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겸님의 2차 질문에 대한 답변 살아가는 이야기
(서울 서머나에 글을 올리면 토론의 본질을 벗어난 논쟁이 유발되어서 몹시 피곤합니다. 심지어 아무 상관없는 인신공격성 댓글이 수백개씩 달리는지라 이곳에 답변을 올립니다. 필요한 분은 이곳에 오셔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손위 사람에게 궁금한 게 있으면 한번쯤은 몰라도 계속할거면 이곳에 찾아와서 묻는 게 예의가 아닐까요? 마치 죄진 사람이 재판정에 호출되는 것 같아선 안되겠지요?)
목사님 돌아가시고 지금까지의 서울 서머나가 보여 온 교회의 정체성은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김성수라는 지도자의 가르침과 기성교회와 차별된 서머나라는 현상, 즉 처음의 방향성을 상실한 비틀거림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역주행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서울 서머나는 목사님의 임종과 함께 그분의 뜻과는 상관없는 ‘서머나 하기’로 질주를 시작한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김성수 목사님이 그렇게 핏대 올려 전하고자 했던 예수와 십자가를 삭제한채 김성수와 서머나라는 이상한 정체성을 가진 집단으로 변질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첫 번째 현상이 목사님 가신 직후의 오월 캠프에서 있었던 팀장들의 망언입니다. 김성수 목사님이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팀장들을 세웠으니 서머나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식의 교회하기가 선포되고 그 방향으로급선회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목사님의 영권을 팀장들이 물려받았다는 말까지 나온 것입니다. 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람들에 대해선 교회를 떠나란 망발까지 나온 것이 그런 것입니다. 그 후로 소위 서머나의 팀장이란 사람들은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을 준비가 된 자기들만의 집단을 만든 것입니다. 그들의 영향아래 많은 이들이 오직 진리는 김성수라는 표어아래 세상과 차별된 서머나 라는 폐쇄된 울타리에 스스로 가두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서울 서머나 교회의 승인이 없는 어떤 모임도 김성수 목사님의 동영상을 사용할 수 없고 서머나 모임이라는 명칭도 허락을 받아야한다는 기가 막힌 공지까지 올라오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서머나 카페의 회원 숫자의 증가가 마치 하나님의 뜻인양 삼천명 돌파 라는 글을 카페지기가 올릴만큼 김성수 목사님이 가르친 교회와는 본질적인 이질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일로 김성겸님에게 그 글을 내리라고 아침일찍 통화한 거 기억하시지요? 그때 김성겸님은 지금 내리면 모양새가 더 이상해진다고 끝까지 내리지 않다가 오히려 그런 말을 한 사람을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팀장은 카톡에 죽은 놈만 억울하다는 글까지 올려서 내가 그분에게 누가 죽은 놈이며 누가 산자냐고 더이상 김성수 욕보이지 말라고 한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권을 물려받았다는 팀장께서 본색을 드러낸 사건이 바로 오월캠프에 불러서는 안 되는 강사를 교회로 부르려고 시도한 것입니다. 목사님 소천하신지 불과 이 개월에 그분이 개척한 서머나교회에, 담임목사와 짜고 노예계약서까지 작성하고 결국 교회 돈까지 힁령해서 도망간 장로를, 더구나 김성수 목사님이 그토록 질타한 알미니안 주의자를 교회강사로 부르기까지 서울 서머나는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이장우 목사님을 비롯해 저도 카페지기와 팀장에게 그토록 당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팀장은 끝까지 자기 고집을 부려서 예고 없이 그 사람을 불러서 캠프조장 회의에서 강제로 강의를 듣게 하는 망동을 저지른 것입니다. 교회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의 ‘교회 경영하기’의 전힁이 시작된 것입니다) 거기다 목사님이 가져단 쓴 교회재정 문제로 계정상 항목없는 엄청난 돈이 문제가 되었을 때도 내가 김성겸님에게 있는 그대로 교인들에게 밝히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 비본질적인 문제로 김 목사님이 전한 복음이 오해를 받을까 해서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오픈하라고 한 것이지요. 그러나 그 후로 팀장들이 어떻게 결정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얘기를 들었단 교인이 없는 걸 보면 어쩌면 지금도 폭탄돌리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처음부터 성경에도 없는 팀장이란 직분 그만두라고 한 겁니다.
그 후에 내가 김성겸 님에게 간곡하게 부탁한 것이 교회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었지요 교회는 사람이 세울 수도 유지할 수도 없으니 목사님 오시기 전으로 돌아가면 주께서 자기 몸된 교회를 자기의 때에 자기방식으로 모이게 하실거니까 50키로도 못질 사람들이 500키로를 짊어지면 다 같이 쓰러지니까, 목사님의 뜻대로 서머나라는 것은 없으니까 지금 그대로 예수 믿으면 된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 문제들이 계속 이어져서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면서 당부했던 것 같은 심정으로 (그 당시 내가 올린 글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렇게 김성수의 이름이 삭제 되어야 예수 이름만 높이고 예수 이름으로 모이는 서머나가 된다고 김성수 목사는 예수를 가리킨 사람이지 그가 진리는 아니라고 글을 올렸다가 엄청난 돌팔매를 맞게 된 겁니다. 그때부터 여러분은 나를 경계하고 서울 서머나를 깨는 사람으로 낙인을 찍은 거지요.(사실 그전까지는 내가 올리는 글의 내용도 모르면서 같은 편이라는 동지의식에서 찬사의 댓글을 다는 분들도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여러분들의 경계와 질시의 눈은 심지어 어떤 팀장이 가는 곳마다 대구 강 장로는 교회를 깨는 위험한 사람이라고 광고를 하고 다니기까지 이어진 겁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2년간 서울카페에 글을 올리지 않은 겁니다. 바울사도의 말대로 교회를 노략질하는 이리들의 행패가 있어도 은혜의 말씀이 그 가운데 있는 성도를 다스리실 것이기에 그 말씀의 능력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강요된 포기였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들려오는 서울 서머나의 얘기들은 한편 복음증거의 좋은 재료들이 되기도 했습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서울 서머나에서 나오는 얘기들을 뒤집으면 김 목사님이 전한 그 십자가가 보인다고 할 정도였지요. 마찬가지로 지금도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오랜만에 글을 올리면서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결국 이번 일도 서머나의 방향성에 관한 문제의 연장선에 있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사건들이 있겠지만 사실 그런 건 세상 어느 교회나 있을 수 있는 일들이고 가시적 교회는 피로사신 교회의 의미를 담기 위한 그릇일 뿐이니까 교회사를 통해서도 교회의 다양한 형태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고 그 가운데서 일어나는 어떤 부정과 다른 영들의 훼방도 영원한 언약을 보여주고 교회의 자기부정을 위한 성령의 다스리심 안에 있음으로 결론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창조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결코 양보하시지 않는 한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거룩’입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창조는 아들 예수의 피로 완성될 거룩한 공회를 겨냥한 창조라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지상의 교회는 세상 가운데서 그 언약의 피, 곧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를 보여주기 위한 이유로만 존재하고 그들의 정체성은 세상과의 구별=거룩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의지가 창세전 언약으로 먼저 선포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피로사신 교회는 세상 속에서 세상과의 섞임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아담들의 탐심으로 인해 세상과의 구별이 사라질 때 하나님은 은혜를 입은 노아 한가족만 남기고 전 세상을 심판해 버리신 것입니다.
교회의 거룩은 그만큼 심각한 현실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그 분리됨을 망각해서 스스로 교회됨을 포기해버린 것이 우리가 날마다 보게 되는 타락한 교회의 민낯입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도 이미 빛이며 이미 소금인 성도가 있어서 그 빛과 그 짠맛은 감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성도 중의 한사람이 김성수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상의 교회가 아닌 이미 완성된 거룩한 공회를 바라보았기에 세상 교회를 향해 “아니요!‘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땅 위의 교회가 아닌 천상의 장자들의 모임을 배우기 위한 교회로서만 서머나의 존재이유가 있기에 수시로 서머나는 깨어져야 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거룩한 공회는 지상에서는 날마다 새로운 교회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의 역사화 고정화한 교회하기를 깨면서 성령의 일하심으로만 모일 때마다 새롭게 발생되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언약의 실체인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만 자랑하는 교회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 십자가가 그들을 모으고 또 흩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죽은 세상 속의 산자라 하는 것은 그 십자가 안에서 그들은 예수의 피와 살을 나누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성경이 ‘거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거룩은 오직 피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피로 거룩케 된 자만 생명입니다. 구약성경이 그 거룩을 오늘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실패를 성경으로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소유된 교회는 거룩 안에 있고 거룩을 지향하며 거룩을 위해 전투하는 교회입니다. 왜냐하면 세상과 세상신은 그 거룩을 가리키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광채를 가리기 위한 역할로 교회 안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악한 영들의 활동은 세상정신과 세상 힘을 교회가 무저항으로 받아들이도록 미혹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는 심지어 신학과 교회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도 있습니다. 진리와 자유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이 거룩케 하신 교회를 더럽히려는 궤계가 행해지는 것입니다. 다른 이름으로 하면 문화라는 이름의 타협일 수도 있고 성숙으로 포장된 자기기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명목으로든 그리스도와 십자가라는 방향성을 잃어버릴 때 이미 그들은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그때부터 성령의 근심과 책망과 징계가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언약의 작동으로 인한 말씀의 사건이 없다면 그들은 처음부터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보잘 것 없는 자를 통해서도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가 있다는 것은 그 가운데 아들들이 있다는 희망일 수 있지만 한편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교회의 위기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거룩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것은 죄를 통해 의를 가르치시고 사망을 통해 영생을 보여주심과 같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게 어떤 하나님의 희생과 은혜로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 나올 수 있었는지를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그 피 안에 있는 교회는 세상으로부터의 찢어짐의 흔적이 있고 그럼으로 그들도 별세한 자로서 거룩을 고집하는 방향성을 잃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음행하는 자와 혹 한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히12:14-16)
김성겸님이 왜 장례예배는 되고 추도예배는 안되느냐는 얘기를 꺼냈는데 둘 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없는 것은 교회는 그리스도라는 머리가 계시며 그의 몸된 교회는 그분의 뜻대로 다스림을 받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교회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예배는 위에 길게 설명한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피라는 정체성을 가질 때만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영단번에 드려진 예수그리스도의 제사 안에 있는 예배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죽음은 예배의 동기가 될 수 없고 어떤 명분으로도 예배의 목적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피가 빠진 예배는 예배가 아닌 것입니다. 추도예배가 그냥 문화라고 하면 얘기가 달라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문화도 하나님과 상관없는 문화는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역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영광을 보여주기 위해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화나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종교의식 자체가 이미 비거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김성겸님은 비성경적이지만 전통 장례의식이 기독교화 되었기 때문에 진리를 아는 사람들은 그런 의식에도 자유로워야 하고 굳이 아니요 하는 것은 오히려 율법적인 행위에 매인 거라는 주장을 하면서 김성수 목사님도 장례예배에 참석하기도 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나도 묻겠습니다. 그분이 그런 문화를 예배로 인정하신 적이 한번이라도 있나요? 종교와 복음을 한번이라도 혼동하신 적이 있나요? 그리고 김성겸님은 진리를 알기 때문에 어떤 행함에도 자유할 수 있습니까? 내가 위에서 길게 설명한 교회의 거룩을 부정하면서까지 자기 스스로의 자유를 고집하는 게 교회를 피로사신 그리스도를 위한 것입니까 나의 목적을 위한 진리의 남용입니까? 내가 말하는 것은 그런 예배를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예배는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예배자체가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위한 예배이기에 인간은 어떤 예배에도 주체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유한 자의 예배라니요? 그런게 성경에 있으면 찾아서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적 예배가 아니라는 데 동의하면서 그래도 그런 건 문화로 치부해서 나는 진리를 아니까 자유 할 수 있어 라는 말이 얼마나 모순인지 아십니까? 더구나 그렇게 모이는 성격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고 하면 그 모인 자들은 전부 교회라는 말입니다. 교회의 이름으로 죽은 자의 기일에 맞춰 그를 기리는 예배를 드린다는 게 성경적이 아니라는 걸 알고도 그것도 예배라고 우기는 건 더더욱 잘못된 것입니다. 혹 형식만 예배지 그냥 교제였다고 해도 그건 하나님을 기만한 행위입니다. 더구나 김성수 목사가 했으니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건 한마디로 서머나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망발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김성수가 가리킨 예수를 봐야지 김성수에 갇히면 안된다고 하는 겁니다.
왜 기일에만 납골당에 모여 예배를 드립니까? 왜 부모님들을 위로하는 데 예배가 동원되어야 합니까? 진리가 되신 여러분들이 흔히 말하는 아랫것으로 진리를 깨달으면 된다는 그런 겁니까? 세상 만물에 다 하나님의 뜻이 있으니 세상적인만큼 진리를 더 아는 사람이라고 항변하고 싶나요? 그런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대구카페에 아침에 올린 글이 있습니다. 한번 읽어보시고 김 목사님이 말씀하신 진리와 지금 여러분들이 안다는 진리,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진리와의 차이를 한번 되새겨 보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법으로부터 자유한 신자라는 말은 다시 자유하게 하는 율법(약1:25) 곧 복음에 매인 자를 말합니다. 그들을 그리스도의 죄수 된 자라고 합니다. 그들만 그리스도 안의 자유를 누리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가 그들의 주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세상과 교회와 자기를 살피고 점검하는 자가 아니라 먹거나 마시거나 이미 주를 위한 자들이며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기 때문에 그들을 '주의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런 자들의 모임입니다. 죽은 스승을 기리는 자들이 아니라 예수의 죽음에 날마다 넘기우는 자들이며 예수의 생명이 날마다 나타나는 자들입니다. 이미 그들은 산자로서 한몸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김성수를 납골당에서 찾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죽은 자는 죽은 자에게 장사하게 하고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교회인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세상의 시간이나 사건이나 관계에 매이지 않고 묵시의 완료된 현실을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망자의 기일에 드리는 예배 같은 건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김성겸님처럼 사람의 죽음으로 치러지는 행사로서 장례와 죽은 자의 기일에 맞춰 예배드리는 것을 혼동하는 자체가 자유하지 못한 증거인 것입니다.
이제 긴 글을 통해 왜 그동안 서머나의 방향성에 대해 여러분의 표현대로 지적질을 했는지 그런 방향성의 오류로 인해 발생되는 사건들이 어떻게 십자가 복음을 대적하고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지 이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대로 된 설명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역시 여러분의 편견을 깨고 이해시킬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떤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에게 주신 은혜가 헛되지 않아서 오늘 이런 글을 쓰게 됨을 감사할 따름입니다. 부디 여러분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나는 그 십자가 행렬 안에 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 바랍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오해하실 분이 있을 까 해서 한마디 더 붙이자면 나는 서울 서머나 교회가 더 깨끗하고 더 건강한 교회가 되라고 하는 권면이 아닙니다. 김성수 목사님 처럼 서머나 교회에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모인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들과 그들과 함께 지어져가는 구속의 역사를 살고 있을 뿐입니다. 그 때문에 성경이 말씀하는 교회는 이런 것이라고 증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형제 김성수 목사가 전한 교회를 이 기회에 다시 깨우쳐드린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어떤 교회를 하든 아니면 여러분 자신이 교회가 되던 그것은 여러분의 몫인 동시에 지금도 교회를 다스리시는 성령의 일하심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에게있기를 빕니다.
(아, 그리고 아들 결혼식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들 결혼식은 본의 아니게 어떤 예배의 형식도 동원하지 않았다는 것도 아울러 알려드립니다) |
참 쉬운것 같으면서도 어렵고 어려운것 같으면서도 단순한데 제 이해력이 장로님 보시는 수준에서는 한참을 못믿치니....
천천히 갈켜 주세요 ^^;
일케 배워가면서 점점더 내것이 털리고 주님으로만 채워 지게 되길 바랍니다.
감솨합니다~~
저도 이런 일을 통해 귀한 음성을 듣게 됩니다.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우린 너무 내중심의 '관' 밖엔 가지지 못합니다.
그래서 말씀의 사건을 통해서만 우린 그 말씀의 지평을 바라볼 눈이 생기는가 봅니다
몸은 많이 피곤해도 그보다 더한 유익이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저와 논쟁하던 분 중에 한분이 어제 제게 전화가 왔습니다
얼마나 감사하든지요
정말 이틀의 피로가 다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역시 하나님은 손해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
낼 모래 이장우 목사님 신윤식 목사님 만나면 잘 전해드릴께요
감사합니다 집사님.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천천히 조금씩 주세요 ㅋ
장로님이 보시는거 저희들은 못보고 있을 확률이 큽니다.
그래서 답답허시겠지만 저희가 뭔말인지 못알어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로님을 통해서나 성경이나 주위 여러 도구를 통해서 주님께서 열어 주시겠지만 아브라함을 비롯해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사람을 봐도 그 연단해 내시고 하나님의 언약으로만 그분이 친히 이끄심을 보게 하시기 까지 그리고 그것에 순종 할 수 았을때까지 그 기간이 매우 길었던 걸 보면 저희 역시 많은 시간이 필요 할것 같습니다.
그래서 장로님 건강 더 챙기시고 오래오래 말씀 나누어 주세요..
돌아서라고 이야기해주는것을 욕으로 듣는 자는 돌을 집어들것이고
사랑으로 듣는 자들은
그러한가 하여 또 들려 주시오 하겠지요.
누군가의 권유로 때가되었다싶어서 서울서머나카페 탈퇴를 하였기에 요즘 달라졌는지
어떤지 정보가 없습니다만
아직도 복음이 선포되어지고
있기에 논란도 있나보다
짐작만 되네요.
김성수목사님 돌아가신지가
벌써3년이나 되었군요.
유골단지는 유가족들보고 보라 하고
서울서머나는 더이상 납골당과 상관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장례문화를
이뻐하실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안다는 핑계로 세상과 구별없는 행위가 교회의 이름으로 저질러진다면 그들은 교회의 본질을 망각했든지 아니면 이미 득도가 끝나 세상사람이 아니든지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꾸 우리도 교회맞는데 왜 자꾸 지적질이냐고 한다면 나는 당신들의 교회놀이를 지적한 게 아니라 '교회란 무엇인가?'를 함께 나누었을뿐입니다. 그리고 어떤 초신자가 말한 것 같이 대구는 좋은 교회 서울은 나쁜 교회를 말하는 게 아니라 지상의 어떤 교회도 온전치 않다는 걸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이 당신처럼 교회나온지 몇달 안되는 초신자에겐 직분을 주지 말라는 겁니다. 교만해져서 마귀의 정죄에 빠질까 해서입니다. 제발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배우고 나서 그때해도 늦지 않으니 지금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반성부터 하란 말입니다. 교회가 아니면 당신은 지금 형사처벌 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그리고 김성겸씨, 대구카페는 안 간다고 했는데 그러면서 대구 카페에서 나누는 말씀에 대해 시비를 하면 말이 안 되잖아요? 전에도 물었지만 서울 서머나교회의 주인이 그리스도시라면 어느 누구도 그 교회의 문제에
마치 서머나 교회의 전유물인양 진리와 자유가 남발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성경이 말하는 자유란 진리이신 그리스도의 종된 자유를 말합니다.(롬1:1)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한 자유를 말하지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자유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인간자신의 목적이나 용도로 이용되는 자유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자유를 행사하지 않을 자유까지의 자유인 것입니다.
진리는 오직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위해 진리를 학습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진리를 조작하지만
그런 것들은 일순간에 무너질 것들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신 주님은 자기를 '믿은'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지
세상 모두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란 걸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진리를 알지니 라는 말씀도 예수님과 연합된 그의 신부들만 진리이신 예수님을 알고 죄로부터 자유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떠난 진리도 자유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분의 십자가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김성수 목사가 이렇게 자유했으니 우리도 그를따라 자유하겠다는 것은 스스로 자폭하는 것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신만 망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교인들까지
저도 많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어줍잖게 아는 척 했던 것들이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필요에 따라 말씀 땡겨다 쓰던 못된 버르장머리도 알게 되었구요. 장로님 감사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울컥 울컥 내 안의 악한 것들이 드러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또 다시 나를 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격스럽습니다.
장로님,감사합니다.
완전하신 예수님만이 옳으시기에 인간적인 관습과 인간적인 사랑과 자유는 전혀 상관이 없음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제가 누구들의 말처럼 장로님의 추종자는 아니지만 늘 감사하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원주친구는 가끔 전화 통화하는데 바쁘게 잘 살고있습니다~
이번에 큰 잔치 치르시고,피곤하실텐데 장로님 쉬실 시간이 없으시네요 기도하겠습니다.
수천만명이 있어도 하나
한명만 있어도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그들 전부를 예수로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인이 나를 왕으로 섬기고
내가 만인을 왕으로 섬기는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입니다
수의 많음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아는 세상에게
하나님 나라는 본성상 생소한 나라일 수밖에 없습니다
달리 말하면 수의 많음과 상관없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를 모르면
무엇이든 자기 증명을 위해서 이용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습니다.
개미님, 그 글의 뜻이나 알고 자기변명에 사용해야지
글의 내용을 아는 사람이 보면 개미의 말이 얼마나 웃기겠어요
그분 면전에서 '목사님이 교회하면 많은 사람이 몰려올텐데 그들 상대로 좋은 교회 하려고 하면 예수 못 믿는다' 는 말을 하지 않겠지요?
대구교회 교인들이 있는 자리에서 한 말입니다.
그때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나는 교회하려고 한국 나온 게 아니라서 교회에 관심 없다고 하신 겁니다.
개미님처럼 사람 앞에서 자신을 증명하려고 하다보면
자기중심적인 현실밖에는 보지 못하는 겁니다.
그걸 현실조작이라고 하고 가상현실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만큼 선악의 열매는 무서운 환각작용이 있습니다.
그런 아담들의 행사는 우선은 화려해보일지 몰라도 그길은 파멸의 길입니다
정신차리세요
세상은 자기이익을 위해 그렇 수 있어도
신자는 그래선 안 되는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자이며
그 하나님에 해석 당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만 처음자리를 아는 선한 피조물입니다.
창조의 선한 자리는 오직 그리스도 안 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변명하거나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자리입니다.
그들을 교회라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그런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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