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훈

5강 언약적 변천과정

아빠와 함께 2022. 1. 14. 11:31

5강
언약의 변천과정을 보면 노아홍수에서는 물로 사람을 죽인다. 물로 사람을 죽였을 때 노아 식구도 사실상 죽은 것이다. 땅을 떠났기 때문이다. 땅에 살았던 기억을, 땅과 결별했다. 땅에서 방주로 이동했다. 이 방주를 언약이라고 한다. 땅에 사는 것에 익숙한 그들에게 땅에 살지 않고 방주 안에 살게 하여 노아의 이동경로가 언약의 변천과정과 관련되어 있다. 노아는 어떻게 구원받았는가로 이야기할 수 있고, 노아는 죽는데 왜 죽는 자들과 합세해서 그들 가족은 왜 안 죽었지? 어떻게 살았지가 아니다. 죽어야 하는데 그들은 왜 안 죽었지? 그 때 노아가 하는 말은 언약 때문에 내가 안 죽었다. 언약을 언약대로 살리기 위해 나를 이용했다. 언약이 나를 품어주어서 나를 살린 것이 아니라 언약 자체를 살리기 위해 나를 활용했다. 언약의 주인공은 노아가 아니다.

노아가 주인공이라면 땅의 추억과 기억을 보장했을 것이다. 노아마저 떠나게 했다는 것은 노아가 주인공이 아니다. 언약의 주인공은 방주 안에 있는 거룩한 짐승이다. 새나 양이다. 거룩한 짐승이 나중에 언약의 변천과정에서 중간에 끼어든다. 중간에 끼어든 새나 양이 최종상태에서 인물, 사람이 된다.

여기서 멸망당해야 마땅한 이 사람, 시작은 사람 다루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최종인물과 차이 짓는다. 여기 있는 인물과 현재 우리가 포함된 사람과 어떤 차이가 나는가? 로마서 5장에서 첫째 아담에 속해 있고 둘째 아담은 새로운 인물이다. 언약이 보통 인간에서 하나님이 지목한 인간까지 과정에 언약변천과정을 보여준다.

물로써 죽이셨고, 그 다음 피로써 사람을 죽인다. 방주역할을 피가 한다. 노아가 방주 안에서 살았다고 하지 말고 노아는 방주 안에서 죽어야 되는데 안 죽었다는 것처럼 피 안에서, 정결한 피 안에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피 안에서 그 안에 있는 사람을 죽어야 하는데 안 죽었다. 죽어야 하는 것이 진실이고 안 죽어야 하는 것은 거짓이다.

인간은 출발을 거짓에서 출발한다. 마땅히 죽어야 한다는 것을, 내가 살아야 된다는 것을 진실로 여기고 안 죽어야 한다는 것을 거짓으로 여긴다.

예수님께 속한 사람은 예수님께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진실과 거짓이 어떻게 바뀌는가를 보여준다.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심으로 진실은 거짓이었고 거짓은 진실이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거짓을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너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전해야 한다.

거짓을 진실되게 믿으면 믿음 좋은 것이고 거짓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퇴출당한자다. 노아홍수 전 홍수 온다고 해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것을 거짓으로 보았다. 거짓을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했지만 기생 라합이 내 뱉은 것은 거짓말을 내뱉었고 그 거짓말을 새로운 방주, 안식처로 여겼다. 기쁨으로 스스럼없이 거짓말할 수 있는 이 용기, 이 자유, 거짓을 인정할 줄 아는 자유!

고등학교 졸업 후 복음을 아는 친구와 모르는 친구가 만났다. 어느 쪽이 성공한 사람인가? 취직했는가? 살아야 한다는 진실에 충실한 자다. 다른 한쪽은 고등학교 졸업 후 복음을 들었는데 네가 말하는 것이 다 거짓된데.

주께서 언약의 변천과정에 우리를 그대로 집어넣어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주께로 가는 과정을 그대로 복제 해 버린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 나 위주로 살다가 나중에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이끄시는 대로 가는데 까지 다루시는 분이 계신다. 언약의 변천과정을 통해 다루신다.

야구 스탠드 위에 공을 두면 한꺼번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떨어진다. 위치 에너지로 떨어지면 바닥은 안정 상태로 간다. 위로 올라갈수록 들뜸 상태다. 불안정하다. 하나님께서는 속히 안정 상태로 떨어지게 하신다. 십자가다. 인간이 가장 거짓되다고 자부해서 오신 메시야를 죽였다.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일 때 자기 결정이 옳다고 생각해서 죽였다. 나중에 성령이 와서 너희들의 의, 죄, 심판에 대한 판단이 거짓이었다고 고발한다.

성령이 오셨다는 것은 안정 상태인가 들떠 있는가? 성령 받고 들떠 있는 것을 보면 희한해. 죽어 마땅한 자리가 네 자리야. 안정 상태다. 탄소와 산소가 만나면 산소는 자기의 본자리를 찾아간다. 환원이라고 한다. 탄소는 co2 산화되었다고 한다. 안정을 찾아갈 때 에너지가 방출된다. 이것이 불났다.

불났다는 말은 들뜬 에너지가 밖으로 튀어 나왔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불로 심판하신다는 것은 다 죽여 버리라는 뜻이다. 품지 말아야 할 에너지를 품고 있으니 밖으로 나오니 불이다.

이 세상은 불바다 되어야 할 이유는 본인이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거짓이 진실로, 진실을 거짓으로 보기 때문이다. 오신 메시야까지 죽였다. 복음은 예수님의 존재가 아니라 십자가 사건이다. 예수님의 존재해 놓고 성화 그려 비는 것은 갖바위에 비는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이 언약의 에너지로 내속에 들어올 때 복음이다. 살려주는 대로 살아라. 더 살려고 하지 말고.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에너지 레벨이 더 불안해간다. 원자핵이 있고 전자가 있을 때 전자가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의 띠를 이룬다. 공통점이 진멸하라. 다 죽여라. 언약이 개입되면 들뜬 에너지는 진노로 나온다.

여호수아 11:13-15절
그 가운데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고 또 불로 하솔을 살랐으며 여호수아가 그 왕들의 모든 성읍과 그 모든 왕을 취하여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여호와의 종 모세의 명한 것과 같이 하였으되 여호수아가 하솔만 불살랐고 산 위에 건축된 성읍들은 이스라엘이
불사르지 아니하였으며


언약의 변천과정에서 진멸하는 것이 필수적인 것이 여기에 나온다. 왜 진멸해야 하는가? 하나님과 인간과 좋게 지내면 되지 않는가? 왜 하나님이 인간을 과격하게 다루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반발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대해 여호수아 11:20절에 나온다.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로 저주 받은 자 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진멸하려 하심이었더라

여호수아를 참기름 짜내듯이 짜내면 왜 그렇게 진멸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나는 은혜 줄자에게 은혜 가지 않아야 할 자에겐 가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다. 은혜주고 안 주고가 주님 마음이다. 그들로 하여금 저주 받는자 되게 하기 위함이다.

첫째 시간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야기 한 것은 언약이 말하는 죄악이 무엇이냐? 언약 없이 단독적으로 땅에서 살수 있다는 개별적 의식이 악이다. 언약을 드러내는 표상으로서의 피조물이 아니라 언약이고 뭐고 저리 가라, 나는 내 자체가 주체로써, 실체로써 살겠다고 고집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내 중심으로 살겠다는 것이 언약의 적이다.

여호수아에서 언약의 적은 이스라엘 내부에도 있었다. 여리고성 점령후 아간이 등장한다.
여호수아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그것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이스라엘 이름으로 아간을 돌로 쳤다. 외투 한 벌과 금덩어리를 탐을 내고 취한 아간을 돌로 쳤다. 집단이 개인을 쳤다. 집단이 되어야 될, 하나의 언약 밑에 모든 것이 종속되어야 하는데 아간은 종속되기 싫어 빠져나왔다.

돌로 치고 그 위에 불사르고 그 위에 돌무더기를 크게 쌓았다. 여호와께서 격렬한 분노를 그치시니 오늘날까지 아골 골짜기라, 괴로움의 골짜기라 했다.

일반사람들은 이해가 안 된다. 죽어 마땅함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언약 때문에 겨우 살아남는 것이지, 언약 없이 단독으로 산다는 것은 언약 입장에서는 죽어 마땅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지명한 인물에 비해 우리는 가짜기 때문이다. 가짜가 인간 행세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복음 모르는 것들이 사람 행세하는 것은 가관이다. 백신 맞으세요. 백신 삼차 맞는다고 인간이 되는가? 인간의 어떤 행동도 인간을 변화시킬 수 없다.

에너지가 들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은혜를 은혜 값으로 못 돌리니 하나님께서 불로써 다 태워 버리신다. 옛날에는 물로써 멸했다면 앞으로는 불로써 멸한다. 물과 불 가운데서 백성 될 사람을 피로써 뽑아낸다.

여호수아 5장에 할례가 나온다.
언약의 변천과정에서 하나님이 지정한 인물을 따로 있다. 참된 인간은 예수님뿐이다. 우리는 가짜기 때문에 가짜가 진짜를 가리도록 하나님께 허용치 않는다. 하나님의 모든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이다. 가짜 인간이 인간 행세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진멸하신다. 호흡하는 자는 다 죽인다. 제발 죽은 자로 있어라.

여호수아 5장에 할례가 나온다. 할례는 한마디로 차이짐, 차이남이다. 유월절 사건 일어날 때 먼저 조건이 할례 받는 조건으로 유월절 피를 발라야 한다. 할례 받지 않으면 유월절 피 발라도 소용없다. 할례는 제거한다. 생식기 끝, 혈육을 제거한다. 혈육을 제거하면 빈자리가 된다. 그 빈자리에 예수님의 거룩한 피가 그 자리에 삽입해 들어간다. 참 쉽지요. 너무 쉽잖아요.

로마서 11장에 접붙임이 나온다. 돌 감람나무가 참 감람나무에 젖붙임을 받는다. 성령 받았다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이 돌 같은, 완악한 우리 마음에 쑥 들어온다. 하늘의 요소가 땅의 요소 속에 개입된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만 주시하는가? 하나님은 자기의 것이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가를 보신다. 그것 당기니 비엔나 소시지처럼 줄줄이 거기서 구원받는다. 성령은 예수님의 영이기 때문에 나의 영이 될 수 없다.

나는 개별자다. 성령은 예수님의 개인의 영이기에 공유하는 것이지 독점할 수 없다. 오순절 성령이 올 때 불의 혀같이 오셨다. 죽어 마땅함을 미리 경험하는 자다. 성령 받은 자의 특징은 어떻게 살아요가 아니라 내가 왜 살아 있지, 그 희한하네.

희한한 일이다. 어떻게 내가 매일 살아 있지. 두려움에서 신기함으로, 범사에 감사로 이어진다. 두려움에서, 내가 어떻게 살지? 그런데 내가 왜 살아있지? 신기함. 주의 일에 가담하게 되었다. 감사.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했음을 감사한다. 천국의 특징은 단수에 모든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엮여져 있다. 개인이 있을 수 없다. 우리밖에 없다.


할례, 이제부터 시작합니다.
할례는 제거하는 것이다. 제거할 때 피가 발생된다. 할례 언약은 출애굽기 4장에서 십보라가 아들 할례를 한 후에 모세에게 던지니 모세가 죽었다가 살아났다. 애굽에서 내려가는 모세가 죽었는데, 죽은 모세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대로 가 봐야 죽은 모세요. 이 모세는 언약의 운반체로 애굽에 들어 가야된다. 애굽에는 언약이 없다. 차이남이 거룩이 되기 때문이다. 차이남은 다른 차원에 계신 하나님이 개입할 때 일어난다. 이스라엘을 보라 하늘의 요소가 들어왔잖아요. 추가 되어 들어온 것이 아니라 땅의 것이 거짓이고 죽어 마땅함이 하늘의 요소로 파악된다.

신나는 일이다. 남이 없는 것을 갖고 있는 것이 얼마나 뿌듯한가? 전에도 이야기 했지만 신보라 개그우먼이 이 모든 것을 십자가 지신 예수님의 은혜라고 했다. 보통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데. 진짜 복음을 안다면 제가 왜 이 상을 받아야 됩니까? 신기하여라. 상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나로 하여금 십자가 일에 참여시킴을 아는 것이다. 상 받아서 감사가 아니라 십자가가 유효하게 계속 작동함을 감사하는 것이다.

피가 나면서 죽은 모세는 언약 운반체로 등장한다. 그래서 십보라가 모세에게 당신은 피남편이라고 한다. 당신에게는 할례 언약이 있는 남편이다. 하나님의 차이나는 백성으로 애굽에 들어간다.

할례 행한 사람들이 언약궤를 운반해야 한다.
여호수아 5:2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할례언약은 피를 내는 것이다. 그러면 피는 하나님의 율법이다. 언약이다. 할례언약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의해서 인간의 육적인 것은 제거되었다. 여호수아 1장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을 설명할 때 율법을 지킨다 할 때 미리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로 살면 그 율법은 우리 대행해서 움직이고 우린 그 안에서 율법만 의지하여 따라가게 된다. 냄비가 움직일 때 그 안에 쥐나 고양이가 있다. 드러나는 것은 율법만 드러나고 너의 육은 할례 언약을 통해 없는 것으로 여겨라. 율법이 너를 지배했기 때문에 전쟁할 때 율법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니 진멸이 가능하다. 노아만 살았든 이유가 노아는 언약안, 방주 안에 있기 때문에 죽어야 되는데 살았다.

노아는 자기 집에 산 것이 아니라 방주에서 살았다. 나의 것이 없다. 방주의 주인공도 자신이 아니라 정결한 짐승이었다. 나중에 나와 제사를 드렸다.

할례 언약을 행한다는 것은 율법이 모세를 주장한다, 지배한다, 통치한다, 예속되었다는 관점에서 들어간다. 모세가 들어가 다수가 따라 나온다. 육십만 명. 이러면 모세를 따라 나온 것이 아니라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따라 나왔다. 모세 죽어도 여호수아가 있으니, 여호수가 죽어도 괜찮다. 사사가 있다. 율법이 언약변천과정에서 인물을 바꾸면서 언약은 새로운 양상을 보인다. 지금은 율법의 완성이 십자가다. 십자가로 완료가 되었기에 어떤 상태에 있든지 드러나는 것은 십자가뿐이기에 율법적 기능을 다할 수 있다.

율법을 가지고 애굽에 들어간다. 애굽의 바로고 마주나온다. 할례 언약은 혈육과 관련되어 있다. 유월절 피를 바르지 않을 때 받는 징벌은 무엇일까? 둘째 아들 죽는다. 첫 딸 죽는다. 집에 개 죽는다. 맏아들을 죽이셨다. 이스라엘도 맏아들이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맏아들은 하나님께 새로운 빈자리로 내어 주어야한다. 새로운 족보노선이 갈라진다.

할례언약의 원형은 아브라함 언약이다. 하늘의 차원과 땅의 차원을 최초로 연결시킨 사람이다. 인간들 쪽에서 자기 이름을 하늘에 닿고자 했다. 하나님께서 차단하시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셨다. 그 준비 과정은 할례 언약이 되어 있다. 할례 언약 다음에 주어지는 것이 할례언약의 완성 인물이 이삭이다.

이삭은 유에서 난 자식이 아니고 약속을 따라 난 자식이다. 로마서 4장에 나온다. 아브라함이 자식을 원할 때, 모든 인간은 나를 닮은 자식을 나의 자식으로 원했다. 그렇게 알고 있다. 하나님도 그렇게 알고 계신다. 알고 계시면서 여기에 하나님께서 변칙을 가하신다.

네가 사랑하는 아들을 내게 받치라. 할례언약을 행세함으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은 네 혈육에서 나오는 이스마엘이 아니다. 할례언약과 동치. 언약구현 인물이 이삭이다. 아브라함에게 구세주는 이삭이다. 없는데서 있게 하고 이삭을 죽은데서 살렸기 때문이다. 할례 언약을 입구로 해서 언약 깊숙이 들어간다. 언약의 최종자리까지 들어간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이란 인간이 공간적으로 좌우로 이동하면서 시간이 지연되기 시작한다. 아무생각 없을 때는 시간 가는지 안 가는지 모른다. 어떤 목표, 계획이 있으면 시간이 초조하게 된다.

이삭은 난지 팔 일만에 할례를 받았다. 그전에 이스마엘,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았다. 여호수아 5장에서는 단체로 할례를 받는다. 할례는 개인적이 사항이 아니고 단체적이다. 하나의 할례언약에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들어가서 할례를 행했다. 할례라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지 적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런데 적들에서 이것을 요구한 사람이 있다.

창세기 34:25절에 디나가 강간당했을 때 레위와 시몬이 할례를 요구하여 삼일에 성읍을 엄습하여 죽였다. 할례를 고통을 주어 죽이기 위해. 적들에게는 할례가 용납이 되지 않는다.

야곱이 축복할 때 레위와 시몬에게 벌을 주는데 너희에겐 땅이 없다. 언약 취지를 놓쳤기에 약속의 땅에 살 가치가 없어. 타 지파에 얹혀 얻어먹고 살아라. 언약 위반했을 때 그 다음 언약은 위반을 제대로 보일 수 있는 증거로써 시몬, 레위의 성깔을 사용하신다.

복 받았다. 다만 까불면 맞는구나. 언약을 내 편의 위주로 사용할 수 없다. 성도끼리 주의할 것, 난 십자가 아는데 십자가로 콕콕 찍으려 한다. 십자가는 누굴 이기고 승리하려 함이 아니다. 자기 자존심 챙기는데 십자가 이용하면 안 된다.

할례언약은 제거가 되어 빈자리가 되고 빈자리에 언약이 실린다. 여호수아에서는 언약궤가 실린다. 광야에서는 할례를 행하지 못했다. 그래서 여호수아 5장에서 할례를 행했다.

여호수아 5:9절에 길갈 지명이 나온다. 굴러갔다. 엄마 김천 지명의 이름이 뭐야? 굴러갔다. 옛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민족은 할례가 없고 이스라엘은 할례가 있어야 하는데, 차이가 나야 하는데 차이가 없었다. 하나님 보시기에 수치다. 그래서 떨어져 나갈 것이 떨어져 나가게 하기 위해 길갈에서 집단적으로 떨어져 나가게 했다.

드디어 빈자리가 있는 이스라엘이 되었다. 하나님의 언약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된 존재가 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전쟁에 나가게 된다. 독일 사람들이 유대인을 색출할 때 바지를 내려 확인한다.

여호수아 5: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언약의 변천과저에서 언약과 결부될 때 언약백성이 되고 장차 한 인물, 왕에 예속된 백성이 되는 방법을 하나님이 사용하신다.

이렇게 굴러갔다면, 빈자리에 언약궤가 들어온다면, 아브라함 시대는 멜기세덱의 족보가 들어온다. 이 땅에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다. 멜기세덱에 흡수통합이 되면 이 땅의 아비나 어미를 잊어버려라. 너의 너됨은 부모의 DNA를 받아서 된 것이 아니라 그것 외에 따로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서 네가 하나님의 백성 됨을 멜기세덱 족보를 통해서 언급된다. 멜기세덱 족보가 결합된 장소고 바로 할례 언약이다.

여호수아 5장에 보면 만나가 그쳤다. 광야시절 끝났다는 말이 아니라 광야시절을 만나 없는 상태에서 지속할 수 있는냐는 묻는 것이다.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 곡식을 먹었다. 이스라엘이 있는 한, 할례가 있는 한 유월절은 반복된다. 피를 내는 제사에서 반복된다. 할례언얀은 인간의 몸에서, 제사에서는 제물에서 피가 나온다. 피를 말미암아 진멸당할 쪽과 건짐 받을 자만 건져내는 언약원칙이 나온다.

그러면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사건을 건진다. 죽었다고 살아나신 주님, 그 사건을 본질로 하는 새로운 종족의 탄생이다.

만나를 그쳤으니 이스라엘이 다시는 만나는 얻지 못한다. 이제부터 만나 없는 광야생활이 시작된다.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왔다. 하늘나라의 천사장이다. 군대의 종류가 몇 종류인가? 지상에서는 이스라엘, 천상에서는 군대장관이 인솔하는 천사들의 부대, 마하나임. 어느 것이 주력부대인가? 땅인가 하늘인가? 하늘이다.

여호수아 5:15절에 신발을 벗어라고 한다. 여호수아가 거룩하지 않다. 그러니 신발을 벗어라. 거룩은 종속관계다. 개인적으로 거룩은 존재하지 않는다. 빈자리에 거룩이 들어올 때 거룩이 된다. 내가 빈자리 가졌다고 거룩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할례 행했다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할례언약의 완성이 들어와야 거룩하다. 신발을 벗어라.

신발은 군대 장관이 가져간다. 신발은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라는 용도다. 우리가 신발 신는 것이 아니라 신발에 우리가 얹혀사는 식이다. 거룩이 이동하는 경로에 따라 따라와. 그 뒤의 전쟁은 어떻게 되겠는가? 언약을 앞장세우는, 율법을 앞장세우는, 거룩을 앞장세우는 전쟁이다. 할례 없고, 율법 없는 자들과 어떻게 진행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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