이, 줄이 있어요. 계명 안에 어떤 줄기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계명 안에 특정 인물의 줄기가 응집되고 함축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계명? 너나 나나 다 하나님의 계명을 같이 줬으니 그걸 잘 지키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고 못 지키는 사람은 복 못 받는다’라는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계명과 율법에 내가 사적으로, 개인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을 보이는 겁니다.
그것을 보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민수기 16장 1절에 나온 대로 고라, 다단, 온 이런 사람들의 경우입니다. 이 사람들 땅 갈라져서 다 죽었습니다(33). ‘모세를 왜 건드리느냐?’ 한 거예요. 너만 되고 나는 안 된다는 것을 계명과 율법과 윤리를 통해 못 찾아내겠다는 거예요. 그 못 찾아내는 게 율법에 대한 반란이에요. 하나님에 대한 반란입니다.
그러면 특정인, 모세죠, 모세 언약에서 모세 외에 다른 사람의 특징은 뭐냐? ‘모세가 가져온 그 율법에 대해서 다른 사람은 지킬 수 없다’가 되어야 해요. 지켜서 모세와 맞먹으려고 하지 말고 못 지키는 존재로서 모세 주위에 배치되어 있어요.
왜 모세만이냐? 왜 하나님께서 모세만이라고 하느냐, 이 말입니다. 창세기 12장,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 그 많은 인간 가운데서 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사 특정 인물에 준해서 축복과 저주, 복이 오고 복이 안 오고 하는 일을 일어나게 하는가?
하나님의 언약은 두 겹으로 된 붕어빵이에요. 붕어빵 안쪽에는 무자비한 힘이 들어있어요. 그리고 붕어빵 껍데기는 무한한 자비가 있어요. 이렇게 겹이 두 겹으로 되어 있어요. 안에는 앙꼬가 들어 있고, 밖에는 밀가루 탄 거 있잖아요. 그렇게 붕어빵처럼 되어 있다고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뭘 먹으려고 하느냐 하면 ‘말씀 지키면 복 받는다.’ 해서 그냥 붕어빵 껍데기부터 도전해요. 자기가 붕어빵을 먹을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언약의 인물들 모세 같은 경우 또는 다윗 같은 인물, 그리고 새언약의 예수님의 인물들에게는 하나님의 무자비한 저주와 심판을 체험토록 하셨습니다. 욥도 마찬가지고요.
“하나님 왜 이유도 없이 저에게 이렇게 고난을 주십니까?” “네가 택한 자거든.”
그런데 택하지 않은 인간들은 그걸 몰라요. 인간에게는 ‘말씀 지키면 복 받고 안 지킬 경우에만 저주받는다’라는 이게 해당 사항이 안 됩니다.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이 율법을 받은 이유는, 그들로 하여금 애굽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 궁극적인 죄인의 모습이 뭔가를 율법안에서 발견케 해주시는 거예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없어요. 따라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준 것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롬 3:10)다는 거예요.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 말은 모세율법에 의하면 몽땅 다 무자비한 저주를 받아야 마땅한 자로 알려주기 위해 율법을 준 겁니다. 그들이 마땅히 율법의 위반자라는 걸로 준 거예요. 그 위반의 절정의 지점이 뭐냐? “모세 너는 되는데 우리는 왜 안 되는데?”라는 의문점이 우리 내부에서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하나님이 바로 이런 식으로 훈련을 시킨 거예요. 사무엘상 16장 14-16절에 보면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사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왕을 번뇌케 하온즉 원컨대 우리 주는 주의 앞에 모시는 신하에게 명하여 수금 잘 탈줄 아는 사람을 구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왕에게 이를 때에 그가 손으로 타면 왕이 나으시리이다.”
수금은 목재로 만든 현악기인데 줄이 여덟 개에서 열 개쯤 악기에요. 다른 사람이 하는 악기는 소용없어요. 다윗이 수금을 치니까 악신이 떠나요. 23절에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더라.”
다윗은 되고 다른 사람은 안 되는 거예요. 왜냐? 다윗은 눈을 감고 장님인 채로 피아노를 치도록 특별하게 훈련되었기 때문에 그래요. 자기자신의 몸은 망가졌는데 다윗의 음률은 나와요. 그 음률이 뭐냐? 하나님에 대한 유일한 찬송이 되고, 그 찬송을 받으신 하나님은 안식에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시편 150편 1-4절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찌어다 그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광대하심을 좇아 찬양할찌어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찌어다.”
조건이 있어요.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 때의 그 조건은 뭐냐? 율법과 율례와 계명을 짜내면 거기서 한 인물이 나오는 조건이에요. 다윗 언약을 짜면 다윗의 후손이 나옵니다. 우리가 사적으로, 개인적으로 계명을 지키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계명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느냐? 사적인 원칙 말고, 집단적 단위, 국가 단위의 거룩과 의를 성립하고 요구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거예요. 국가 단위라고 하는 것은 뭐냐? 국가의 책임자가 등장해야 해요. 그 책임자가 바로 다윗인 겁니다.
이사야 11장 1절에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되어 있어요.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예요. 모세 라인 바깥의 다른 줄기가 개입되면서 주인공이 모세에서 뭐로 바뀌는가? 다윗에서 바뀔 때예요.
이사야 11장 2절에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이렇게 나오는데 그렇게 나온 결과가 얼마나 완벽한 세상인지 6절에 보면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가장 이상적인, 전혀 죄가 없는 하나님의 안식, 하나님을 만족케 하는 세상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인간은 자기 개인적인 소유가 하나의 복 받은 전부인 줄 알고 있어요. 그게 아니에요. 소유가 방해해요. 하나님 생명의 천국을 이 소유가 방해해요. 소유 말고 직격탄으로 모세율법과 다윗 언약이 오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느냐? 모세 계명에 의해서 날 때부터 극단적인 죄인 그 자체인 것을 발견하는 거예요. 그 자체가 뭐냐? “예수님은 되는데 왜 우리는 안 됩니까?”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거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거기에 대해서 에베소서 2장 14절, 15절을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15절에 보면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율법과 계명을 짜버리니까 거기서 예수님의 피가 나오는 거예요. 그 피가 하나님의 안식을 만족시켜서 하나님은 영원한 안식의 나라 천국을 그런 식으로 만들어내시는 겁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동안 우리가 개인적으로, 사적으로 복 받기 위해서, 구원받기 위해서 말씀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였습니다. 이 모든 말씀은, ‘왜 예수님만 되고 우리는 아니 되는가’를 통해서 우리가 궁극적인 죄인인 것을 발견하고, 이러한 모든 화평과 천국행이 예수님의 피 때문에 발생된 결과인 것을 깨닫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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