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7/24-교만

아빠와 함께 2026. 7. 24. 08:07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하고만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과 일해서 나오는 생산, 업적, 결실 그것을 가지고 새로운 창조를 달성하십니다. 그렇다면 교만이라는 말은 벌써 개념이 간단하게 정립이 되고 말았습니다. 내가 하나님하고 일하겠다고 나설 때, 그게 바로 교만입니다. 왜 우리가 나서서는 안 되느냐 하면 하나님은 창조주요 우리는 피조물이니까.

물론 우리 생각은 창조주가 피조물하고 같이 상대해도 되지 않겠느냐 하는데, 창조주하고 피조물하고 상대가 직접적으로 되지 않는 이유는 그 창조주가 피조물을 만들 때, 그냥 만들어놓고 끝나는 것이 아니고, 만들 때 그 원리와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피조물에 있는 것이 아니고 피조물 되게 했던 그 원리와 원칙에 하나님께서는 중점적으로 주목하십니다. 그 원리와 원칙이 뭐냐 하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창조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의 독생자 아드님을 주님으로 등극시키는 것이 초점이 됩니다. 예수님으로 하여금 만유의 주가 되시는 것이 하나님이 창세전부터 하신 계획이었습니다.
피조물의 존재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하고 상대함에 있어서 주로 등극하려면 죄가 발생되어야 해요. 죄가 발생되고 그 죄를 의로 바꾸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예수님은 주가 되시는 겁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 주 되심을 위해서 같이 참여하라고 세상이 만들어졌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어떤 아버지 집에 아들이 둘 있는데, 한 아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빼돌려 가출하고, 허랑방탕 도시에 가서 다 낭비하고 방탕한 짓을 했습니다. 탕자죠. 누가 봐도 그 탕자는 하나님 앞에 죄지었다고 생각 할 겁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가출해서 재산을 낭비한 반면에 큰 아들은 한 번도 가출하지 않고 아버지 옆에서 봉양했습니다.
그때까지는 누가 나쁜 자인지 벌써 표가 났잖아요. 가출한 탕자는 나쁜 사람, 악한 아들이고 큰 아들은 점잖고 착한 아들이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주시고,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주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주 되심을 드러내시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하나님의 원수인 교만이 항상 발생되어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를 의로 바꾸는 것은 주님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맏이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맏이를 하나님이, 아버지가 보시기에 맏이는 자기가 죄를 지은 것이 없기 때문에 죄를 알지를 못해요. 죄를 알지를 못한다는 것은 자기가 교만할 구석이 전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맏이의 교만이 드러날 시점이 언제냐 하면, 그 탕자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도 아직까지 교만하지 않았어요.
문제는 돈 허비하고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의 태도가 문제입니다. 아버지의 태도가 그 자기 자신의 재산을 탕진한 그 아들을 위해서 소도 잡고, 가락지 끼우고, 좋은 옷 입히고, 동네잔치 하고, 동네에 자랑하고, 그 순간 큰 아들은 머리가 돌았습니다. 완전히 정신 나갔어요. 아버지한테 이야기합니다. “아버지여, 제가 한 평생 아버지한테 봉사했는데 아버지는 저한테 소 한 마리 잡은 적 있습니까?” 아버지의 말은 “이때다!! 그게 바로 숨겨진 너의 교만이었다.”

우리는 자기 잘난 척 하기 위해서 우리보다 못한 사람을 얼마나 수집을 했습니까? 아마 그 수집한 보람으로 인생을 살걸요? 성경에서 말한 교만이라는 것은 예수님 빼놓고 다 교만한 자입니다.

'만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7/23-인간의 죽음은 하나님의 예언에 종속된다.  (0) 2026.07.23
7/21-시80:19  (0) 2026.07.21
지옥 가는 사람의 일과  (0) 2026.07.20
사건→정지→공백→은혜→이스라엘  (0) 2026.07.20
7/20-몬1:21  (0) 2026.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