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회자료

2017여름2강-이스라엘과 국가 170730 이근호

아빠와 함께 2017. 8. 7. 12:49
2017-08-05 10:53:33조회 : 30         
2017 십자가마을 여름수련회 제2강-열왕기상 강해:이스라엘과 국가이름 : 한윤범 (IP:119.192.174.155)

2017 십자가마을 여름수련회 제2강-열왕기상 강해:이스라엘과 국가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첫째 시간에 ‘와’라는 말을 했지요. 뒤쪽에 있는 요소가 토대가 되어서 전체 의미를 포함시킨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여기다 적용시키면 유다나 이스라엘은 전부 다 표면적으론 국가에요. 국가기 때문에 앞에 선지자를 놓고, 선지자와 국가, 두 번째 시간 제목을 붙인다면 이렇게 되겠지요. 저주받을 국가가 되면서 선지자는 하나님의 천상회의, 하나님의 숨어계신 뜻과 관련돼있지요. 하나님의 뜻을 그냥 전하는 것이 아니고 현재 있는 모든 인간들의 국가가 망한다는 요소를 토대로 해서 비로소 숨겨진 하나님의 비밀이 마지막 때 드러난다 이 말이에요.

 

방금 이야기하니까 쉽지요. 쉬운 걸 왜 그렇게 어렵게 했느냐고 할 텐데 여기에 국가 자체를 두고 인간들의 내 국가는 구원받고 네 국가는 멸망 받으라는 과정을 반복시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애굽은 멸망당하지만 이스라엘은 구원받는다. 이스라엘과 애굽이란 요소로 열왕기까지 끌고 와요. 다시 말해서 애굽 나라는 멸망 받아 합당하지만 이스라엘은 택한 민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언약대로 살핀다, 라는 착각, 오해를 끌고 솔로몬까지 온 겁니다. 솔로몬에서 나라가 둘로 갈라지지요. 유다와 이스라엘. 갈라지니까 하는 말이, 이스라엘은 멸망해도 유다 나라는 영원할 거라는 오해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신약에 와선 유다고 이스라엘이고 인간에서 나온 모든 나라는 전부 다 멸망하고 맙니다. 이 세상에서 멸망하지 않는 나라는 없어요. 처음부터 멸망하기로 기획 잡았어요. 그러한 작전을 가지고 주께서 오신 겁니다. 망해야 될 인간이 망하는 것, 그걸 너무 서러워하거나 노하지 마세요. 정작 우리가 안 망하려는 것이 주님의 뜻을 몰라서 그래요. 얼추 이 정도하면 망하는 것을 보류해주세요, 봐주세요, 라고 나온다면 우리는 아직도 우리 자신에 대해서 무식하다는 결론밖에 없어요. 망해도 철저하게 망해야 돼요.

 

세리와 창기가 너희들보다 먼저 천국 간다 할 때 주님의 그 의미는 뭐냐 하면, 너희들이 개무시하는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다. 하나님 나라가 ‘와’라는 원칙에 의해서 솟아나는 현장이 된다는 겁니다. 요한복음 4장에 유명한 사마리아 여인이 나오지요. 그 여인과 대화하는 이유가,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을 무시하기 때문에 그래요. 예수님의 취지를 이제 아셨습니까? 다 같이 망하면서 나는 괜찮을 거라고 여기는 그런 인식들이 아직도 우리한테 있기 때문에 너희들이 밀쳐낸 거기, 누구든지 가기 싫어하는 그 상황을 유일한 구원의 장소로 삼아버립니다.

 

빌립보서 2장 5~9절을 보면, 주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포기하시고 낮아지는데 어디까지 낮아지느냐? 십자가에 죽기까지 낮아졌어요. 그 이유가 뭐냐? 아무도 나서서 하나님이여 저를 버려주시옵소서, 할 자가 없는 거예요. 모든 인간은 신과 결부되어 마지막 날에 구원받아볼까 하는 그런 심성이 내포돼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내친다면 저는 기꺼이 지옥 가겠다고 솔직하게 진지하게 나설 위인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중보자가 아니에요. 메시아가 될 수 없는 거예요.

 

주님 생각, 하나님 생각 백날해도 우회해서 결국 자기 걱정, 가장 깊은 곳에 자기 위로하고 자기 격려하는 것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로 갈 때 반드시 붙는 게 있어요. 누구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 다음에 자기를 미워하라. 사랑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미워하라고 언질을 주는 것은 자신을 미워하면서까지 구원이 되는 상황이 오거든 이것은 자기 솜씨가 아님을 분명히 증거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럼 우리 자신을 미워해야 구원받는다면 미워하는 방법은 뭐냐? 주님의 ‘와’라는 복음의 원칙을 하게 되면, 지독하게 여러분 자신을 사랑해주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버릴지언정 자기 자신을 버리지 말아야 돼요. 그걸 세 자로 사가지라 하거든요. 가장 사가지가 가장 구원에 가까운 현장이 되는 겁니다. 의인 척하게 되면 안 돼요. 사가지도 왕사가지. 오직 자기밖에 모른다는 사실을, 나는 나밖에 모르는 것을 여러분 삶의 목적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게 목적이 이끄는 삶이에요.

 

이 정도로 나는 내가 최고라는 것을 조금도 더 철저하기를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보다 내 사랑에 일체 어떤 이론의 여지가 없음을 확실한 방법이 있어야 돼요. 정말 못 돼먹은 우리를 주께서 건졌기 때문에 많이 용서받은 자가 많이 사랑을 느끼고 표현하는 겁니다. 사랑은 그렇게 표현되는 거예요.

 

다시 이야기해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집어넣어서 인간들이 잔뜩 기대하는 국가를 한꺼번에 집어넣습니다. 그러면 선지자는 어디 있는가? 여로보암 2세 때 요나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BC 722년 베가, 요세아 죽을 때 그 앞에 호세아, 아모스가 등장합니다. 그 다음에 650년경에 아하스 시대와 이스라엘 멸망과 비슷하게 가요. 밑에 가면 드디어 히스기야 시대부터 이사야 나옵니다. 미가도 약간 늦춰서 나오고. 아몬 시대는 나훔, 요아스 시대에는 선지자들이 막 쏟아집니다. 왜냐하면 유다가 멸망하기 때문에. 스바냐, 하박국, 예레미야.

 

유다의 멸망이 BC 586년입니다. 537년까지 에스겔, 다니엘. 537년 이후에 학개, 스가랴. 438~435 말라기. 그리고 사백 년 동안 선지자가 없다가 BC 4년경에 예수님이 탄생하고 세례요한이 주어지는 거예요. 여기에 훌다라는 다른 소수 선지자도 있습니다만.

 

결국 이스라엘 나라는 멸망하는데 이스라엘은 멸망하지 않아요. 희한해요. 왕 중심의 이스라엘 나라는 멸망하는데 선지자가 품고 있는 장차 마지막 때 열두 지파로 등장할 새로운 이스라엘은 기지개를 폅니다. 선지자를 등에 업고서 등장합니다. 그중에서 에스겔을 인자라 했지요. 다니엘도 인자라 합니다. 특히 다니엘 선지자는 국가를 짐승으로 보고, 짐승에 올라탄 인격체, 인물을 왕이라 해요.

 

여기서 뭘 알 수 있느냐? 짐승의 국가는 비-인격이에요. 비-인격과 놀랍게도 인격이 만납니다. 이건 인간의 세계에선 성립될 수 없습니다. 국가는 비-인격인데 비-인격을 다니엘서에서는 짐승으로 전환시킵니다. 짐승은 악마의표상이거든요. 비-인격이 인격으로 넘어온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냐? 피아노가 말을 한다면 기절할 거예요. 건물이 눈물을 흘린다. 놀랄 겁니다. 어디까지나 사물이거든요. 물체잖아요. 물체가 사람처럼 되느냐? 그 방법을 설명하면 이렇게 됩니다.

 

아까 쉬는 시간에 누가 어렵다고 해서 제가 지금 고민이 되는데, 이게 어렵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이라서 그래요. 인격이 비-인격화 되려면, 우리가 인격, 사람이 물체, 사물로 바뀌면 가능해져요. 여러분 이런 건 적지 마세요.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냥 적으면 제가 곤란해요. 설명도 안 했는데 적으면.

 

하나님께서는 인물, 쉽게 사람이 물체가 되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중간에 죽음을 집어넣습니다. 출애굽기 31장 14절에 보면, 안식일에 나무하는 자는 죽으리라고 돼있어요. 그 말은 이스라엘 속에 죽음이 삽입돼있어요. 죽음이 되면 인간은 뭐가 되느냐 하면, 아담이 흙이죠. 흙이란 물체가 됩니다. 그냥 자살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율법이 주어져요. 안식일에 나무하는 자는 인간이 아니고 흙이 될 것이다. 율법이 통과하면서 율법 자체가 인격화됩니다.

 

어떤 식으로? 안식일에 죽는다. 안식일에 죽으면 이스라엘이 죽어버려요. 이스라엘이 죽으면 이스라엘이 날아가 버립니다. 날아간 이스라엘 대신에 새로 생기기 위해서 어린양으로 제사 드려서 죄인을 용서하면 인격이 나오는데 어떤 인격이 나오느냐? 마땅히 물체가 돼야 될 용서받은 새로운 피조물로 등장하게 돼요. 새로운 피조물이 하나님이 구상한 새로운 인격의 등장입니다.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진 어린양이라 했단 말이에요. 아무리 봐도 예수님이 양으로 돌아다닌 게 아니잖아요. 그 양은 인간이란 흙덩어리가 마치 자기가 하나님이 인정한 인간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본래의 모습, 흙덩어리로 돌리는데 그냥 돌리면 소용이 없잖아요. 구원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을 동행해서 환원시켜요. 같이 껴안고 죽고 다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게 되면 사흘 만에 살아나게 된 정보가 함께 죽어야 마땅한 인간 속에 이미 잠재적으로 내장돼있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노출되게 돼있단 말입니다.

 

아까 뼈 이야기했지요. “에스겔아, 이 뼈들이 살겠느냐?” 이게 왜 살아요. 그리고 뼈는 그냥 뼈로 둡시다. 아니야. 뼈가 하나님의 군대가 돼야 되고 이스라엘이 돼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애초부터 죽이지 말지, 이러거든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뼈에서 건져내는 이유는, 그들의 중요한 것이 아니고 뭔가 어린양으로 통과하면서 살아나는 인격의 머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구원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래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그리스도를 증거 함이지 우리 구원받으려고 주신 책이 아닙니다. 인간을 사랑해서 구원할 것 같으면 애초부터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지도 않았어요. 에덴동산 안에 맨션아파트 이만오천 채의 택지를 마련하는 거예요. 그리고 선악과 다 없애버리고. 혹시나 뱀을 발견하시거든 경찰에 신고하시고. 이 좋은 낙원에서 사랑하는 피조물을 계속 살려내면 되잖아요. 주님의 의지는 강렬합니다. 너는 인간 아니다. 나가라.

 

나가라 해놓고 의지가 얼마나 강렬한지 혹시나 구원받고 싶어 되돌아올까 싶어서 천사들이 불 칼 들고 오는 골목마다 다 지킵니다. 에덴의 동쪽에서 다 지킵니다. 그 지키는 이유가, 나는 인간보다 생명나무 과실이 더 중요하다는 취지입니다. 인간보다 지키고자 하는 것이 따로 있어. 그건 생명나무에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했잖아요. 예수님이 인간보다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위해서 피조물이 있지 피조물을 위해서 예수님이 있진 않거든요.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우릴 위해서 있지 않고 예수님을 위해서 있다고 내가 고백하면 뭐 줄 겁니까? 이렇게 나와요. 하여튼 꼼수의 대가들이에요. 우리가. 제가 성경대로 진리대로 이야기하면 저한테 뭘 주실 겁니까? 손해 보는 장사 못하겠다고 나온다니까.

 

첫째 시간에 유다와 이스라엘이라 할 때 뒤쪽의 요소가 앞쪽에 있는 의미를 새로운 의미로 추가하기 위해서 통합시킨다고 이야기했지요. 첫째 시간의 제목은 유다와 이스라엘, 이번 제목은 이스라엘과 국가. 둘 다 ‘와’가 들어가요. 기존에 모든 국가라 할지라도 마지막 때에 완전체로 등장할 나라를 위해서 너희들은 멸망당해야 되는 거예요. 멸망당할 것 만들지 말지 멸망당하는 과정 속에서 주께서 새로운 것을 뽑아내는 재료들이 거기서 나오기 때문에 그래요. 멸망될 자를 멸망시킬 원리가 없는 데서 새로 만들어내는 원리로 완성이 된단 말이에요

 

더 쉽게 말해서 십자가에 죽지 아니하면 비록 예수님이라도 주가 아니에요. 반드시 주가 되려면 죽었다가 살아나야 주가 됩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 점을 이해 못해요. 그냥 성자로 존재하면 존재로서 동일성이 유지되지 않는 것 아니냐고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여기 있다. 계속 줄곧 잘하세요. 예수님이 계신데 그 존재가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고 다시 부활하신 분이 그 존재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되네.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입니까? 십자가가 복음이지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 아니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가 우리를 구원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신 십자가의 효과, 능력으로 구원받는 거예요.

 

존재가 돼버리면 뭔가 있다는 뜻인데 있어버리면, 그 있음을 있다고 이야기하는 우리도 병행해서 있어줘야 돼요. 그럼 있음은 절대로 죽으면 안 돼요. 살아서 있다고 해야 있음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기 때문에. 말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진화론에서 우주는 왜 있느냐? 우주가 여기 있다고 이야기할 그 인간을 진화의 최정점의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서 우주는 존재한다고 현재 천문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우주가 왜 존재하느냐? 우주는 인간이 우주라고 말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거예요. 호킹 박사가 그렇게 이야기해요.

 

이게 뭘 빼뜨렸느냐 하면, 나는 죽어 마땅함이 완전히 삭제된 거예요. 우주가 왜 있는지 천문학자들이 무지하게 이야기했지요. 이것만 무지한 게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도 무지해요. 삼위일체 왜 계시고, 예수님은 왜 계시고, 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습니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나라는 존재를.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 사람들이 그 노래 부르면서 그들이 복음이라고 장착하는 게 뭐냐 하면, 나 여기 있고 예수님 거기 있다는 겁니다. 무슨 드라마 대사 같아.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고. 둘이 사귀면 구원받는다는 거예요. 선교단체에서 그렇게 이야기하죠.

 

사도 바울은 그렇게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너희는 이미 죽었고 너희 안에 그리스도가 산다. 존재가 아닌 기능으로 이야기해요. 너라는 것이 있는 이유는, 이미 죽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너라는 게 있다는 거예요. 갈수록 미궁이라서 나도 감당을 못하겠네.

 

말의 내용과 말하는 사람의 내용이 서로 달라요. 예를 들어서 나는 죽었다고 말하려면 나는 반드시 살아야 있어야 돼요. 내가 죽었으면 내가 죽었다고 말할 것도 없잖아요. 예수 그리스도가 죽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죽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있어야 돼요. 예수님은 자기 생각밖에 할 줄 몰라요. 우리가 생각하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죽일 때 그들의 이데올로기에요. 여호와가 있는데 네가 뭔데 그것을 부정하느냐? 그래서 예수님을 죽인 겁니다. 오늘날 교회와 똑같아요. 하나님을 믿겠다는 게 뭐가 나쁘냐? 우리가 피조물로서 창조하신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왜 그게 나쁜 것이냐?

 

그럼 복음은 그게 나쁘지 않다면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느냐? 이렇게 물어요. 십자가에 죽는다는 말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 어느 누구도 십자가에 의미를 존재 이유를 아무도 몰랐다는 증거가 십자가 죽음이에요. 심지어 열두 제자까지.

 

오늘 낮 설교에서 그런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되지도 않은 영어를 쓰면서 하는 말이 베드로가 하는 말을 그대로 해야 돼요. “난 저 사람을 모른다. 난 저 사람을 저주한다.” 이게 교회라고요. 예수 믿자, 이게 교회가 아니고. 이것은 그렇게 외치는 자기 존재에 대해서 자기를 부정 못하는 고집 같은 거예요. 좀 느긋하라 했잖아요. 당당하라 했잖아요. 베드로와 같은 코스를 밟지 아니하면 영생 없습니다. 사랑받았는데 베드로는 자기 존재를 생각했고 그런데 인간의 존재란 다니엘에 의하면 짐승 속에서 눈에 보이는 국가지요. 국가는 권력체를 말합니다.

 

권력체에 두 종류가 있어요. 상상적 권력체와 상징적 권력체가 있는데 상상적 권력체는 사회주의를 말합니다. 우리는 서로 평등하고 누구 대장 없이 서로가 돕고 서로가 협력하는 두레마을 같은 거죠. 상징적 사회는 이런 좋은 일하기 위해서 일반 백성과 차이 나는 특수한 계급을 인정해야 된다. 그래서 현재 국가는 명목상은 상상적 사회에요. 인간 위에 인간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상징적 사회에요. 어디 국회의원을 무시하고. 국회의원 되고 난 뒤에는 을로 취급하잖아요.

 

유대 나라가 처음에 애굽에서 나올 때는 상상적 나라인 줄 알았어요. 여호와가 하나님이고 어떤 누구도 그 앞에서 평등하다. 이런 식으로 온 거예요. 그게 이스라엘의 진짜 공동체의 원형인 줄 알고 있단 말이죠. 상상적 사회가 상징적 사회로 바뀌는 거예요. 모세가 모든 걸 지도하는 거예요. 상상적 사회에서 상징적 사회로 바뀌는 경위가 출애굽기 32장, 모세가 산에 올라가서 십계명 들고 왔을 때 십계명이 뭔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지 모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방민족 파티를 열었던 거예요. 그래서 돌 판을 깨버렸습니다.

 

깨고 난 뒤에 하나님과 모세가 새롭게 계획을 재조정 들어갔는데 이제부터 모세 말 듣지 않으면 다 잘린다. 그걸 민수기 20장에서 고라 자손이 너는 무슨 통뼈냐. 애굽에서 나올 때 너나 나나 똑같은데 네 집안은 대장질 다하고 그러냐. 우리도 하나님 백성이니까 이 정권을 물리치고 새로운 혁명을 일으키세, 하다가 다 죽었어요. 불타서 죽었다고.

 

구약에 보면 인간 세계가 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국가체제를 다 깔아놨어요. 세상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인문학은 해답이 없어요. 그냥 갈 때까지 가보는 거예요. 개혁주의신학도 해답이 없어요. 누적된 진리가 보다 진리다울 것이라고 우기면서 마지막 최종적인 것은 가봐야 알지 장담 못한다. 이게 개혁주의신학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을 개혁주의신학을 증거한 게 아니고 십자가를 증거한 거예요. 이미 완료됐어요. 주님이 십자가를 앞장 세워서 모든 것을 구원할 겁니다. 일방적으로, 협의 없이.

 

상징이란 말이 상당히 어려운우면 쉽게 설명하면, 상징은 그 사회에서 인정받는 것, 승인받는 것. 승인 안 받으면 혼자 상상하겠지요. 혼자 상상하는 걸 상상계라 합니다. 얘들이 말을 지 마음대로 해요. 상상계죠. 그런데 언제부터 아빠, 엄마가 말을 그렇게 해선 안 되고, 우리 얘가 어릴 때 냉장고를 띠띠꼬라 해요. 처음에는 봐주죠. 상상계니까. 그런데 승인이 돼야 되니까 냉장고를 띠띠꼬라 하면 학교를 못 들어가잖아요. 그래서 가정부터 상징계로 바꿔야 돼요. 승인 받아야 돼요. 띠띠고라 하지 말고 냉-장-고.

 

그런데 얼음 얼리고 냉장고라 하는 것은 어디서 왔는가? 바깥 세계에서 냉장고로 통하는 겁니다. 특히 시장경제에서. 냉장고 사러 가서 선풍기 주세요, 하면 그래서 선풍기 주니까 이것 말고 저것. 저건 냉장고에요. 나는 그걸 냉장고 하지 말고 선풍기라 하고 싶다. 지 혼자 그러면 뭐 합니까? 물건도 못 사는데.

 

저건 이름이 뭐죠? 이름이란 그 사람을 죽여 버리고 이름을 부과함으로써 사물을 내 손에 쥠으로서 나는 그 사회에 일원이 되는 것이 이름 붙이기고, 그게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이 아담 중심으로 세계를 이끌기 위해서 고양이나 강아지라고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 거예요.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그 사물에게 의견을 묻지 않는 거예요. 일방적이에요. 우리 돌아가신 할머니가 코끼리를 보고 저건 코 길이기라고 해요. 내가 알기론 나의 학교 상징계에선 코끼리로 알고 있는데 가만 보니까 일리가 있어요. 코 길이기를 빨리 하니까 코끼리 되는 거예요.

 

각자의 상징계에서 진리는 뭐냐? 전통입니다. 전통은 가정에서부터 출발해요. 가정들이 모아져서 가정 같은 국가를 이루는 겁니다. 가정 친화적인 국가가 성립되면서 어버이 같은 지도자를 원해요. 위대하신 태양 같은 어버이수령 동지가 있잖아요. 어버이수령이에요. 저쪽에. 박정희 대통령은 어버이 같은 분이에요. 옆에 있던 육 여사가 만백성의 어머니기 때문에 그래요. 그때 이천 만 사람들이 육영수 죽을 때 울었어요. 그때 난 안 울었지만.

 

정서상 가정이란 것을 못 벗어나요. 그러나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천하 자식이나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너희 원수는 집안 가족이고 그걸 끊어버려라. 누구든지 자기 가족을 사랑하고서는 하늘나라에 합당치 않다. 주님께서 맞아 죽은 이유를 아시겠지요. 그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해 못하고 죽였다면 그 인간이 바로 우리들이에요.

 

따라서 우리는 그 말씀을 지킬 수 없는 거라고 마태복음 10장에 기록된 거예요. 제발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납득해서 수용하란 말이죠. 통뼈도 아닌 게 어떻게 지킵니까? 태어날 때부터 우린 상징계인데 그걸 어떻게 지킵니까? 갈수록 말씀 하나 못 지킨다는 걸 점점 더 확인하면 되는 거예요. 그것도 못합니다. 말씀 못 지키는 걸 확인하는 것. 제일 쉬운 거예요. 진짜 복음이다, 정말. 기쁜 소식.

 

다시 이야기합니다. 상징계에서 국가에 통하는 진리는 전통입니다. 되지도 않는 가문의 여자가 오면 소위 뼈대 있는 가문의 시어머니가 뭐라 합니까? 어디서 근본도 없는 것들이. 이게 우리 집안의 진리는 전통이에요. 어디서 간병인으로 와서 펄프회사 회장까지 차지하고 주식 자기한테 돌리고. 그게 품위 있는 거예요? <품위 있는 그녀> 드라마 이야기거든요. 근본도 없는 것들이 와서 회사를 다 집어먹었어요. 왜? 전통이 전통 값을 못하니까.

 

그래서 영국에서는 관습법이 헌법보다 더 위에 있습니다. 전통이에요. 전통을 우리가 지키는 게 아니에요. 전통으로 둘둘 삼아놨어요. 우리 신체를. 제가 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어딜 봐서 말씀을 지킵니까? 그게 말이 안 된다는 거예요. 기존에 우리가 백지 상태가 아니거든요. 빈 진공상태가 아니에요. 꽉 들어차 있어요. 빈틈없이 새로운 게 들어올 여지도 없어요. 거기다 말씀을 집어넣는다는 것은 튕기게 돼있지, 수용하게 돼있는 게 아닙니다. 말씀을 만약에 지켰다면 이건 분명히 관습으로 전환된 거예요. 엉터리 의미를 부여된 겁니다. 내가 우리 집안 잘 되기 위해서 내가 잘 되기 위해서 의미를 왜곡해서 합치시킨 거예요. 거짓말입니다.

 

언어라 하는 것은, 인간이 언어가 되기 위해서는 사물을 죽인다는 말은, 강아지를 물체로 만들었어요. 내가 강아지라 하면 강아지야. 끽 소리하지 마. 이걸 사전에 협의한 적 있습니까? 없어요. 일방적이에요. 왜 아담으로 하여금 짐승 이름 짓게 하느냐 하면, 네가 이름 짓는 방식처럼 하나님이 아담에게 이름을 부여했다는 겁니다.

 

아담 그리고 아담, 이게 X냐, O냐? 이건 O에요. 왜? 뒤에 아담, 선악과 따먹고 내가 사람이라고 여긴 그 사람은 저주받아야 되고 저주받는 방식을 통해서 미지의 아담이 나오도록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끄시는 거예요. 미지의 아담이 두 번째 아담이에요. 로마서 5장에 두 번째 아담이 누구냐?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요. 그래서 먼저 아담은 오실 예수의 표상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사람이 있지만 모든 사람은 아담 안에서 하나로 통합이 돼요. 아담₂, 아담₃, 아담₄, 아담이란 속성을 못 벗어나요. 아담이란 이름의 속성에서 못 벗어나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는 속성에서 못 벗어나요.

 

그러면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여자 이름은 하와니까 하와는 생명을 얻을 게 아니냐고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여자는 남자한테 지배받고 복속당하도록 했어요. 창세기 3장에서. 이 말은 생명에 해당되는 여자는 없고, 마이너스 남자에요. 남자를 보좌하는 또 하나의 남자. 여자 같이 생겼지만 실은 남자. 그래서 여자는 본래의 여자는 잃어버리고 어쨌든 간에 남자 되기를 원하는 거예요. 남자를 선망해요. 이것은 자진해서 굴복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설교에서 그랬잖아요. 여자는 남자를 쳐다보고 남자는 명분을 쳐다보고. 다른 말로 해서 남자는 자기의 명분을 쳐다보고 여자는 옆에서 명분을 보는 게 아니고 그 남자를 쳐다보고. 이게 창세기 3장에서 마주하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모든 여자는 족보에서 여자 이름이 들어가지 않아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는 거예요. 낳기는 여자가 낳지만 자식은 누구 소속이 되느냐 하면, 남자의 소속, 아버지 소속으로 다 넘어가는 겁니다.

 

이 세상은 남자의 세계에요. 무슨 세계“ 흙의 세계, 죽음의 세계에요. 죽음의 세계니까 오실 예수님은 남자 없이 태어나기 때문에 생명의 세계를 죽음의 세계에서 끄집어내는 겁니다. 그래서 없는 여자, 여자의 후손으로서 예수님이 오시는 거예요. 믿거나 말거나.

 

이런 이야기가 진짜에요? 구라가 아니고 사실입니까, 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는 사도 바울에 의하면 십자가에 죽었던 그분이 주님께서 사흘 만에 부활시킨 거예요. 이게 부처와 소크라테스, 맹자와 다른 점이에요. 보통 인간과 다른 점입니다. 성경 달달 외우고. 아까 제가 왕 이름 외우니까 신기하게 여겨지지 않습니까? 맨날 밥 먹고 할 게 그 짓밖에 없으니까 당신이 외우지 하는데 이런 걸 외울 때 요령들이 있어요. 여러분도 선지자니까 노하우를 알려줘야지.

 

북쪽입니다. 여로보암, 나답, 바아사, 엘라, 시므리, 오므리, 아합, 아하시야, 여호람, 예후, 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 2세, 스가랴, 살룸,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 호세아. 외우는 방법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지 그걸 이야기하는 거예요. 우리는 어슬프다 했잖아요. 저는 이것을 어떻게 외웠느냐 하면, <친구>란 영화가 있어요. 그 영화에 유명한 대사가 있거든요. 거기에 대입시킨 겁니다. 여로보암이니까 어이 나와봐. 에이시 걸렸네. 오아아. 그게 아니고 여기 예. 여로보암 2세는 같은 거니까 집어넣고. 선생님, 살살 하이소. 어차피 영화 찍는 거니까 “너거 아버지 뭐 하시노?” 우리 아버지 베호라예. 그럼 다 외워져요.

 

유다 쪽은 음란해요. 음란이고 뭐고 복음을 위해선 그런 건 문제 될 것도 없습니다. 너무 음란한데. 르호보암, 아비얌, 아사, 여호사밧, 여호람,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므낫세, 아몬,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긴, 여호야김, 시드기야. 이건 어떻게 외우느냐 하면, 여기 19세 이하 있습니까? 없지요. 너하고 나하고 여자 아를 가지고 여관에 들어갔는데 요가 없는 거라. 요가 아웃 됐어요. 요아 하니까 주인이 안 듣는 거예요. 힘은 히스기야+므낫세, 힘을 주어서 아요 하니까 주인이 여여여, 에이시 하고 끝났어요. 원래 음란한 것은 빨리 외워져요. 아담의 죄기 때문에.

 

어쨌거나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이렇게 할 때 중간에 선지자들이 양쪽으로 엘리야, 엘리사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수고하고 요시야 시대에는 여호야다 제사장 아들 스가랴는 피 흘려 죽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벨과 스가랴의 피가 나한테 적용한다고 했어요. 인간은 역사가 전부에요.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게 전부입니다. 더 이상 다른 것 생각하지 마세요. 거기서 생존하는 게 전부고 내가 목숨 부지하는 게 전부에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 틈을 째고 천상회의와 하늘과 관련된 분들이 선지자의 이름으로 국가를 찢어버리죠. 찢어버릴 때 내가 전부라고 여긴 그 이름, 그 요소, 그 부분, 내가 바로 십자가의 원수라는 사실을 구약이나 신약이나 한 결 같이 같은 언약을 통해서 깨달을 때 세리와 창기도 구원받는다는 나는 의인을 부른 게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그 원리가 성경 전체의 원리로 통합이 되는 겁니다.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