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4장 4절에 보면 이렇게 돼 있습니다. 성도는 이렇게 살아야 된다는 거예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11-12절에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그 비결이 뭐냐?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빠져나갈 수가 있느니라. ‘할 수 있다’는 말은 ‘빠져나가는 데 아무 지장 없다.’ 피의 능력으로 ‘나’가 제거되어야 ‘우리’가 나오거든요. 내가 제거 안 되면 나만 남아요. 주께서, 성령께서 “때찌!” 해서…, ‘때찌’ 정도 같으면 괜찮은데 좀 심해요.
“때찌!” 해서 ‘너는 너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주님과 우리로 같이 살자. 그것 때문에 너에게 이런 고되고 힘든 인생을 살게 했다. 너는 네가 파괴 못 한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네 죄 사함을 통해서 너 파괴될 거야. 허세, 행복한 척하는 거 파괴될 거야.’ 그러나 오히려 그것을 기뻐하라는 거예요.
이 땅은 뭐냐? 실상이 아니고 허상이에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히 11:1)이라 했거든요. 보이는 것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는 겁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것이 아니니라”(히 11:3)고 했어요
로마서 8장 15-18에 보면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여기 ‘우리’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여기 ‘우리’에 예수님 포함됩니다. 맡아들이니까요.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이 세상의)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천국의)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이 말씀으로 우리의 내부가 이 말씀으로 교체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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