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7강-YouTube강의(시간과 공간의 지혜 전도서 1:9)20240702-이 근호 목사
제476강, ‘시간과 공간의 지혜’. 시간과 공간은 우리 인간이 만든 게 아니에요. 우리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원래 취지는 몰라요. 다만 시간과 공간을 통해서 내 위주로 내 편리한 위주로 끌어당기는 것이 인간으로서는 지혜라고 우겨봅니다.
그런데 전도서 1장부터 전도서를 계속 보면 전도서의 내용이 인간의 지혜를 지혜 같지도 않게 처리해요. 인간을 지혜로 보질 않아요. 이 전도서를 누가 썼느냐 하면 다윗의 아들이 썼습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그럼 다윗의 아들이 누구냐 하는 것은 여러분들 잘 아시죠. 열왕기상 10장 3-6절을 보면 거기 솔로몬이 누굴 만나요. 스바 여왕을 만납니다. 스바 여왕이 솔로몬을 만날 때 스바 여왕은 나름대로의 자기 계획을 가지고 만난 거예요. 못 믿겠다. 뭐를 못 믿겠냐? 인간이 이 우주의 지혜를 안다는 것을 내가 못 믿겠다. 그래서 내가 직접 만나서 인터뷰해보고 조회를 해봐야 그제야 나는 솔로몬의 소문이 과연 그렇다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겠다.
그래서 그 스바 여왕이 먼 길에서, 이집트보다 더 멀리 남쪽에서 스바 여왕이 왔습니다. 와서 10장 1절에 보면 “스바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예를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저를 시험코자 하여” 어려운 문제로 시험코자 하였다. 자, 여기서 어려운 문제라 하는 것은 인간이 그동안 인간 입장에서 어렵다,의 한계점에 있는 것들을 이젠 그걸 다 긁어모아서 ‘쏘세요’ 하는 것처럼 솔로몬에게 던져보는 거예요.
왜냐하면 소문에 솔로몬의 지혜는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지혜라는 소문이 있는데 그걸 듣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기분 나쁜 거예요. 왜냐하면 같은 인간인데,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그런 혜택 입었고 자기는 열심히 공부해가지고 인간들이 아는 것 중에서 좀 똑똑한 것. 그러니까 그게 이제 슬슬 짜증이 나는 거예요. 질투심이 발동되는 겁니다. 네가 뭔데? 우리 인간들이 모르는 특별한 것을 네가 알아? 하나님이 너에게 특별 대우했다 이 말이야? 내가 가보겠어! 곧 기다려. 내가 그 허점을 들통 낼 테니까.
그러니까 스바 여왕이 지식에 대해서 굉장히 호기심과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이 있었고, 또 하나는 그것을 평소에 찾아다니면서 가짜라는 걸 온통 들추어낸 경력이 있다는 것을 여기서 알 수 있죠. 그래서 3절에 보면 “솔로몬이 그 묻는 말을 다 대답하였으니” 어렵고 어려운 질문들을 모아서 다 ‘쏘세요’ 해서 쐈는데 거기에 대해서 묻는 말에 다 대답하니까 “왕이 은미하여 대답지 못한 것이 없었더라”
그래서 6절에 보면 “왕께 고하되 내가 내 나라에서 당신의 행위와 당신의 지혜에 대하여 들은 소문이 진실하도다 내가 그 말들을 믿지 아니하였더니 이제 와서 목도한즉 내게 말한 것은 절반도 못 되니 당신의 지혜와 복이 나의 들은 소문에” 그걸 완전히 능가한다. 그걸 뛰어넘는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진리에 대해 관심이 많은 스바 여왕이 우리를 대표해서 자기가 직접 목격한 솔로몬에 대한 그러한 경험담을 소개했는데, 우리의 궁금증은 여기서 멈추지 않겠죠. 도대체 솔로몬의 지혜가 어느 정도인데 그렇게 감탄하느냐? 뭐 시시한 것 가지고 혼자 감탄하지 말고. 우리한테는 뭐 뻔할 뻔자가 아니냐. 이럴 수가 있거든요. 갑자기 우리도 호기심이 확 동한단 말이죠.
솔로몬의 지혜가 어느 정도냐? 그게 전도서에 나옵니다. 전도서 1장 4-6절을 보면 인간의 지혜를 능가하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갖고 있는 솔로몬의 지혜가 드디어 가 나오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떴다가 지며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해놓고,
그다음에 뭐라고 하느냐 하면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도대체 솔로몬의 지혜가 뭐냐? 하나님이 주신 지혜는 뭐냐? 만물이 피곤하다는 거예요. 그 만물 중에 누구도 포함되어 있죠? 인간도 포함되어 있죠.
솔로몬이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알아챈 것이 뭐냐? 야 참, 너 피곤하게 산다, 정말. 피곤하게 산다는 말은, 해도 해도 쓸데없는 짓, 소용없는 짓을 매일같이 반복한다는 말이에요. 마치 뭐처럼? 강물처럼. 뭐처럼? 바람처럼. 뭐처럼? 해처럼 달처럼. 모든 만물이 움직이는 것이 그렇게 피곤하다는 말이죠.
그리고 9절에 보면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여기 9절에서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은 이 피곤함은 뭐로 보충이 되고 뭐로 쇄신이 되고 개선이 된다는 말입니까? 뭐만 나타나면? 새로움만 나타나면 된다. 새로움만.
그런데 지금 솔로몬은 무엇이 지혜냐 하면 이 세상 만물을 볼 때에 새로움이 없다는 거예요. 그걸 달리 이야기하면 ‘새로움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솔로몬이 은근히 지금 하고 있는 거예요. “너 피곤하지? 나도 피곤해.” “아이고, 임금님 정도는 안 피곤하죠.” 그러면 솔로몬이, 이 전도서에도 나와요. “너 나 알아? 내가 공부 많이 한 거 너 알지? 내가 책 많이 읽은 거 알지? 글 많이 쓴 거 알지? 내가 과수 재배하고 천하의 내가 생물학에 대해서 모르는 거 없는 거 너 알지?
그런데 내가 늙어죽는 거하고 너 늙어죽는 거하고 똑같아. 무식한 너희들이나 똑똑한 나나 인간은 태어나면 죽는다는 것은 똑같아.” 그걸 다른 말로 하면 그냥 “똑같아.” 이 만물도 똑같아. 만물도 피곤하지만 나도 피곤하고 너도 피곤하고 피곤한 점은 모든 것이 다 똑같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는 뭐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everybody 모든 것이 헛된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새로운 것이 이 땅에는 없다는 거예요. 새로운 것이 없다. 현재 눈에 보이는 것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도서 마지막을 그렇게 끝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마지막은, “하나님의 계명이 있는데 이 계명이 언젠가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가져다주고 성취시켜줄 거야. 그전에 새로운 것이 오기 전에, 우리는 원 없이 헛되고 원 없이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된 인생을 사는 것이 마땅하다.” 이것이 내가 아는 지혜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솔로몬의 지혜는 무엇과 무엇의 차이냐 하면 새로움과 옛것의 차이. 이 세대와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세대의 차이. 그래서 계명을 지킨다는 말은 뭐냐 하면 옛것은 옛것의 헌 마음으로 인정하고 인지하고 알고 있고 거기에 근거해서 새로움을 기다리는 그 마음자세가 바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마음자세인 겁니다.
이 청년들아.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이 네 욕망을 달성할 수는 없어. 전도서에 보면 그 내용이 바로 나와 있죠. 7장 2절에,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념하라” 언젠가는 우리가 이 만물처럼 제거되고 내가 없어진다는 것을 기억하라.
왜? 새로운 것이 있으니까. 우리는 은퇴해야죠. 그 새로움이 누구겠어요? 말씀의 완성이 누구겠습니까? 예수님. 그래서 솔로몬은 다윗 언약을 받은 언약 속에 사는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오늘도 이 언약을 아는 사람은 이 지혜가 언약 안에 포함되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