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강
하나님께서 전쟁할 때 할례 없고 언약 없고 율법 없는 그들과 어떻게 치르는가? 여호수아 7장을 보면 여리고성을 치는 전쟁을 하게 된다. 이스라엘을 할례를 행했다. 할례를 행한 자리에 언약궤가 실린다. 할례를 한 입장에서 그냥 언약궤만 앞장세우면서 들이 미는 것이다. 언약궤 들이미는 방식에 대해서는 민수기 10:35-36절에 나온다.
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궤가 쉴 때에는 가로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천만인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상자가 무엇인데, 아무것도 아닌 상자가 이동함에 따라 적들이 물러가는가? 궤에 대해서 집중할 때는, 언약에 대해서 집중할 때는 자기 자신에게는 어떤 무기도 없음을 전제로 해야 된다.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없어야 된다.
시편 20:5-7
우리가 너의 승리로 인하여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기를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바 기름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 오른손에 구원하는 힘으로 그 거룩한 하늘에서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칼과 힘과 병거를 갖고 본디오 빌라도가 나올 때에, 이스라엘도 예외가 아니다. 이렇게 나올 때에 여호와의 이름을 자랑한다. 이것이 말이 안 된다. 공간적 좌표에서 X,Y좌표 어디에 있는가? 실체가 있다는데 어디에 있는가? 주님께서 공중에 떠 있으신가? 미륵보살인가? 칼, 창, 말, 병거는 물체다. 활 모두 사물이다. 사물이란 에너지 집약이다. 장소가 좁으면 에너지 압력이 높아 잘 뚫고 나간다. 스티로폼으로는 때로도 아프지 않다. 단면적이 넓어. 뾰족해야 잘 들어간다. 이것을 민족들이 안다.
그런데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긴다. 너무나 구체적이지 않다. 그러니 이방민족이 볼 때 여호와의 이름을 거론하는 자체가 인식의 벽이 생긴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에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기자가 아니라 교인수로, 헌금 액수로 이기자고 한다. 남을 기죽이자는 식이다.
이것이 왜 잘못되었는가? 헌금액수 교인수로 왜 안 되는가? 세상의 모든 권력은 한쪽이 올라가면 한쪽이 비게 되어 있다. 로또에 담첨되었다는 것은 한쪽이 날렸다. 주식 대박 났으면 한 쪽은 날렸다.
한쪽은 모르다. 돈 벌었으니 기분 좋다. 주식이 울렁울렁 거린다. 오를 때가 되었으니 모두 주식투자하세요. 이것은 인공지능이, 유명수학자가 추천했다. 그때 왕 몰리는 순간 훅 떨어진다. 인간 세계란 희한한 것이 모든 것이 허상인데 사람은 실체로 본다. 실체로 알고 가보니 푹 꺼졌다. 예를 들면 오늘 내말 안 들으면 분명 일 터질거야. 아무리 봐도 일 날일 없다. 그냥 엄포다. 이 추운 날 나가지 말라고 엄포했는데, 아무리 봐도 일 날 일 없어. 후딱 갔다 올게. 일 났다. 마스크를 안 썼다. 아무 일 일어날 것이라는 것에 대응한다고 마스크를 안 썼다. 평소에는 마스크 잘 쓰는데. 일 날 것이라는 말이 일 나게 만들고, 주식 대박 날 것이라는 것이 폭락하게 만든다. 인간은 허상이다. 함부로 덤볐다가 다 같이 허상으로 드러난다.
칼, 창 물질의 무게, 그 무기로 자기를 공격받는 식이다. 기드온 전쟁이다. 사사기 7장이다. 여호와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사물화 된 것이 언약궤다. 여호와의 이름은 언약궤에 있다. 여호와의 이름이 언약궤에 있기에 언약궤를 이용하려고 한다. 그러나 언약궤 가는 곳에 여호와의 이름이 가지 않는다. 하나님은 인간의 말을 안 듣는다. 인간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안 듣고, 기도 안하면 주님께서 기도 응답해 주신다. 그러니 기도하라. 내 기도가 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가를 알게 하기 위해 기도하라.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하라고 압박이 들어온다. 기도했는데 소용이 없다. 처음부터 소용없는 기도를 했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 여호와께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현존이다. 하나님이 있다는 것은 내가 있으나 마나한 존재일 때, 현존이 떠오른다. 인간은 고집이 있어 하나님은 허상이고 내가 실상이기에 어지간해서 기도하지 않는다. 기도하라고 목 조르면 결국 내가 허상인 것을 자인한다. 이것을 통해 주께서 살아계신 실체로서 활동하신다. 보라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
너무나 모호하고 애매하고, 구체적이지 않고 실감나지 않는다. 함께하는 존재는 육하원칙 하에.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여섯 가지 조건에서 존재가 확인되는데 이것을 거부하시고 계신다. 주님은 어디 계시는가? 내 조건을 아무짝 소용없게 만드는 자리 여기에 계신다.
여호와께서 이미 군대장관을 보내셔서 여호와께서 계시는 땅이다. 이스라엘은 차지해야 전쟁에 이기는 것으로 생각한다. 전쟁의 무기는 언약궤다. 그런데 언약궤로 해도 이스라엘의 인식이 난감하다.
길갈에서 실로, 실로에서 세겜에 멈추어 있다. 북방 쳤을 때 세겜에 안착함. 언약궤 이동여부와 전쟁 승부와 관련이 있는가? 관련 있다.
실제적인 무기는 나팔이다.
사사기 7장에 기드온 전쟁에서 미디안 135000명을 삼백 명이 이긴다. 기드온의 칼이 삼백 명의 나팔수다. 삼백 명이 간 것은 칼 잡고 싸우라는 것이 아니라 나팔 불라고 삼백 명을 모집했다.
이 나팔은 출애굽기 19장에 시내산에서 아무도 올라갈 수 없는 하나님의 산에서 나팔소리가 들린다. 아무도 없는 곳에 누가 계신다. 하늘에서 천사들이 나팔을 불었다. 데살로니가 4:16절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예수님께서 강림하실 때 땅에 있는 자들이 휴거하는데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코스이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항상 사다리. 헬리콥터의 레펠을 잡으시고 끌고 가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오셔서 가신 코스 그대로 걸려 들 사람이 걸려든다. 하늘에서 나팔 소리가 들린다. 출애굽기 19:13절
손을 그에게 댐이 없이 그런 자는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거나 살에
쐬어 죽임을 당하리니 짐승이나 사람을 무론하고 살지 못하리라
나팔을 길게 불거든 산 앞에 이를 것이니라 하라
출애굽기 19:18-19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나팔을 불려면 누가 불어야 된다. 하나님께서 나팔소리는 곳에 계시다는 뜻이다. 그 나팔이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 내려올 때 나팔도 함께 이동한다. 민수기 10:3
두 나팔을 불 때에는 온 회중이 회막 문 앞에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요
하나만 불 때에는 이스라엘 천부장 된 족장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
시내산에서 모세가 하나님과 만났다. 하나님과 모세의 관계가 성립되려면 율법이 체계가 되면서, 하늘 설계가 땅에 내려오면, 하나님께서 그 체계를 따라 땅에 내려오시는데, 회막, 만남의 장소가 된다. 하나님과 인간의 만나는 유일하게 만나는 장소가 회막이다. 그 회막 안쪽에 궁금해서 들어가면, 지성소에 언약궤가 있다.
시내산에 있을 때는 회막 설계도, 언약궤 설계도가 있다. 이 주변에 나팔소리가 들렸다. 그러면 회막이 땅에 오면, 길갈, 실로, 세겜으로 옮기면서 주변에 천사들의 군대, 곧 이스라엘로 대체할 때 이 안에 관계가 나팔소리로 소집해야 된다. 제사장이 나팔을 분다는 것은 하나님의 군대여 소집하라. 우리에게 내리는 명령과 지시는 제사장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시다. 제사장은 파이프 불과하다.
그러면 언약궤 이동마다 확대된다. 레이다 망이 중부, 남부, 북부로 확대된다. 스텔스도 다 여기에 걸리게 되어 있다. 미리 진멸할 수 있는 증거, 근거를 나팔소리와 함께 찾아낸다. 퍼뜨린다. 민수기에 제사 지낼 때 나팔을 분다. 민수기 10:18절 레위기 25:9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지며
시내산에서 있었든 일을 땅에서 재현하라. 시내산에서 있었든 그 상황이 재현되면 모세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태도, 어떤 자세로 하나님과의 만남이 가능했는가? 모세는 어떤 장치에 걸렸기에 감히 하나님과 독대할 수 있었는가를 땅에서 실현시킨다. 그것이 바로 제사다.
모세와 하나님 사이에 어린양의 피가 들어가니 독대가 가능했다. 모세는 물에서 건져냄을 당했다. 어릴 때부터 출생의 비밀이다. 모세를 뒤따라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 운명의 복제다. 그들도 홍해를 건너왔고 요단강을 건너왔다. 육적으로 도저히 건널 수 없는데 그곳을 통과해 왔다. 그렇다면 이것은 사람이 통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건너오니 이스라엘이 뒤따라 온 것이다.
홍해를 건널 때 모세가 건너게 했는가, 모세의 지팡이인가? 모세의 지팡이다. 지팡이가 있는데 모세가 있다. 모세는 지팡이 종속적 존재다. 지팡이 없으면 열 가지 재앙, 홍해 가르는 것, 반석에서 물이 나오지 않는다. 지팡이를 자신이 지배한다고 생각했기에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모세는 하나님과 만났으면 모세 본인을 증거하면 안 된다. 우리가 우리를 증거하면 안 된다. 나는 하나님과 어떻게 되었는가, 십자가 피로 화해되어 종이 되었다면 십자가를 증거해야지, 십자가 믿는 나를 증거하면 오히려 십자가를 가리는 것이다. 나팔을 불므로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이 가능하고 그 성사가 차이남, 거룩한 백성이 된다.
하나님이 이 땅을 진멸할 때 자기 구역 영토에 해당되는 사람은 구원, 구별하여 살려내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약속의 땅에 쳐들어가게 한다. 땅 차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언약이 얼마나 유효한가를 실습시킨다.
나팔은 제사장이 언약궤 앞에 모든 사람을 소집할 때 부는 것이 나팔이다.
그런데 사사기에 들어가는 십일조를 내지 않으며 레위인들이 온 곳으로 돌아다닌다. 안 먹히니. 백성들이 땅이 있으니 살만하다. 이방민족들이 사는 방식으로 살고 싶다. 그들이 잘 사는 이유는 왕이 있다. 그러면 우리도 왕이 필요하다.
인간의 왕이 하나님과 인간을 만나게 해 주는가? 인간의 왕이 나팔 잘 부는가? 인간의 왕이 제사 지내는가? 아니다. 인간의 왕이 들어갈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이름, 장차오실 예수님, 예수님의 희생으로 살려 주신다. 하나님의 언약의 현존, 하나님이 여기 계심을 드러내기 위해 이스라엘을 만드셨는데 이스라엘 배부르니 버리고, 아쉬울 때는 부르짖는다.
사사시대 기드온에게 전쟁을 시킨다. 그러면 레위지파는 소용없다. 사사에게는 성신이 추가된다. 성신은 언약의 현존성의 종이 되도록 주는 그러한 능력이다.
언약이 바뀌면 성신도 기존 언약 종속된 성신이 아닌 바뀐 성신이 주어진다. 골리앗을 사울이 이기지 못했다. 사울이 왕이 될 때 성신이 임했다. 사울이 왕이 될 때 성신이 임했지만 골리앗을 이기지 못했다. 골리앗을 이길 때는 다윗이 등장한다. 사울에게는 악신이 다윗에게 성신이 온다. 언약의 이동에 따라.
성령은 무엇이냐? 이미 최종 확정되었다. 더 이상 새로운 언약이 없다. 십자가로 고정되었다. 구약에서는 언약이 이동적이다. 트럭을 운전해 전달해야지. 언약은 십자가로 완성될 때까지 이동 중이기에 성신은 그때그때 달라요. 없다가도 있고 있다가고 없어진다.
구약 때 언약은 율법, 율법이 완성하기 전에 율법적 작용에 따라 성신이 주어진다. 성령은 이미 율법이 완성되었다. 완성된 상태에서 성령이 온다. 성령 받은 사람은 율법 지킬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수시합격후 수능칠 필요 있는가? 칠 필요 없다. 합격했잖아요. 왜 치는가? 실력 자랑하려고. 사람은 성령을 성신으로 이해한다. 시험 치면서 도와 달라고 한다.
율법이 완성되었기에 너는 개고, 안개고, 쥐뿔도 아무것도 아님이 확정되었다. 시험쳐봐야 빵점의 연속이다. 십계명 지킬 수 없게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율법 못 지키는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사랑 이웃사랑 못함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십자가를 가리지 않는다.
지키면, 노동에 관심을 갖는다. 나의 노동을 검토하고 측정하게 되어 있다. 측정이란 사물이 멈추었을 때 나오는 것이다. 붙잡아서 측정한다. 시속 50인데 90이다. 경찰 차 앞에 멈추었는데, 지금 속도가 0인데, 그렇게 말하면 카메라 찍힌 순간을 볼까요? 당신 90나왔네. 그 때는 그때고 지금은 0인데 왜 벌금을 내라고 하는가? 그때는 맞는데 지금은 아니잖아요.
변화에 대해서 인간이 해석할 능력이 없다. 인간이 자아를 생각할 때 자기를 멈추고 측정하기에 틀렸다. 내가 나를 측정하는 것은 모조리 인정받지 못하는 오답이다. 그런데 우리는 오답에 휘둘린다. 그 이유는 타인의 시선 때문이다. 타인이 나를 멈추어 측정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에 타인의 욕망이 들어있다. 너는 우리 가문의 영광이다. 타인의 욕망에 맞추어 준다고 하니 나도 선악체제로 측정을 하니 선악체제를 못 버린다.
성령이 임한 이방인들이 의인이 되었다. 여기에 대해서 예루살렘에 있는 꼬장들, 유대인들이 화를 낸다. 이방인이 뭔데 율법을 쓰레기 취급해. 이것 때문에 화가 났다. 그래서 나는 율법도 지켜봤고 성령도 받은 사람이 등장한다. 사도바울이다. 서울대학교도 나왔고 하버드도 나왔고 최재천 교수. 사도바울은 율법도 지켰봤고, 성령도 받았다. 그런데 저쪽은, 꼬장은 성령을 받아보지 못했다. 그러니 성령을 모독했다고 화를 낸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누구에게 화를 내는가? 자기 선배격인 베드로에게 화를 낸다. 아직도 할례언약이 십자가로 완성된 것을 모르는가? 의를 드러내기 위해 율법을 주셨다. 이미 성령을 받아 의인 되었다. 의인되었는데 왜 수능을 치게 하는가? 왜 그런 시선으로 이방인들을 비난하는가? 복음이란 어떤 누구로부터 비난받는 것이 깨끗하게 청산된 것이 복음이다. 아무도 너를 정죄하지 말라. 왜 나 자신이 나를 정죄하는가? 타인이 신자인가? 남의 장단에 맞춘다고 주님이 주신 십자가의 은혜를 모독하고 있다.
성령 받아 놓고 성신 받은 자처럼 살지 말라. 성령 받았는데 율법 지키려고 하지 말라. 율법은 누가 지키는가? 율법 지키라고 다른 한 분을 따로 세웠다. 이분 외에는 율법 지켰다는 소리 하지 말라. 그분 오셔서 모든 율법을 자기 것을 수거해도 주님이 다 지켰다. 우린 그분의 공로를 믿습니다. 이 말은 내 공로는 없다. 도려낸다. 성령이 오면 주님의 공로가 나의 성과와 공로를 날마다 도려낸다. 가위로. 또또 자랑거리 있으면 또 도려낸다. 남들이 네 신자인가? 난 불신자다. 그녀는 내 여자다고 왜 말을 못하는가? 왜 우리는 진실에 대해서 화끈하게 못하는가? 그 이유는 어릴 때부터 타인의 안목과 시선에 놀아났기 때문이다. 세상과의 화해하기 위해서다.
화해는 이성적 조치가 아니다. 주님의 비극적이 사태, 십자가를 받는 것이 화해다. 타인과 좋게 지는 관계는 사람을 이용하는 관계다. 모든 인간의 만남은 폭력적이다. 가다가 건드리고, 오면서 건드리고.
2학년 2반 친구가 한마디만 했으면 되는데. 네가 날 알아. 몰라. 그러면 안 건드리는데. 참아야 하느니라. 뭘 참아. 인간은 만나면 좋은 친구가 아니라 모든 만남은 폭력적이다.
기드온 전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기드온 전쟁에서 주님께서 이만 이천 명이 왔을 때 어떤 절차를 보여준다. 삼백 명 될 때까지 과정을 보여준다. 기드온은 약간의 걱정을 없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상대가 십만 명이 넘으니,
기원전 6000년부터, 아라랏산, 흑해근처 아리아 유목민이 1700년 경 인도 점령할 때 마차를 갖고 점령했고, 이집트도 마차로 점령했다. 무기가 얼마나 발달했는가? 그러면 이 전쟁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레위인들은 기대할 것이 없고. 기드온에게 성신이 왔다. 성신이 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 앞에 소집한다. 하나님의 군대장관등 모든 보이지 않는 군대들은 기드온에게 집중한다. 하나님의 적은 둘이다. 하나는 미디안 135000도 적이고 이스라엘도 적이다.
주님이 들어오면서 이스라엘다운 이스라엘과 이방민족, 거짓된 이스라엘이 갈라진다.
이미 시간적으로 차이가 없는 하나님의 군대장관과 마하나임. 나팔을 부니 미디안 군대가 자신들의 칼과 창에 찔려죽었다. 이스라엘 군대 삼백 명에게는 칼이 없다. 기드온은 칼이 없고 여호와도 칼이 없다. 칼이 없는 여호와가 적들을 칼에 찔려 죽는 방법이 무엇인가? 본인들을 미치게 만든다. 적을 분간 못하게 혼란에 빠뜨린다. 내가 가진 주식, 돈, 부동산이 나를 지옥으로 보낸다. 내가 가졌다, 채웠다는 것으로 타인을 찌르려고 한 것이, 이기려고 한 그것이 자신을 파멸로 보낸다.
그래서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여러분 가운데 재산 3500억 이상 되는 사람이 있는가?
부자가 천국가기 어렵다는 말을 현장에서 제자들이 들었다. 모든 인간은 천국 못 간다고 이해했다. 모든 사람들이 부자 되기를 원한다. 부자가 못 가면 부자 되려는 사람도 못간다. 아무도 구원받지 못한다. 이제는 하나님이 나설때다. 하나님이 건지면 구원이 된다. 하늘의 요소가 지상에 십자가로, 성령을 통해서 하늘의 요소를 주셔서 구원하셨다. 이렇게 되면 문제가 거꾸로 올라간다. 부자도 당당하게 천국 간다. 엽기적 그녀 영화를 보면 고등학교 졸업 후 술집에 들어갈 때 당당하게 들어간다.
부자인데 당당하게 천국에 들어간다. 주께서 그렇게 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부자가 자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돈이 있음이 다 이루었다 함이 아니다. 재산 있음이 다 이루었다함이 아니다. 성령 받지 못한 사람은 타인이 욕망에 관심 있기에 나 부자다. 하나님과 인간 만남의 관계를 가능하게 했던 체제를 누락시킨다. 체제에 이바지 하고 종속되어 하는데 나 따로 칼, 총, 재산, 부동산 가지고 나 이렇다, 나 건들지 말라가 되면 그 가진 것이 자기를 파멸시키는 이 방법이 진멸의 원칙이다.
나팔이라는 것은 내 백성 다 모이라고 소집하는 것이다. 나팔 부는 장소는 모세가 하나님과 만난 장소, 그 체제에서, 하나님의 언약궤와 성막 설계도가 있는 자리, 모세 언약, 율법, 제사법이다.
제사장이 나팔을 분다. 여호수아가 불지 않는다. 여호수아는 사라질 존재다. 모세율법이 있는 한 제사장은 있다. 제사장이 있다는 것은 나타난 왕이 필요치 않고 왕이 없음을 감사하는 체제가 전쟁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속해서 알려준다.
무기란 인간 대 인간이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싸움이다. 싸우는 이유는 내 백성만 남기도 나머지는 진멸한다.
여호수아 11:20
그들의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그들로 저주 받은 자 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진멸하려 하심이었더라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의 일관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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