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대구강의] 지옥의 하나님 39 - 지옥 만들기
23,12,17 강의 : 이근호, 정리 : 구득영
오늘은 교재 177페이지부터 하겠습니다. 여기에 요한복음 7장 7절의 말씀이 있는데,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인데,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는 겁니다. 물론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지만 말이죠.
(요 7: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
* 세상과 너희는 한 통속이다 !!
예수님께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 라고 하셨는데, 그러니 이 세상에 누구를 포함시키고 있습니까? '너희'를 포함시키고 있다는 겁니다. 즉 우리를 이 세상 출신으로 보신다는 말이죠. 그러니 우리는 "이런 세상에!" 라고 할 만하다는 겁니다(ㅋㅋ). 이 세상이 동그라미라고 하면, 그 안에 우리가 들어있다는 것이죠.
그러니 우리는 이 세상과 한 통속이라는 것인데, 그래서 예수님은 "미워하지 못한다"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그렇게 인간은 이 세상을 미워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그러니 서로 친하게 지낸다는 의미라는 말이죠. 그래서 그쪽의 의견과 소식을 다 듣는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나' 라는 것이 빈 공간이라고 하면, 그 빈 공간에 이 세상의 것이 쏙쏙 다 들어온다는 말이죠. 사람이 말을 한다는 것은, 들어온 것이 바깥으로 나간다는 겁니다. 그러면 들어온 것이 생각이고 사상이라고 하면, 나갈 때는 이게 말로 나간다는 말이죠. 그렇지요?
우리 신체에 기능에서 있어서 말을 하는 것은 어느 부분입니까? 눈입니까? 귀입니까? 입입니까? 물론 입이 맞기는 맞는데, 그것은 주로 먹는 것에 사용하는 것이고, 혀를 통해서 자기 안에 들어온 세상을 바깥으로 배출을 한다는 겁니다. 그런 기능을 혀가 한다는 말이죠.
여기서 야고보서 3장 5절과 6절을 보겠습니다.
(약 3: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약 3: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이 대목은 사람들이 별로 주목하지를 않는데, 여기 5절에 보면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혀를 지체의 하나로서 보는 것이 아니고, 혀 자체를 다른 지체들과는 차별이 되게 대표적으로 하나를 따로 떼어낸다는 겁니다.
* 불을 뿜어내는 인간의 혀 !!
그러니 이 야고보서에서는 혀를 하나의 지체로서 보는데, 다만 조금 작을 뿐이라는 말이죠. 그러면서 그 다음에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라고 하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이냐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혀에서는 말이 나오지, 불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말이죠.
그런데 인간 속에서 나오는 타인에 대한 적극적인 공격성, 즉 "죽어라, 이 인간아!" 라고 하면서 상대방을 공격할 때, 물론 눈으로 째려보면서 할 수도 있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혀로서 하는 공격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혀에서 불이 나온다는 것인데, 무슨 심형래의 '용가리' 영화도 아니고 말이죠(ㅋㅋ).
여기 6절에 보면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라고 하는데, 즉 우리 인간의 혀에서 나오는 그 불이 지옥 불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 나는 세상을 미워한다 !!
요한복음 7장 7절을 다시 보면,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한다" 라고 되어있는데, 이것이 무슨 의미인고 하니, 예수님의 생각과 우리 인간들의 생각이 다른 점이 있다는 말이죠. 그것은 바로 "너희들은 세상을 미워하지 못하지만, 나는 세상을 미워한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이 세상을 보고. "이 세상은 몽땅 다 악한데, 너희들도 그 악함에 포함이 되어있다. 나는 그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왔다" 라고 하신다는 말이죠. 그렇다고 한다면, 그런 예수님을 제대로 증거하게 되면, 예수님을 증거하는 그 모임에 과연 인간들이 참석하겠느냐는 겁니다.
그럴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하나라도 건지려고 왔다가 튕겨 나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죠. 그런 예수님의 이야기를 도저히 들어줄 수가 없다는 겁니다. 남들이 자기에게 욕을 하는데, 그 욕을 곱게 들을 수 있느냐는 것이죠. 물론 타인이 자기를 보고 욕을 하면, "너나 나나 똑같은 놈인데, 그런 주제에 무슨 욕을 하나?" 라고 하면서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보고 욕을 한다고 하면, 우리는 것을 과연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겠느냐는 말이죠.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둘 중에서 하나인데, 이게 문제 자체는 전혀 복잡하지가 않다는 겁니다.
* 누구에게도 환영을 받지 못한 예수님 !!
예수님은 그 누구에게도 환영을 받지 못했고, 물론 자기의 제자들에게도 그러했다는 말이죠. 심지어 가룟유다의 경우에는 대놓고 예수님을 공격했다는 겁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발에 향수를 뿌릴 때, 그것을 보고 가룟유다가 노골적으로 비난을 했다는 말이죠.
(요 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요 12: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요 12: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가룟유다가 뭐라고 했습니까? "저 귀한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주어 주었으면 그들이 도움을 받을 뻔했다" 라고 했는데, 그러며 이 가룟유다의 생각을 한번 살펴보자는 겁니다. 지금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고 하니, "왜 우리가 세상을 미워하지 못하는가?" 라는 것인데, 그것은 우리 속에 사탄이 박혀있어서 그렇다는 말이죠.
그것을 예수님의 제자들 속에 박혀있는 가룟유다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다는 겁니다. 이 가룟유다의 생각은 무엇인고 하니까, "귀한 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면 그들이 도움을 받게 되고, 그러면 우리가 선한 일을 한다는 것이 부각되면서 예수님에 대한 호응도가 더 높아질 것이다" 라고, 그게 가룟유다의 생각이라는 말이죠. 그런 이 가룟유다가 사탄의 앞잡이라는 겁니다.
* 악마는, 이 세상을 살아갈 만한 세상으로 !!
그렇다고 하면 이 사탄은 과연 무슨 일을 꾸미려고 할까요? 사탄은 이 세상을 살아갈 만한 세상으로, 그렇게 되도록 도와주려고 한다는 것이죠. 그게 바로 악마의 생각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악마의 소원은 이 세상이 살아갈 만한 세상으로 유지시키는 것이란 말이죠.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악마가 이 세상을 살만한 세상으로, 그렇게 도와주고 격려해주고 만들어주려고 하느냐는 겁니다. 그 결정적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악마가 생명나무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것도 영원히 말이죠. 그때 인간도 같이 쫓겨났는데, 그러니 쫓겨나는데 있어서 동기생들이라는 겁니다. 같은 처지에 놓여있다는 말이죠.
* 지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우리가 사용하는 교재가 '지옥의 하나님' 이라는 책인데, 그런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천국에는 어떻게 가고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라는 것인데, 하지만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지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라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겁니다.
왜 우리가 지옥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고 하니, 천국은 좋은 곳이기 때문에 누구나 다들 궁금해하고 가고 싶어하는데, 즉 천국에 대해서 탐을 낸다는 말이죠. 선악과를 따먹겠다는 그 탐심이 아직도 우리에게 계속해서 살아있다고 하면, 우리는 천국을 탐내는 본심도 유감없이 계속해서 발휘하도록 되어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집에 사정이 있어서 손자가 와서 같이 산다고 하면, 그러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마음을 무엇일까요? "저 아이도 천국에 가야하는데, 지옥에 가면 안 되지" 라고 하는 마음이 든다는 말이죠. 왜냐하면 자기 가족이기 때문인데, 당연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천국에 가려고 하면서, "지옥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라는 것을 빠트린다고 하면 곤란하다는 말이죠. 지옥이 어떤 동네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게 수능의 킬러문항인데, 반드시 있어주어야 한다는 것이죠. "천국은 어떻게 갑니까?" 라는 것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지옥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라는 문제가 나온다는 겁니다. 전혀 공부하지 않은 내용이 튀어나왔다는 말이죠.
* 앞으로의 소망에 대해서 써보세요 !!
어떤 초등학생에게 "앞으로의 소망에 대해서 써보세요" 라고 하니, 그 아이가 성의를 다해서 구체적으로 자기 미래에 대한 설계를 제출했다는 겁니다. 그 내용을 제가 한번 적어보겠는데, 먼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는 국제중학교를 가고, 고등학교를 민족사관학교로 가고, 그 다음에 대학교는 하버드 대학에 간다는 하는데, 그리고 그 다음에는 미용사가 되겠다고 한다는 말이죠.
그 아이는 나름대로 굉장히 진지하게 적어서 선생님에게 내었는데, 그러니 집안에서는 그 아이에게 얼마나 닦달을 하겠느냐는 겁니다. 왜냐하면 국제중학교를 가고 민족사관학교를 하고 하버드 대학을 간다는 것을 좋은데, 돈이 얼마가 들어도 모두 대주겠다고 한다는 말이죠. 그런데 마지막에 무엇인고 하니, 미용사가 되겠다고 한다는 겁니다.
* 남을 속이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는 세상 !!
제가 미용사의 직업 자체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고, 여기에서 정작 그 아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미용사의 세계가 얼마나 경쟁이 치열한지를 모른다는 말이죠. 우리교회에도 미용사가 있는데,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겁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이 세상이 나오면,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하버드 대학에서 배운 지식이 소용이 없다는 말이죠.
이 치열한 경쟁은 속임수와 사기를 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겁니다. 아까 살펴본 요한복음 7장 7절에서 예수님은 "이 세상은 악하다" 라고 하셨는데, 그 하는 행세가 악하다는 말이죠. 이것은 예수님의 돌발적 발언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관된 생각이라는 겁니다.
창세기 8장 2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노아가 바친 제물을 받으시고는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라고 하셨는데, 말씀이 참 어렵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창 8: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이 악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고 악한데, 그래서 저주를 하기는 하는데, 하지만 사람으로 인하여서는 저주하지 않겠다고 하신다는 말이죠. 그러면 사람이 착하다는 겁니까? 그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인데, 사람은 악한데 그런데 그 악함은 사람이 자기 스스로는 고칠 수 없다는 겁니다. 인간세계의 악함을 인간이 스스로 고칠 수가 없다는 것이죠.
그러니 하버드 대학을 나와도 안 되는데, 이 세상에서 성공하려고 하면 남을 속여야만 하는데, 그런 것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국제중학교나 민족사관학교에서도 그렇고 말이죠. 이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것은 그만큼 남을 속이는 것에 능숙했다는 의미인데, 남을 속이지 않고 성공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이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말이죠.
* 테레사 수녀의 짧은 순간 !!
물론 정직해도 성공할 수가 있는데,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이라는 겁니다. 계속해서 성공한다는 것은, 계속해서 속인다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인도에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수녀가 있는데, 여러분도 잘 아시는 분인데, '테레사 수녀' 라는 겁니다. 그런데 그 수녀가 전 세계에서 받은 엄청난 후원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를 알 수가 없다는 말이죠.
보통 빈민시설을 만들게 되고 후원금을 받으면, 그러면 시설이 개선이 되고 좋아져야 하는데, 그런데 테레사 수녀의 경우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냥 죽기를 기다리는 일종의 수용시설에 불과했다는 말이죠. 그리고 그 후원금으로 아프리카 독재자의 세탁된 비자금이 들어오기도 했다고 하는데, 그러니 그 액수가 어마어마했다는 겁니다.
여기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 테레사 수녀가 처음부터 나쁘다는 것이 아니고, 그녀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인도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한 것은 인정하는데, 하지만 그것은 짧은 순간이었다는 말이죠. 에베소 교회가 어디 처음부터 촛대를 옮길 교회였습니까? 아닌데, 분명히 처음 사랑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렇게 이 세상은 반짝 반짝하는 세상인데, 다들 처음 결심은 대단하다는 말이죠. 순수하고 순결하고, 그리고 순진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순진함을 악마스러움으로 이 세상의 신이 만들어버린다는 것이죠. 순진했던 인간을 말이죠. 그 방법이 무엇인고 하니, 순진함을 계속해서 억지로 유지하려고 하면, 그러면 결국 남는 것은 악마스러움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우리가 관심을 두어야하는 것은 "지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라는 것인데, "천국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라는 것이 아니고 말이죠. 그것은 우리 인간이 노리는 것인데, 그러니 그게 아니고 "지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 하나님의 '지옥 만들기' !!
오늘 강의제목은 '지옥 만들기' 인데, 그러면 지옥은 어떻게 만들어집니까? 뱀이 에덴동산에서 추방이 되었는데, 그러면 어디로 갔을까요? 창세기 3장을 통해서 인간은 쫓겨나서 땅으로 갔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말이죠. 그러면 악마는 어디로 갔느냐는 겁니다.
(창 3: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창 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 가인의 분노, 왜?
그게 창세기 4장에 나오는데, 아담에게는 가인이라는 첫째 아들이 있었다는 말이죠. 이 가인에게 악마가 임하는데, 즉 악령이 임했다는 겁니다. 자기 제사는 하나님이 받지 않고 동생의 제사를 받는다고 하면, 그러면 그렇게 알고 같이 살면 되는데, 그렇지요? 가인을 특별하게 여기지 말고 보통 사람으로 보자는 말이죠.
(창 4: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창 4: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창 4: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집안에서 큰아들인 형은 아버지를 대표하고 대리하게 되는데, 둘째나 셋째는 그렇지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집안에 큰 일이 생기면 큰아들이 다 처리를 하면서 기둥역할을 한다는 말이죠. 그런 큰아들이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렸는데, 즉 선물을 드렸는데 받지를 않는다고 하면, 그것은 "나는 너와 사귀기 싫다" 라는 의미라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와 사귀기를 싫어하시네" 라고 여기면 되는데, 그런데 왜 인간은 그 되어진 사실에 대해서 거부하느냐는 말이죠. 자연을 통해서 주어진 하나님의 결정에 대해서, 왜 인간 속에는 그것을 반대하는 결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느냐는 겁니다.
* 가인은 왜 기분이 나빠야 하는가?
물론 거기에 대해서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데, 그럴 수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여기서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왜 기분이 나빠야 하는가?" 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동생을 사랑하고 자기를 미워한다고 하면, 그런 하나님의 편애에 대해서 왜 자기가 기분이 나빠야 하느냐는 겁니다.
여러분, 이게 질문이 성립하는 겁니까? 사람들은 이게 질문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데, 왜냐하면 그렇게 다른 누군가를 편애하면 기분이 좋을 인간이 어디에 있느냐는 말이죠. 제가 묻는 것이 바로 그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왜 기분이 나빠야 하는가?" 라는 겁니다.
그래서 가인은 그 기분이 나쁜 것을 행동으로 옮겼는데, 이렇게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은 기분 나쁨을 해소하는 반대의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이죠. 그렇지요? 자기의 기분 나쁨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즉 자기의 기분이 좋게 되기 위해서는 거기에는 희생물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 세상 돌아가는 것이 내 뜻대로 !!
그렇다고 하면 여기서 가인이 하는 행동은 무엇인고 하니, "세상 돌아가는 것이, 즉 만사가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 라는 것인데, 이게 하나의 구호로서 자리를 잡고 있으면서, 우리의 마음 속에 마치 마그마처럼 숨어있으면서 튀어나오려고 한다는 겁니다. 이 세상 돌아가는 것이 자기 마음대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여기서 정답을 이야기하면, 사실상 가인은 아무 것도 아닌데, 가인은 일종의 껍데기, 즉 아바타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가인을 이용해서 어떻게 하십니까? "가인 속에 악마가 들어있다" 라는 것을 부각시키신다는 말이죠. 그게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방법이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하면 아벨의 경우에는, 아벨이 훌륭해서 하나님이 그의 제사를 받으신 겁니까? 그 이유가 무엇이냐는 말이죠. "가인 속에 악마가 들어있다" 라는 게 성립된다고 하면, "아벨 속에는 장차 오실 예수님이 들어있다" 라고 하는 것, 그게 바로 창세기 3장 15절에 나오는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의 갈등구조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갈등구조가 전개된 것이 이 세상의 역사라는 말이죠.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 내 뜻대로 VS 예수님의 뜻대로 !!
지금 제가 '지옥 만들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 세상은 하나의 임시적인 거치대라는 겁니다. 이게 날아가 버리면 이 세상은 그 세계, 즉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어진다는 말이죠. 그러면 천국에 가는 사람도 지옥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지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 말이죠.
왜냐하면 천국은 자기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닌데, 자기 뜻대로 된다고 여기는 것이 바로 지옥에 갈 자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뜻대로" 되는 자들만이 천국에 간다는 말이죠. 천국은 예수님의 뜻대로 만들어지는 것이고, 또한 지옥도 예수님의 뜻대로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그런 지옥에 들어갈 구성원들은 무엇인고 하니, 악마와 친하게 지내고, 그래서 악마가 하는 이야기를 거부감이 없이 그대로 다 자기의 빈 공터에 받아들인다는 말이죠. 이 세상에서의 노닥거림을 다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자기 속에 들어온 것, 그것이 곧 자기의 뜻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죠.
예를 들어서, 가수들끼리 모여서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를 뽑는데, 그런데 '린' 이라는 가수가 노래를 부르다가 그만 가사를 틀렸다는 겁니다. 그리고 '김다현' 이라는 어린 가수는 노래를 너무 잘 불렀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 린은 통과되고 그 아이는 탈락했다는 겁니다. 저는 그 프로를 본 적이 없는데, 예를 들어서 그렇다는 것이죠. 저는 린을 좋아하는데 말이죠(ㅋㅋ).
그러면 인간은 그 속에서 정의감이 생기는데, "아니 공정하게 해야지, 가사도 틀렸는데 어떻게 통과가 되나?" 라고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면 제가 묻고 싶은데, 이 정의감이 천국 쪽입니까? 지옥 쪽입니까? 지옥 쪽인데, 왜냐하면 주님의 뜻을 가로막는 자기의 뜻이 강하게 반영되기 때문에 말이죠.
지금 우리가 지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는데, 자기 뜻이 고개를 숙일 줄 모른다는 겁니다. 어떤 재벌이 말하기를, "내 돈을 잃은 것이 싫은 것이 아니고 자존감을 잃은 것이 싫다" 라고 했는데, 그것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는 말이죠.
* 잠시 '자존감'에 대해서 !!
"이렇게 해도 네가 나를 거부해?" 라고 하는 자존감, 그게 어떻게 생기게 되는지 그 순서를 잠시 살펴보면, 먼저 인간은 일을 하는데, 자기 일을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자기 일을 하면 자아에 집중하게 되고, 그렇게 자아에 집중하면 자아의식이 무장된다는 말이죠. 그러면 "내가 이 일에 성공할까? 실패할까?" 라는 것에 민감해진다는 겁니다.
이게 인간의 자존감, 혹은 자존심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것을 성경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인간은 이 땅에서 일을 하고,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도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데, 그렇게 일을 하게 되면, 자아에 집중하게 되고, 그런 집중한 자아를 자기가 의식하면서, 그 일의 성공과 실패를 통해서 자존감이 생기는데, 그것을 로마서와 같은 곳에는 '자기 의' 라고 한다는 겁니다.
여기서 조금 더 나가보면, 이런 '자기 의'에 의해서, 그런 자기 의를 유지하기 위한 판단이 개입하게 된다는 말이죠. 그러면서 우리 인간은 이 판단을 뭐라고 하는고 하니, '정의롭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더욱 더 승화시켜서 '착함', 즉 '선(善)' 이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그 시작을 "인간은 놀지 않고 일을 한다" 라는 것으로 했는데, 즉 인간은 처음에는 일에 몰두하고, 그 다음에는 그렇게 일에 몰두한 자기가 어떤 결과를 얻기를 원한다는 겁니다. 우리 인간은 자기가 몰두해서 일한 것에 대해서 어떤 결과를 원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 전체를 필연적 절차라고 여긴다는 말이죠.
그렇다고 하면, 요한복음 7장 7절에서 예수님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 세상을 악하다" 라고 하셨는데, 그 악함 속에는 우리 자신도 포함이 되어있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과 친하게 지내면서, 우리는 이 세상을 미워하지도 않고 악하다고 하지도 않는다는 말이죠.
그런데 천국을 만드신 예수님은 이 세상을 뭐라고 했습니까? 악하다고 이미 결론을 내렸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세상 속에서 같이 친하게 지내는 우리도 동시에 악함의 대상이 되고 마는데, 그러니 천국이 아니라 지옥을 만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절차라는 것이죠. 모든 인간은 자기 일이 있고, 자기 의가 있으니 말이죠.
* 천국 만들기는 낯설어 !!
그러니 지옥 만들기가 이상한 게 아니고, 오히려 천국 만들기가 이상하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천국을 만드는 것은 낯선 것이고, 그래서 거기에 대해서 "아니, 어떻게 이런 일도 다 있나?" 라고, "내가 어떻게 그런 천국에 가지? 나는 이 세상이 좋아. 세상의 말만 쏙쏙 들어와. 천국 이야기를 하면 잠이 와"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그렇게 천국은 낯설어야 하는데, 그게 천국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주님은 과연 어느 대목에서 끊어지게 하실까요? 주님은 어디서 이 필연적인 노선을 끊어내시느냐는 말이죠. 우리 인간은 자기 자아에 집중하는데, 그렇게 자의식에 무장을 한다는 겁니다.
달리 말해서, "내가 인생에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 라는 것에 집중해서 민감해질 때, 그것이 바로 자존감이 생길 때인데, 바로 여기서 주님은 그것을 그만 무너지도록 만들어버린다는 말이죠. 즉 일은 열심히 했는데 그 결과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러니 이게 복이라는 겁니다.
* 기대감에 부푼 이스라엘 백성들, 그러나 !!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러한 방식으로 다루셨는데, 그들은 약속에 땅에 간다고 하니 그야말로 기대감이 엄청 부풀었다는 말이죠. 홍해도 기적적으로 건너고 하니, 그들은 이제 약속의 땅에 멋지게 살 일만 남아있다고 여겼다는 겁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약속의 땅이 아니라 사막이 나온다는 말이죠.
그렇게 사막이 나오면 곱게 가면 되는데, 그런데 불평과 원망들이 터져 나온다는 겁니다. 하지만 여호수아가 갈렙이 사막을 지날 때 불평을 했습니까? 그리고 약속의 땅을 미리 정탐을 해보니, 이것은 완전히 오지 말라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겁니다. 너무나 막강한 적들이 이미 그곳을 접수하고 있었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여호수아가 갈렙은 무엇입니까? 처음에 나올 때부터 "내 뜻이 아니었다" 라는 것인데, 결코 자기 의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게 자기 의가 아니니까, 자기 자존심을 챙길 필요가 없다는 말이죠. 그러면 성공과 실패도 자기와는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지금 절차를 거꾸로 하고 있는데, 그러면 자기 의식으로 무장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악마적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 아말렉과의 전쟁 !!
심지어 광야에서 아말렉이 갑자기 쳐들어왔는데, 그래서 그들과 전쟁을 하는데, 여호수아가 칼을 들고 싸운다는 겁니다. 하지만 전쟁의 승리유무는 여호수아의 칼 솜씨에 달린 것이 아닌데, 산 위에 올라가 있는 모세가 지팡이를 들면 산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이 아멜렉에게 이기고, 그만 힘이 떨어져서 내리면 밀린다는 말이죠. 그리고 다시 올리면 이긴다는 겁니다.
(출 17: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출 17:10)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출 17: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출 17: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그러면 전쟁은 모세에게 달려있습니까? 여호수아에게 달려있습니까? 둘 다가 아닌데, 그것은 모세의 지팡이에 달려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모세의 뜻도 배제되고, 여호수아의 뜻도 배제가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인간을 배제시키는데, 그렇다고 해서 "너희들은 나가 있어라" 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에게 일을 시킨다는 말이죠.
* 하나님의 이름의 나라, 곧 '천국' !!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 일에 충실하게 하되, 그 모든 성과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공로로서 귀결이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잔존하고 남아있는 역사가 바로 이스라엘 역사인데, 갈렙과 여호수아는 그것을 안다는 것이죠.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나라가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의 나라라는 것을 말이죠. 그 하나님의 이름의 나라, 이것을 두 글자로 줄이면 '천국' 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사람이 열심히 하는 나라, 그런 나라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을 두 글자로 줄이면 '지옥' 이라는 말이죠. 열심히 하면 "나는 잘났다" 라고 하는 자기 의가 생긴다는 겁니다. 바로 인간의 이러한 자기 의가 예수님을 살해했는데, 하나님을 죽였다는 말이죠. 즉 "나의 의가 하나님을 죽였다" 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지옥에 가는 자들이 천국을 만드신 분을 죽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곳이 지옥이 된다는 말이죠. 자가 잘난 맛에 사는 자들은 다 지옥에 가는데, 지옥에 가면 그런 자들이 수북하다는 겁니다. 천국에 가는 자들보다 지옥에 가는 자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 좁은 길, 찾을 수가 없는 길 !!
그게 마태복음 7장에 나오는데, 그러니까 넓은 길로 가면 지옥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보면 된다는 겁니다. 반면에 좁은 길이라는 것은 그 특징이 찾는 사람들이 적다는 것인데, 그래서 너무나 외롭다는 말이죠. 하지만 이 길만이 천국과 통한다는 겁니다.
(마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마 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예수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신 것은, "인간으로 태어나서는 아무도 이 좁은 길을 찾지 않는다" 라는 것인데, 즉 인간이 자기 자존심과 자기 의를 걸고서는 이 좁은 길로는 아무도 갈 수가 없다는 말이죠. 즉 "천국에는 자기 자존감과 자기 의가 있는 자는 가지 못한다" 라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인간은 천국으로 보내지 않겠다고 하신다는 말이죠.
*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는 이유는?
그러면 이렇게 "천국에는 자기 잘남으로 갈 수 없다" 라는 것이 품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고 하니까, 처음부터, 즉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부터, 그들이 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는지를 말해준다는 겁니다.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어떻게 달라졌느냐는 것인데, 그 이후로 어떻게 되었습니까?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에 자기 잘난 맛에 살게 되었는데, 즉 자기의 성공과 실패에 민감하게 되었다는 말이죠. 즉 자의식으로 무장이 되었다는 것인데,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는 겁니다. 그것을 반대로 절차를 밟으면 밝혀낼 수가 있는데, 이렇게 자기 의를 유지해서 판단을 해버리면, 여기서 정의감이 생기고 그것이 선이 되고 만다는 겁니다.
* 다시 정리하면 !!
지금까지 한 것을 정리해보면, "천국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라고 할 수가 있는데, 그러니 천국과 우리 인간은 서로가 앙숙지간이라는 말이죠. 천국은 철저히 인간의 뜻을 부정하는 동네라는 겁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인간의 자기 뜻을 깡그리 무시해버린다는 말이죠.
그러니 우리가 뜻이 없었는데 천국에서 받아주는 것이 아니고, 이미 우리는 이 세상의 뜻, 즉 지옥에 가는 뜻으로 완전무장을 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 상태에 있는데, 천국이 찾아오니 어떻게 됩니까? 자기 자존심이 천국보다 더 세다는 말이죠. 그래서 야고보서 3장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인간의 혀에서 나오는 말들이 지옥 불에서 나온다고 했다는 겁니다.
* 내 총알을 받아라 !!
이것을 쉽게 이야기를 하면, 예를 들어서 방아쇠를 당길 수 힘이 있는 어린아이에게 총을 주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모두 실탄이 들어있는 총을 한 자루씩 들고 유치원으로 왔다는 말이죠. 그러면 과연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는 아이가 어디 있을까요? 서로가 다 죽이고 아무도 없다는 겁니다.
이것을 총을 말로 바꾸면 된다는 말이죠. 입에서 나오는 말이나, 총에서 나오는 총알이나 다를 바가 없다는 말이죠. 유치원에 가는 아이들에게도 그 혀 안에는 지옥 불이 들어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앙탈을 부리고 한다는 말이죠. 그리고 그런 앙탈을 부리는 말 대신에 총을 주면, 총알이 발사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다 죽여버리겠다" 라는 것인데, 그러니 지옥 만들기는 참 쉽다는 말이죠. 우리가 그냥 살아가는 것이 곧 지옥인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보고 "너희의 모든 행사는 다 악하다" 라고 하실 수밖에 없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이 놓여있는 상태라는 말이죠.
* 과연 악마는 어디로 갔을까요?
제가 던진 질문 가운데서 아직 답변이 되지 않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악마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어디로 갔는가?" 라는 겁니다. 그러면 과연 악마는 어디로 갔을까요? 여기에서 요한계시록 9장을 보겠는데, 1절에서 3절입니다.
(계 9:1)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저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계 9:2) 저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인하여 어두워지며
(계 9:3)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저희가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 무저갱에서 풀려난 악마 !!
여기 1절에 보면 무저갱, 즉 감옥이 나오는데, 여기에 악마가 갇혀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2절에 보면, 여기서 열쇠를 받아서 감옥에 나오는데, 거기서 악마의 졸개들인 귀신들이 나오는데,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르는데, 그게 연기와 같다고 한다는 겁니다. 메뚜기 떼들을 보면 연기와 같은데, 그런 상황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악마는 무저갱에 갇혀있었고, 그리고 풀려났다는 겁니다.
이것을 고린도후서 4장의 말씀과 대비를 시켜보면 이해하기가 좀 쉬운데, 여기에 악마의 노림수가 나온다는 말이죠. 여기 4절에 '이 세상 신' 이라고 되어있는데, 그리고 3절에 보면, '망하는 자들'이 나오는데, 하나님께서는 망하는 자들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신다는 겁니다.
(고후 4:3)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고후 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그래서 데살로니가후서 3장에 보면,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그러면서도 디모데전서 2장에 보면,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한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게 과연 무슨 의미이냐는 말이죠. 또한 로마서 10장에서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살후 3:2)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롬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런 말씀의 취지가 무엇인고 하니까, "모든 인간은 이미 악마의 손아귀에 사로잡혀있다" 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말이죠. 이 세상 신, 즉 악마에게 사로잡혀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에 의하면, 이 악마가 도대체 무엇을 제일 싫어하고 거부하느냐는 말이죠. 악마의 그 모든 활동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겁니다.
* 그러면 악마의 활동의 목적은?
여기 고린도후서 4장에 의하면, 무엇을 모르게 만드는 것입니까? 특히 여기 4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라고 하는데, 바로 여기에 악마는 자기의 부하들을 총동원해서, 그게 귀신들인데, 그들로 하여금 이 일에 매진하도록 하고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악마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미 자기가 사로잡고 있는 인간들에게 복음의 광채가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데, 거기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는 말이죠. 그리고 주님께서는 악마가 그런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무저갱을 잠시 열어주었다는 겁니다.
* 복음이란 무엇인가?
그렇다고 여기서 우리는 "복음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는 없는데, 복음이 무엇이기에 악마가 그렇게 이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방해를 하려고 하느냐는 말이죠. 그것을 지금부터 말씀해드리도록 하겠는데, 여기서 고린도후서 5장 14절을 보겠습니다.
(고후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여기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라고 하는데, 이게 무슨 뜻인고 하니,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았으면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한다" 라는, 그런 의미라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가 노력한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는 말이죠.
*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
그러면서 사도바울이 뭐라고 합니까?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인간은 죽은 것이라" 라고 한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기 때문에 모든 인간은 어떻다는 겁니까? 사도바울이 뭐라고 합니까? "모든 인간은 다 죽었다" 라고 하는데, 바로 이것을 악마가 제일 싫어한다는 것이죠. 악마는 인간이 살아있다고 보기 때문에 말이죠.
인간이 죽었다는 것이 복음인데, 왜냐하면 인간이 죽은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인간이 몸이 허약해서 죽은 것이 아니고, 숨을 암에 걸려서 죽은 것이 아니고,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을 때 모든 인간은 다 죽었다" 라고, 즉 "예수님의 죽음이 모든 인간의 죽음을 대변해주는 죽음이다" 라고 한다는 말이죠.
이것이 바로 복음인데, 이것을 악마가 제일 싫어한다는 겁니다. 악마는 이 세상을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야말로 혼신의 노력을 다 하고 있는데, 바로 그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열쇠를 가지고 무저갱에서 악마를 잠시 풀어주었다는 말이죠.
그 어떤 인간이라도 "나는 지금 죽어있다" 라는 것을 받아들일 인간은 없는데, 도저히 납득을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지금 자기의 손가락이 움직이고 있다는 말이죠. 이렇게 강의를 하고 있고, 또한 강의를 듣고 있는데, 그러니 이게 어떻게 죽은 것이냐는 겁니다.
강의에 참석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렇게 다 자기 의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죠.모든 것을 자기가 알아서 결정을 하는데, 그게 어떻게 죽은 것이냐는 겁니다. 국제중학교나 민족사관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쳐줍니까? "예수님이 죽었을 때, 모든 인간도 같이 죽은 것이다" 라고 말이죠.
초등학교 시험에 다음과 같은 문제가 나왔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산은?" 라고 하니, 어떤 학생이 백두산이 아니고, '부동산' 이라고 했다는 겁니다(ㅋㅋ). 왜냐하면 그게 자기는 납득이 된다는 말이죠. 자기 내부로 어른들의 세계를 그대로 흡수가 되어버리니 그렇다는 겁니다.
* 제일 놓은 산, 부동산 !!
그렇게 자기가 살아있고, 그래서 교회에 나오면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의 덕을 좀 봐서 그 살아있는 것을 더 잘 살게 하고 싶어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지옥에 간다는 겁니다. 그러니 교회에 왔다고 하면, 자기가 더 잘 살아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이 무슨 의미인지, 그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을 우리 인간 내부에서 마귀가 결사적으로 방해를 한다는 겁니다. "네가 지금 살아있잖아? 그러니 교회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해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그래야 죽지 않고 더 살아갈 수 있어. 그러니 가게문을 활짝 열고 손님을 받아야지. 그런데 돈도 되지 않는 교회는 왜 나가?" 라고 하면서 말이죠.
이렇게 우리의 내부에서 악마가 얼마나 우리를 설득시키려고 하고 있는지 모르는데,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상은 악하다" 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내가 이 세상과 인간은 한 통속이라고 했잖아? 사람들은 이 세상을 악하다고 하지 않지만, 나 예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세상은 악해!" 라고 말이죠.
그게 바로 요한복음 7장 7절의 말씀인데, 그런데 사람들은 교회에 다니면서도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악마가 시키는 대로, 그저 살아있는 자기 자신을 더욱 더 잘 살게 하기 위해서 매진을 하고 있다는 말이죠.
(요 7: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
그렇다고 하면 그런 자들에게 성경말씀을 가르치게 되면, 그들이 과연 잘 납득을 하고 받아들일까요?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말이죠. 그게 교재 182페이지에 나오는데, 거기에 보면 요한계시록 16장 21절의 말씀이 나온다는 겁니다.
(계 16:21)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 악마의 심보가 곧 인간의 심보 !!
여기에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라고 하는데, 여기서 '박재(雹災)' 라는 것은 우박 재앙을 의미하는데, 그러니까 인간들이 회개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대든다는 겁니다. 이것을 다음과 똑같은데, 즉 "악마를 지옥 불에 넣으면 넣을 수록 악마는 하나님께 대든다"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악마의 심보가 인간에게 그대로 전이가 되었다는 것이죠.
인간이 하나님께 대드는 이유는 딱 한 가지인데, 그것은 곧 "왜 우리 인간을 죽은 자로 간주하는가?" 라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할 말이 있는데, "이 세상에서 나도 죽었잖아" 라고 하신다는 말이죠. "너도 이 세상 출신이지? 내가 이 땅에 와서 죽었다고 한다면, 그러니 네 나이가 20살이든, 80살이든 간에, 너도 역시 죽은 것이야" 라는 것인데, 이게 바로 복음, 즉 기쁜 소식이라는 겁니다.
* 아하, 나는 죽은 자구나 !!
복음은 복잡하지 않는데, 바로 이것이 복음이라는 말이죠. 그동안 성경해석을 어떻게 해왔던지 간에 그런 것은 다 무시해버리고, "아하, 나는 죽은 자구나" 라고 하면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 자기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는 말이죠. 어제로 죽어야 하는데, 오늘 또 다시 숨을 쉬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왜 살아있지?" 라고 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 이유는 바로 주님께서 이 세상을 두 조각을 내시는데, 한 쪽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이라는 겁니다. 물론 자기가 알아서 받아들이는 경우는 전혀 없다는 말이죠. 예수님이 "너는 악한 놈이야" 라고 했을 때, "아멘, 그렇습니다. 저는 악한 놈입니다" 라고 할 자는 없다는 것이죠.
그런데 수로보니게 여인의 경우에는, 예수님이 "너는 개야" 라고 했을 때, "맞습니다. 저는 개입니다" 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백부장의 경우에는, "내가 너의 집에 가서 종을 고쳐주겠다" 라고 하니, "거룩한 주님이 저희 집에 오실 것까지 없습니다. 말씀만 하셔도 충분합니다" 라고 했다는 말이죠.
그것이 바로 말씀만을 따르는 말씀의 종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백부장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하십니까? "네가 바로 천국의 주인공이다. 그러니 진짜라고 폼을 잡고 있는 가짜들은 모두 다 내어쫓길 것이다" 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마 8:8)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마 8: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마 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마 8: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마 8:12)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어떤 행동을?
오늘 강의는 천국 만들기가 아닌 지옥 만들기인데, 즉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어떤 행동을 보일 것인가?" 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게 요한계시록에 나오는데, 어디를 보는고 하니, 요한계시록 6장 15절에서 17절을 살펴보겠습니다.
(계 6: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
(계 6:16)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계 6: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여기 15절에서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라고 하는데, 이것은 이 세상에서 분류한 직업군들이라는 겁니다. 높은 자들도 있지만 종들도 있고, 그리고 자유자도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계층을 초월한 모든 자들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이들이 무슨 짓을 합니까? 산과 바위틈에 숨어서 산과 바위에게, "우리 위에 무너져 내려서 옥좌에 앉으신 분의 눈을 피할 수 있도록 우리를 숨겨다오. 그리고 어린 양의 진노를 면하게 해다오. 그들의 큰 진노의 날이 닥쳐왔다. 누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공동번역)" 라고 말이죠.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복음을 피하는 자들의 특징은, 숨고 피하고 도망을 친다는 겁니다.
*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
아브라함 때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불이 떨어졌고, 그때 롯과 두 딸은 살았고 롯의 아내는 그만 죽고 말았는데, 그러면 롯의 가정에 어디로 피신해서 살았습니까? 보기를 드리자면, "1번, 유황불이 떨어지는 근처로 갔다. 2번, 아브라함 언약 속으로 들어갔다" 라는 것인데 말이죠.
이것을 창세기 19장에서는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하면 만약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지 못한다고 하면, 그 어디를 가더라도 유황불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수평적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죠. 그렇지요?
(창 19:29)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그러니 이 세상에서 피할 곳이 있다는 겁니까? 없다는 겁니까? 없다는 말이죠. 요한계시록 6장에서도 인간들이 바위와 산으로 덮으려고 하는데, 그래도 덮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피할 곳을 주셨는데, 그게 바로 천국이라는 말이죠.
* 지옥 만들기, 그리고 천국 만들기 !!
주님께서 지옥을 만들고 있는데, 그런 지옥을 만드는 부수 작업으로 무엇이 나오는고 하니, 천국 만들기가 나온다는 겁니다.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그렇다는 말이죠. 한국에서 살기가 힘든다고 캐나다로 이민을 가면, 그러면 해결이 됩니까? 유황불이 이미 전 세계에 다 퍼져있다는 겁니다.
제가 지금 어려운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서 쉬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말이죠. 불신자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자꾸 피한다는 말이죠. 그러면 누구를 건지려고 피합니까? 자기를 건지기 위해서 피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아직 죽지 않았다고 우기기 때문에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퍼지게 되면, 그 어떤 인간도 이미 죽은 인간이라는 겁니다.
지금부터 좀 어렵게 해보겠는데,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은 숨이 끊어지는 것인데, 그렇지요? 의사나 과학자들이 그렇게 본다는 말이죠. 그런데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죽으시게 되면, 그 죽음은 저주로 인한 죽음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죽음의 본격적인 의미는 저주라는 말이죠.
* 죽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인간은 살아있어야 !!
그러면 그렇게 저주를 받으려면, 우리 인간의 생각으로는 그 인간이 시체가 되어있어야 합니까? 살아있어서 펄떡이어야 합니까? 살아있어야 하는데, 그러니 죽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인간은 살아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요? 이게 복음이라는 말이죠.
그리고 또 하나의 전제가 무엇인고 하니, 지옥의 특징은 탈옥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태어날 때 이미 감옥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말이죠. 감옥에서 태어나서 초등학교에 다니고 국제중학교를 가고 민족사관학교를 가고 하버드 대학을 가고, 그리고 미용사를 한다는 겁니다.
* 나를 숨길 곳이 어디 없을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하더라도,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 라고 하는 감옥의 계층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까? 없다는 것인데, 그 어떤 학력과 직업을 가지던 간에, 또한 나이가 어떻든 간에 말이죠. 결국 마지막에는 예수님의 영광의 광채 앞에서 피할 곳이 없어서,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바위와 산들을 보고, 자기를 좀 숨겨달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가리워지면 무슨 상태로 돌아갈까요? 그리운 자기 자의식이 여전히 유지되는 공간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말이죠. 우리가 어릴 때는 과자가 참 귀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엄마가 형 몰래 과자를 주면 어디서 먹었습니까? 이불 속에 숨어서 먹었는데, 소리도 나지 않게 해서 말이죠(ㅋㅋ).
그게 바로 자기만의 공간인데, 자기 의와 자기 판단이 살아있고 자기 자존감이 살아있는 공간이라는 겁니다. 자기 노력의 대가가 정의라는 이름으로, 선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있는 그 공간 안에서 자기는 계속해서 유지가 된다는 말이죠. 그게 지옥인 줄로 모르고 그렇게 살아있다는 것이죠.
누가복음 12장에 부자가 나오는데, 그 부자에게 "어떻게 돈을 벌었습니까?" 라고 한다면, 그 부자는 "열심히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데, 그 원칙에 의해서 제가 부자가 되었습니다" 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게 지옥에 가도 변할까요?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죠.
(눅 12:16)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투철한 자기 의가 있으면 지옥에 가는데, 그렇게 저주를 받는 상태를 무엇이라고 하는고 하니, '죽음' 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죽음은 어디서 성립된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을 때, 그렇게 아버지로부터 저주를 받을 때, 새로운 개념으로서 죽음이 형성되었다는 말이죠.
* 주님은 지옥을 언제 완성하셨는가?
그렇다고 하면 오늘강의에서 제일 어려운 대목을 해보겠는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주님은 지옥을 언제 완성하셨는가?" 라는 겁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때 완성을 하셨는데, 그 나머지 시간은 이 땅에서 십자가 사건이 재현되는 것이고, 그게 "다 이루었다" 라는 의미라는 말이죠.
(요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그렇게 십자가에서 지옥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무저갱으로부터 마귀를 이 땅에 풀어놓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미 완성된 지옥을 이 세상까지 확장을 시키기 위해서, 이 세상 자체가 지옥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말이죠. 그게 바로 십자가 사건이고, 복음의 효과라는 겁니다.
* 하나님의 '시간 다루심' !!
그러니 복음이라는 것은 "예수님이 한 때 우리 죄를 지셨다" 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 이 순간 이미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어져 버렸다" 라고, 그렇게 된다는 말이죠.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시간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시간 다루심' 이라는 겁니다.
모든 시간은 십자가 사건 안에 축약이 되어있는데, 그래서 창세기의 천지창조도 십자가 사건 안에 들어있고, 성경 마지막인 요한계시록 22장도 십자가 사건, 그 한 순간에 다 들어있다는 말이죠. 그러니 이것을 시간적으로 이해를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무척 어려운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라고 하게 되는데, 예수님께서 다 이루셨다고 하실 때는, 그때까지만 다 이룬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모든 율법을 다 이룬 것인데, 이 율법은 시간 전체를 다 커버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할 때는, 앞으로 이 세상이 어떻게 되어지든지 간에 율법에 의해서, 그것은 '다 이루심'의 반복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내가 죽었을 때 너희도 다 죽었다고 했지?" 라는 것인데, 그러니 백날 자식을 낳아도 "죽고, 죽고, 죽고",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달에 가고 목성에 가도, 그것은 지옥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문명이고,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 탈옥 불가능 !!
그렇게 탈옥이 되지 않으니 이 땅에서 제 아무리 잘나게 살아도, 그들은 주님이 영광 가운데 오시게 되면 피할 길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도 소돔과 고모라의 경우에는 그 옆 동네로 피하면 되는데, 그러나 주님이 오시면 이 세상 모두를 다 덮어버리니, 전혀 피할 곳이 없다는 말이죠.
롯의 경우에는 소알이라는 작은 옆 동네로 피했는데, 그것은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불이 떨어진 것을 눈으로 목격하라" 라는, 그런 의미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하면 롯이 살던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불이 떨어졌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바로 롯 자신의 과거생활에 유황불이, 유황비가 떨어졌다는 의미라는 말이죠.
다시 말해서, 자기의 지나온 모든 과거들을 주님께서는 시간을 초월해서, 즉 장차 오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에 근거해서, 우리의 과거자체를 주님이 충실하게 저주해버리시는 세상, 그런 세상에 우리는 태어났다는 겁니다. 1900년대에 말이죠. 여기에 혹시 2000년대가 있습니까? (ㅋㅋ)
그러니 우리는 유황불을 맞을 동네에 태어났다는 겁니다. 우리는 거기서 탈옥할 생각이 전혀 없는데, 오히려 충실하고 싶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악마는 우리에게 살기를 권하기에 말이죠. "열심히 살아서 성공해야지? 하버드를 졸업하고 미용사가 되어야지?" 라고 한다는 겁니다.
어디 가만히 있으면 미용실이 운영이 됩니까? 열심히 설치고 일하지 않으면 가게를 유지할 수가 없다는 말이죠. 여기 조그마한 지묘동에만 해도 미용실이 4개나 있는데, 여기는 하버드를 나오고, 그리고 저기에는 서울대학을 나온 미용사가 버티고 있다는 겁니다.
* 껍질을 벗어내는 삶 !!
그러니 지나고 보면, 우리는 자기밖에 모르는 저주받을 과거만 남기고 이 땅을 떠나게 된다는 말이죠. 그런데 이게 우리 개인의 입장에서는 이 땅을 살다가 떠나는 것인데, 성경적으로 보면 우리는 이미 천국에 와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 땅에서의 삶은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껍질을 벗어내는 것인데, 그것도 고린도후서에 나온다는 말이죠.
오늘 고린도후서가 자주 등장하는데, 5장 1절과 2절입니다.
(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고후 5:2)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그러니 성도의 소원은 무엇인고 하니, "이 옷을 좀 벗으면 안 될까요?" 라는 것인데, 부모로부터 받은 이 육신이라는 옷, 흙으로 만든 옷을 벗어버리고 싶다는 겁니다. 무거워도 보통 무거운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그러면 주님의 응답은 무엇인고 하니, "고생이 되더라도 조그만 더 참아라. 때가 되면 내가 알아서 불러줄게" 라고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짜증이 나는데, 그래도 참아야 한다는 말이죠. 그렇게 참으면서 해야할 일이 있는데, 그게 무엇인고 하니, 이 옷, 즉 목숨에 대한 애착이 우리 인간은 얼마나 대단한지 모른다는 겁니다. 죽기가 싫다는 말이죠. 그러니 그것을 가볍게 벗어버리기 위해서는, 그동안 살아있을 동안의 자기 의, 자기 잘남, 그것을 마음껏 키워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 마귀가 보통 놈이 아니구나. 참으로 고집이 세구나" 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는 말이죠. 주님이 의도적으로 풀어놓아서 설치가 된 그 악마가, 즉 일곱 곱하기 일곱 귀신이 들어와서는, 우리가 얼마나 자기 의에 미쳐있는지, 그것을 드러나게 한다는 겁니다. 자기 잘남에 그야말로 환장을 했는데, 자기의 과거를 자랑하지 못해서 말이죠. 정신병자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은 사람은 그것을 아는데, 아직 옷을 벗지 못해서 그렇다는 것을 말이죠. 주님이 벗겨주시기 이전의 육신을 통해서 드러나는, 그게 가인의 모습인 것을 성도는 알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벗을 수 없는 자기 의, 그것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다 이루었다는 말이죠.
* 미리 크리스마스 !!
어제 어떤 분이 '메리 크리스마스'를 '미리 크리스마스' 라고 했는데, 그게 얼마나 은혜로운지 모른다는 겁니다. 이미 우리는 축복 속에 있다는 것인데, 즉 죽은 자가 살았다는 말이죠. 이미 산 자이기 때문에, 우리는 부담없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미리 우리는 저주받은 육신 속에 있다는 것을 안다는 말이죠.
그리고 그 이유를 알아야 하는데, 그래야 감사가 나오고 십자가만 쳐다보고 십자가만을 자랑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게 무엇인고 하니, 우리는 자기의 이 육신이 남들에게 뽐을 내고, 그리고 더욱 오래 살기 위해서 얼마나 환장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죠.
그러니 우리가 보약을 먹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죽기 위해서 먹는다는 겁니다. 건강검진을 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죽는 이유를 알기 위함이라는 말이죠. 그러니 더 오래 살고자 하는 짓이 곧 십자가를 모독하는, 그게 복음을 모독하는 악마의 짓임을 우리가 알 때, 즉 주님의 '지옥 만들기'를 알 때, 비로소 '천국 만들기'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내가 열심히 살았다" 라는 것만 움켜지고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악마의 짓임을 알았사오니, 거기에서 구원해주신 주님에게 감사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3,12,30 오후 6시에 마침.
주님, 옷을 벗으려고 하니 날씨가 너무 추워요 !!
'대구강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옥하나님-왕이시여! (5) | 2024.03.05 |
---|---|
지옥하나님40-인간의 본질 (0) | 2024.02.20 |
지옥 하나님38-송장의 할 일 (0) | 2023.12.11 |
지옥하나님-원위치 (0) | 2023.11.30 |
지옥하나님36-차이가 담긴 인생 (1) | 2023.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