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

[re] (복음 아닌) 현실 저항적인 내부의 이질성을 드러내는 글 한 편... (이준)060209

아빠와 함께 2013. 3. 3. 11:51

[re] (복음 아닌) 현실 저항적인 내부의 이질성을 드러내는 글 한 편... 
이준   2006-02-09 17:36:20, 조회 : 194, 추천 : 15

                                                                          교회

                                                                                                                                                글    김규항

출처 : 김규항, 김정란, 홍세화, 진중권(2000). 아웃사이더를 위하여. 서울 : 아웃사이더.

술자리에서 내가 기독교인임을 밝히면 사람들은 당황한다. 그런 자리에서 그런 얘길 꺼내는 일이 웃기는 데다 나라는 인간이 도무지 교회 나가는 사람처럼 보이는 구석이 없기 때문일 거다. 사람들 짐작대로 나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기독교인이다. 아이가 경기라도 하면 나는 며칠 사이 지은 죄를 떠올린다. 나는 예수에 의지한다. 내가 가진 단출한 지식과 사상을 통틀어 예수의 삶만큼 나를 지배하는 건 없다. 나는 진정으로 사회주의를 소망하고 내 나머지 삶을 연관시키려 하지만 사회주의가 인간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주의는 인간의 영혼을 따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며 나는 기독교인이다.

내가 처음 교회에 나간 건 중학 2학년 때였다. 교회는 나더러 믿으면 축복 받는다고 약속했는데 그 믿음의 세기와 축복의 양은 정비례한다고 했다. 믿음이란 교회에 열심하는 것이고 축복이란 돈이나 명예, 건강 따위의 것들이었다. 교회는 욕망으로 물든 담장 밖을 말했지만 실은 담장 밖의 욕망에 찌들어 있었다. 교회는 언제나 영혼을 말했지만 영혼을 얻는 일이 돈을 잃는 일이라면 그마저도 없었을 거였다. 머리가 커가면서 나는 교회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나는 제 새끼만 챙기는, 내 아버지보다 더 이기적인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여전히 교회에 다녔지만 교회가 내 삶에 끼치는 영향은 적어져 갔다. 교회에 다님으로써 일어나는 삶의 변화란 교회에 다니는 일 외엔 없었다.

내가 한신에 들어간 건 우연이었다. 나는 그곳이 문익환이나 장준하 같은 거인을 배출한 곳이라는 것, 인권운동의 젖줄이자 민중신학의 본산지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마쳤을 때 내 관심은 오토바이와 음악, 그리고 여자에만 있었다. 내일이 없는 삶을 하루하루 태워가던 건달이 그래도 대학을 다니라는 권고를 받아들였을 때 나는 한신에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머리통이 뒤집어지는 충격을 받았다. 교회의 사회 참여, 정의의 하나님, 비천한 자들의 예수, 한 소년의 삶에조차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던 교회가 세상의 한 가운데서 세상의 바닥을 갈아엎고 있었다. 나는 비로소 내가 기독교인임을 사랑하게 되었다.

보수 교회의 건물에 진보 교회를 칠하는 일은 무리였다. 경악한 목사와 장로들은 내게서 청년부 회보를 만드는 권한을 빼앗았고 나는 교회를 나왔다. 아버지가 눈물을 보였지만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친구 소개로 찾아간 교회는 작았다. 목사는 알려진 소설가였고 50명 남짓한 신도는 지식인들이었다. 나는 지쳐 있었고 새로운 교회의 진보적이고 지적인 분위기는 잠시 나를 편안하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다시 교회를 의심하게 되었다. 광주항쟁 3주기가 되는 예배시간. 목사는 감동적으로 설교했다. 목사가 눈물을 흘리자 신도들도 울기 시작했다. 예배가 끝나도 흐느낌은 그치지 않았다. 땡. 교단의 종이 울리고 목사는 웃으며 야유회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신도들은 이제 야유회에 맞는 얼굴이 되었다. 장소에다 회비까지 정해지고 드디어 신도들은 개운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갔다. 교회는 한줌의 양식과 사회의식을 마스터베이션하고 있었다. 징그러웠다. 나는 교회 문 앞까지 왔다가 되돌아가기를 거듭했다. 나는 청년부 총무였고 두달 만에 교회를 나갔을 때 회원들은 해명을 요구했다. 내가 그들을 바라보았을 때 그들은 모두 내 눈길을 피했다.

교회에는 예수 대신 맞춤식 예수상(像)들만 모셔져 있었다. 나는 신학을 공부하려던 나의 소망을 접고 입대했다. 그곳에서 세 번의 살인과 세 번의 자살을 생각했고 김씨 성을 가진 여자를 떠나보냈으며 김씨 성을 가진 창녀에게 구혼했다. 이제 십년이 더 흘러 나는 며칠 후면 서른 여덟이다. 나는 이제 나보다 다섯 살이 적어진 예수라는 청년의 삶을 담은 마가복음을 읽는다. 내가 일 년에 한 번쯤 마음이라도 편해 보자고 청년의 손을 잡고 교회를 찾을 때 청년은 교회 입구에 다다라 내 손을 슬그머니 놓는다. 내가 신도들에 파묻혀 한 시간 가량의 공허에 내 영혼을 내맡기고 나오면 그 청년은 교회 담장 밑에 고단한 새처럼 앉아 있다.

 

**십자가마을의 입장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조심스레 옮겨 봅니다.
**아래 유시민 관련 기사에 대한 나눔을 보면서 생각이 나서...
**글쓴이의 좌파 노선에 동조해서가 아니라...그저...그저...윗글 말미에 표현된 "새처럼 고단한 예수님의 모습"만을 톡 따와서...그런 예수님의 모습이 나 자신 때문이라는 현실이 내 마음을 찡하게 했기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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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복음 아닌) 현실 저항적인 내부의 이질성을 드러내는 글 한 편... 
이근호   2006-02-09 18:07:09, 조회 : 200, 추천 : 7


감상적인 사람에게는 동정심이 걸림돌이 되고

현실적으로 냉정한 사람에게는 타인의 성공담이 걸림돌이 됩니다.

하나님에게나

예수님에게 나아가려는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걸림돌이 됩니다.

동정하는 자아,
냉정한 자아
신과 내세와 천국에 대한 인간들의 호기심

이 모든 것으로부터

주님은 따로 계십니다.

자신이 애초부터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임을

십자가를 통해서 알게 되었을 때,

그래서

예수님과 같은 처지에 있음을 알 때

비로소, 예수님의 형제라 할 수 있습니다. (히 2:12)

예수님 안이 곧 천국이요 영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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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복음 아닌) 현실 저항적인 내부의 이질성을 드러내는 글 한 편... 
이준   2006-02-09 20:15:11, 조회 : 193, 추천 : 8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 마음 속에 피어오르는 온갖 상념들과 정념들 - 목사님 말씀 가운데 "감상적인 마음"과 "동정심" 등 - 도

그저 십자가에 이미 못박힌 것들임을 목사님 말씀을 통해서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무관한...아니, 오히려...처음부터 못박혀야 할 것들일 뿐이었습니다.

그 모든 정념들이 의도적으로든, 비의도적으로든

곧 '나'라는 중심성에서 쉴새 없이 솟아나는 것임을 왜 끊임 없이 잊는, 잊으려는 것일까요?

이렇듯...

근본적으로...그저 주님의 손에 이끌리고, 주님 품에 알게 모르게 안기워 갈 뿐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음...입니다.

오늘도 그렇게 이끌리는 과정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목사님의 글을 통해 반향되어 옴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미처 의식의 표면으로 감지하지 못한 자신의 속내를

날선 검처럼 파고드는 말씀을 통해서 그제서야 '나'라는 존재는 깨닫게 됩니다.

그저 늘 말씀 앞에서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자신만을 발견할 따름입니다.

주시는 말씀에 늘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새해에도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