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강의

지옥하나님42-악령의 몸

아빠와 함께 2024. 3. 18. 18:29

[24 대구강의] 지옥의 하나님 42 - 악령의 몸

24,03,04 강의 : 이근호, 정리 : 구득영

오늘은 교재 194페이지부터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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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들이 창안한 구원론의 문제점은, 구원론을 끄집어내는 지점이 성경적인 기독론이나 '주' 개념에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즉 뭔가 '있음'에서 '있음'을 끄집어내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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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 이전에 어떻게 예수님이 주심이 되셨는가?

인간들의 구원론은 '주님'에게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있음'에서 출발을 하는데, 즉 "내가 여기에 있으니 구원해주세요" 라고 한다는 겁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인지 모르는데, 사람들은 구원에 대해서 어떻게 나온다는 겁니까?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과는 달리, "내가 여기에 있다" 라는 것에서 구원을 끄집어낸다는 말이죠.

반면에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주님인데, 즉 주님이 구원을 해주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언제인고 하니, '창세 전' 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내가 여기 있다" 라는 것은 창세 전의 일이 전혀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지요? 그것은 분명히 자기가 태어난 이후, 즉 창세 이후의 일인데, 그러니 그게 서로 맞지가 않다는 말이죠.

그러니 "내가 태어난 이후에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라는 것은 인간들이 말하는 기독교라는 종교이고, 성경이 말하는 구원론은 "창세 이전에 어떻게 예수님이 주심이 되셨는가?"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내가 여기에 있다" 라는 것이 주님의 구원에 대해서 협조를 하겠습니까? 협조는 고사하고 방해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주님의 활동이 곧 구원이다" 라는 것인데, 이것을 여기 교재에 보면, "약속의 실행장이 이 지상에서는 항상 '없음'에서 '없음'의 형식으로 드러나는 범주이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창세 전의 활동이 드디어 이 지상으로 내려온다는 겁니다.

* '없음' → '있음' → '없음' !!

그것이 곧 예수님의 기도인데, 즉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그러니 그게 어떻게 이루어진다는 겁니까? 없음에서 없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즉 없음에서 잠시 있음을 거쳐서 다시 없음으로 간다는 겁니다.

(마 6: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게 여러분이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겠는데, 여기에 정확한 예가 있는데 말이죠.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다니다가 예수님을 그만 놓치게 된다는 겁니다. 물론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인데, 예수님을 구원자라고 하면서 따라다니다가 결국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질 때, 그만 헤어지고 만다는 것이죠.

* 예수님과 최후 !!

여기의 이 '없음' 이라는 것이 어려우면, 이게 마치 무엇과도 같은고 하니, 왜 허연 연기를 마구 쏟아내는 방역차가 있지요?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연기를 쏟아내는데, 그게 '최후' 라는 연기라는 겁니다. 즉 계속해서 "이 세상은 마지막이다. 마지막이다"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의 그 마지막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나를 어떻게 구원할 겁니까? 어떻게 구원할 겁니까?" 라고 하면서 계속해서 따라다닌다는 말이죠. 여기서 '최후' 라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이 세상이 이렇게 있다고 하면, 베드로도 여기에 있고 우리도 여기에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최후' 라는 것은, "이 세상이 다 사라지고 나타나는 그 무엇", 그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이 세상이 다 사라지고 나타나는 세상, 그것이 바로 최후라는 겁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라고 한다는 말이죠.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셨기 때문에 그 존재 자체가 항상 최후를 이야기하는데, 그래서 인간세계와는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인간세계라는 것은 자기가 여기에 계속해서 있어야 하는데, 자기가 없어지면 안 된다는 말이죠. 인간은 자기가 사라지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우리 인간의 "내가 여기 있다" 라는 그 있음을 무엇으로 바꾸어 버리는고 하니까, 그것을 없음으로, 즉 최후로 바꾸어 버리신다는 말이죠. 즉 "현재 너의 모습이 바로 마지막 모습이다"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즉 있음을 없음으로 바꾸어버린다는 것이죠.

* 십자가 사건, 과연 누구의 모습인가?

그래서 예수님이 베드로와 헤어지고 난 다음에 하신 일이 무엇인고 하니,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다녔는데, 그런데 마지막에 헤어지게 될 때, 그게 발생한 것이 곧 십자가 사건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그런데 그 모습이 우리의 최후입니까? 예수님의 최후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누구와 대화를 하시죠? 밑에 있는 사람들과 하다가 결국 마지막에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대화를 하신다는 말이죠. 그때 뭐라고 하십니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아버지로부터 버림받는 그 모습이 누구의 모습인고 하니, 베드로를 비롯한 12제자들,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말이죠.

(마 27:46) 제 구 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 인간은 악령과 더불어 !!

인간은 그 자체가 최후였다는 것인데, 즉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결별된 상태였음을, 그것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즉 "모든 것이 십자가와 관련해서 최후의 모습으로 발견된 것이 너의 모습이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다는 말이죠.

그러니 인간들은 그동안 교회에 다니고 기독교가 어떻고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고 하니까, 혼자 산 것이 아니고 악령과 더불어서 살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고 하니, 대표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이것이 베드로가 한 이야기가 아닌데, 그러면 누구입니까?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라고 하시면서,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미리 베드로에게 현재 상황을 이야기해주셨다는 말이죠.

(마 16:15)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

그런데 22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이 아버지에게로 간다고 하니 베드로가 뭐라고 합니까? "주여, 그리 마옵소서"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보고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라고 하신다는 말이죠. 베드로를 보고 사단이라고 하는데, 그러니 베드로는 악령과 더불어 살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인간들이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이죠.

(마 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마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여기서 교재 195페이지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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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지나 신문을 돋보기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하나가 검은 점일 뿐이다. 하지만 그 점이 모여서 문자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성경말씀은 하나하나가 점들이다. 즉 인간의 모든 행동양식에서 드러나는 그 죄들을 들추어내는 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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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들은 끝났어 !!

그러니 점들이 모여서 문자가 되는데, 그 문자가 무엇인고 하니, "인간은 악령과 동행하고 있다" 라는 것을 말해주는데, 그게 바로 성경책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실 때는, 그 안에 "너희들은 최후다. 끝났어. 버림을 받았어" 라고 하는 것이 들어있는데, 그게 한 구절 한 구절 모여서 성경책이 되었다는 말이죠.

그러니 성경의 내용은 쉬운데, 인간구원이 아니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책이 아니고, "인간을 버려야 구원이 된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즉 자기 구원을 포기해야 구원이 된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인간은 버림의 대상이지 구원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지금 제가 굉장히 쉽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아닌가요? (ㅋㅋ) 인간은 구원의 대상이 아니고 버림의 대상이라는 말이죠. 그러면 구원은 어떻게 해서 되는고 하니, 인간에게 버림을 받은 하나님이 다시 인간을 데리 오면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그러니 "주님, 나를 구원해주세요" 라는 것은 없다는 말이죠.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고 하니, 십자가를 통해서 알 수 있다는 겁니다. 그 십자가가 예수님의 최후인 동시에 우리의 최후인데, 혹은 예수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이제 본격적으로 나의 일을 시작해졸까?" 라고 하는, 그게 십자가라는 겁니다.

* 예수님의 '함께 있음' !!

그 십자가의 영이 곧 성령인데,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가시면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보고 뭐라고 하십니까? 마태복음의 제일 마지막인 28장 20절에 보면,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라고 하신다는 말이죠.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그렇게 함께 있을 것이라고 하니, 사도행전 1장을 보면 제자들이 오해를 해서 뭐라고 합니까? 전에처럼 그렇게 다같이 동거동락을 하는 줄로 여기고 있다는 겁니다. 즉 "내가 여기에 있고, 예수님은 여기에 있고, 그러니 함께 있다" 라고, 그렇게 생각을 한다는 말이죠.

하지만 예수님의 함께 있음은 예수님의 솔직한 마음으로 함께 있는 것인데, 즉 베드로를 보고 "너는 잘렸어" 라고 하는 식으로 함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오늘날 성도와 함께 있다고 하는 것은, 베드로와 함께 있었던 그 방식을 반복하고 있다는 말이죠.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있었는데, 그런데 그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역사가 끝남으로서 그들은 망하고 말았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함께 있음이라는 겁니다. 즉 이스라엘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죠. 즉 이스라엘이 구원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렇게 이스라엘이 구원이 대상이 아님을 드러내시고, 그 다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흩어진 이스라엘을 모으고 이방인들을 모아서, 새로운 이스라엘을 만드신다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함께 있음인데, 오늘날 그렇게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겁니다. 즉 "너 말고 나",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 악령의 알박기 !!

이것을 더 쉽게 이야기를 해보면, 인간은 평소에 악령과 함께 있는데, 즉 마귀와 함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인간이 원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마귀가 붙잡고 있어서 그렇다는 말이죠. 악령, 혹은 죄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을 어제 낮 시간에 '악령의 알박기' 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우리 속에 쐐기를 박아놓았는데, 그러니 도저히 뺄 수가 없다는 말이죠. 그렇게 우리는 악마와 함께 동행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게 베드로인데, 그래서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십니까? 그것을 마태복음 16장 23에 보면,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베드로야, 지금 네가 생각하는 나는 내가 아니야. 너는 지금 악령과 더불어서 있기 때문에 나를 오해하고 있다" 라는 것인데, 지금 베드로가 예수님의 일을 방해하고 있다는 말이죠.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가면 자기가 구원이 되는 줄로 알고 있지만, 그런데 그것이 곧 악령의 일이었다는 겁니다.

베드로는 자꾸만 예수님을 소유하려고 하는데, 왜냐하면 예수님 덕분에 자기의 있음을 더욱 더 있음으로, 즉 구원을 받고자 했다는 말이죠. 하지만 그것은 마귀의 짓인데,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베드로와 결별하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아버지와도 결별을 하셨는데, 즉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하시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말이죠.

* 하나님은 없다. 성경의 모든 내용은 거짓이다 !!

그렇다면 그 돌아가신 예수님은 어떻게 해서 다시 살아나셨습니까? 불신자들에게 이것을 물어보면, 즉 "예수님은 죽었는데 어떻게 살아났습니까?" 라고 하면, 그들은 뭐라고 하겠습니까? 모든 인간은 악령과 함께 있기 때문에, 불신자들의 답변은 "하나님은 없다. 그리고 성경의 모든 내용은 거짓이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런 불신자들의 답변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이런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나쁩니까? 나쁘지 않습니까? 기분이 좋게 들린다구요? (ㅋㅋ)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이게 자기 자존심과 관련이 되어있기 때문에, 굉장히 기분 나쁘게 들린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만약에 재산이 한 50억 정도가 되고, 한 달 수입이 2천만원 정도 되고, 그리고 아이들은 엄청 공부를 잘한다고 하면, 또한 손자들까지도 말이죠. 그리고 자기 몸도 아주 건강하다는 겁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데, 예를 들어서 그렇다는 말이죠(ㅋㅋ).

* 인간의 후원자, 마귀 !!

그런데 어떤 사람이 "하나님은 없고, 그리고 성경의 모든 내용은 조작된 것이다" 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 자기가 하는 일이 잘 풀리고 있는 가운데서 누군가가 그런 이야기를 해도, "나만 행복하면 그만이지" 라고 하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겁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 안에 악령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죠. 우리에게 있어서는 자기의 건강이나 자기의 재산, 그리고 자기 자식이 중요한 것이지,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성경말씀이 어떻다" 라고 하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라는 겁니다. 그렇지요?

예수님께서 "나는 고난을 받고 죽어야한다" 라고 하니, 베드로가 한다는 말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지켜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는데, 그것은 베드로 안에 누가 있다는 겁니까? 악령이 함께 있어서 그렇다는 말이죠. 악령, 즉 마귀가 하는 일이 무엇인고 하니, 우리를 후원하고 잘 되도록 도와준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가 하나님이라는 말이죠.

* 가인은 왜 화가 났는가?

가인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받지 않았는데, 그럴 수도 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가인은 "나는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고, 혹시 있다고 하면 나의 나의 도리를 다 했으니, 내가 하는 농사나 잘 되게 해주세요" 라고 나왔다는 말이죠. 그러니 가인에게는 하나님이 있고 없고,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동생이 제사를 드리니, 그만 하나님께서 그 동생의 제물에는 응답을 해주셨다는 말이죠. 그러자 가인은 그만 미치고 말았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 다 없어야 하는데, 그런데 왜 자기에게는 없는 하나님으로 오고, 동생에게는 마치 있는 하나님처럼, 그렇게 느끼게 해주느냐는 겁니다.

그렇다면 가인은 동생을 통해서 하나님이 있다고 믿었습니까? 없다고 믿었습니까? 무슨 말인고 하니, 응답을 받지 못한 형이 보기에, 그런 동생의 제사를 통해서 형은 하나님이 있다고 여겼는지, 아니면 없다고 여겼는지, 지금 제가 그 질문을 하고 있다는 말이죠.

하나님은 계속해서 없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래야 자기가 정당해진다는 겁니다. 그러면 없애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동생을 죽이면 된다는 말이죠. 그렇게 동생을 죽이면, 자기 주장이 옳다는 쪽으로,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해나갈 수가 있다는 겁니다. 즉 자기 세계가 계속해서 유지가 된다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가인에게 악이 침범해서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 감사하는 인간 !!

그렇게 인간세계는 인간이 최후이기 때문에, 인간세계에는 하나님이 있으면 절대로 안 되고, 성경의 모든 말씀은 이미 거짓말로 확정된 세계, 그게 바로 인간세계라는 말이죠. 그러니까 인간이 하나님을 욕보이고 예수님을 욕보이려는 것이 아니고, 이게 그런 것이 아니고, 감사의 문제라는 겁니다.

같은 인간인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물은 받으셨는고 하니, 아벨은 제사를 드리고 나서 형에게 맞아죽었다는 말이죠. 하지만 아벨은 신이 났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세계에는 하나님이 없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인간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마귀의 세상이라는 겁니다.

* 믿음이란?

그러니 하나님의 응답은 없어야 하는데, 그런데 자기에게 그 하나님이 나타나셨다는 말이죠. 그래서 그 하나만으로도 이제 사나 죽으나 아무런 여한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벨은 거기에 대해서 감사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을 히브리서에서 '믿음' 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어제 설교시간에 "바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라고 했는데, 우리 인간에게 있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겁니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인간세계에서는 그 누구에게 물어봐도 "하나님은 없다. 그리고 성경은 구라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내가 존재하고 행복해야한다" 라는 것인데, 지금 자기가 건강하고 잘먹고 잘살아야 한다는 말이죠. 다른 사람들에게 "얼굴이 참 좋네요. 자식들도 잘 되고, 참 행복하겠습니다" 라는 소리를 들어야, 그래서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라고 하는, 그게 인간들의 골인지점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거기에 흠집이 나서면 분노가 생기고, 상대방의 멱살을 잡게 되는데, 그러면 누구의 멱살을 잡겠습니까? "하나님, 당신은 살아있다면서? 내가 그렇게 새벽제단을 열심히 쌓았는데, 이건 너무 하지 않습니까?" 라고 나온다는 말이죠. 그게 바로 인간들이라는 겁니다.

요즘 가장 분노하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의사들인데, 난리라는 말이죠. 그러면 그 다음은 누구일까요? 의사 가족들인데, "의사가 더 필요하다면 2,000명이 아닌 20명 정도만 더 뽑으면 되잖아?" 라고 한다는 겁니다. 의사들이 더 많이 생기면 자기 자식은 잘리는 수가 있다는 것이죠. 의사 한 명을 만들기 위해서는 3억 정도가 든다고 하는데, 이제는 그게 아파트 한 채 값도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돈 문제가 관련이 되어있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돈이 있어야 자기가 행복한데,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는 없다는 겁니다. 하나님, 그리고 성경말씀, 그런 것은 관심도 없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자기 속에 들어있는 마귀가 오로지 "너만 잘 되면 돼" 라고 하면서 부추기고 있어서 그렇다는 겁니다.

* 나는 악령의 대변인이다 !!

그런 입장에서 우리는 인간은 무엇인고 하니, "나는 악령의 대변인이다"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없고, 마귀가 시키는 대로 한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악령과 한 통속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하나님이 있다" 라고 하면, "하나님이 있던 없던 나와는 상관이 없어" 라고 하고, "성경에 오류가 있다" 라고 해도, "나는 신학자도 아닌데, 그런 것은 나에게 묻지 마라" 라고 하면서,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겁니다.

* 십자가는 나의 최후다 !!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니 인간들이 어떻게 나옵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을 소유하려고 했다는 말이죠. 왜 그렇게 합니까? 자기를 구원해달라는 것인데, 그래서 예수님은 "이제 끝이다" 라고 하시면서 베드로와 작별을 고했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라는 말이죠.

그래서 "십자가는 나의 최후다" 라고 할 수 있는데, 즉 십자가는 인간의 최후, 혹은 인간의 종말이고 그 모습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에서 사도바울이 뭐라고 합니까?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라고 한다는 말이죠.

(갈 3: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여기서 교재 194페이지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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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균형이나 조화니 하는 소리는 자기 자신의 정신구조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무지의 소치이다. 그저 선악구조 안에서 법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나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는 사고방식이 바로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 유대인들의 발상이었고, 주님을 만나기 이전까지의 사도바울의 신앙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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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 2: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갈 2: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갈 2: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인간은 이미 종말이고 망했는데, 그런데 뭐라고 합니까? 여기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 보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라고 한다는 겁니다.

* 의(義)'가 없기 때문에 !!

그러면 이것을 서로 연관을 시키면 어떻게 됩니까? 사람이 최후를 맞이하는, 사람이 죽는 이유, 혹은 사람이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는 이유가 무엇이 없기 때문이라는 겁니까? '의(義)'가 없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사람이 살아도 사는 게 아니고 반드시 망하는 이유는, 의가 없어서 그렇다는 말이죠.

그런데 인간은 선악을 알기 때문에, 자기를 의롭게 하려고 노력을 합니까? 하지 않습니까? 노력을 한다는 겁니다. 욕을 듣고 싶은 인간은 없는데, 자기가 의롭게 되기를 원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러한 인간의 모습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니 어떻게 됩니까?

의롭게 되기 위해서 아무리 노력을 하더라도, 율법을 가져대니 그만 의가 아니고 죄가 되고 만다는 겁니다. 율법이 오기 전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못했는데,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규칙과 원칙을 가져다대니까,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의는 하나도 없고 모조리 죄로 등장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율법에는 법칙이 있는데, 죄로 등장하면 반드시 저주를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인간의 구조인데, 그러니 그동안 우리 속에 있는 악령이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죄라는 것을 감추고, 나름 의롭다고 자꾸만 부추겼다는 말이죠. 그게 자기 정당성이라는 겁니다.

* 혼자서 중얼중얼 아주머니, 왜?

제가 오늘 아침 6시경에 운동을 하고 오는데,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혼자서 중얼중얼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말이죠. 미쳤는데, 대상도 없고 컴컴한데 계속해서 혼자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 치료방법은 어떠하겠느냐는 말이죠.

저는 그것을 보면서 다음의 3가지가 생각났는데, "(1) 두뇌의 생리적인 해결, (2) 정신분석학적 해결, (3) 복음적 해결, 혹은 성경적 해결" 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을 가끔 보게 되는데, 자기가 말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는 말이죠. 그래서 계속해서 터져 나온다는 겁니다.

* (1) 두뇌의 생리적인 해결책 !!

지금부터 이 3가지를 설명해드리겠는데, 먼저 '두뇌의 생리적인 해결책' 이라는 말이죠. 인간의 두뇌가 이렇게 동그랗게 생겼다고 하면, 여기서 언어를 담당하는 영역이 있는데, 그것을 베로니카 영역, 루카 영역이라고 하는데, 그런 것이 있다는 겁니다. 바로 여기에 시각과 촉각이 오게 되면, 여기 한 쪽은 언어를 다루고, 다른 쪽은 단어를 토해낸다는 말이죠.

우리 머리의 앞쪽에 툭 튀어나온 부분을 전두엽이라고 하는데, 그런데 그 아주머니의 경우에는 바로 이 전달체제가 고장났다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그 아주머니가 들었던 언어라는 것은, 여기 머리 아래 부분, 즉 목의 위쪽에 '해마(Hippocampus)' 라고, 시상변형계가 있다는 말이죠.

용어자체가 어려워서 설명하기가 힘드는데, 여기서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고 하니, 하나의 언어를 위해서 반드시 해마, 즉 기억장치를 경유해야 언어가 감각의 언어로서 조립이 된다는 겁니다. 기억이란 것은 감각이 온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고, 반드시 앞선 기억이 있어주어야 한다는 것이죠.

마치 옷걸이가 있어주어야 옷을 걸고, 그리고 거기에 또 걸고 하듯이 그렇게 앞선 기억이 있어주어야, 그것을 토대로 해서 후차적 감각들이 기억이 되어서 계속 진행이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기억이 되면, 그게 언어로서 다듬어지고 만들어지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의 언어체계라는 말이죠.

* 인간의 언어체계 !!

지금 제가 아주머니가 혼자서 계속해서 중얼중얼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그런데 동물의 경우에는 감각이 들어오면 그것이 운동으로 바로 간다는 겁니다. 그런데 인간은 중간과정이 하나 더 있어서, 기억을 하면서 운동이 된다는 말이죠. 즉 인간은 기억을 하고, 그 기억에서 언어를 만들어낸다는 것이죠.

그러니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감각을 통해서, 그리고 언어를 통해서 운동으로 나아가는데, 이 운동은 미래적이라는 겁니다. 감각은 과거적이고, 언어는 현재적이란 말이죠. 그렇게 만들어지는데, 그런데 그 방식으로 인해서, 즉 언어로 인해서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차단이 되어서, 그 내부에 자발적인 세계가 따로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언어로만 가득한 자발적 세계가 말이죠.

무슨 말인고 하니, 물론 자연은 자연인데 그런데 그 자연이 그대로 오는 것은 식물이나 동물의 경우이고, 인간의 경우에는 자연이 올 때 어떻게 되는고 하니, 인간의 자아에 의한 언어에 의해서, 자아를 구성하는 그 자아 위주로 자연이 재해석이 되어서, 자기 나름대로의 소박한 내부세계가 따로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 인간과 대화하는 악마 !!

그게 바로 인간인데, 아까 인간은 누구와 함께 산다고 했지요? 악마와 함께 사는데, 그런데 이 악마는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는 말이죠. 즉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라는 것을 잘 안다는 겁니다. 그런데 악마는 그것을 무엇으로 바꾸었습니까? "선악과를 따먹으면 네가 신이 되리라" 라고 했다는 말이죠. 그렇지요? 죽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신이 된다고 했다는 것이죠.

그 내용이 틀리고 맞고 하는 것은 나중의 문제이고, 악마가 뱀을 통해서 인간과 서로 대화를 한다는 겁니다. 즉 언어, 말이 통한다는 것인데,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인간의 내부는 말의 세계이고, 그렇게 됨으로서 인간은 악마에 의해서 쇠뇌를 당하게 된다는 말이죠.

* 일화기억(Episodic Memory), 작업기억(Working memory) !!

그렇게 해서 언어가 만들어지는데, 인간의 뇌를 보면 이쪽은 감각이고 반대쪽은 운동인데, 여기에는 말하기와 몸짓, 그리고 걷기와 같은 것들이 다 포함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단어가 전달되는 과정에 있어서, 여기 감각부분에서 언어가 만들어지는데, 그런데 이게 두뇌전체에 이미 다 퍼져있다는 것이죠. 이미 앞서 있던 기존의 기억이 말이죠.

무슨 말인고 하니, 그 이전의 기억이 어느 한 구석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이것이 서로 연계가 되어서 퍼져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충격적 사건이 일어나면, 이것을 영어로 '에피소드(Episode)' 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말로는 '일화기억(Episodic Memory)' 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정상적인 경우에는 그 일화기억에서 자기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따져서 '작업기억(Working memory)' 이란 것으로 바꾸어 해마에 저장한다는 말이죠.

그렇게 해서 그 다음의 작업이 들어오면 존대말을 할지 아니면 욕을 할지, 그것을 골라서 사용을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기존의 언어체계인데, 그게 우리 인간의 두뇌에 다 퍼져있다는 것이죠. 이것을 상징적 환경이라고 하는데, 즉 자연과는 다른 자기만의 세계라는 겁니다.

* 인간의 언어체계와 상견례 !!

이것을 잘 경험할 때가 상견례를 할 때인데, 그때는 아내가 남편에게 신신당부를 하는데, "당신, 제발 평소에 하던 대로 하지마소. 성질 좀 죽이고, 잘 알겠지요?" 라고 말이죠. 두뇌에 있는 언어체계대로, 즉 감각이 시키는 대로 운동을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칫 잘못하면 혼인이 그만 깨지는 수가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상견례 장소에 갈 때까지 입을 다물지를 않는데, 그러면 남편은 "제발 잔소리 좀 하지 마라. 바깥에 나와서까지 이게 무슨 짓이야"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래도 아내는 멈추지를 않는데, "말은 좀 천천히 하고, 그리고 발은 털지 말고, 제발 좀 얌전하게 앉아있어요" 라고 한다는 말이죠(ㅋㅋ).

그럴 때 정상인이라고 하면 당연히 행동을 조심하는데, 그렇게 해서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머리의 뇌혈관이 막힌다든지 하면, 그러면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서 신경의 전달이 원활하게 되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래서 치매도 오고 하는데,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방금 들었던 잔소리는 모두 다 잊어버린다는 겁니다.

* 그런데 알콜이 들어가는 순간 !!

상견레를 할 때는 술을 마시면 안 되는데, 그런데 분위기도 무르익고 해서 사돈이 될 사람이 "그만 한 잔 하소" 라고 하게 되면, 그 순간 어떻게 됩니까? 알콜이 들어가는 순간, 상견례라는 그 사건 앞에서 일화기억을 작업기억으로 원활하게 편집을 해주어야 하는데, 그런데 평소의 성질이 그만 술로 인해서 그대로 밖으로 다 나온다는 말이죠(ㅋㅋ).

그게 사건인데, 즉 사건의 충격을 받게 되면 전체에 있던 자기만의 세계, 그것을 어려운 말로 '상징계' 라고 하는데, 그 세계가 그만 균형이 맞지 않아서 대혼란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네가 나에게 그 짓을 했지? 나에게 그 짓을 했지?" 라고 하면서 계속해서 중얼중얼한다는 것이죠. 자기 혼자 있으면서 말이죠.

그래서 버스 정류장에 자기 혼자 있으면서 "네가 나에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안 돼, 안 돼!" 라고 한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선 그런 소리를 하지 않는데, 그러면 미쳤다는 소리를 듣기 때문에, 그런 소리는 듣기 싫다는 말이죠. 그래서 혼자 있으면서 그런 소리를 하는데, 왜냐하면 그렇게 말을 하지 않으면 자기가 폭발할 것만 같다는 겁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 아주머니가 40대 중반쯤으로 보였는데, 그런데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나이가 60이 되고 70이 되면 어떻게 됩니까? 두뇌의 신경전달 물질이 원활하게 움직이지 않아서, 그것이 불쑥 불쑥 자주 튀어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면 혼자서 중얼중얼한다는 말이죠.

* 정신병원은, 타인과의 격리 !!

지금까지 한 것이 두뇌에 대한 생리적인 설명인데, 여기에 어떻게 하나님이 끼어들 자리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는데, 그러니 굳이 성경 이야기가 필요치 않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것의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정신병원에 가야하는데, 그런데 정신병원은 자기를 치료하는 곳이 아니고, 그곳은 타인과 격리라는 말이죠.

자기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데, 그런데 누군가가 신호를 주어서, "너는 그렇게 하면 안 돼"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나옵니까? 자기 세계가 폭발하는 것이 아플까요? 아니면 주먹으로 잔소리를 하는 상대방을 치는 것이 아플까요? 어느 것이 편할까요? 때리는 것이 편한데, 그래서 폭력적이 된다는 말이죠.

두뇌에서의 운동신경은 주로 억제와 통제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그게 마비가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통제기능을 마비시켜버리면, 그러면 동물적인 충동기능을 가지고 있는 변형계에서 어떻게 나옵니까? 이성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는 신피질에서 통제와 절제를 해주어야 하는데, 그게 끊어지게 되면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폭력적인 되는데, 그래서 차마 상대방을 때리지는 못하고 테이블을 내리치든지 컵을 던지게 된다는 말이죠. 그런데 컵이 아니고 더 큰 수박을 던진다면,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나의 분노가 이 정도야" 라는 것인데, 즉 분노가 더욱 크다는 표현이라는 겁니다.

이것은 치료가 되는 게 아니고 격리인데, 그렇게 격리가 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을 이 세상에서는 치료가 된다고 여기는데, 왜냐하면 격리가 되어서 외부감각과는 차단이 되니까 이제는 차분해진다는 말이죠. 즉 내부적으로 가라앉을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가라앉게 되면, "이제는 나았구나" 라고 하면서 병원에서 나온다는 말이죠. 물론 그것을 빨리 하기 위해서 신경전달물질에 작용하는 약물을 주사기로 주입하기도 하는데,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치료가 아니고 억제인데, 즉 잠을 재운다는 겁니다.

* 그러나 율법의 행위로는 'NO' !!

아무튼 인간은 감각에 의해서 운동, 그리고 기억으로 가는데, 이 운동을 더 세분화를 시키면 행위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이것이 인간이 자연세계에서 보여줄 수 있는 전부인데, 그런데 성경은 뭐라고 합니까?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라고 한다는 겁니다. 행위, 즉 율법의 행위로는 안 된다는 말이죠.

물론 돈도 잘 벌고 잘 먹고 잘 살아갈 수는 있는데, 그런데 의롭게는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베드로나 제자들도 마찬가지인데,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인간으로 하여금 막다른 모습을 보여주도록 하는데, 십자가에서 말이죠. 그러면 작별을 고하게 된다는 겁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의 길로 가고, 예수님은 예수님의 길로 가신다는 것이죠.

그런데 불신자가 아닌 신자의 경우에는,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것은 누구의 힘으로 한다는 겁니까? 로마서 8장 11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라고 하는데, 즉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서 우리가 의롭다함을 얻는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방금 제가 로마서 8장 말씀과 로마서 4장 말씀을 합쳐서 이야기를 했는데, 그러니 사람이 죽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죄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죠. 그런데 기존의 두뇌의 생리적인 설명에서는 이게 어떻습니까? 이 문제가 전혀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롬 4:23)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롬 4: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롬 4: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 (2) 정신분석학적 해결책 !!

이제 두 번째는 정신분석적인 해결책인데, 이것이 첫 번째와 비슷한 것 같지만 좀 다르다는 말이죠. 그들은 뭐라고 하는고 하니까, "인간이 비정상적인 것은 어릴 때의 타인의 영향이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태어나자마자 타인은 누구인고 하니, 부모라는 말이죠.

그러니 "엄마와 아빠의 관계가 정상적일 때, 자식은 그것을 그대로 인수인계를 받아서 자기 세계를 만든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물론 세상에서 말하는 정상적인 관계인데 말이죠. 그래서 아빠가 술을 마시고 엄마를 때리면 어떻게 됩니까? 인간은 태어나서 처음에는 엄마와 아빠를 자기와 동일시한다는 겁니다.

과학에서 말하기를, 인간은 미숙아로 태어나는데, 그래서 20살 때까지 두뇌가 자란다는 말이죠. 다른 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만삭의 상태인데, 그런데 인간은 무려 20살까지 미숙아의 상태로 보낸다는 겁니다. 그러니 인큐베이터 속에서 20년을 보낸다고 여기면 되는데, 물론 요즘은 40년을 가기도 하는데 말이죠(ㅋㅋ).

그렇다면 미숙아의 세계는 누구의 세계인고 하니, 자기를 둘러싼 타인의 환경, 그 세계 속에 자기가 놓여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불합리한 것이 있으면, 그게 자기의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된다는 것이죠. 정신적으로 말이죠. 즉 자기 기억은 없고 타인의 기억이 자기를 장악하고 있다는 겁니다.

앞에서 두뇌의 생리적인 측면을 설명하면서 뭐라고 했습니까? 기억은 옷걸이가 우선이라는 겁니다. 즉 옷걸이가 먼저 있고, 거기에 옷을 걸듯이 그렇게 기억이 달라붙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무 것도 없는데, 감각이 오고 언어가 와서 단어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 아줌마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면 !!

그러니 기존의 기억이 이미 삐뚤어진 운동장이라고 하면, 아무리 새로운 것이 와도 계속해서 삐틀어진 사고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정신분석학적인 해석인데, 그러니까 중얼중얼하는 그 아줌마는 그게 언제인지는 몰라도, 어떤 시점에서부터 정신세계가 타인에 의해서 망가졌다고 보면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정신분석학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치료하는고 하니, 아줌마의 이야기를 다 들어준다는 겁니다. 물론 별 내용도 없는데 모두 다 들어준다는 말이죠. 그러면 아줌마는 하고 싶은 말을 통해서 자기를 폭발시키는데, 즉 정신적인 파편들을 마치 쓰레기를 버리듯이 쏟아낸다는 겁니다. 그렇게 계속 쏟아내다가 바닥에 다다르면 더 이상 분노가 폭발하지 않는데, 그러면 치료가 되었다고 한다는 말이죠.

* 엄마와 아빠의 대체물을 찾음으로서 !!

그러면 일반인들은 어떻게 되는고 하니, 엄마와 아빠의 환경 속에서 자라다가, 만약에 아빠가 상처를 주었다고 한다면 기존의 아빠를 대체한 인자한 아빠를 찾게 되고, 그리고 엄마가 상처를 주었다고 한다면 엄마를 대체한 엄마의 대체물을 찾으면 치료가 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게 결핍이 되어있었으니 말이죠.

* 인간의 세계는 언어의 세계 !!

그러니 나이가 많던 적던 간에 결혼을 할 때는 자기 상처를 보다듬어줄 수 있는, 그런 결핍을 메울 수 있는 상대를 원한다는 겁니다. 어떤 방법으로 말인가요? 인간의 세계는 짐승의 세계와는 달라서, 언어의 세계라는 말이죠. 그래서 말을 하는데, 이 말이라는 것은 한 마디를 하더라도 모두 다 생각이 들어있다는 겁니다.

말을 하는 그 단어만이 그런 게 아니고, 색깔, 뉘앙스, 톤, 그런 것들이 어울려서 무슨 기능을 하는고 하니, 처음의 나빴던 기억은 사라지고, 그것이 좋았던 기억으로 덮어질 수 있는, 그런 언어의 상대에 대해서 사람들은 자기와 한 몸이 되고자 한다는 말이죠. 그게 정신분석학이고 상담학이라는 겁니다.

* 인간은 누구나 다 스토커 !!

이것은 나이의 문제가 아닌데, 아까 40대 중반의 아줌마라고 했는데, 70대가 지난 할머니라고 해도, 그렇게 사람은 죽기 직전까지 자기를 사랑해주고 보다듬어주고 무조건 격려해주는 사람을 원한다는 것이죠. 자기를 높여주는 사람을 말이죠. 그게 기성세대에서 되지 않으면 자식들이나 손자에게서 찾기도 하는데, 그래서 "나는 며느리를 생각할 때 딸같이 생각한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것은 달리 말하자면 스토커가 되겠다는 것인데, 그렇게 스토킹을 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자기에게 결함이 있기 때문인데, 그래서 누군가가 자기를 도와주겠다고 하면 거기에 매달리고 붙들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누구든지 이기주의인데, 즉 "외부의 타인은 철저히 나를 위해서 존재해야한다" 라는 것인데, 아주 철저한 이기주의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것을 들키지 않고 잘 감추고 있으면 되는데, 그런데 술이 한 잔 들어가면 뒤집어지고 난리가 난다는 말이죠(ㅋㅋ).

* 너는 이미 죽은 자야 !!

그러면 이런 정신분석학적인 해결에 하나님이 들어갈 자리가 있습니까? 그런 자리를 없다는 말이죠. 물론 성경말씀도 들어갈 자리가 없는데, 그러니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경우는 모두 다 자신의 최후를 모르고, 현재 있는 자기가 좀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인데, 오로지 그 정신 하나로 교회에 나온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경을 공부하고 있다는 말이죠.

* 치료가 아닌, 건져주시는 주님 !!

어제 에스겔서 37장을 설교하면서 뭐라고 했는고 하니까, "예수님은 설교를 하시면서 상대방을 죽은 존재로 본다" 라고 했다는 겁니다. 사도바울도 마찬가지인데, 뼈들을 모아놓고 설교를 한다는 말이죠. 즉 말씀을 전해놓고, "살 자는 살고, 죽을 자는 그대로 죽어있어라" 라는 것인데,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치료를 하시는 것이 아니고, 건져주신다는 겁니다.

성령을 통해서 건지시는데, 그 성령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가지고 건지신다는 말이죠. 그 목표는 죄인을 의인으로 바꾸는 것인데, 그런데 인간은 누구와 동거를 한다고 했습니까? 인간은 악령과 함께 있는데, 그런데 그 악령이 너무나 강하다는 겁니다.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다는 것이죠.

그러면 그 악령을 이기신 분이 들어오시면 되는데, 그렇지요? 누가 뱀의 머리를 치셨습니까? 그분이 바로 예수님인데, 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기셨다는 겁니다. 그러니 십자가의 승리의 힘으로, 악령이 알박기를 했던 그 자리에 성령이 오신다는 말이죠.

* 성도는 사탄과 더불어 !!

그러면 그 사람은 주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되는데, 그것을 두 글자로 뭐라고 하는고 하니, '성도'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악령, 즉 사탄이 성도의 몸 바깥으로 나가겠습니까? 아니면 계속해서 같이 있겠습니까? 사도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에서 "나에게는 사탄의 가시가 있다" 라고 했는데, 사탄은 계속해서 있어주어야 한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그래야 성령의 역할이 드러나게 되어있다는 겁니다.

(고후 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탄의 역할을 성경에서는 육, 혹은 육신의 모습이라고 하는데, 우리의 육신이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있다는 말이죠. 그렇게 같이 있으면서 마귀가 자기를 어떻게 다루는지 생생하게 드러내면서, 말씀과 성령으로 그때마다 박살을 내줄 때, 그러면 성령과 악령의 싸움에서 누가 이기겠습니까?

* 성도는, 복음으로 인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

십자가의 그 승리로 승리하게 되는데, 여기서 삐져나온 것이 감사와 고마움이고, 그래서 그 어떤 인생을 살아도 감격해하고 기뻐한다는 겁니다. 어제 낮 설교시간에 바로 그 이야기를 했는데, "복음으로 인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라는 것이 바로 그런 의미라는 말이죠.

그렇게 되면 이 마당이 '나' 라는 것은 없어지고,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로다" 라는 것인데, 그렇게 주님의 활동마당이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성도인데, 그래서 성도를 '주의 몸' 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성도의 몸은 자기 몸이 아니고 주님의 몸이라는 겁니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 나는 내 것이다 !!

그런데 생리적인 것과 정신분석학적인 것은 항상 그 기초가 무엇인고 하니, "나는 내 것이다" 라는 것인데, 그것을 계속해서 유지하려고 한다는 말이죠. 그렇게 인간은 자기 자존심, 자기 위신, 자기 체면 등등, 그렇게 악령을 마음에 품고 교회에 나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목사에게 뭐라고 합니까? "나는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예정을 이야기하면, "나는 예정된 사람이 맞습니까?" 라고 하고 말이죠(ㅋㅋ). 그러니 이것은 정신과 의사에게 환자에게 찾아와서 상담을 하는 것과 똑같은데, 즉 "나는 치료가 됩니까?" 라고 한다는 겁니다.

환자가 "나는 행복해질 수 있어요?" 라고 하는데, 그러면 의사는 "좋은 남편을 만나면 됩니다" 라고 하는데, 그러니 이게 어떻게 치료가 가능하다는 겁니까? 불가능하다는 겁니까? 치료라는 것은 처음부터 아예 불가능한데, 그게 바로 인간이라는 말이죠.

* 환자 : 나는 행복해질 수 있어요?
* 의사 : 좋은 남편을 만나면 됩니다.
* 환자 : 나이가 60이 넘어도 가능합니까?
* 의사 : 물론 됩니다. 돈이 많으면 됩니다.
* 환자 : 돈이 좀 있기는 있지만, 그것이면 됩니까?
* 의사 : 그리고 예쁘면 됩니다.
* 환자 : 아니 이 나이에 어떻게 예쁠 수가 있습니까?
* 의사 : 그래도 예쁘면 됩니다.
* 환자 : 그것은 불가능한데요?
* 의사 : 그러면 할 수 없습니다.
* 환자 : ? ? ?
* 의사 : ? ? ?

여기서 열왕기하 8장을 보겠는데, 길지만 7절부터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왕하 8:7) 엘리사가 다메섹에 갔을 때에 아람 왕 벤하닷이 병들었더니 혹이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 여기 이르렀나이다
(왕하 8:8) 왕이 하사엘에게 이르되 너는 손에 예물을 가지고 가서 하나님의 사람을 맞고 저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나의 이 병이 낫겠나 물으라
(왕하 8:9) 하사엘이 드디어 맞으러 갈새 다메섹 모든 아름다운 물품으로 예물을 삼아가지고 약대 사십에 싣고 나아가서 저의 앞에 서서 가로되 당신의 아들 아람 왕 벤하닷이 나를 당신에게 보내어 가로되 나의 이 병이 낫겠나이까 하더이다
(왕하 8:10) 엘리사가 가로되 너는 가서 저에게 고하기를 왕이 정녕 나으리라 하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저가 정녕 죽으리라고 내게 알게 하셨느니라 하고
(왕하 8:11) 하나님의 사람이 저가 부끄러워하기까지 쏘아보다가 우니
(왕하 8:12) 하사엘이 가로되 내 주여 어찌하여 우시나이까 대답하되 네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행할 모든 악을 내가 앎이라 네가 저희 성에 불을 놓으며 장정을 칼로 죽이며 어린 아이를 메어치며 아이 밴 부녀를 가르리라
(왕하 8:13) 하사엘이 가로되 당신의 개 같은 종이 무엇이관대 이런 큰 일을 행하오리이까 엘리사가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네가 아람 왕이 될 것을 내게 알게 하셨느니라
(왕하 8:14) 저가 엘리사를 떠나가서 그 주인에게 나아가니 왕이 묻되 엘리사가 네게 무슨 말을 하더냐 대답하되 저가 내게 이르기를 왕이 정녕 나으시리라 하더이다
(왕하 8:15) 그 이튿날에 하사엘이 이불을 물에 적시어 왕의 얼굴에 덮으매 왕이 죽은지라 저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엘리사, 벤하닷, 하사엘 !!

여기에 나오는 등장인물을 보면, 먼저 엘리사, 아람 왕인 벤하닷, 그리고 그의 신하인 하사엘, 그렇게 3명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성경에 이들이 왜 등장했을까요?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잠시 복습해보면, 성경은 돋보기로 보면 점이지만 이것이 문자가 되면서 무엇을 지적하는고 하니, "인간세계는 죄이며, 인간세계는 멸망을 당하게 되어있고, 현재 일어나는 일들이 인간세계의 최후모습이다" 라는 겁니다.

그러면 두뇌의 생리적인 것과 정신분석학적인 것을 총동원해서 살펴보면, 여기에 혼자 중얼중얼하는 40대 아줌마가 있고, 그리고 정신과 의사들이 있다는 말이죠. 이것이 바로 소박한 인간들의 언어세계인데, 자연과는 다른 인간들의 세계라는 겁니다. 그게 바로 언어세계인데, 즉 언어로 만들어진 환타지라는 것이죠.

* 인간들의 언어세계로 들어오신 하나님 !!

그런데 이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는데, 그래서 아담을 보고 동물과 식물들의 이름을 지으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렇게 이름을 지을 때부터, 자연과는 달리 인간들의 독자적인 세계가 따로 만들어진 것인데, 그러면 결국 하나님은 자연세계에만 오신 것이 아니고, 인간들이 만든 독자적인 세계 안으로까지 들어오셨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그 안까지 들어와야, 거기에 인간들이 있고, 그 인간들 안에 악령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까, 이 전체는 인간들이 모르는데, 다만 인간들은 인간세계 안에서 언어로서 천국도 만들어내고 하나님도 만들어낸다는 말이죠. 그렇게 인간들은 자기들이 만든 종교라는 세계에 갇혀있다는 겁니다.

* 불 속에서 만들어진 율법 !!

그러면 그 바깥에는 무엇이 있는고 하니, 불이 있다는 말이죠. 그게 지옥불인데, 그 불이 율법을 통해서 들어올 때, 율법은 불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그게 신명기 5장에 나오는데, 모세가 올라갔던 시내산은 어떤 산이고 하니, 불이 붙는 산이라는 말이죠.

(신 5:4) 여호와께서 산 위 불 가운데서 너희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매

이 대목은 시간이 지나가도 좀 해야하겠는데, 히브리서 12장 18절에서 24절을 보겠습니다.

(히 12:18) 너희의 이른 곳은 만질 만한 불 붙는 산과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
(히 12:19) 나팔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히 12:20) 이는 짐승이라도 산에 이르거든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을 저희가 견디지 못함이라
(히 12:21)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이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으나
(히 12: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히 12:23)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히 12:24)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 속죄소 뚜껑의 그룹들 !!

그리고 출애굽기 37장에 보면 모세가 받은 율법의 내용이 나오는데, 그 율법의 모든 중심은 속죄소에 있는데, 그것이 중앙에 놓여있다는 겁니다. 그 속죄소의 뚜껑을 보면, 그룹들이 덮고 있는데, 그 바깥에는 그것을 문양으로 해서 직물을 가지고 짜놓았다는 말이죠.

(출 37:1) 브사렐이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었으니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 고가 일 규빗 반이며
(출 37:2) 정금으로 안팎을 싸고 윗가로 돌아가며 금테를 만들었으며
(출 37:3) 금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네 발에 달았으니 곧 이편에 두 고리요 저편에 두 고리며
(출 37:4)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싸고
(출 37:5) 그 채를 궤 양편 고리에 꿰어 궤를 메게 하였으며
(출 37:6)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었으니 장이 이 규빗 반, 광이 일 규빗 반이며
(출 37:7)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양편에 쳐서 만들었으되
(출 37:8) 한 그룹은 이편 끝에, 한 그룹은 저편 끝에 곧 속죄소와 한 덩이로 그 양편에 만들었으니
(출 37:9) 그룹들이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였더라

* 그룹의 등장 !!

그런데 이 그룹들이 무엇인고 하니, 창세기 3장을 보면 화염검을 가지고 생명나무를 지키는 천사들이 나오는데, 이들이 바로 그룹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들 그룹이 여기 속죄소에 왔다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요? "인간의 막다른 최후의 장소를 하나님이 이스라엘 내부에 장착시켰다" 라고, 그렇게 보면 된다는 겁니다.

(창 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그러니 인간이 막다른 곳까지 가면 누구를 만나게 되는고 하니, 결국은 더 나아갈 수 없는 그룹들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그 그룹들이 언약궤를 선점하고 있다는 말이죠. 즉 "오기만 해라. 죽여버리겠다" 라는 것인데, 불이 붙는 천사들이 이미 속죄소를 접수하고 있다는 겁니다.

* 어떻게 통과했을까?

그러면 인간들이 하나님께 갈 수 있습니까? 없는데, 가면 불에 타서 죽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12장에 보니, 그렇게 무서운 불이 붙는 산, 그 산과 다른 시온 산에는 하늘의 도성인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이 있다는 말이죠.

여기에 보면 천만 천사도 나오는데, 그 무시무시한 천사들과 함께 산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것은 마지막을 통과했다는 겁니까? 하지 않았다는 겁니까? 통과를 했다는 것인데, 그러니 같이 산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과연 접근하면 타 죽는 불을 어떻게 통과했을까요?

히브리서 12장 24절에 보면 새로운 약속이 나오는데, 거기에 피가 나온다는 겁니다. 뭐라고 합니까?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라고 하는데, 즉 "구약 때의 아벨의 피보다 더 효력이 있는 예수님의 피가 무서운 지옥불도 통과하도록 해주었고, 너희들은 그 피를 덧입었다" 라는, 그런 의미라는 말이죠.

* 다시 엘리사, 벤하닷, 하사엘 !!

그렇다면 이것과 열왕기하 8장과 무슨 상관이 있는고 하니, 이스라엘의 선지자인 엘리사가 아람나라의 왕에게 가는데, 이 아람은 현재의 시리아인데, 이스라엘보다 북쪽이라는 겁니다. 왜 가는고 하니, 아람나라의 왕인 벤하닷이 병이 들어서 와달라고 했다는 말이죠.

그 당시에 엘리사가 병을 잘 고치기로 소문이 났는데, 열왕기하 5장에 보면 같은 아람나라의 나아만 장군을 고쳤다는 겁니다. 그렇게 고칠 수 없는데 병을 고친다고 소문이 나니, 돈이 있고 권력이 있는 왕이 엘리사를 초청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약대 40마리를 선물로 준비를 해서 신하인 하사엘을 보내었다는 말이죠.

그런데 여기 열왕기하 8장 10절에서 엘리사가 하사엘에게 뭐라고 합니까? "왕이 정녕 나으리라 하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하사엘은 온 목적을 이미 달성했는데, 참으로 고맙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 뒤에 보면, "그러나 여호와께서 저가 정녕 죽으리라고 내게 알게 하셨느니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앞에서 "정녕 낫는다" 라는 것은 병에서 낫는다는 의미이고, 그렇다면 그 다음에 "정녕 죽는다" 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11절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이 저가 부끄러워하기까지 쏘아보다가 우니" 라고 하는데, 엘리사가 째려보다가 운다는 말이죠. 그러자 하사엘이 "내 주여 어찌하여 우시나이까?"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런 대목이 왜 성경에 나와있을까요? 예를 들어서, 자기가 이가 아픈데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는 말이죠. 그러자 하나님께서 "네 이가 나을 것이다" 라고 하면, 우리는 기분이 좋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뒤에 "그렇게 이는 아프지 않겠지만 너는 죽을 것이다" 라고 하는데,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 엉엉 우는 엘리사 !!

열왕기하 8장이 바로 그 내용인데, 엘리야가 하사엘을 째려보면서 "왕이 병에서 나을 것이다. 그러나 죽을 것이다" 라고 하는데, 그리고는 엉엉 운다는 말이죠. 이것을 오늘의 강의내용과 관련을 시켜보면, "주님은 인간을 최후로 보신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결국 인간은 죽는다" 라는 것인데, 그렇게 죽어야만 하는 인간세계에서, 병에 걸리고, 그리고 그 병에서 낫기 위해서 누구를 초대하고 하는 것, 그런 것들이 "나는 정녕 죽어야 마땅하다" 라는 것을 감추고 있는 그야말로 쓸데없는 짓이라는 말이죠.

바로 그러한 상황에 대해서 엘리사는 지금 울고 있다는 겁니다. 왕이 병에서 나았다가 또 다시 죽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우는 것이 아니고 말이죠. 사람들은 자기밖에 모르는데, 자기가 살아있으니 그렇게 자기가 사는 것 외에는 달리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겁니다.

이와 똑같은 취지의 말씀이 요한복음 11장에 나오는데, 32절에서 37절입니다.

(요 11: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로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요 11:33)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요 11:34)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었느냐 가로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요 11: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이게 나사로 사건인데, 나사로가 죽고 나서 예수님이 오시니 마리아가 울었다는 말이죠. 그리고 함께 있던 자들도 그것이 신호탄이 되어서 그만 같이 울고 말았는데, 이런 것은 장례를 치르면서 우리도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겁니다. 그렇지요?

*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

여기 35절에 보면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라고 하는데, 하지만 이것은 그 눈물의 의미가 전혀 다르다는 말이죠. 한 쪽은 오빠가 죽어서 울고,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 바깥에 불지옥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야만 온전한 인생이다" 라고 여기는 그 안타까움, 성경은 그것을 33절에서 '통분히 여기시고' 라고 하는데, 그래서 예수님이 우신다는 겁니다.

그렇게 우신 다음에 예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아까 에스겔서 37장을 언급하면서, "예수님은 설교를 죽은 자를 보고 하신다" 라고 했는데, 그러면 여기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나오십니까? 계속해서 요한복음 11장 38절에서 44절을 보겠습니다.

(요 11: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요 11: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요 11: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요 11:41)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요 11: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11: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요 11: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 나사로야, 나오너라 !!

예수님은 죽은 자의 이름을 부르시는데, 그래서 43절에 보면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에 앞서서 예수님이 무덤에서 돌을 옮기라고 하시는데, 그러자 주변에서 말린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죽은 지가 4시간이 아닌 4일이나 지났다는 말이죠. 이미 몸에서 썩은 냄새가 난다는 것이죠.

하지만 예수님은 결국 돌을 옮기게 하시고는, 그 무덤 앞에 서서 "나사로야, 나오너라"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그 명령을 죽은 자가 따르는데, 즉 말씀이 들어오니 그 안에 악령이 있어도, 예수님의 말씀은 악령보다 강하니, 그 말씀이 죽은 자를 살리신다는 말이죠.

* 이제는 예수님의 안목으로 !!

그렇게 살렸다는 것은 죽기 전으로 돌아갔다는 것이 아니고, 이제는 이 세상을 예수님의 시각으로, 즉 "예수님의 안목을 가지고서 이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라는 의미라는 겁니다. 그러니 "말씀을 안다" 라는 것은, 과거에는 자기 위주로 살다가 이제는 전체가 예수님 안에 들어있음을 발견하면서, 그래서 예수님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자기가 존재하는 이유이고 즐거움이 된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과거에는 자기 병만 나으면 되었는데, 자기가 부자가 되면 되었는데, 자기가 하는 일만 잘 되면 그만이었는데, 그런데 이제는 어떻게 되었다는 겁니까? 그것이 바로 악령이 자기 속에 들어와서 하는 짓임을 알게 되었고, 거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말이죠.

그렇게 예수님이 나사로를 부르시니 나사로가 돌이 옮겨진 문으로 나오는데, 그런데 몸 전체가 베에 동여매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제대로 걷지를 못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풀어주라고 해서 풀어주는데, 그러자 자유롭게 걸어다니게 되었다는 말이죠. 그런데 이야기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요한복음 12장을 보면, 9절에서 11절을 보겠습니다.

(요 12:9)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함이러라
(요 12:10)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요 12:11)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여기 10절에 보면,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라고 하는데, 그러니 대제사장들이 예수님만 죽이려고 하는 게 아니고, 예수님이 살리신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한다는 겁니다.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세계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어떻게 합니까?

마치 가인이 자기 세계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동생 아벨을 죽이듯이, 그렇게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악령이 들린 자들이 죽이려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니 성령을 받은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려고 하는 세계가 바로 대한민국인데, 우리가 태어나서 정을 붙이면서 살아가는 이 세상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마귀와 더불어 살다가 십자가의 영, 부활의 영, 불지옥도 통과해서 시온산에 갈 수 있는 영을 받았다고 하면,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것은 너무나도 자명하다는 말이죠. 우리는 누가 뭐라고 해도 사나 죽으나 자기 것이 아니고, 주의 것이라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이 세상을 얼마나 자기 행복 중심으로 보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귀가 시킨 일인데, 그런데 이제는 그것을 마귀가 시킨 일이라는 것을 성령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고, 그래서 감사하는 일만 남은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4,3,12 오전 11시에 마침.

오늘도 중얼중얼, 이제는 매일 주님과 중얼중얼하게 하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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