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강의

신의 지혜자 다니엘

아빠와 함께 2026. 4. 22. 09:10

514강-YouTube강의(신의 지혜자 다니엘 5:11)20260421-이 근호 목사


제514강, ‘신의 지혜자’. 본문은 다니엘 5장 11절. 다니엘 5장 11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왕의 나라에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 있으니…” 여기에 ‘신들의 영이 있다’라고 이방인들이 표현을 그렇게 해줬어요. “…곧 왕의 부친 때에 있던 자로서 명철과 총명과 지혜가 있어 신들의 지혜와 같은 자라…”

‘신들의 지혜와 같은 자라’ 해서 제목을 <신의 지혜자>라 한 겁니다.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 지혜, 아이큐와 견줄 수 없는 지혜다 이 말이죠. 견줄 수 없는 지혜, 신들의 지혜.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세워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의 어른을 삼으셨으니”

인간을 지배하는 데 있어서 신의 지혜를 가진 자로 하여금 인간을 다스리고 지배하게 했다. 그 자가 누구냐 하면 바로 다니엘. 하나님과 다니엘 관계에서 다니엘의 호칭이 있어요. 다니엘 보고 뭐라 하느냐 하면 “인자야”라고 이야기했어요. 선지자 다니엘과 하나님 사이에 관계는 어떤 관계? ‘인자야’.

‘인자야’라고 했는데 다니엘이 ‘이게 나한테 해당되는구나.’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고 다니엘이 하나님께 ‘인자’라고 호칭을 당하면서 받았던 내용 안에 인자(人子)가 나와요. ‘사람의 아들이 하늘에 계시다가 땅에 내려온다. 내려올 이유는 이 땅을 심판하기 위해서 내려온다.’는 그 계시를 다니엘이 받았거든요. 7장도 그렇고 9장도 그렇고요.

7장 13절 같은 경우에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이렇게 되어 있죠. 여기 ‘인자 같은 이’가 나오죠. 그런데 그 인자 같은 이의 땅의 모델은 누구입니까? 다니엘 본인인 거예요. 본인보고 ‘인자’라고 했으니까.

그렇다면 다니엘은 눈치를 채야 되겠죠. 장차 오실 인자 같은 분이 이 땅에 와서 하실 일은… 지금 인자라고 불리움을 받는 다니엘 본인이 누구하고 상대합니까? 다니엘이 누구하고 상대해요, 지금? 촌에 농사짓는 할머니하고 상대합니까? 아니면 촌에 농협 이사하고 상대해요? 대출 건 때문에 이야기합니까? 지금 다니엘이 상대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왕이죠, 왕. 기존의 왕들이잖아요. 왕은 짐승에 속한 자들이에요. 짐승에 속한 자. 넷째 짐승 있잖아요, 다니엘에. 짐승하고 상대한다는 것은 국가하고 상대한다는 거예요. 국가하고 상대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인자’라고 호칭을 하잖아요. 그러면 인자되는 내가 인자에 관한 하나님의 계시를 증거할 때, 장차 예언된 대로 오실 진짜 인자는 상대자가 누구란 말이죠? 짐승이겠죠. 그 짐승이 어떤 형태냐? 그것은 국가 형태라고 방금 제가 이야기했잖아요. 국가의 형태를 앞당겨서 누가 지금 관계하고 있습니까? 다니엘 본인이 관계하고 있는 거예요, 다니엘 본인이.

이걸 그대로 오늘날 성도에게 적용시켜봅시다. 성도니까 인간이니까 보통 사람하고 상대하잖아요. 사람하고 상대하는데 ‘사람하고 상대하는 상대자가 누구에 예속된, 누구의 통치를 받고, 누구의 지배를 받는 사람하고 상대하느냐?’고 물으면, 그것은 ‘짐승에게 해당되는 사람과 상대한다.’

오늘날 성도는 인간들을 상대하지만 그 인간은 인간 개인이 아니라 배후의 짐승이 자리 잡고 있고, 마귀죠, 짐승이 지배하고 있는 인간과 상대하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인간 쪽에서 그들을 먼저 상대할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성도 쪽에서는 상대할 필요가 있어요, 없어요? 없죠. 왜? 마태복음 7장에 보면 개, 돼지한테 복음 전하지 말라고 했으니까(6절). 상대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상대로 하여금 얻을 게 있다, 없다? 아예 없는 거예요, 상대로부터. 얻을 게 있을 것 같으면 상대하겠는데, 얻을 건 없어요. 왜? 버린 자식들이니까.

그러면 그들을 상대 안한다는 말은 무슨 뜻이냐? 뭐 산속에 사느냐? 아니요. 그들이 하는 행세를 보라 이 말이죠. 그럼 그들이 어떤 행세를 했는가? 다니엘 5장 1절과 2절에 보면 벨사살 왕이 나와요. 벨사살 왕은 바벨론의 제일 마지막 왕입니다.

“벨사살 왕이 그 귀인 일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배설하고…” 이 파티 규모 한번 보세요. 엄청나죠? 일천 명. 뭐 백 명, 오백 명 정도가 아니고 일천 명이에요. “큰 잔치를 배설하고 일천 명 앞에서 술을 마시니라”

자, 왜 파티를 했습니까? 파티하는 목적이 2절에 나와 있어요. “벨사살이 술을 마실 때에 명하여 그 부친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전에서 취하여 온 금, 은 기명을 가져 오게 하였으니 이는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마시려 함이었더라” 그걸 마시면서 4절에 “무리가 술을 마시고는 그 금, 은, 동, 철, 목, 석으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 신들을 찬양했다는 거예요.

벨사살 왕, 짐승이 하는 일은 바로 본인을 패배자로 보지 않고 승리자로 간주하는 자아도취에 빠지고 싶은 것, 이게 모든 인간의 내부 속성으로 들어있어요. 내가 승리자가 되었다는 자아도취에 빠져서 스스로를 축하하고 싶은 겁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제사 도구에다가 술을 따랐는데, 따른 이유가 뭡니까? 이 기명들은 여호와에게 제사하려고 준비한 은 그릇, 금 그릇인데 거기에 술을 따라서 누구 쪽으로 드립니까? 자기가 만든 신들, 은과 금과 목, 인간이 손으로 빚어낸 신들을 찬양하기 위해서 여호와께 드리는 그 제사 기구를 가져온 거예요.

이것은 뭘 뜻하느냐 하면, 내가 여호와 안 믿기를 참 잘했다. 내가 여호와 없어도 이렇게 떵떵거리면서 잘 사는 것을 여호와 앞에서 모욕하고 싶고 모독하고 싶은 거예요. 여호와를 모독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는 올라가는 거예요.

그래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모든 인간들은 어떤 수단, 방법도 가리지 않는다.’ 이렇게 짧게 결론이 나오는 겁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자기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나 봐. 이렇게 내 힘으로 잘 살잖아.’하면서 높이는 거죠.

그런데 5절에 “그때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이렇게 되어 있죠. 자, 이 왕이 예루살렘을 점령해서 거기에 있던 제사 기구를 가져온 것은 맞습니다. 그렇다면 온전히 여호와를 이겼습니까, 못 이겼습니까? 여호와를 포로 잡아 왔습니까, 못 잡아왔습니까? 자기 딴에 예루살렘에 가서 제사 드리는 것을 전부다 가져왔으면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도 꼼짝 마라’가 될 거라 생각했거든요. 자기는 멀쩡하고 여호와 믿는 백성들을 패배시켜서 그걸 전부 몰살했기 때문에 이제는 자기가 믿는 신이 이겼죠.

이겼는데 여기 뭐가 나타났어요? 손가락이 나타난 거예요. 왜 손가락은 체포 못했습니까? 그 손가락이 어디에 나타났어요? 공중에 나타났죠.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분벽에 글자를 쓰는데…” 글을 누가 써요? 인공지능이 글 쓰라 했어요? 누가 했어요?

모든 세상의 일은 인간이 원인과 과정과 결과를 인간이 확보하는 경우에만 인간들은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는데, 손가락 나타나라 했습니까? 손가락이 글씨 쓰는 것을 누가 부탁한 적 있습니까? 이건 뭡니까?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그 범위 바깥에서 누가 열심히 활동하더라? 하나님이 열심히 활동을 해버렸죠.

그러면 자신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사 기구 가져와가지고는 ‘이거 내 거다. 너희 꼼짝 마라.’했던 그것은 전부다 허사죠. 헛된 짓한 거예요. 인간은 평생에 여호와 앞에서 헛된 짓만 한 거예요! 하나님을 붙잡고 싶고 어떻게 하고 싶어도 인간에게 붙잡히는 분이 아닙니다.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서 어떻게 모독하고 어떻게 비난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스케줄은 스케줄 대로 지장 받은 것이 없습니다. 그냥 고고! 그냥 주께서 하시는 대로 일관성 있게 할 뿐입니다. 이걸 근거로 해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나라를 심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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