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을 구성하는 요소로서의 성도
성도는 율법을 먹고 영생을 얻습니다. 그 율법속에는 율법 완성자의 피와 살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즉 율법에 근거하여 제대로 죽은 죽음 속에만 영생이 마련되어 있는 겁니다. 제대로 된 죽음, 이 죽음을 죽을 수 있는 분은 예수님으로 국한되어 있습니다.
성도는 이 사실을 압니다. 자신이 죽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관련되어 있고, 자신이 생명을 얻게 된 것도 예수님의 부활과 관련된 결과라는 것을.
인간 쪽에서는 역사와 시간을 채울 수 있는 일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가 없어요. 일은 율법을 가지고 움직이시는 주님 쪽에서 하시는 것이고 인간은 그로 인해 발생된 일에 바둑판의 돌처럼 움직여지는 겁니다. 돌이 놓이는 장소의 의미를 돌은 몰라요. 그건 돌을 움직이는 주님만 아시지요.
인간은 자신의 잠재된 욕망을 드러내는 가운데 율법의 취지를 살리고 율법의 실제화를 위하여 이용되는 겁니다. 인간이 살고 죽는 것도 다 마찬가지에요. 벌어지는 세상 모든 현상 속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 지는 것 외에 달리 구원을 표현할 길은 없습니다. 즉 말씀이, 율법이 나를 제대로 죽게 한다는 것을 아는 자는 이미 구원된 사람입니다. 주님은 나를 죽이는 방법으로 살게 하시는 겁니다.
언약의 사람은 죽더라도 율법의 취지를 드러내면서 죽어야 하고, 죄 사함을 받더라도 율법의 취지를 드러내고 율법의 취지를 살리면서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도의 죄가 처벌받지 않고 용서가 되는 것은 피의 복수자, 율법을 성취하는 희생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제대로 된 처벌을 받기 위해 대신 등장해야 했던 그 희생물은 제대로 된 죽음, 즉 율법에 합당한 죽음을 치루는 희생자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율법은 완성체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언약과 연관된 일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지 아니하시면 누구도 언약의 혜택을 입을 수 없습니다. 희생물의 반드시 등장해야 하는 거지요. 율법은 그 율법을 따라 처벌받는 자를 대신할 희생물을 만들어 내시는 일까지 하십니다.
선택된 자는 누구든지 “언약을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피로 구원을 받게 되면 그 인생의 주도권이 예수님께 있게 됩니다. 그렇게 해야 전체 인물들이 언약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역할을 맡은 바가 되기 때문입니다. ‘피의 복수자’와 ‘희생물의 된 자’, 그리고 ‘그 희생물의 혜택을 입게 된 자“가 3인1조를 이루어 언약은 세상에 등장합니다.
-아근호목사 ”왕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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