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소중한 거예요? 주님이 소중하죠. 그러면 우리는 안 소중하죠.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우리의 드라빔이 강렬한지 주님을 어떤 식으로 길들였냐 하면 “나 삐칠 테니까 주님이 잡으려면 잡아봐라-!” 이런 식이라고요, 우리의 모든 일상이. 잡으려면 잡아봐라.
말씀이 있다면 내빼기 바빠요, 말씀 없는 곳으로. 그런데 억지로 말씀을 못 피하게 되면 못 피하는 것을 뭐라고 하느냐? ‘포획’이라고 해요, 포획. 포획당하면 우리가 주님 품에서 도망치려는 속셈을 교묘하게 숨기면서 ‘주여, 감사합니다. 이렇게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의상 이야기해버려요, 예의상.
그래서 어제 낮에 액자 하나 만들라 했죠? ‘주님, 나하고 무슨 상관있습니까?’ 이게 도주하는 거예요. 도주하는 것을 주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자기 백성이니까 덮쳐서 낚아채는 방법으로 끄집어내십니다. 그것조차도 희생이에요.
그게 누가복음 15장에 나와요. 아흔아홉 마리 양을 놔두고 한 마리 양을 찾아내시면서 주께서 어떻게 표현하시는 줄 알아요? 저가 회개했다는 거예요. 이게 말이 됩니까? 이게 말이 돼요? 주님께서 포획해놓고 그것을 “네가 회개했다.”고 해요. 회개.
아…. 그러니까 이미 용서받아놓고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죠. 회개하는 것도, 심지어 믿는 것도 다 주님의 홀로 하신 일이죠. 그러면 고린도전서 16장 22절,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에 종말을 집어넣으면, 이미 너는 사랑한 자로 사랑을 들고 우리를 포획하러 오시는 거예요. 고린도전서 16장 22절을 들고.
“여기에 네가 딱이야. 너는 여기서 딱이야. 이 말씀이 너한테는 딱이야.”하면서 찾아와서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 “맞습니다.” 사랑으로 낙점을 찍어버려요.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받는다는 사실을 아는 그것을 사랑의 열매로, 결과로 낙점 찍어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주님 앞에 도망치면서도 도망치지 못하는 주의 말썽꾸러기인데, 그 ‘말썽꾸러기’를 약간 바꿔서 ‘말씀꾸러기’. 말장난이 좀 심하지만, 주님의 말씀꾸러기. 특징은 뭡니까? 도망치기. 수련회 오라고 해도 오지도 않고. 하여튼 인간들끼리 행복을 논하고 자기 가족끼리 놀러가는 것에 아주 최적화된 우리, 이 말썽꾸러기를, 하나님이 대신 희생하셔서 말씀으로 주께서는 우리를 십자가의 자랑거리로 삼으시는 이 은혜-. 마지막 때이기 때문에 세상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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