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왜 존재합니까? 죄의 전달자로서 존재하고 악마의 앞잡이로서 존재하는 이유가 거기 있어요. 악마의 앞잡이에요.
■우리는 사람을 만나지 악마를 만나본 적이 없어요. 아까 했지요? 악마는 나올 때 뭐로 나온다 했습니까? 자기 의. 자기 의로 나오지요. 왜냐하면 선악과를 따먹으라 했으니까. 선악과 따먹는 인간을 자기의 앞잡이로 세워서 그 인간으로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하나님의 것을 우리가 따먹었다는 사실을 계속 유지시켜나가는 게 악마의 전략이거든요.
하나님 손으로 하나님을 죽이게 만드는 거예요. 창조자의 손으로 피조물을 죽이게 만드는 데 악마는 성공했다고 생각한 거예요. 계속 죽어나가니까. 죄를 보지 못한 하나님이 죄를 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만든 인간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죽게 될 것이란 말이죠. 그러면 이거는 하나님의 명예에 손상이 되겠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인간 말고 다른 노선을 개시했거든요. 아담 노선 말고 다른 아담을 준비해놨어요. 언약의 사람. 첫 번째 아담은 죽어 마땅하지만 둘째 아담은 부활해야 마땅하다는 거예요. 첫 번째 아담은 죄를 전달하지만 두 번째 아담은 하나님의 의가 준비돼 있어서 의가 왕 노릇해서 의를 증거하는 자기 자식들을 계속 이 땅에서 만들어내요. 성도지요. 그게 바로 악마의 일을 멸하러 온 거예요.
■악마를 끄집어 내는 방법
자, 그러면 악마를 끄집어내야 된다 말이죠. 끄집어내는 방법은 율법에 대해서 인간으로 하여금 반항하고 저항하게 만드는 그 작업을 이제는 하시는 겁니다. 그 방법을 어떻게 해내시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십계명을 볼 때 자기가 정당하다는 식으로 보지요. 자기 의롭다는 식으로. “십계명이야? 지켜야 돼. 지금도 양심적으로 의롭지만 더 의로울 수 있어.” 인간들은 십계명을 지키면서 또는 말씀을 지키고 목사님 말씀을 섬기면서 확인에 들어가는 거예요. 뭐냐 하면 내가 말씀 지켰으니까 십일조 했으니까 내 인생에 대해서 얼마나 지금보다 더 형편이 나아지는가, 복이란 것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내 앞에 등장하는지 확인함.
㉯십계명 지키고 이스라엘이 가면서 이스라엘이 계속 하나님의 뜻과 어긋 맞는 어깃장 나는 사태가 계속 일어나는 거예요. ㉰그럴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의 본심을 안 드러낼 수 없어요. 원망하게 돼요. 누구부터 닦달 냅니까? 모세 붙들고 닦달 내는 거예요.
㉱[의심함으로써 숨은 정체가 들통 났다.] 인간은 예수님을 믿고자 합니다. 그래서 믿습니다, 이야기해요. 그런데 인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아요. 내가 하나님을 믿으니까 믿은 만큼 어떤 변화나 내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증거 같은 걸 보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삑사리 나거든요. 믿는데 집안 꼴이 더 몰락했어요. 더 무너졌어요.
앞집에 사는 보살이 놀립니다. “네가 종교 바꿔서 그렇다. 너거 엄마 믿던 절에 안 가고 왜 갑자기 교회 가서……. 네 집구석 봐라. 자식 돌아가는 것 봐라. 아직도 장가도 못 가고. 종교 바꿔서 그렇다.” 기존교회에 그런 것 얼마나 많습니까. 그냥 목사님 말씀 잘 듣지 왜 복음에 관심 둬서, 종교 바꿔 그런 일 벌어졌다는 거예요. 그러면 종교 안 바꾸면 의심은 중지됩니까? 아니죠. 끝까지 인간은 하나님을 긴가민가 평가하는 자기 자신의 믿음을 철회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인간은 끝까지 자기 자신이 마귀가 돼요. 마귀로서 더 뚜렷해지는 계기를 마련하지요. 끝까지 하나님 믿어도 소용없더라. 복음 알아도 소용없고.
㉲너는 가만히 있어.율법이 가서 끄집어 내 줄게.
그걸 로마서 7장에서 뭐라 하느냐? 그게 너야. 너는 가만있어. 율법이 가서 너로 하여금 네 속에 있는 마귀 끄집어내 줄게. 마귀의 모습을 너를 통해서 뽑혀 나오도록 도와줄 테니까. 의심하라 그러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 믿어라 그러면 구원을 받는 게 아니다. 의심해라.
네가 뽑아낼 수 없는 마귀를 주께서 율법을 통해서 말씀으로 뽑아내주니 세상에 이런 복이 어디 있습니까.
㉳나를 함부로 해도 상관없는 사람이 바로 성도.
그래서 어제 낮 설교에서 성도의 삶은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제가 한 문장을 남겼는데 그게 뭐냐 하면 나를 함부로 해도 상관없는 사람, 이 사람이 바로 성도에요. 나를 함부로 해도 내가 전혀 상관하지 않는, 상관없는 사람. 주여, 어느 수준이 돼야 이 정도 수준 돼요? 이게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나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라는 고백이거든요. 나를 함부로 대해서 개의치 않는 것.
이게 왜 그러냐 하면,
모든 인간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마귀가 그렇게 시켜요. 신이 있는 쪽으로 올라가잖아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올라가다가, 그 이유가 거룩함이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위에 있으니까 더더더 계속 올라가는 거예요. 여기서 주님의 성령이 와버리면 마주쳐버리면 여기 십자가와 마주치면 내가 오르겠다는 더 나아지고 멋있게 된다는 자체가 이게 십자가에 의해서 마귀의 얼굴인 것을 발견하지요.
발견했으면 이미 복 받은 거예요. 왜? 내가 못 끄집어낸 것을 끄집어냈으니까 그다음부터는 이미 만남이 없는 가운데서 주님 쪽에서 우리를 만나게 해준 거예요. 양이 헤매다가 목자를 만난 거예요. 그 목자가 우릴 위해서 대신 이미 죽으셔서 다 이뤘던 목자를 주님 쪽에서 만나게 해주니까 여기서 성립 안 되는 만남이 성사됐지요.
그다음에 우리는 뭐가 남았느냐? 몰락만 하면 돼요, 몰락. 몰락하는 거예요. 이게 뭐냐 하면 놀이동산에서 신나는 대목이에요. 우에에에 으아아악~ 계속 몰락하는 가벼워지는 몰락만 남는데 이게 성경에선 뭐냐? 네가 어린아이 같이 되는 거예요. 체중이 확 줄어요. 그냥 몰락하는 그 즐거움이 있어요. 아무것도 안 해도 되고, 함부로 나를 다뤄도 괜찮고, 집에 불나도 괜찮고, 강아지 죽어도 괜찮고(미안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미 내 자신을 주께서 만나게 해줬으니까 이제는 내가 올라가면서 올라가 하면서 나의 의를 계속해서 축적했잖아요. 더더더더 축적, 축적, 성화, 성화론에다가 막 했는데 이제는 그걸 다 놔버려도 괜찮아요. 그냥 <비트>란 영화에 정우성이 오토바이 탈 때 손 놓지요. 손을 놔버리는 거예요. 그냥 몰락이죠.
몰락할 때 무슨 풍경을 보느냐? 내가 올라오던 풍경을 주께서 보게 하십니다. 아등바등 십일조하고 성수주일하고 성경공부하고 선교회비 내고 목사 잘 섬기고 봉사 많이 하고 앞에 제단 막 닦고 꽃꽂이하고 구역예배 다 참석하고 봄 됐다 싶으면 예수 믿으세요, 해서 행복은 건강에 있지 않고 예수 믿는 게 행복입니다, 그것 돌리고. 다른 교회는 사탕 두 개 주면 여기는 휴지 하나 물수건 주고 돌아다니는 모든 것, 내가 저랬었었지. 많이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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