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읽으면서

네 속에 나 있다

아빠와 함께 2023. 7. 13. 21:35

주의 오른손의 능력으로 주께서 친히 용사가 되사 우리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된 거예요. 방금 뭘 지켜줬다고요? 우리. 누가요? 주의 이름이. 그 방식은? 오른손의 능력으로. 이때 우리, 주의 이름, 오른손의 능력은 출애굽기 15장의 상황에서 기껏 인간들이 아는 한계는 여기 우리가 그 당시 이스라엘로 볼 수밖에 없어요. 하나님의 언약이 마지막에 말씀이 육신이 될 때까지 어떤 경로가 있는 거예요.

아까 첫째 시간에 이야기했듯이 경로가 주변을 뚫고 지나온 거예요. 뚫고 지나올 때 여기 뚫리는 자들이 누구라 했습니까? 주변에 하나님의 언약이 없는 이스라엘이 아닌 흔히 있는 역사적인 인간의 보통 열방들이죠. 이방나라죠. 그냥 세상들이죠. 세상에서 히브리인들이 뚫고 올 때 히브리인들이 이스라엘 될 때 그 이스라엘이 히브리 자기 나라인 줄 오해한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주의 이름이 도와줬다고 생각한 거예요. 이게 잘못이었어요. 이게 나중에 말씀이 육신이 될 때 왜 잘못인지 아는 겁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한 주님이 아니에요. 주님은 주님 자신을 위해서 우리를 그냥 채택한 거예요.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의 것이지 사나 죽으나 우리의 것이 아니에요. 방금 이 이야기 들으면 목사님 그렇게 흥분할 필요 없고 다 아는 이야기인데 뭐 흥밋거리입니까. 하나도 어렵지 않고 쉬운데요, 이렇게 하지요. 이게 쉬운 이야기 아니에요. 얼른 들으면 쉽게 들리지만 쉬운 이야기 아닙니다.

이게 뭐냐 하면 나무가 있지요. 나무 둥치를 자르면 이게 있지요. 이걸 나이가 드는 테, 나이테가 있지요. 나이테 제일 바깥이 뭡니까? 이걸 표피라 해요. 그런데 생각을 해보세요. 이 나이테 특징이 나와 너와 이게 성립이 안 된다는 거예요. 이게 어려운 거예요. 처음에 나무 심을 때 이래 왔지요. 그러면 나이테를 해보면 봄, 여름, 가을, 겨울 해서 견고한 재질과 약한 재질에 따라서 틀어져서 테가 생기잖아요.

표피는 어떻게 됩니까? 표피는 외부로 자꾸 밀려나가죠. 나가 있고 네가 있는 게 아니고 같이 나와 너 구분이 안 되고 나라고 여긴 곳에 타자, 너라고 하는 주님이 들어와 버리면 나는 바깥에서 계속 밀리고 내 안에 부풀어져요. 처음에 할 때는 나, 너가 있어요. 이스라엘에는. 이스라엘은 나고 하나님은 너가 되셔서 나를 도와준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게 오해였던 겁니다. 주의 이름이 바깥에서 도와준다는 거예요. 아까 했지요.

바깥에 있는 것이 안으로 들어온다고요. 주의 오른손의 능력이 살아 있는 우리를 도와준 게 오른손의 능력이라 본 거죠.
그러나 주님이 되면 능력이 뭐냐 하면 마귀와 죽음과, 마귀나 사탄과 죄와 율법에서 우리를 끄집어내는 능력이 주의 능력이에요. 이것은 나, 너를 붕괴시키는 능력이에요. 나, 너 따로 있다는 것에서부터 끄집어내주는 능력이 오른손의 능력이고 주의 능력입니다. 하나 됨을 너는 왜 자꾸 주님을 너와 나 둘로 나누느냐 이 말입니다.

주님은 창세전부터 하나였는데 너는 왜 자꾸 주님이 날 도와준다고 나를 왜 자꾸 그걸 지키려고 하느냐 이 말이죠. 하나인데.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아버지와 나와 하나인 것처럼 너희들도 나와 하나가 된다. 아가서에 나오잖아요. 솔로몬의 아가서. 처음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 다가갈 때 술람미 여인이 자꾸 오해하는 거예요.

“너는 내 스타일 아니라고. 나 당신 안 좋아해. 왜 자꾸 오는 거야. 나, 흑인 여자야. 볼품없어. 오빠 농장에서 일했거든요. 오빠 농장에서 일해서 햇빛에 얼굴 시커매. 당신은 왕이잖아. 신분 차이가 나는데 너, 나 갖고 놀라고 했지? 당신과 나 어떤 사이인데 왜 자꾸 다가오는 거야.”

처음에는 술람미 여인이 기피했어요. 그런데 솔로몬은, “내가 너한테 다가가고 싶어 다가가는 게 아니야. 네 속에 나 있다.” 네 속에 나 있다, 오늘 제목으로 삼고 싶다, 정말. “네 속에 나 있다. 나는 나를 찾아가는 거야. 너 찾아가는 게 아니야. 너는 표피야.” 네 안에 들어온 나를 찾고 싶은 거예요. 그게 뭘 이겼다? 아가서 8장에 죽음을 이긴 뭐다? 사랑. 사랑은 율법을 이겨요.

율법을 줌으로써 우리 형편이 네가 처한 형편이 율법에 갇혔다는 거예요. 죄에 갇혀있는 거예요. 저주에 갇혀있는 거예요. 율법 줘가면서 사랑이 율법보다 세다는 것을 계속해서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그냥 찾아다니는 거예요. 놓치지 않아요. 세상에 스토커도 그런 스토커는 없습니다. 집안에 옷 벗고 있는데 찾아가요. 그러니까 여자가 말하기를, 옷 벗었으니까 오지 말라 하는 기라.

그런데 솔로몬은 그렇게 네가 문을 못 열어준다면 이거나 먹어라 해서 몰약을 줘요. 사람이 아프고 늙어간다는 것은 우리에게 문제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정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좀 예쁘다, 낫다 하지만 주님 십자가와 비교해보세요.

우린 십자가 생각 없습니다. 숯검정처럼 다 떼고 싶어요. 복음이고 십자가 복음 다 떼고 싶어요. 나는 나이고 싶어. 남한테 멀쩡한 내가 되고 싶어. 이거 병든 거예요. 병든 자에게 뭐가 필요하지요? 의사가 필요하지요. 그런데 의사가 갑질을 안 해. 전혀 우릴 고칠 그런 믿음이 안 가요. 그 정도로 우리는 독하게 선악체제에 갇혀있습니다. 마귀에 갇혀있어요. 그런데 주께서 찾아오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그러나 이제는’ 내게 문제 있음을 발견하는 겁니다.

그리고 질문을 합니다. 왜 주님께서 저를 떠나지 않는 겁니까? 십자가 다 이루었다. 내가 이루고 싶은 걸 이룬 게 아니고 주께서 이루고 싶은 것을 나를 재질로 사용해서 죄인으로 사용해서 주의 다 이루심이 얼마나 놀라운 작품이 되는가를 주께선 우리를 자기의 신부로 맞이해서 혼인잔치까지 끌고 가십니다.

그래서 시편 44편에 26절,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그다음에 뭡니까? “우리를 구원하소서” 처음에는 주의 이름으로 하다가 마지막에 주의 이름이 우리에게 결국 제시될 건 뭐냐? 주님의 사랑, 끈질긴 사랑, 그 사랑이 아가서 8장의 말씀처럼 죽음보다 더 센 사랑, 더 이상 우리가 죽음에 기죽지 맙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 사람과의 차이가 뭔지를 보이게 하옵소서. 우리가 보이는 게 아니고 우리 안의 주께서 늘 보여주면서 우리의 지나온 주님의 과거가 생생하게 체험하면서 다 이루었다 십자가의 복음만 증거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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