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언약의 속성상 아들을 죽이는 하나님과 아버지께 저주받아 죽는 하나님으로 두 분이 분리된다는 것을 유한한 인간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인간은 본성적으로 망하기를 싫어하고 지옥 가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니 자원해서 저주(지옥)의 길로 들어선 하나님을 어떻게 인간들이 마냥 좋아하겠습니까? 그런 하나님은 상상도 되질 않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불편해요. 그러나 지옥은 지옥 보낼 자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도 꼭 필요했어요. 주님은 지옥을 만든 분 정도가 아니라 만드신 지옥을 친히 다녀가신 분입니다. 지옥에도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벧전 3:19).
예수님께서 다녀가신 이 코스가 ‘비밀’이 운행하는 노선입니다. 이 노선은 창세 전에 확정되었고 예수님이 친히 밟으신 노선이기에 ‘무한’이 유한한 인간 속에 자신을 담을 수 있는 처소가 마련된 거지요. 그게 무한의 능력이며 주님의 ‘충만’이에요. 주님의 비밀의 충만, 그 충만의 노선에 합류시키는 것, 그것이 주님의 ‘예정’입니다. 하나님이 창세 전에 예정한 ‘예수 안’, 다른 말로 하면 ‘무한 안’에서 그 무한을 담기 위한 그릇으로서 ‘유한’인 우리를 그분의 작업에 편입되게 하시는 것, 그것을 ‘구원’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내(유한) 구원’이란 없는 거예요. 하나님은 아들을 구원하는 것이지 인간을 구원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아들’안에 넣어서 아들로서 구원하시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