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 정리

평소에 나는 누굴 쳐다보며 사는가

아빠와 함께 2023. 3. 6. 18:24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 하셨도다”(대상16;22) 

다윗이 예언하면서 그 백성들에게 선지자와 왕의 입장에 서서 장차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가를 보여주는 그 대목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 왕을 통해서 나타나셨을 때 이걸 언약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너희는 그 언약 곧 천대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할찌어다.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며 이는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대상16;15-17)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나타나는 게 아니고 인물로 나타나는 거예요. 이게 언약이에요. 노아언약 때는 노아로 나타났어요. 아브라함언약 때는 아브라함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삭에는 이삭으로 나타났고, 야곱에는 야곱으로 나타났어요. 언약은 특정 인물로 등장해서 나와 경쟁관계에 있어요.도발적이어야 돼요. 내가 아브라함보다 뭐가 못 났는데 왜 나는 나를 쳐다보는 것을 하나님이 용납하지 않고 아브라함을 쳐다봐야 하는가? 아브라함 지가 뭔데? 이렇게 도발적으로 나온다면 여러분들은 성경을 지금 제대로 이해하고 깊숙이 성경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보셔도 돼요. 성경 속으로 들어가려면 화가 나야 됩니다. 분노가 일어나야 돼요.

 

 “하나님, 나는 내 편한 데로 내 행복을 위해 살겠습니다. 그런데 그 기름 부은 자가 뭐기에 선지자가 뭐기에 어떻게 나보다 중요합니까, 하나님?”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때 그 사람은 제대로 하나님 앞에 사로잡힌 자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좋은 사이가 아니에요. 기름 부은 자, 선지자가 언약이거든요. 이게 다윗언약, 다윗에게 이런 다윗이 기름 부은 왕이고 다윗이 선지자니까요. 그럼 왜 우리는 날 못 쳐다보고 그 선지자, 왕을 쳐다봐야 되느냐, 기름 부은 자를 쳐다봐야 되는가? 

 

“그리 할 때에 삼림의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 주께서 땅을 심판하려 오실 것임이로다”(대상16;33)
삼림의 나무들이 뭐 즐겁다고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는 이유가, 하나님께서 이 땅을 심판하시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심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삼림들이 아주 춤을 추듯이 좋아하고 기뻐하고, 하나님 조치는 항상 정당하고 잘하셨습니다, 이렇게 찬미하는 모습으로 보여주는 거예요.

 

하나님의 언약의 특징은 인물로 나타난다 했지요. 그 내용이 뭐냐 하면 ‘멸종 시나리오’에요. 인류멸종 시나리오입니다. 인류만 멸종당하는 게 아니에요. 모조리 다. 세상을 전부 다 멸종시키려고 하는 겁니다. 멸망시키려고 하시는 거예요. 심판하시려고. 언약에 의하면 우리는 왜 태어났는가? 여기 ‘나’ 있잖아요. 나를 쳐다봐선 안 되고 내가 신을 쳐다보는 것도 우상이죠. 왜냐하면 인물로 등장했는데 우린 추상적인 신, 우상이죠. 허망한 신, 추상적 관념적인 신을 맨날 쳐다보면서 신에게 도와 달라 하는 거예요. 누가? 내가. 그러면 인물과 나는 경쟁관계에 있는데 하나님께선 ‘나’ 출발점을 인정하지 않지요. 인물로부터 출발해야 돼요. 나부터 출발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특정인물로 출발하는 거예요.

 

우리는 망하고 저주받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난 겁니다. 우리가 저주받기 위해서 태어난 것에 대해서 화내지 마세요. 왜냐하면 주님께서 분명히 했어요. 너 쳐다보지 말고 언약을 지니고 있는 그분을 보라고 분명히 언급했으니까 화낸다는 것은 뭐냐 하면 나 쳐다보고 아브라함 쳐다보고 둘 다를 보는 게 되니까 이거는 자기를 부인하는 게 아니죠. 너 아니고 아브라함이야, 너 아니고 이삭이야, 너 아니고 야곱이야, 너 아니고 예수님이야, 너 아니고 다윗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