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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

아빠와 함께 2026. 3. 18. 11:38

512강-YouTube강의(아비 잠언 17:6)20260317-이 근호 목사


제512강, ‘아비’. ‘아버지’란 뜻이죠. 성경 말씀은 잠언서 17장 6절,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

어버이 자식 영광이요 자손 늙은이 면류관이다(공동번역)

손자 노인 면류관이요, 어버이 자식 영광이다.(표준새번역)

Childrenʼs children are a crown to the aged, and parents are the pride of their children.(NIV)

Childrens children [are] the crown of old men; and the glory of children [are] their fathers.(KJV)

Grandchildren are the crown of the old, And the glory of sons is their fathers.(NASB)

Grandchildren are the crown of the aged, and the glory of children is their fathers.(ESV)

 

자, 한 가정에 대해서 어떤 질서 같은 걸 언급한 것 같은데…. 가정이라는 것은 그냥 돈 벌고 오순도순 살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성경은 하나님이 가정을 만드신 이유에 대해 ‘면류관’을 뽑아내고 ‘영광’을 뽑아내는 현장으로서 가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손자든 자식이든 아비든 노인이든 간에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겁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낳죠. 낳는 건 맞는데 만들어낸 건 하나님의 몫입니다. 인간의 육신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하나의 기계장치라고 보면 됩니다.

방앗간에 기계 있잖아요. 정미소에도 기계 있죠, 방앗간에도 있듯이. 고춧가루를 방앗간 기계가 만들어낸 건 아니죠. 창조한 게 아니죠. 방앗간 부속품이 떡가래를 만든 건 아니죠? 이용했죠. 그 기계를 이용했잖아요. 이용해서 떡가래 나오고 고춧가루가 나오듯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기계로 사용해서 그 아비와 손자, 자식 이런 새로운 육 덩어리를 이 땅에서 나타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관여했다 이 말이에요.

그럴 때 인간들이 ‘내 자식은 내가 낳았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했다는 하나님의 영광과 관계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식을 낳게 하고 손자를 갖게 함으로써 손자가 활동할 때 할아버지 입장에서 할머니 입장에서 그리고 또 부모 입장에서는 ‘어떻게 저게 인간이 기대했던 영광에서 성경 잠언서 17장 6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영광과 어떻게 매치가 되겠느냐?’를 생각해야 돼요.

자식의 존재와 손자의 존재가 이 가정에 하나님의 영광을, 내가 자식만 만드는 게 아니고 영광도 아울러 만들겠다는 그 관계가 어떻게 엮여지는지를 알아야 돼요, 이 잠언서에서. 그래서 ‘나한테 자식이 있는가? 아비는 자식의 영광이다.’, ‘손자 있나? 할아버지의 면류관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그 자식과의 관계에 있어서 해야 될 일을,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잠언서를 통해서 줘요.

이 가정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들이 있는데 조건들을 하나씩 보게 되면 잠언서 22장 15절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하나님의 영광, 자식이 내 영광이다, 자식이 있음으로써 아비는 영광을 얻는다는 게 자연스럽게 그냥 나오는 게 아니겠죠?

또 잠언서 23장 13절에서 14절을 보면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아이를 훈계하라 이 말이에요. 훈계 안하는 걸 안하기, 훈계 안하기를 안하기, 우리 가정에는 ‘훈계 없다’라는 말을 안하기, 훈계 없는 가정 되지 말기,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거예요.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이 말은 한마디로 해서, 죽어라고 패라 이 말입니다. 이래도 너 안 죽어? 죽어라고 패라 이 말입니다. 그래도 잘 안 죽을 걸? 이런 얘기에요. 채찍으로 때림으로써 애가 죽고 사는 것은 내 채찍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파악하라 이 말입니다. 상당히 폭력적인 아비고 폭력적인 할아버지가 되겠죠.

아까 잠언서 17장 6절에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 이 대목에 있을 때는 그냥 자식 있고 손자 있으면 자동적으로 ‘이 가정은 하나님 보시기에 참 영광되다’라고 평가를 받을 것 같았는데, 막상 잠언서 22장 15절과 잠언서 23장 13-14절을 보니까 이거 뭐 난리를 쳐야 되겠죠. ‘패라. 그래도 안 죽는다.’

이 말은 뭐냐? ‘네가 마음잡고 패도 죽을 만큼은 안 패잖아.’ 이런 뜻이란 말이에요. ‘때리기 없기’가 아니고 반대에요. “훈계치 아니치 말라” 했으니까 이건 ‘때리지 말라’의 반대가 되어서 ‘나는 안 때린다’는 그런 마음자세를 갖지 말라는 뜻이에요. ‘참, 어떻게 이 귀한 너를… 내 영광인데 어떻게 손을 대?’ 하나님은 그게 아니에요. 때려야 영광이지, 안 때리면 영광이 없어진다는 겁니다. 맞아야 인간이 된다는 뜻이죠.

잠언서 29장 15절에 보면,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여기서 우리가 살펴봐야 될 것은 ‘임의로 하게 되면 자식을 욕되게 한다’는 이 말과 아까 잠언서 22장 15절,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자녀로 태어나게 했는데 그 자녀가 태어나면서 완제품이다?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면? 천하의 말썽꾸러기로 태어났다는 거예요. 이것은 뭐냐? 할아버지의 말썽 속에 있는 썩은 속성이 그대로 아비에게로 전달되고 아비의 썩은 속성이 그대로 자식에게로 전달 될 때, 어떤 인간도 자기 자신을 미화하거든요. 자꾸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나만큼 착한 사람 나와 보라 그래.’ 이런 식이다 이 말이죠.

그런데 자식을 낳아보니까 뭐 돌연변이도 아니고 ‘이런 게 왜 나왔지? 내가 성격이나 모든 자질 면에서 이 정도로 엉망진창이야? 혹시 내 자식 아닌 거 아니야?’ 이런 식으로 자식을 보고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불만요소가 있다는 말은 평소에 아비나 어미가 본인을 보고 뭔가 본인에 대해서 환상을 만들고 있고 자기에 대해서 뭔가 엉뚱한 꿈으로써 자기를 위장하고 포장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자식을 통해 들통 내게 하시는 방법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영광이에요. 그게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세상에 어느 인간이 자기가 자기를 팹니까. 보통 부모는 자식을 때릴 때 자기 마음에 안 들어서 때리잖아요. “엄마가 네가 미워서 때리는 줄 아느냐? 제대로 하란 말이야.”하고 때리잖아요. 때릴 때 엄마는 자기 딴에 정의를 실현하는 중인 줄 알고 있어요. 정의 구현하고 있는 중입니다. 거기다가 교회 좀 다녔다고 “잠언서 봐. 잠언서 13장 24절, 22장 15절 봐.”

잠언서 13장 24절을 보게 되면 “초달(楚撻)을 차마 못 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초달이 뭐냐? 회초리에요. 회초리를 들 줄 모르는 자는 자기 자신이 누군지를 모르는 부모다 이 말이에요. 내가 썩은 데서 썩은 게 나왔으니까 자식을 때리는 방식으로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영광이라든지 면류관을 받을 쨉이 못 됩니다.’라는 것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자식을 허락함으로써 이건 자식이 문제가 아니고, 자식을 통해서 내가 그동안 감추어왔던, 내가 미처 몰랐던 나의 더러운 면을, 자식과 함께 나란히 손을 잡고 신약 같으면 십자가 앞에서 “못난 내가 못난 자식을 낳아서 참으로 죄송합니다.” 그럼 주께서 뭐라고 합니까? “너는 낳기만 했지, 만드는 것은 내가 만들었다.” “왜 이런 자식을 만들었습니까?” 네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네 자식을 통해서 밝혀내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다’ 이 말입니다. 그것도 제대로 비추는 거울이에요. 나의 다른 면을 자식을 통해 움직이는 형태로서 우리 앞에 보여줍니다. 단순히 평면적인 이미지, 사진 정도가 아니고 영화 필름 정도가 아니고 잠도 같이 자고 밥도 같이 먹으면서 자신의 어두운 면이 바로 내 앞에서 까불고 찧고 있고 철도 하나도 없으면서 자기 칭찬하면 자기가 최고인 줄 아는 그 교만하고 오만한 마음. 자식은 바로 나의 오만을 바깥으로 끄집어낸 모습입니다.

그러니 그 자식과 부모 사이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취지를 안다면 그게 바로 내가 생각했던 나 잘되는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십자가 영광. 아버지가 독생자 예수님을 아낌없이 내쳤던 그 숨어있는 진짜배기 영광. 독생자의 영광이죠. 사람들의 영광 말고, 대단한 하나님의 영광 말고, 독생자 하나님의 아들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그 독생자의 영광을 우리 가정에서 반복적으로 체험케 하는 것, 이게 가정의 설립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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