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를 죽여서 이미 죽은 그 피해자와 가해자의 죽음이 죽음을 거쳐서 같이 만나게 해주는 거예요. 죽음 안에서. 살아 있을 때 만나지 않고 죽여서 그렇게 같이 만남으로서 뭘 얻겠다는 거예요. 인간의 죽음은 하나님의 예언에 종속된다. 그걸 알리기 위한 거예요. 어떤 사람이 죽든 인간은 각자 죽음이 개인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자기 죽음은 자기 고유한 것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보지 않고 이렇게 봅니다. 하나님 편에 섰던 나봇이 죽었잖아요. 구약에 나봇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걸 어디까지 끌고 가느냐 하면, 성경은 신약까지 끌고 가요. 신약까지 끌고 가면 최종적으로 하나님 편에 서서 죽었던 분이 예수님이고 그 예수님의 죽음이 모든 인간을 죽게 하는 원인이라는 사실을 예언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밝혀주시는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인간은 그냥 늙어 죽는 게 아니에요. 인간에게는 어떤 특별한 죽음, 특별한 죽음이 있는데 그 죽음은 하나님의 죽음이에요. 하나님의 죽음을 출발점으로 해서 각자의 죽음을 할당하는 거예요, 각자의 죽음을. 이 말은 뭐냐? 아합이나 이세벨이나 살아있을 때 기세등등했잖아요. 그런데 아무리 그들이 기세등등해도 인간은 죽음으로부터 멀리 못 간다는 거예요. 내빼지 못해요.
다시 그들에게 죽음을 가했던 그 원래의 자리에서 가해자, 여호와를 가해한 자로 호출당하고 소환당하는 그러한 입장에 있습니다. 이세벨이나 아합이, 그리고 다른 모든 인간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로마서 6장에서 ‘죄의 값은 사망’이라 했잖아요. 값이라 이 말이에요, 값! 인간이 죽는 것은 어떤 값을 치르는 것인데 무슨 값이냐? 죄다.
무엇이 죄냐? 하나님을 피해자로 만든 죄, 거기에 모든 인간이 예속되어 있습니다, 속해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왜 죽는가? 하나님의 예언에서 못 빠져나와서 죽어요. 하나님의 말씀에서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에 죽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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