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이나 히브리서는 하나님의 일관성, 하나님의 한결같음, 하나님의 동일성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의 동일성을 넣습니다. 예수님의 동일성은 존재가 아니고 똑같은 일, 동일한 사건을 이 땅에서 벌여 왔다는 것, 벌여 왔는데 너희는 현실에서 일어난 일을 예수님 중심으로 볼 줄 모르고 하나님 중심으로 봤기 때문에 얼추 본인들은 자신 있게 세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우기고 있는 겁니다.
전체 모든 성경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모든 일은 주님께서 홀로 일으키신 결과입니다. 첫 번째, 모든 일은 주님께서 홀로 일으킨 결과물이다. 이게 신약에 와서 밝혀지는 거예요. 구약에서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복잡하게 되어 있어요. ‘모든 일은 언약의 하나님께서 일으킨 일이다.’ 이게 구약입니다. 그러니까 신약이나 구약이나 이건 없어요.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셨다.’ 그건 없어요. 이것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거예요. 인간들의 배후에는 악마가 있고요, 악마가 인간을 앞장세워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라고 부추겼던 겁니다.
첫 번째는, 모든 것은 예수님 중심으로 돌아간다. 다른 말로 하면 여호와 이름으로, 주의 이름 중심으로, 하나님의 이름 중심으로, 언약 중심으로 돌아간다. 두 번째는, 구원받을 자는 아무도 없다. 이미 모든 인간은 구원될 수 있는 역량이나 가치가 전혀 없다. 따라서 예수님이 직접 찾아가서 건질 자만 그냥 데려가는 식이다. 이 두 가지가 오늘 나타난 하나님의 뜻입니다.
방금 이야기 한 두 번째 이야기를 요한복음 6장 37~39절 이렇게 합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다. 구원에 실패가 없다는 거예요. ‘아, 내가 죄지으면 구원에 실패할 거야.’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에요. 내가 죄지었다고 구원이 안 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인간은 죄짓는다는 게 성립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 자체가 죄이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죄짓는 게 없어요. 인간이 죄짓는다는 것은 아직도 선악 체계, 윤리와 도덕 체계 때문에, ‘죄짓는 경우가 있고, 죄짓지 않는 경우가 있다’라고 본인이 그렇게 채점하고 평가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데 인간은 죄지을 수가 없어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죄 밖에는 나올 게 없기 때문에. 주제넘게 착하지 마세요. 착함에 오버하지 마세요. 인간은 착한 적이 없습니다.
인간이 착한 적이 없기 때문에, 착한 적이 없다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면 더 이상 악마의 협박 공갈에 넘어갈 필요가 없어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계획을 수립한 분에 대해서 그걸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아들인 예수님 본인인데 난 그 실천에서 실패할 수가 없다, 성공한다’고 하는 거예요.
38절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그러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말이 아니고 ‘내 아버지 뜻’을 행한다는 거예요. 인간들이 아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게 아니고 나만 아는 아버지, 그 아버지의 뜻에 대해서 너희는 모르고 예수님 나만 안다는 거예요.
나만 아는 그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고 왔는데 그 뜻은 뭐냐? 요한복음 6장 39절에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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