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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 이후

아빠와 함께 2024. 9. 25. 08:35

480강-YouTube강의(죽음 그 이후 민수기 16:46)20240924-이 근호 목사


제480강, ‘죽음 그 이후’. 보통 사람들은, 개인이 죽고 난 뒤에 죽은 사람은 죽고 나머지는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거기서 나온 말이, ‘죽은 사람은 죽더라도 산 사람은 살아야지.’에요. 그렇게 이야기하죠.

그런데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언약과 결부된 사람들이 죽게 되면 산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법칙을 세워놨어요. 앞서 죽은 사람이 언약에 의해서 죽었다면, 그 사람 죽음 이후에 죽은 자에게 주어졌던 저주, 하나님의 진노가 모든 남아있는 사람에게도 그대로 확산되게 되어있습니다. 율법과 이스라엘 만남의 특징이에요.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소개할 때, 인간에게 자신의 뜻을 소개하면서 필히 인간의 죽음을 매개로 해서 그것을 중개로 해서 뜻을 전달하십니다. 그 말은, 인간은 하나님이 상대할 때 내가 살았다 한 자로서는 하나님의 말씀, 뜻이 전달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산 사람은 죽여 놓고 뜻을 전달해요.

그럼 인간 쪽에서 손해다, 이런 생각이 들죠. 그런데 손해가 아니고 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가는 방법이 내가 죽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데 그걸 현실화시켜줬다는 것이 굉장히 기쁘죠.

여러 가지 예가 있는데 두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첫째는 레위기 10장 1절에 나답과 아비후. 백성들로서는 제일 고위층이죠, 제사장이니까.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그들이 담았던)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이 상당히 의미 있는 죽음이 되는 이유가 그들만큼은 여호와 앞에서 죽었어요. 여호와 앞에서. 그리고 그들이 죽는 장소도 여호와의 일을 했던 그 현장에서 죽었습니다. 그들이 죽은 것에 대해서 애석할 필요 없이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 자신의 일은 중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두 사람의 죽음으로써 분명하게 드러내줬습니다.

그 제사장이 불을 담았는데 불을 담을 때 그 두 제사장은 자신이 불을 다루었다고 생각하죠. 불은 객체, 불을 다룬 주체는 본인들. 그러니까 이 불이라는 객체를 다룸으로써 주체의 가치와 주체의 생존에 객체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죠. 이 두 제사장이 죽은 이유는 불이 주체라는 사실을 그들이 잊어버렸던 겁니다. 제단 불이 주체에요. 자기는 주인공 되는 제단 불의 배달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깜빡 잊은 겁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공부하고 듣잖아요. 백날 듣고 공부하면 뭐합니까? 무엇이 주체인지 객체인지 구분도 못하는데. 말씀을 우리에게 주는 것은, 전에는 내가 주인공이었는데 말씀이 주인공으로 바뀌어졌을 때 그때 말씀의 연결고리에 참여된 존재가 되는 겁니다. 인물이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우리가 공부하는 게 아니고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올 때 우리는 공부하는 것과 관계없이 말씀 세계 속에 들어온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죽든 살든 말씀이 알아서 하실 거예요, 말씀이. 죽을 만하면 죽이시고 더 살만하면 살리는 그 주도권이 이미 말씀에게 넘어가있는 거예요. 하나님은 말씀가지고 일하시니까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의 일이죠.

그래놓고 레위기 10장 9절에 보면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전에 물론 독주나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는 것을 이미 이야기했었어요. 했는데 이 두 사람이 술 먹고 들어간 모양이라. 하여튼 술이 화근이에요.

평소에 술 먹었겠어요? 우연하게 술을 먹었겠죠. 백 번을 술 안 먹다 한 번 술 먹었는데 술 먹고 정신 못 차려가지고 여호와가 명하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았어요. ‘그냥 뭐 형식이니까 때우면 되겠지.’ 안일하게 생각한 거죠. 자기가 주체가 된 거예요. 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있다, 이렇게 자기의 본성이 그만 술김에 확 나왔던 거예요.

그래서 두 사람을 죽이고 9절에 있는 말씀을 아론의 자식들에게 합니다. 아론의 자식들이 제사장이니까. “제사장들은 회막에 들어갈 때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는 이 규례를 더욱더 분명히 해주는 거예요. 두 사람 시체는 끌려가고. 두 사람 죽든 말든 지금 하나님의 계명이 계명답게 분명해진다면 이 두 사람의 죽음은 그만큼 가치가 있는 죽음이죠.

자, 오늘 제목이 ‘죽음 그 이후’인데 죽음 이후란 뭐냐 하면 죽기 이전에도 말씀이 주인공이어야 한다는 것을 죽고 난 뒤에 그걸 일깨워주기 위해 누군가 죽어야 되는 자들을 말씀이 그렇게 발생시키는 거예요.

한 가지 예를 더 들면, 이것도 유명한 거죠, 민수기 16장 20절. 민수기 16장 20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렇게 되어 있죠. 그다음에 뭐라고 했느냐면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라고 되어 있어요.

백성들이 모세에게 대드니까 대든다는 말은 ‘백성과 하나님을 이어주는 그 중매자, 중개자를 백성 쪽에서 철거 시도했다’ 이렇게 보면 돼요. ‘직접 하나님과 상대하겠다’ 그런 뜻입니다. 직접 상대 안 됩니다. 안돼요. 모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멸망하게 되어 있어요. 구조가 그런 구조에요. 체계가.

그런데 ‘너나 나나 똑같은 인간인데 언제까지 네 말만 자꾸 듣냐? 종이냐?’ 이래가지고 고라 자손이 일종의 반역을 시도한 거죠. 내란이 일어난 겁니다. 하나님 쪽에서 화가 나가지고 그 고라 자손뿐만 아니고 내가 다 죽이겠다고 이렇게 나온 겁니다.

그 뒤에 계속 보게 되면 고라 자손들은 죽습니다. 31절에, “이 모든 말을 마치는 동시에 그들의 밑의 땅이 갈라지니라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 가족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키매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 채로 음부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합하니 그들이 총회 중에서 망하니라” 산 채로 그냥 죽였습니다.

그 때 불이 나와서 같이 단을 세워 분향하는 사람 몇 명이 죽었는가? 250명이 죽었습니다. 35절, “여호와께로서 불이 나와서 분향하는 이백 오십 인을 소멸하였더라” 얼마나 잔인하신 하나님이에요. 하나님의 잔인함을 알게 되면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살려주는 것이 아주 큰 배려를 하신 거라는 사실을 우리가 이제 알게 됩니다.

제가 말씀드린 이 본문에서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46절. 주동자 고라 자손이 죽었으면 이제 회중들에게 벌을 내린다는 것은 유야무야 ‘주동자 죽였으니까 그걸로 때워서 이젠 안 죽는다’ 그게 우리의 상식인데, 46절에 보면 “이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향로를 취하고 단의 불을 그것에 담고 그 위에 향을 두어가지고 급히 회중에게로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 했어요.

왜 속죄하라 했느냐 하면 45절에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그러니까 고라 자손은 고라 자손대로 죽이고 남아있는 회중들을 또 죽이고. 모세라는 중보자가 없을 경우에는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어졌다는 거예요.

하나님과의 만남, 연락책이 있다는 그 조건 하에 이스라엘이 살아있는 것이지, 그들 살려주려고 살아있는 게 아닙니다. 모세에게는 율법이 주어져 있고 율법을 살리는 용도로 모세가 있는데 너희들이 모세의 가치, 존재의미를 완전하게 없애버리면 그렇게 없애는 너희들도 더 이상 살 이유가 없고 그 의미도 상실해버린 거예요.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사는 거예요,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 잊어버리면 우린 그 다음부터 살 이유가 없어요.

다 죽인다 하니까 모세와 아론이 엎드리죠. 엎드려서, 아하 빨리 속죄해야 되겠다. 그래서 47절에, “아론이 모세의 명을 좇아 향로를 가지고 회중에게로 달려간즉 (벌써) 백성 중에 염병이 시작되었는지라 이에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에 염병이 그치니라”

다시 한 번 중보자의 가치, 중보자의 소중함. 내 목숨보다 무슨 기능이 중요하다? 중보자의 기능이 내 목숨보다 더 우선된다는 사실을 알려주죠. 그때 죽은 자가 아까 죽은 고라 식구 250명 빼놓고 “일만 사천 칠백 명이었더라”, 49절에.

그러니까 이제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예수님 십자가 이후에 어떤 사정입니까? 다 죽었죠. 예수님 십자가 이후에 다 죽었어요. 속죄, 죄 사함의 혜택을 입은 사람 빼놓고는 다 죽은 겁니다.

길 가다 혹시 아는 사람 만나거든 죽은 사람한테 인사하는 정도 하시고, 속죄 모르는 가족들에게는 ‘아,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을 나한테 붙여줬다. 그리고 나도 속죄가 없으면 마찬가지다.’ 라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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