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저주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저주 받는 대표자로서, 왜 이세상은 악한 세대인지를, 나는 왜 악한 세대에서 악한 인간으로 태어났는지를, 나는 왜 죄지은 아담의 분신으로서 태어났는지를, 그 역할 하라고 태어난 거예요. 그러면 고마워해야 될 것이 아닙니까? 암 4기가. 제가 지금 엉뚱한 소리 하고 있는 거예요? 발악을 해요 발악을. 자기 목숨에 대한 집착이 보통이 아닙니다. 악랄해요 정말 악랄해. 죽기 살기로 살아야 되겠다는 거예요. 주의 말씀 붙들고. 아, 기억이 새롭네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이런 것,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이런 거요. 교회에서 목사가 이런 것을 가르쳐줬겠지요.
교회는 죽으라고 오는 거예요. 그냥 죽지 말고 네 꼬라지 알고 죽으라고 오는 것이 교회입니다. 주님은 심판주입니다. 살고자 하는 인간에게 소동을 일으켜서 바닥 다시 한 번 깔아보자. 도대체 뭐가 현장성이냐, 뭐가 현실이냐 그 말이지요. 누가 인간들에게 이렇게 삶에 대해서 집착을 하도록 만들었느냐는 말이지요. 집착은 반항이고 반발이지요.
집착은 반드시 원망입니다. 좀 건드리면 화나고, 건드리면 분노하고. 누가 누굴 보고 분노해야 됩니까? 주객이 전도되었어요. 하나님이 분노해야 될 대상이 자기가 분노하고 있다고요. 친손자 감기 들었다고 분노하고, 콧물 난다고 분노하고. 이 남자가 암 4기 걸려서 또 해프닝이 일어나네요. 잠시 좋아졌어요.
잠시 좋아진 사이에 교회에서 간증 집회하는 것을 죽 찍어요.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나았습니다.” 6개월도 안되어서 재발했어요. 꼭 후라이보이 곽 규석 같아요. 온 교회 돌아다니면서 간증해 놓고는 암으로 죽어버렸어요. 평생을 살아도 내가 누군지를 알아본 적이 없어요. 누가 알려주지도 않고. 도둑을 안 만나 봤거든요. 도둑과 눈이 안 마주친 거예요.
갑자기 내가 원치도 않았는데 확 들어와서 “네 것 몽땅 다 내놔라. 내가 다 빼앗아간다. 네 목숨까지.” 그런 도둑놈을 만나본 적이 없어요. 화로다 망하게 되었구나, 하는 것을 한순간도 고백한 적이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4절에서, 복음은 ‘악한 세대’라고 하고 있지만 그것은 옛날이야기고 아직까지 숨쉴만하거든요.
꼬박꼬박 월급 나오지요. 그래서 숨쉴만하니까 내가 지금 보여줄 저주를 제대로 안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인간은 복음을 만들어내요. 장난삼아서 복음을 만들어내요. 그런데 그 복음을 뭘 로 만드느냐 하면, 법으로 만들어내요. 저주받은 인간이 내놓을 수 있는 것은, 법에는 법으로 마주치는 겁니다. 법으로 주게 되면 그 법을 지킴으로서 저주를 모면해 보려고 시도하게 되어 있어요.
제가 아무렇게나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찬찬히 이야기해 볼게요. 법이라 하는 것은 결국은 지치기 마련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교회, 처음 복음 들을 때는 좋지요. 한 3년만 지내보세요. ‘지친다, 지쳐’ 그렇게 돼요. 왜? 법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가 구약이 아니고 신약이라는 말이지요.
신약에 오게 되면, 우리는 이방인들이니까 이 신약을 법으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겁니다. 이 복음을 법으로 여겨서, 법으로 형성시켜서 받아들이려고 해요. 여러분이 정비소에 가면 차 본네트 열고 정비사가 엔진오일 체크할 때가 있지요. 엔진오일 체크할 때 단추처럼 보이는 꼭지를 빼내면 그 뒤에 길게 박혀 있는 긴 쇠막대에 오일이 묻혀서 나오잖아요.
우리는 복음을 이야기할 때 그 끝에 나와 있는 단추만 보고 그것만 소유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고 복음을 집어내면 그 뒤에 구약성경, 율법의 상황이 길게 다 딸려 나오게 되어 있어요. 우리는 십자가, 달랑 세 글자, 그것만 단추처럼 뚝딱 하고 떼어내고 그것만 가지면 십자가 되는 줄 알고, 예수 피가 되는 줄로 알고 있어요. 그 뒤에 달린 기다란 것은 다 없어요.
복음은 뭐냐 하면, 최종 율법의 완성상태입니다. 복음은 마지막 때 오니까 ■완결된 상황이라야 비로소 하늘에서 이 땅에 적용시키는 원리인데 ■그게 비율법적입니다. 복음은 율법의 최종단계, 완결된 단계인데 완결된 단계기 때문에 복음 안에는 ■모든 율법이 다 응축되어 있어요. 그래서 그 복음으로서는 무조건 저주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인간도 이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 이미 최종판정이 나버린 상황이기 때문에. 거기에 따라서 최고의 징벌이 주어집니다. 그것이 저주입니다.
법의식의 특징이 뭐냐? 뒤에 나오는 것이 있어요. “지켰습니다.”라는 말이 붙으면 앞에 뭐가 있든지 다 법이 되어버려요. 예수 믿는 것 지켰습니다, 복음 받아들이는 것 지켰습니다, 하면 그것은 진짜 예수가 아니고 법적으로 변형된, 전환된 예수요 그 복음은 법적으로 전환된, 그것은 복음이 아닌 가짜 복음이 되는 거예요.
복음은 우리보고 지키라고 준 게 아니에요. 지난 시간에 했잖아요. 하나님은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고요. 열심히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선언하는 거예요. 왜? 어떤 인간도 아담이라는 그 몸뚱이의 원칙에서 벗어날 인간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그래요. 아담의 분신이라니까요. 우리가 백날 해봐야 아담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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