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없는 신비
2007년 7월 15일 본문 말씀: 아가 4:7-15
(아 4:7)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아 4:8) 『내 신부야 너는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하고 레바논에서부터 나와 함께 가자 아마나와 스닐과 헤르몬 꼭대기에서 사자 굴과 표범 산에서 내려오너라』
(아 4:9) 『내 누이, 내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아 4:10) 『내 누이, 내 신부야 네 사랑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네 사랑은 포도주보다 진하고 네 기름의 향기는 각양 향품보다 향기롭구나』
(아 4:11) 『내 신부야 네 입술에서는 꿀 방울이 떨어지고 네 혀 밑에는 꿀과 젖이 있고 네 의복의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구나』
(아 4:12)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아 4:13)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풀과』
(아 4:14)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아 4:15)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사람의 행동이란 자신을 추한데서 벗어나 아름다운 존재로 부각되기 위해서 움직입니다. 그것은 사랑받을 조건으로 필히 ‘아름다움’이 들어간다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름답지 못한 여인이 뭇남성에게 사랑해 달라고 요청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지요. 이렇게해서 세상에서는 서로 남남인 사람이 ‘아름다움’의 매개로 하여 부부가 됩니다.
하지만 이 부부 사이란 ‘아름다움의 요소’가 계속 유지되어 한다는 힘든 조건이 짐이 됩니다. 만약에 부부생활 도중에 ‘아름다움’이 사라져도 과연 남편은 나를 그전처럼 사랑해줄 것인가에 의심하게 됩니다. 육체적인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성격이나 정신상태에 있어서도 과연 내가 전에 남편으로부터 받던 그 요건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남편은 이것을 미리 염두에 두고 말씀하십니다. “나의 누이야 나의 신부야”라고 부릅니다. 그냥 오다가다 만나서 부부가 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너와 나는 애초부터 원천적으로 같은 뿌리에서 나온 관계라는 겁니다. 그래서 만나지 않으면 안되는 사이요, 일단 만났다고 헤어질 수 없는 사이라는 겁니다.
이것은 곧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그 사랑이란 원천되는 뿌리로부터 올라와서 ‘누이’라는 관계를 지탱시킬 만한 사랑이라는 겁니다. 한 번 누이는 영원한 누이입니다. 사랑할 때만 누이가 되는 사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받을 만한 짓을 해야지만 누이가 되는 사이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누이로, 그리고 신부로 맺어져야만 하는 관계가 바로 ‘나의 누이야 나의 신부야’라는 호칭 속에 담겨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신부가 흠이 없다는 말은 곧 그 신비와 같은 뿌리가 되는 남편이 제공하는 사랑에 그 어떤 흠이 없다는 말입니다. 흠이 없는 사랑이란 사랑받는 자의 조건의 흠을 상쇄하고 묻지 않는 특성을 지닙니다.
즉 사랑이란 모든 추함에서 벗어나게 하는 자유입니다. 상대가 어떤 짓을 해도 추함으로 대하지 않겠다는 것이 사랑의 능력입니다. 성도와 예수님의 사이가 이런 사이입니다. 여기서 우리 성도가 받게 된 이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를 천사와 비교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천사와 성도와의 공통점은 둘 다 죽음의 영역이 아니라 생명의 능력 안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더 이상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두 번째로 죽음에 대해서 두려움이 없다면 말은 그 어떤 인간에 대해서나 주변 환경에 대해서 두렵지 않다는 겁니다. 천사를 보고 칼을 들이대면서 “돈 내, 안 그러면 죽인다”라고 협박해도 천사가 보이기에 가찮습니다.
더 이상 죽여도 죽지 않는 생명을 향하여 “죽여버린다”는 협박은 이미 실효성이 없는 겁니다. 하지만 천사와 우리 성도와의 차이점도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천사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으시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즉 천사를 사랑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처럼 흠이 없고 늘 함께 하겠다는 것은 우리 성도보고 하는 이야기이지 천사를 보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천사가 흠이 없지만 그것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씻음 받아서 흠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주님의 사랑의 아름다움은 성도보다 못합니다. 우리의 아름다움은 우리를 한 뿌리로 간주하고 신부로 삼으신 남편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반영되어 나왔기에 생긴 열매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남들 보기에 추한 존재로 보일까봐 노심초사합니다. 외모적으로나 행동이나 취미나 성격이나 건강상 추하면 그들이 자기를 사람대우 해주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남을 유인할 매력적 에너지가 상실하면 죽은 시체 취급받게 되는데 그것이 싫다는 겁니다.
실은 우리 남편되시는 예수님도 우리를 그렇게 대접하십니다. 아예 우리를 죽은 자로 간주해버리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흠과 허물을 몽땅 대신 짊어지시고 앞서 가시는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그 속에는 우리의 추함도 담겨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추하기에 하는 모든 행동도 추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것마저 아름다운 것으로 전환시켜 놓았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은 말씀 성취라는 대가로 얻어지는 겁니다. 말씀을 위배하면서 아름다운 것은 하나님에게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 완성을 우리에게 ‘아름다움’으로 전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요약하면, “하나님을 모든 것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고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겁니다.” 이 말씀이 덮치게 되면 우리는 아름다운 사람이 됩니다. 이 말씀을 우리 힘으로 지킬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의 모든 가치를 포기하고 양보할 의사가 없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율법사가 자력으로 이 성경 말씀을 완수해보겠노라고 나서면서, “이웃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그 질의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해주시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듭니다. 그것이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이웃이 누구인지를 알려주기 위한 비유입니다.
이웃이란 우리가 정한다든지 선택할 사항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임의로 이웃을 정해놓고 아무리 사랑해봤자 소위 우리에게 사랑받았다는 그 작자는 결국 나의 확장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부부 싸움이라는 것이 여기서 발생됩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해주었는데 너는 왜 내 사랑을 못알아주느냐”라는 식입니다.
일반 사회에서도 이 원리는 마찬가지입니다. 사장이 부하직원을 사랑해놓고서는 반드시 사장에게로 충성을 요구하게 마련입니다. 즉 사랑이란 상대를 자신의 부속품으로 부려먹기 위한 전략의 일종에 해당됩니다.
이처럼 ‘나’라는 것이 사라지지 않으면 이웃이란 우리 앞에 등장하지 않는 법입니다. 내가 사라진 자리에만 하나님께서 맺게 하신 이웃이 등장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예수님은 먼저 이웃이 아닌 자를 먼저 제시합니다. 분명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은 누군가 만났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만났다고 다 이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에게는 자기 일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일이 남아 있다는 말은 자기가 당당하게 살아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나’라는 인간이 죽으면 하나님이 사랑이니 이웃 사랑이니 다 허사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이것이 큰 오해입니다. 세 번째로 나타난 사람은 강도만나 거반 죽게 된 그 사람을 자기가 강도만난 것처럼 돌보게 됩니다. 이것은 그 사마리아 사람에게는 자기를 위한 자기 일이 따로 없다는 말입니다. 강도만난 자를 방치하고 계속 해야 될 자기만의 일이 따로 없는 겁니다.
우리는 강도 만난 사람입니다. 우리의 이웃은 우리가 강도 만나봐야 압니다. 그러면 무능력 우리에게 모든 것을 자기 일로서 베풀어주신 예수님이 바로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신’ 율법의 완성자입니다. 그 분의 사랑으로 인해 우리가 뿌리부터 아름답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예수님과 한 가족임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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