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구만선생님께(두번째)자유게시판
강구만선생님께 몇가지 질문을 추가로 드릴 것이 있어 이렇게 글을 씁니다. 저는 카페를 운영함에 있어 진리건 비진리 건 그 안에서 다 배울 점이 있기에 왠 만하면 관여를 안 하는 편입니다. 특별히 김성수목사님이 전한 핵심복음에서 벗어난 이들의 글들은 논쟁의 가치 없기도 하지만 해봐야 서로 자기말만 하다가 끝나기 때문에 무시하죠. 그러나 저나 강선생님은 김성수목사님 설교를 듣고 그의 설교에 동의를 한다고 모인 사람들인데 몇 가지 부분에서 확연한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기에 최소한 서로가 이해하고 있는 진리를 확인 코저 이글을 씁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서로의 감정이나 불신 또는 오해 등은 이글에서 배제하고 추모예배에 관해 강선생님이 말씀하신 것과 제가 이해한 것에 대해 최대한 성경적이고 진리 안에서 건전한 토론을 하고자 합니다. 또한 소모적인 논쟁으로 문제를 확대하려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이글의 댓글을 다시는 분들 또한 상호비방이나 비아냥, 반말, 논지에서 벗어난 다른 말을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그런 댓글을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강구만선생님의 입장을 옹호 하시는 분들도 자유롭게 참석해 주셔도 됩니다.
강선생님 또한 제가 하는 질문 안에서 답변을 해 주시고 이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는 이미 전 글에서 어느 정도 서로의 입장을 전달했기 때문에 다음에 기회가 있을 때 다루기로하고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질문의 원글은 강선생님이 대구서머나에서 쓰신 글이고 그 글은 본 카페에 반면교사라는 이름으로 올라와 있으니 다른 분들은 그 글을 읽고 토론에 참여하시든지 아니면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일단 강선생님이 이해하고 있는 예배의 본질적인 개념에는 대부분 동의하는 바입니다. 다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이번에 지적하셨던 김성수목사님 추모예배 같은 경우입니다. 강선생님은 추모라는 목적을 위해 예배라는 형식을 차용해서 하는 추모예배는 성경적이지도 않으며 절대로 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것이죠? 얼마 전 아드님이 결혼하신 것으로 압니다. 이 자리를 빌려 축하를 드립니다. 일반적으로 기독교인이 결혼을 할 때는 예배의 형식을 취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혼예배 또한 성경에 나와 있는 예배의 본질은 벗어난 예배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결혼이라는 목적을 위해 예배라는 형태를 가져다 쓴 것이니까요... 또한 장례식 때하는 입관예배 천국환송예배 장례예배 등등 모든 장례절차는 기독교의 전통이 아니라 유교적인 장례문화를 기독교식으로 바꾼 것이지요. 이 또한 장례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예배라는 형식을 가지고 왔기에 비성경적이라 하겠습니다. 이번에 지적하신 추모예배 또한 일반적으로 추모식을 목적으로 예배의 형태를 빌려서 했기 때문에 비성경적이라는 것에는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형태의 예배방법은 비성경적이기에 절대 해서는 안 될 것이냐 아니면 기독교인들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독교적인 행사방법이기에 해도 무방하냐 더 나아가 진리안에서 자유한 성도는 그런 형식과 방법에서도 자유하기 때문에 아무 상관이 없냐입니다. 제가 김성수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제 나름대로 적용해보자면 이것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저 일상의 형식과 관습이기에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문제라고 이해했습니다. 만약 김성수목사님이 이런 것이 절대 비기독교적인 것이라고 배척 하셨다면 결혹식이나 장례식등 모든 형태의 목적이 있는 예배에 참석 안하셔야 하셨겠지만 서울에 오셔서도 가까운 지인의 장례예배에서 말씀을 전하셨고 주례를 부탁하는 청년들에게는 기꺼이 주례를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제가 일전에는 절대적으로 하지말아야 한다고 생각한 여러 가지 것들을 서슴없이 하시거나 해도 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지요 2012년 겨울 어느 수요일인가 낮 12시쯤에 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오늘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교회 못간다....띠용~~~ 아니 교회 오다가 막혀서 못 오는 것도 아니고 낮 12시면 걸어서 태제고개를 넘어와도 오겠구만.....ㅎㅎ 하지만 진리안에 자유하신분이니 오히려 멋지셨어요. 또 어느 주일인가요 1부예배를 마치신 목사님이 환급히 저를 찾았습니다. 아버님이 아프셔서 2부예배 안드리고 갈테니 니가 알아서해라......그래서 저는 목사님 아버님이 위독하시구나 임종을 지키시려고 가시나보다 했는데 왠걸 아직도 건강하게 교회에 잘 오십니다. 뭐 이런 에피소드는 더 많지만 여기까지하고요... 설교시간에는 제사의 문제라던지 아니면 일제시대 신사참배의 문제 등등 기독교인이 전가의 보도와 같이 절대적으로 하지 말아야하는 여러 가지 것들을 진리를 안 자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곤 하시고 또 그렇게 실천 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추도예배라는 형식 또한 비본질적인 문제이자 진리 안에서 자유한 성도들에게 아무런 제약이 될수 없다고 이해합니다. 그러다면 우리가 주일에 드리는 전통적인 예배라는 형식은 어떠합니까? 예배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 나 자신을 드리는 것이지만 우리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나의 유익 혹은 종교의식, 관습, 습관, 마음의 안정 등 나의 유익을 위해 예배라는 형식을 빌려서 사용하는 것 아닙니까??? 제가 말한 이런 것들에서 완전히 벗어난 성도가 있으십니까? 저는 부끄럽지만 여전히 그런 저의 모습을 예배라는 형식 속에서 봅니다. 그렇다면 추도예배, 결혼예배, 개업예배 등등 그 목적이 불순한 예배의 형식과 예배의 목적이 불순하지는 않으나 여전히 예배라는 형식 속에서 나를 자랑하고 나를 높이려는 것과 도대체 무슨 차이가 그렇게 있기에 이것은 해도 되고 저것은 안 되고 하는 것에 묶여있어야 합니까? 저는 둘다 똑같은 행위로 보이는데 말이죠....
그렇게 엄격한 잣대로 어떤 것은 해도 되고 어떤 것은 안 된 다면 김성수 목사님이 목이 터저라 외치던 진리 안에서 자유는 대체 무슨 자유를 말합니까? 내가 배운 복음은 우리의 불순한 의도로 시작된 것처럼 보인 나의 신앙행위를 통해 하나님이 일하셔서 은혜를 선물로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창녀 같은 나는 여전히 예배라는 형식 속에서도 하나님을 나의 유익으로 삼으려하는데.....아니 그럴 수밖에 없고 그것 밖에 내어 드릴 것이 없는데 이 모든 것을 통해 나를 진리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보게 하시고 이 모든 것이 은혜임으로 고백하는 것이 성도이지 이것은 하고 저것은 하지 말고 어떤 것은 해서는 안 되고 하는 비본질적인 것에 여전히 매여 있다면 저는 이것은 진리도 아니고 그냥 종교놀이나 다름이 없다 여겨집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저에게 진리를 흘려주신 목사님이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 비록 이것이 비성경적일지는 모르나 첫째로 목사님을 우리에게 좋은 선생으로 보내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둘째로 목사님의 인간적인 번뇌와 노력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은 게 진리안에서 자유한 성도들에게 무슨 문제가 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어 강선생님의 생각이 어떠한지 묻는 것입니다. |
저는 실력이 안되서 분간도 잘 못하고 거들지도 못하니까
이렇게 쟁론하게 하셔서 저에게도 세밀한 깨달음을 주십니다
참 감사한 것 뿐입니다
여러 쟁론에 참가해주신 분들 애쓰셨어요
할렐루야 ~~
그래도 이런 믿음은 있습니다. 머리카락 하나도 하나님 허락없이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니
이일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알리고자 하시는 게 있으실 거라는 거요.
화기애애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 비방하지 않고 잘 지냈으면 합니다.
까짓 2000원 쯤이야... 우리 다 같이 2조원의 빚을 탕감받은 거 기억하잖아요.
강구만 장로님께도 죄송합니다. 저보다 연세도 많으신데 못되게 말해서요.
제 안의 예수님이 장로님 안의 예수님을 봐야되는데 제 안의 마귀가 장로님 안의 마귀를 봤나봐요.
에휴. 매일 죽여도 매일 살아나요...
남들과 비교할 때는 이 정도면 되지 않나 싶던 때도 있었는데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앞에 서니 존재 자체가 죄네요.
은혜집사님 착각 좀 하면서 삽시다. ^^ 그래야 인간이지 아니면 내가 하나님이게요.
반성은 하지만 후회는 안해요.
또 그 상황이 되면 똑같이 반응할 것 같아요.
그게 제 한계이고 달란트죠 뭐.
하나님 나라는 역설의 나라라서 져야 낮아져야 죽어야 부서져야 없음이어야... 이러면서 무슨 일 있으면 다 까먹고...
그래서 시간 날때마다 듣고 또 듣고 그래요.
이심전심... 감사합니다
서머나의 다른 자매님과도 오늘 잠깐 나누었지만 동일한 마음이었습니다..
더불어 강구만님의 의.견.이
과연~
지면을 할애하고 시간과 관심을 투자할정도인지 개미님에게 관심이 약간 생겼을뿐...^^
저는 강구만님의 복음개념이 유치하다고 여겨집니다(교만의 극치 말투..죄송 죄송^^;;;)
물론,
강구만님도 충분히 잘못 받아들일수는 있고 판단을 해서는 안되는거지만요...
그.러.나~
※ 문제는 강구만님은 예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예수)를 가.르.치.고.
본인의 가치를 드러내며.
마치 본인이 특별한 존재인듯.
복음에 반대되는 행위를 하고있습니다
또 어떤 분처럼 누가봐도 장로님이 김목사님편에 있었던 사건들을 가지고 그것도 몇년 지난일을 가지고 엉뚱한 시비를 거는것 보다야 훨 낳습니다. 그 일을 보면서 전에 내가 김목사님 욕했더라면 내 사지를 찢어 죽일 사람들 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차치하고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개미님 말대로 목사님을 마음속으로 기리거나 납골당에가서 단체로 추모하거나 아무 상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매일 그분과 매순간 함께 하면서 그분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그 은혜에 감사하고 있다면 내가 십자가 목걸이를 달고 다니던 불교를 상징하는 목걸이를 달고 다니던 내게는 상관 없습니다.
그런데 밖에서 보면 나는 불교 신자일 가능성이 많은 사람으로 일반적으로 그렇게 볼 것 입니다.
그래서 나는 목걸이가 장식품이라는 용도외에 아무 상관 없지만 혹여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웬 불교 목걸이야? 저사람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다원교 아니야?
누군가는 나와 상관없이 이렇게 볼 수 있으매 그 목걸이를 걍 안하고 다니는거죠.
마찬가지로 서울 서머나에서 (카페에서) 느끼는 제 갠적인 감정으로는
여기 계신 분들이 아닌데! 하면 할말 없지만 그냥 제 느낌이 그렇습니다.
(왜 이런 느낌을 받았느냐를 예로 들어 적다보니 댓글이 너무 길어져서 원하시면 그건 나중에 다시 말씀 나누죠)
개미님 전에 글에 쓰셧던 에피소드같이 목사님이 죽어서 손목사님처럼 누가 벌초 해주는것 보면 한편 뿌듯하기도 하지만 한편 저러면 예수그리스도가 아닌 목사의 이름이 남겨질텐데 하며 인간적인 감사함 뒤에 올 수 도 있는 주님 이름 가릴수 있는것을 염려 했던것이 아주 잘 드러나 있잖아요. 그만큼 목사님이 그걸 경계 하신거에요.
마찬가지로 장로님도 목사님께 감사하는것을 지적하는게 아니고 주안에 함께 계실 목사님 매일 볼수 있으면 굳이 납골당에까지 가서 예배라는 형식 안빌어
그런데 모이신분들이 아닌데요 우린 절대 그렇지 않은데요, 그러면 할 말 없는 거구요.
근데 앞에 목걸이를 예로 들었듯이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나로 인해 실족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는 거죠.
내 개인적인 행동은 나 하나 오해 받던 말던 상관 없는데 단체의 성격을 띄면 좀 더 조심해야 하지 싶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의도와 선함으로 목사님께 감사
그 점만 다시 한번 상기해 보면 좋을것 같습니다.
나는 수차례에 걸쳐 서울 서머나를 향해 비난하지 말것을 님이 존경하는 그 분께 글을 남겼지만,여전히 같은 일을 반복하기에 원색적으로 들고나온 것입니다.비유도 참...어떤 바보가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만자 목걸이를 걸고 다닙니까?그리고 님은 목사님 말씀을 들은지 얼마 되지도 않으면서 마치 모든 것을 아는 냥 들이대시는지요?님이 그 양반 대변인입니까?
인터넷으로 설교를 듣는 분들은 수천명 혹은 수만명정도로 추정됩니다.
그날 가셨던분들은 목사님 가족들을 포함 20~30명정도 될듯 싶습니다.
김성수목사님을 기억하기위해 작은 인원들이 교회의 이름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아름아름 모이신 분들이 10분정도 예배라는 형식으로 모인것이 우상화라고 생각하도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매주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는 자체가 남들이 보면 더 우상화로 오해할 소지가 많이 있겠지요. 저희가 남들의 시선 때문에 그정도도 할수 없다면 또한 그것을 다른이들에게 설명해 줄수도 없는 수준이라면 그런자리 안나오셔도 되고 비판하셔도 좋습니다.
목사님이 남의 시선을 생각하시고 행동했다면 제가 위에서 열거해 드린 모든 행동에 조심을 하셨어야 하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으시고 자유롭게 행동 하셨습니다. 우리가 배워여할 것이 남의 시선 때문에 성도의 자유를 포기해야하는 건가요?? 아니면 이 자유를 누려야 하는 걸까요? 그것은 비판할 것도 아니고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할 일입니다. 마치 남의 시선때문에 제사음식을 먹지 않았던 베드로의 모습 아닐까요?
예배는 주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워가는 과정 모두가 예배 아니겠습니까 영생은 곧 그리스도를 아는것이라 했으니까요.
그래서 추도 예배를 하면서 그리스도의 일하심을 배우게 되었다면 그 또한 예배라 할 수 잇겠죠.
그런데 저 같은 경우엔 목사님 기일 쯤 되면 유독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 사실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보단 왜이리 빨리 데려 가셨는지 원망 스럽고 안타까운마음이 주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그 일에 순종 하는 마음보다 더 했었습니다.
솔직히 주님만나 뵐 그것보다 목사님 천국에서 만나 뵐 그것이 더 기대가 된적도 있었구요.
그럴때 마다 장로님의 따가운 지적이 있었습니다.
여기 계신 저를 제외한 모든 분들이 아니다 우리는 늘 주님께서 쓰시겠다는 도구로써 역할을 다하면서 주님께 영광돌리는 모습으로 살아가겠다는 심정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제 갠적인 경험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장로님의 따가운 말씀이 아프지만 자꾸 내가 좋아하는것들에서 떼어지며 주님것으로 채워 가게 하시는 구나를 배워 갑니다.
저는 선생이 아니에요...누굴 가르칠 수준도 아니고 그냥 제 의견을 말하는것 뿐입니다.
저를 추종자라느니 대변이냐느니 이런 표현은 안해 주셨으면 좋겠고요
이런 글들을 통해서 나눌수 있고
평생을 통해 배워 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해도되지만 지혜롭지 못한 행동이였다와 성도로써 절대 해서는 안될 이상한 짓을 한 수준 낮은 집단의 모습이다라는 말은 전혀 다를 뿐 아니라 김목사님의 평소 소신이나 행동 또 복음에 비추어 잘못 된 해석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또 추종자 소리 듣겠지만 저는 장로님이 복음을 바로 말씀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것이 내가 원하거나 기대한 모습으로 나오지 않을경우 자존심 상하면서 듣기 싫어 집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주님께서 우리를 쓰시는거라 생각 합니다.
강직한 분은 그 모습으로 유한 사람은 유한 모습으로...
모두 주님을 알아가는 과정이고 도구 입니다.
내가 보는게 다가 아니고 주께서 보여 주시는 만큼 그렇게 조금씩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강장로님의 말대로 복음의 이해와 예배의 개념을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잘못된 행동이였다가 황성생님이 가지고 계신 복음관이라는 말씀이신가요??
아니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다른 이들이 오해할수도 있는 행동에 대해 조심하면서 하지말야야 할 것과 할것을 구분해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이것은 성격이나 성향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확연한 견해차이입니다.
장례식 혹은 추모예배등 일반적으로 기독교인이라면 비판을 하지 않지요....강선생님의 지적은 예배라는 것이 어떤 목적 달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주되심이 증거되는 자리인데 왜 예배의 본질을 망각하고 헛짓을 했냐는 의미로 저는 받아 드렸습니다. 저는 그 해석 방법이라면 우리가 하는 모든 예배의 형식이 자기 증명과 유익을 위한 행동이므로 본질이 같은데 어떤 차이가 있냐는 주장이구요.
본질적으로 같은 일인데 어떤것은 해도되고 어떤것을 하지말아야 하는 율법적 페러다임으로 다시 우리가 끌려 내려가야 하나요?
아무리 장황하고 긴설명을 하더라도 결국 두가지 결론으로 수렴됩니다.
예배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미성숙한 행동이고 절대 해서는 안될일을 했다.
아니면 성도는 진리 안에서 자유하기때문에 추모예배는 해도 되지만 다른이들이 오해 할수 있으니 조심했어야 했다.
이 두 가지 결론 안에 황성생님이 생각하시는 것에 가까운 것이 무엇인지 말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가게 된 취지애 대해선 개미님께서 충분히 설명하셨으니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아무도 김 목사님께 예배드리고 온 자는 없을테니까요.
무슨 일을 통해서도 연약한 자나 강건한 자나 당신의 백성들을 가르치시고 이끄시는 그 하나님은 죽지 않으시고 살아 역사하시는 분이란 것을 황 미영님도 아실 것입니다
염려 하지 마시고 평안하세요
이정도로 한국교회는 성숙(?)해 있습니다.
이런 성숙한 한국교회가 영상예배드리는 것을 우상화로 여기면 여겼지 20~30명 모여 추모예배드렸다고 김성수우상화하는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면 우린 사실 하나님을 잘 모릅니다
대부분 각자가 체험하며 인식하는 하나님을 자기 머리나 지식에 가두어서 그 하나님을 믿고있는것이지요...
이런글을 통해서 각자의 마음을 돌이켜 보는 좋은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개미님이 마침 좋은글을 올려 주셔서 오고가는 대화속에 각자가 자기를 돌이켜보며
자기가 서있는 자리가 올바른 자리가 될수있는 귀한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황미영 집사님이 말씀 하신것 처럼 아마 강장로님의 염려도 그러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우리 모두는 아직 완성체가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이러한 광야의 여정이 필요한것이구요...
성전으로 지어지고 완성되기 까지 그쳐가야할 삶이 우리 전체 삶의 여정의 목적이라 생각이 드는군요....
아무쪼록 같은 진리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남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진리가 남들이 있는그 것보다 우월하다는 혹은 수준이 다르다는 생각에서 글을 쓰고 남을 비판한다 여겨집니다. 하지만 이런 논쟁이나 갈등 또한 어쩔수 없는 우리가 내어놓는 좋지 못한 행동 일 수 있지만 성도의 그 내제된 악한 속성을 사용하셔서 진리를 설명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라 생각하기에 글을 쓴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 서로 나누고 그게 안되나요. 그러면 신앙인들은 기일에 어떤 대안이 있나요. 납골당에서 예배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시나요? 주위 분들에게도 기일에 납골당 가서 예배드리는 것은 안된다고 전하시나요?
2. 최득희 집사님께서 번개모임으로 납골당에 같이 갈 분 만나자고 하셨고, 김기환 집사님께서 추모예배영상 이라는 제목으로
짧은 동영상 올리고 그게 다였어요.
교인들이 모이니 목사님에 대한 기억 나누고 기도도 했겠죠. 저는 가고 싶어도 못갔지만.
거기에 대한 강장로님 반응이 억울합니다
그래서 강장로님이 유독 서울서머나에만 강하게 비판적으로 쓰시는 거 다 읽었고요.
제 느낌은 사랑이 아니라 질투로 보이고 secondary gain 을 바라시는 거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있었고요.
강장로님께서 일년이상 서울서머나 비방하시는 거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주위 분들도 처음에는 그러지 마시라고 했다는데 멈추지 않으신다고 들었고요.
요즘은 수위가 올라가서 건상집사님 수술할 때 다들 마음 졸이며 건강회복하시라고 함께 기도 드리겠다고 했을 때
믿는다는 사람들이 기복적인 기도한다고 했다고 유치하다는 식으로 말씀하셨을 때는
기도하겠다는 말은 위로차원의 멘트예요. 안녕하세요 하는 것처럼.
억울하게도 강장로님은 단정지어서 기복, 우상숭배, 망동 이런 자극적인 언어를 쓰시며 원색적으로 비난하시고 안타까운 듯 말씀하시면
당하는 쪽에서는 참 억울하지요. 성경에도 세번이상 말해도 안되면 놔두라고 쓰여 있잖아요. 뒤에서 내편 모아놓고 심하게 비난하시고
반대의견은 솎아내고 예스맨들만 남겨 남욕하면서 제편챙기기처럼 느껴져 슬펐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이제는 멈추셔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옳다고 본인들도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얘기해도 소용없다고 포기하셔서인지 모르나 장로님 그만하세요. 하는 권유를
하지 않으시더군요. 그러다가 서서히 동조패턴이 공고해지는 것 같고...
제가 강장로님 우상숭배하시는 거냐고 하면 속상하고 억울하시잖아요.
저희도 김목사님 그립다 정도의 표현에도 우상숭배라고 매도당하면 정말 속상하고 억울해요.
강장로님이 전하시는 복음을 위해서 좀 참아주시면 안될까요. 충분히 말씀하셨으니. 아직 부족하신가요.
안집사님이 오해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고요. 작은 그림을 보면.
그보다 약간 큰 그림을 보면 강장로님의 심한 원색적인 비난과 질책에 대한 반감의 골이 점점 깊어지고 있고요.
더 큰 그림은 말씀을 들으면서도 말로는 은혜, 사랑, 자기의 처음자리, 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자기 잘난 체, 남 비난, 참을성 없음, 나 왕되기, 스스로 신이 되어 하나님마저도 자기 인식수준에 제한하여 본인이 하나님의 뜻을 잘 안다는 양 너스레를 떠는 저를 포함한 모두들, 보편적 인간 군상들의 추악한 죄성이 있고요.
저희들도 다 율법주의에서 시작했잖아요.
노아 홍수 이야기의 에필로그 아시잖아요.
종기의 원인을 찾아서 뭐합니까.
묵었던 환부가 열렸으면 치료에 집중해야지요.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누가 하나님의 모사가 될 수 있을까요.
이제 그만 셈처럼 덮어주세요.
함처럼은 아니되옵니다.
납골당에 기일에 가서 예배드리면 안되는 근거가 무엇인지.
하나님이 싫어하셔서인지, 연약한 신자에 대한 배려차원인지
그리스도인은 돌아가신 부모님을 어떻게 기려야 하는지.
저는 이 문제를 제기한 프롤로그 차원에서 제 변명을 한 거고요.
개미님께서 논지에서 벗어났다고 생각되시면 삭제, 또는 편집해주세요.
그 은혜 앞에서 내 자존심은 무엇이며 내 지식은 무엇이며...nothing 이잖아요.
욥이 고난 후에 만난 그 크신 하나님 앞에서 존재 자체가 죄인데 뭐 아웅다웅할 거 있습니까.
내 생각에는 잘못 아닌 거 같아도 죄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니까 하나님께 용서 구하고 회개하고
서로 속상한 거는 화해하고 겉으로가 아닌 진심어린 사과와 위로가 상호간에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이 아들의 피로 살려냈다는 성도들의 이런 모습이 하나님 살해 행위이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 손으로 못박는 행위라면
당장 멈추고 나부터 회개해야지요.
재수없게 들리신다면 죄송합니다.
사는 게 죈데요 뭐.
제사드리는데 절해도된다하셨죠..믿음있네하며 지기딸이죽었는데 천국갔다면서 할렐루야를 외치던 엄마예기가 생각나네요..
항상 적확한 예시를 찾아주심에 감사감사 합니다
강구만님은 형식과지식을 들이대는 바리새인과
자신은 다르고 성.숙.하다고 여기는
관념자체가 복음에 반대이죵..
예..
목사님 아버님 얼굴이 지금도 어두우셔서..
저희는 웃으며 인사드리기도..어쩔줄몰라서..
눈도 못 맞추고 그냥..나와버리는..
뵐때마다 먹먹한 마음만 가진채
아예 챙겨드리기는 커녕 인사도 거르고있는.. 우리 서머나인들한테..
뭣도 모르면서 잡소리~를 하는 강구만님은
신경안쓰는게 맞지만요..
이제 막 말씀을 접한 초신자님등..에게
판단을 흐리고 싶어하지만,
결국은 모든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려가겠지요..
성도의 자리가 없음의자리 인식이 맞는다면 뭐그리 추모에대해 비판하고
정죄하는지요
성도는 말씀과 나하고만 관계성이 있지
누가 누구를 잘한다 잘못한다 말할수
없답니다
서울서머나 식구들 외롭게들 가고있으니 격려해주지를 못할망정
같은길을 간다하면서....
다 잊고 힘내서 목사님이 우리에게
늘 말씀하셨던 그예수 믿으면서
십자가의길 가요
항상 손가락질 받는 우린 복받은 자
맞습니다
많이들 정죄하면서 가라 하십시요
묵묵히 걸어온 울서머나 식구들 있어
위로 될뿐입니다
맞은자는 다리 뻗고 잔다 하지 않습니디까
힘내시고요 다잊고 오늘을 열심히 살자구요
누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다른 사람이 잘못 간다고 판단과 정죄를 할 수 있겠습니까.
보좌 좌편의 염소는 끝까지 열심으로 하나님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도 쫒아내고 병도 고쳤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하나님을 탄핵했지요. 당신 틀렸어요.
하나님은 하나님 마음대로 하십니다. 그걸 인간이 이해못한다고 인정하고 순종하는 게 성도고요.
아무리 인간 눈에 불합리하게 보여도 가라지와 알곡을 종말까지 같이 두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가라지와 알곡은 인간이 판단하게 되어있지 않아요.
하나님 앞에서 끊임없이 참소하는 이가 사단이고요. 사단이 왜 참소했겠어요. 잘해보자는 거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에서 뒤에서 쫒아오는 애굽병사들이 무서워서 울 때 하나님께서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모독한다고 하셨고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거지요.
열심히 그여정을 하지도 않고 증거를 시인할수없어요 욕을 하든 입증할려하든
그게 오히려 솔직합니다
솔직해집시다 없음이요?그거 개도 안먹습니다
그만하긴 뭘그만합니까~
위선보다 솔직한게 나아요
차라리 그게 자기의가 더 독보이는겁니다
그게 시작이니까요
우리모두 솔직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복음의 파수꾼?우리는 지키는게 아니라 복음에 그냥 흐르는겁니다
그게 성경에서 말하는 순교고 순종이며 보는거이고 듣는것이고 경험하는것이고 ~
싸움?을 복음에 드리대고 하지는 맙시다
자기는 알잖아요
내가 하나님의 무용한 종, 쓸모없는, 하나님의 일에 방해만 되는 도구일 뿐이라는 자각이 없는 열심은 예수님을 대적하고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길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봅니다. 바울이 되기 전의 사울이 그랬던 것 처럼요.
아무리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사랑한다고 잘 가르쳐주려고 3년을 계속 지적하고 잘못한다고 하고 심한 말 하고 꾸짖고 하면
그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사랑을 알 수가 없습니다. 시금치도 안 먹겠지요.
어쩐 일인지 장로님의 그 사랑이 저에게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상하지요.
배운 바를 다시 상기해 하나님의 크심 앞에 항복하고 엎드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했습니다.
최소한 상호간에 비방은 안하고 그게 안되면 그냥 차라리 외인처럼 여기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복음은 설득이나 토론으로 전해지는 게 아니고 꾸지람과 비방으로 전해지는 건 더더욱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택하신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해지는 것이지 인간이 무슨 복음이랍시고 전하겠습니까.
삼년동안 많이 애쓰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은혜받은대로 각자 하고 하나님의 안식에 다같이 들어간다면.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는게 정감있습니다
말을 안하면 나도 잘몰라요 벌어져야 압니다~우린 그렇게 고소당하며 사는거죠뭐~
이 시간이 유익하네요. 저에게는요.
뭘 해야겠다는 인간의 그 열심이
세상을 밝게도 어둡게도 해 온 역사.
달라지지 않을겁니다.
우리 모두 진정 주님을 경외하는 서머나 지체되길 바랍니다.
주 앞에 담대한게 그를 경외하는것이고
주 앞에 조아리는게 그를 모르는거라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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