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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호 | 13-12-01 15:42 | |
하나님의 말씀 스가랴 7장 8절에서 14절까지입니다. 구약성경 1318페이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듣기를 싫어하여 등을 돌리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그의 영으로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진노가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나왔도다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한 것처럼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내가 그들을 바람으로 불어 알지 못하던 여러 나라에 흩었느니라 그 후에 이 땅이 황폐하여 오고 가는 사람이 없었나니 이는 그들이 아름다운 땅을 황폐하게 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스가랴 선지자에게 주신 이 말씀을 일거에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거는 그들의 땅, 그들의 백성이 특수하다는 것, 일반적이 아니고 특수하다는 점을 우선 감안하시면 이 말씀이 이해됩니다. 어떤 점에서 특수하냐 하면 이방인들은 하나님께서 상관하지 않습니다. 내어버려두는 겁니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그거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방민족은 보편적인 겁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특별합니다. 그들에게 야부지게 나무라시고 야무지게 심판하시고 그리고 그들이 회개하면 야무지게 축복하시고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사람 같으면 이게 하나의 기상도로 생각한다면 하나님과 그들 사이에 막힌 게 없다고 보고요. 이방민족은 그냥 마귀가 해놓은 황사? 그런 거 같은 게 안개 같은 게 뿌옇게 끼어서 봐도 하나님 모르고 두꺼운 구름층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기 때문에 항상 흐릿한 구름 낀 날씨라 보시면 되고, 이스라엘은 생생하죠. 그래서 이스라엘이 구름이 없이 쨍쨍하게 햇빛이 그냥 쬐니까 하나님의 그 시선 앞에 그들은 노출되니까 그들이 혼나고 있는 걸 보고 우리는 팔짱 끼면서 ‘저들이 왜 호들갑을 떨지? 참 이상하기도 하여라.’ 이렇게 하고 그들이 잘 되면 ‘그들은 자기가 노동해 놓고 왜 모든 영광을 여호와 하나님께 돌리지? 아이쿠, 유난스럽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일을 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 때까지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 오게 되면 이 스가랴 7장 요 본문 말씀이 그대로 어디로 이동하느냐 하면 오늘날 성도한테 그대로 이동해요. 성도에게 이동할 때는 성령에 담겨서 성령께서 툭! 하고 요 본문을 떼서 옛날 이스라엘에게 적용시켰던 그 말씀을 이제 성령 받은 성도에게 그대로 적용을 시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우리보고 또 이야기하죠. ‘유난스럽기도 하다. 뭐 조용하게 믿지, 뭐 저렇게 예민하게 구느냐, 예수님에 대해서 그렇게 민감하게 구느냐, 이상하기도 해라. 우리는 그냥 살아가면 되는데. 왜 저렇게 발작이지?’ 이렇게 똑같은 그런 평을 안 믿는 사람한테 우리가 듣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옛날 이스라엘을 보고 우리는 참 안 됐다고 하지 말고 그런 소리 하려면 우리가 우리보고 이야기해야 돼요. 주께서 우리를 그냥 방치하지 않는다는 사실, 방치하지 않을 때 그 기준이 뭐냐, 오늘 본문 말씀 가지고 그대로 흔들어 댄다는 사실을 우리가 각오를 해주셔야 됩니다. 그러면 흔들어 대는데 기준이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무슨 기준 가지고 흔들어 대느냐 하면 또 알아야 될 것은 뭐냐 하면 구약을 개인중심이 아니고 나라중심이거든요. 나라중심이라 하는 것은 우리가 흔히 아는 천국입니다. 그리고 하늘나라. 하늘나라 백성으로서는 너희는 이렇게 살아야 되지 않느냐, 전체를 전부 다 나라중심으로 하는 겁니다. 그러면 전체가 나라중심이라면 여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내용은 그 당시 국가 이스라엘 지도자들한테 하신 말씀들이예요. 재판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10절에 보면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또 9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라고 돼 있다 이 말이죠. 이런 이야기를 보게 되면 저한테 묻고 싶은 게 있을 거예요. 뭐냐 하면 ‘목사님, 천국 가도 재판합니까?’ 만약에 우리가 오늘날 이스라엘이라면 ‘천국 가서도 이러한 재판 업무를 하게 되면 그게 일종의 노동이고 힘든 일인데 천국 가서 쉬려고 했는데 또 이 일까지 하게 되면 천국 가서 쉬지도 못하고 괴롭습니다. 천국 갈 마음도 싹없어지는데요. 천국 가서 재판해야 됩니까?‘라고 하실 거예요. 미리 결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마음 푹 놓으셔도 됩니다. 왜냐 하면 이 말씀은 우리보고 이걸 하라는 말씀이 아니고 이 말씀이 표준인데 우리는 죽었다 깨나도 이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왜 그렇게 편하죠? 부모가 자식보고 ‘얘, 너 이번에 성적이 몇 등이야?’ ‘10등입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반에서 1등해.’ 그럼 ‘아빠, 너무 부담돼요.’ 하면 ‘내가 너보고 1등하라고 하는 말은 네가 죽었다 깨나도 절대로 1등은 못한다는 말을 하는 거야.’ 할 때 왜 그 듣는 애의 마음이 왜 그렇게 편한지요. 모든 구약의 율법, 말씀은 율법적 기능이 있어서 어떤 인간도 이 율법을 못 지킨다는 겁니다. 그러면 ‘얘야, 너는 1등을 해. 내가 1등을 하라고 해도 1등 못한다는 줄 알기 때문에 1등 하라고 하는 거야. 네가 죽었다 깨나도 1등 못해. 네 머리가 누구에서 나왔는데, 내 머리에서 나왔는데, 내 머리가 1등 못하니까 너도 1등 못해.’라고 아예 단정을 지을 때 그 애가 진짜 시험을 쳤는데 만약에 또 1등을 못하고 또 15등 했다 할 때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래, 역시 나는 안 돼, 1등 못해.’라고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될 거죠. 지금 설교가 이상한 데로 흘러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 난 1등 될 실력이 못 돼.’라고 하면서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되는 거예요. 천국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노래에 이런 노래가 있어요. 사랑한다, 사랑한다는 말은 했지만 그걸 지워버리면 남는 것은 미안하다, 미안하다, 란 그 말만 남는다는 거예요. 박상민이 부른 노래 해바라기 가사에 나오는데, 사랑한다, 사랑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건 껍데기고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사랑한다는 말은 1등 못해서 죄송합니다. 말씀 못 지켜서 죄송합니다. 그럴 때 그동안 우리가 갖고 있던 그 많은 스트레스는 다 날라 갑니다. 우리가 뭔가 쫓기고 있는 인생, 우리가 뭔가 쫓기고 있다는 말은 뭐냐 하면 남한테 기 안 죽으려고 쫓기고 있거든요. ‘나 바보 아니야, 나 등신 아니야, 나 똑똑해, 나 잘난 사람이야.’ 그런 것들이 오는데 그런 것들이 있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반드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압제하게 돼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왔던 산업 자들 압제하게 돼 있고 옌변 사람들 ‘이래서 밥 먹고 살겠니?’ 하는 조선족 사람들, 취직하려는 그들을 무시하지 않게 돼 있어요. 그러면서도 사실은 무시하지만.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누가 제대로 이야기해 줄 때 ‘너는 못해. 이건 안 돼, 너는 될 수가 없어.’라고 할 때 그것이 계속해서 누적되고 쌓이고 쌓이게 되면 ‘도대체 그럼 내가 산다는 것은 누구 덕분에 사는 거야?’ 다시 한 번 누구 덕분에 사는 거라고 바라보면서 그분의 주신 사랑에 보답 못할 때 사랑이란 말 대신에 차라리 ‘미안합니다.’란 말로 그분 앞에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참 모든 면에 죄송합니다. 제대로 영광 못 돌리고 제대로 보답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 말을. 그래서 이 성경 말씀은 바로 오늘날 신약 시대 성도들로 하여금 이대로 어떤 누구도 살지 못하기 때문에 제발 사람들 의식하지 말고 사람들에게 기죽지 말라는 이야깁니다. 같은 인간이 같은 인간을 지배하거나 통치하는 것을 허용하거나 용납하지 말라는 거예요. 아담은 다른 사람을 지배할 권리가 없습니다. 왜,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같은 죄인이 돌을 들고 남을 돌을 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여기는 재판하라고 하는 거예요. 이 말은 뭐냐, 어느 누구도 돌을 들고 남을 재판할 수 있는 자격자나 권리가 없다는 겁니다. 누가 비판하느냐, ‘네가 비판한 그것으로 오히려 비판받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하신 그분만이 장차 우리의 진정한 영원한 재판장이 되는 그 나라, 그 나라가 새 나라입니다. 그게 바로 천국입니다. 천국의 특징은 사람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세상, 정말 멋진 세상 아닙니까? 어른들이 애들 딱지 많이 갖고 있으면 어른들이 그걸 부러워 미칩니까? ‘너는 좋겠다. 딱지 많아서.’ 어른들에게는 딱지는 그냥 폐지에 불과하죠. 현찰이 있는데 왜 딱지를 좋아합니까? 그런데 애들 세계에서는 구슬, 딱지, 이런 것 가지고 마치 부자 된 것처럼 그게 없는 자들을 핍박하고 압제합니다. 그들 나름대로의 세계 속에. 우리 주님 보세요. 하늘에서 주님 볼 때에 ‘돈 없다. 부자 안 됐다.’ 할 때 남들은 우리를 무시하지만 우리 주님 보시기에는 그게 어떻겠습니까? 그걸 무시하는 인간도 나쁘지만 무시당해서 슬퍼하는 인간도 마찬가지로 그것도 문제 있어요. ‘어디서 딱지 놀이해?’ 어디서 세상에서 딱지놀이 하고 있느냐 이 말이죠. 그게 의미 없는데.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에서 가난한 자로 오셨잖아요. ‘나 아무것도 없잖아. 아무것도 없어.’ 그래서 하나님 아들이라는 겁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 천국이 뭐냐를 이제부터 이 본문 가지고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천국 이전에 먼저 천국 아닌 나라가 먼저 등장했습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천국 아닌 자가 있는데 거기 아닌 자의 특징이 뭐냐 하면 창세기 4장 23절에 나와 있습니다. 라멕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자기 아내가 여러 명이죠. 라멕이 자기 아내에게 말하기를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인진대 라멕을 이하여는 벌이 칠십 칠배이리로다”라 하였더라 말이죠. 법이죠. 누가 만들었습니까? 라멕 본인이 만들었어요. 그리고 이야기합니다. “아내들이여 내 소리를 들으라” 이게 엘리트 관료층이죠. 엘리트 지도자입니다. 이게 도시입니다. 고고학적 도시는 약 BC 5000년경에 나타났어요. BC5000년경에 먼저 도시가 나타나고 국가가 나타났는데 이때 농업 혁명이 일어납니다. 그냥 유리하지 않고 정착하면서 농업 생산성이 많아지면서 거기서 생산이 남아돌 때 생산이 남아돌면서 일 할 필요가 없는 자가 등장하면서 그들이 소위 엘리트로 작용합니다. 그들은 남이 노동해서 얻은 자원들을 약탈하고 착취함으로써 그 모아진 힘을 가지고 네트워크, 그 힘을 가지고 다시 조직화해서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더욱 더 상대적으로 빈곤한 층으로 만드는 그러한 일들을 해서 상대적으로 자기가 높아지는 일을 했어요. 이게 마르크스 이론인데 이게 하향이론이라는 겁니다. 국가가 만든 이론에 두 가지가 있어요. 하향이론, 위에서 지배하는 이론, 궁예 같은 경우에 깡패 아닙니까? 궁예가 삼국시대 이후에 돌아다니면서 깡패 짓해서 나라를 만든 나라, 궁예거든요. 옴~ 하는 그 사람 이예요. 하여튼 불교를 동원해서 자기가 메시야, 불교에도 메시야 있어요. 돌아올 재림 부처라 하는데. 하여튼 돌아보면 종교라 하는 것은 다 비슷비슷해요. 이걸 하향구조가 했어요. 착취함으로써 그 국가가 단단하게 유지되는 겁니다. 그들이 착취한다고 다 착취하는 거 아니에요. 그들은 가끔은 일본 말 써서 죄송합니다마는 ‘기마이‘라고 하잖아요. 한번 기마이 해주는데 기마이 하는 날이 언제냐 하면 바로 신에게 제사하는 날입니다. 지금도 그래요. 저 남태평양의 추장들, 종족들이 어떻게 하나의 공동체를 유지하는가 보세요. 기마이를 써요. 기부를 해요. 배려를 해주고 너무 등쳐먹으면 너무 나쁜 사람 되니까 일종의 쥐었다 폈다, 들었다 놨다, 풀어줬다 쪼았다 이렇게 하면서 어장관리를 하는 거죠. 조폭들이 나이트클럽에 돌아다니면서 너무 가져가지만 때로는 술로 푸고 기마이 쓰는 것처럼 뭔가 무상으로 베풀어줌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나서서 다른 종족의 땅과 자원을 착취할 전쟁이 났을 때 ‘네가 그냥 얻어먹은 인간들아, 나의 전쟁에 네가 무기 들고 참전해서 도와줘.’ 할 때 얻어먹은 사람이 입 다물고 가만있겠습니까? ‘형님, 도와드리겠습니다.’ 얻어먹은 게 있기 때문에. 그러니 이 착취이론에 의하면 이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뭔가 베풀어 줄 때는 아쉬울 때 나중에 두 배, 세 배 뜯어먹으려 하는 노림수가 다 있어요. 그게 바로 놀면서 남의 자원을 뺏어먹는 착취이론에 의하면 이게 바로 엘리트 국가 관료들인데 이것이 창세기 4장에 보면 가인의 후손들이 그 짓을 한 겁니다. 이게 마르크스는 맞다고 이야기하고 그 이론 말고 상향이론이 있어요. 위쪽으로 향해서 나오는 게 있습니다. 이게 뭐냐 하면 서로서로 어떤 집단이 효율적으로 유지되려면 우리가 알아서 어떤 어른들, 뛰어난 영웅들을 이렇게 받들어 모셔야 된다는 겁니다. 지난주일 낮에 이야기했지만 왕이라는 것은 자기가 왕 노릇 해서 왕으로 인정해서 왕이 아니고 백성들이 왕이라고 인정해줄 때만 왕이 된다는 이론입니다. 그 이론에 의하면 이건 인간 사회 뿐만 아니고 모든 사회, 인간이 진화론에 의하면 단 세포에 스트로마톨라이트라는 그러한 남 조류에 의해서 이게 새롭게 대기의 산소가 많아지면서 거기서 생물들이 햇빛이 에너지로 변하는 그러한 기능을 하고 그게 조직화되고, 조직화되고 이러면 그때 꿀벌이나 개미 같은 경우에 페르몬이라는 화학물체가 흰개미한테 나오게 되면 흰개미는 그 화학물체에 의해서 소통하고 서로 의존하는 거예요. 재미없죠? 이 이야기. 사회라는 것은, 인간사회를 알려면 개미사회를 보면 된다. 베르나르란 유명한 프랑스 작가가 쓴 개미란 책에 보면 나와요. 개미란 사회 구성원, 성경 잠언 서에도 나옵니다. 구성하는 것이 인간들의 사회 조직과 얼마나 닮았는지 이거는 자발적으로 자진해서 하나의 단체를 만들기 위해서 서로 소통하고 의존하는 거예요. 김장한다 하니까 벌써 다 나와 있잖아요. 전부 다 서로 의존하고 의지할 때 거기에 어떤 뛰어난 사람을 영웅으로 받들어 모심으로써 공동체 유지한다. 이게 상향되는 거예요. 지도자에요. 그러면 그 지도자가 과연 성경에 있느냐? 있습니다. 실제는 없는데요. 그런 의견을 제시한 적은 있었어요. 솔로몬 이후에 나라가 둘로 나눠질 때 남쪽에 르호보암이란 왕이 등장합니다. 솔로몬 이후에 북쪽 여로보암과 르호보암으로 남북으로 우리나라처럼 갈라지거든요. 그 르호보암 왕이 솔로몬 왕과 같이 국가 경영에 참여했던 늙은 신하한테 묻습니다. ‘나라가 어떻게 하면 나라가 되겠습니까?’ 할 때 ‘먼저 왕이 백성의 종이 되시면 백성은 당신을 섬길 겁니다.’ 이건 중국의 노자나 공자 그런 책에도 나와요.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하면 왕이라 하는 것은 백성의 머슴일 뿐이지, 제발 네가 돛대라. 이렇게 왕 노릇 할 생각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했을 때 여기서 우리가 사회 이론에서 인간 철학에서 빼먹은 게 있어요. 국가의 조직에 나중에 다니엘에 나옵니다만 짐승인 악마가 개입한다는 사실을 사회학이나 철학이나 진화론이나 과학에서는 그걸 빼먹고 이야기해요. 처음에 사울은 섬기는 종으로서 왕이 되었습니다. 맞죠? 분명합니다. 그런데 악신이 걸려버리니까 악마의 개입 이예요. 인간들만의 사회라고 생각하시면 큰 오산입니다. 여기 하나님께서는 악마로 하여금 국가 건설에 개입하도록 용납을 하고 허용을 해버려요. 왜냐 하면 악마가 들어간 그 자리에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씀이 들어가고 언약이 들어가고 성령이 들어가서 천국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천국은 인간들 모아놓고 천국이 아니라 먼저 인간들을 점령한 점령군을 건드려서 점령군의 정체를 폭로 과정을 통해서 이 인간나라를 천국으로 바꾸는 작업, 이거 하나님의 작업입니다. 이걸 사회학이나 철학에서나 인간의 학문에서는 이걸 몰라요. 그냥 개미하고 인간이 똑같다 하지. 스탈린이라는 러시아의 독재자는 무려 천오백 만 내지 이천 만 명의 사람을 죽였습니다. 2차 대전 때. 저 로마의 유명한 네오 황제는 로마에 불을 지르고 자기는 시를 지었어요. 북한의 김일성부터 이 사람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숙청했습니까? 이 숙청은 지금도 멈추지 않습니다. 모든 큰 교회마다 숙청이 다 일어나요. ‘내 아들 목사 되겠다는데 반대파 나와.’ 이래서 장로들 목 다 날려버립니다. 대를 이어 충성하겠다는데 반대 하는 사람 나와, 저한테 아들 없는 게 참 다행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ㅎ 모든 사회는 동호회, 낚시회, 바둑 회 관계없어요. 게 모임 어느 모임이든 처음에는 ‘이번 새 회장님 박수로 환영하세요.’ 해서 할 그때는 좋았지, ‘섬기겠습니다.’ 그런데 아파트 부녀회 회장도 처음에는 다 섬긴다고 다 해요. 나중에 하고 난 뒤에 커미션 들어오고 업자들과 엮이게 되면 그 자리 못 내놓습니다. ‘반대파 나와’ 숙청해 버립니다. 라멕? 라멕 이야기 아니에요. 다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선하고 마음속으로 주의 법을 원해도 고아와 과부를 학대하지 않고 바르게 한다 해도 막상 그 자리 앉아 놓으면 ‘감히 나보고 나가라 해? 누구야? 우리교회 이만큼 됐는데, 누군데? 싫으면 네가 나가. 왜 내가 나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목사가 설교를 해요. 이제사 말한다. 이제 말합니다. 이런 것들이 어느 자리에나 다 들어있어요. 모든 조직에 다 들어있습니다. 가정에도 있고요. 그래서 이야기합니다. 이 세상의 어떤 조직이든 천국 아닙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대해서 너무 미련이나 애착, 집착하지 맙시다. 뭔가 이상 사회, 반듯한 나라, 기대하지 맙시다. 정의구현 사제단 되지 맙시다. 세상에 이 세상에 이상 나라 없어요. 그냥 살다가 다 같이 죽읍시다. ‘아! 세상 더럽구나.’ 더러운 이유가 내가 권력이 없어서 더럽다 하지만 내가 만약에 더럽다고 외치고 있는 내가 만약에 그 자리 앉으면 나도 내가 욕했던 자와 똑같이 어떻게 판박이처럼 똑같은 그런 인간으로 돌변합니다. 권력 있고 돈 있는데 미쳤다고 내놓습니까? 그걸, 안 내놓지. 교회 가면 이랬으면 좋겠어요. 목사라는 사람을 집사 시키고 집사하는 사람을 목사 시켜 봤으면. 목사로 그 자리 버티고 있는가. 아니면 더럽다고 뛰쳐나가는지 한번 보자. 오늘 제목이 등 돌린 백성입니다. 당연합니다. 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어요. 남의 이야기 아닙니다. 이것을 성령으로 푹 떠서 오늘날 우리들에게 그대로 입힙니다. 우리가 이 자리 있는 이유는 어떤 말씀도 우리가 지키지 못하는, 악마가 이미 지배하고 있는 그런 인간일 뿐인데 그 자리에다 주의 십자가가 나타나게 하셔서 ‘너는 그동안 악마하고 잘 놀았다.’는 것을 깨우침으로 말미암아 오직 그 십자가 피로만 용서받고 구원받는다는 것을 증거 할 때 그 증거가 지금부터 시작되게 되면 영원토록 천국에서 오직 주님께만 감사한다는 그 찬양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만드신 천국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은 좋다 하면서도 권력 주면 권력 좋다 하고 돈은 별게 아니라고 하면서 막상 돈 들어오면 예수를 버리는 그런 본성을 갖고 살아가는 저희들을 이 시간도 다시 한 번 성령께서 찾아오셔서 세리와 창기 같은 너희 죄인이, 죄인을 부르러 내가 왔다는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기억케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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