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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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 2025. 2. 7. 11:03

문의 특징이 뭐냐 하면, 눈에 보이는 것, 있는 것, 있는 것과 있는 것 사이에 비어 있는 곳이 문이 돼요. 눈에 보이는 것은 문이 아닙니다. 뭔가 있다는 것은 문이 아니에요. 없음이에요, 없음. 있는 것들, 있는 자아들, 자아만 챙기는 있는 것들에 의해서 사라진 그 현장이 문이 되는 겁니다. 십자가에 죽었던 그 장소가 문이 되는 겁니다.

요한복음 10장 7절에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양의 문이다. 자, 양의 문이 어떤 행위를 하시느냐 하면, 16절에 보면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목숨을 버림이라.”

문 이야기를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구원의 문은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비로소 구원의 문이 되신 거예요. 현재 눈에 보이고 존재한다고 우기는 것들은 오히려 문을, 있는 문도 가려버리는 거예요. 어떤 목사 훌륭하더라, 어떤 성도 어떤 집사 훌륭하더라. 이것은 비워 있어야 할 자리를 그 인간이 땜질하는 겁니다.

그리고 더 무서운 이야기는 내가 바로 주의 문을 지금 가리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 저 어때요?’ 이런 식으로 자기 자신을 자꾸 생각하는 거예요. 그게 바로 사명 없는 겁니다.  인간 눈에 보이기에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그 현장성을 보여주는 것 그게 문이에요. 오늘날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거예요. 이 땅에서 인간이라는 것은 뭐냐? 그냥 인간이란 낯짝만 있고 뒷부분은 매일 시간에 의해서 갉아먹히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주님께서 찾아오는 거예요. 성령이지요. 주께서 찾아오고 난 뒤에 말씀을 보니까 뒤늦게 ‘아, 내가 죄인 중에 괴수’라는 고백을 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이미 ‘내가 죄인 중에 괴수 맞구나.’를 알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남은 인생은 뭐냐? 왜 내게 지킬 게 필요치 않은가, 내가 왜 그 자체가 죄인가, 그걸 계속해서 알아가는 거예요. 살아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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