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11/3-성도라는 자리가 곧 말씀의 자리

아빠와 함께 2025. 11. 3. 08:40

엘리후도 욥의 자리에 들어설 수 있어요, 없어요? 못 들어섭니다. 그게 메시아적이에요, 메시아적. 성도가 택한 백성이에요, 여러분. 성도는 자기가 구원받으려고 교회 가서 악착같이 믿었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건 자기 행함에서 나온 믿음이기 때문에 선물로 준 게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딱 집어서 딱 지정해가지고 ‘너는 내 사람이다’라고 했기 때문에 생긴 신분이 성도에요.

그러니 성도는 새삼스럽게 나는 너보다 잘났다든지 훌륭하다든지 그걸 내세울 이유도 없고 그럴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만큼 여유가 있어야 돼요, 여러분. 허리 똑바로 펴고! 가슴 꼿꼿이 세우고!  당당하게 걸을 수 있는 이유가, 우리가 아니라 말씀이 우리를 노리고 들어오기 때문이에요.

말씀이 노리고 들어와요. 말씀이 노리고 들어오거든요. 남한테 어떤 욕을 먹고 비난을 얻어먹더라도 우리의 신분은 달라진 게 아니고 그거 하나하나가 삶의 환경이고 절차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의 과정이에요, 과정. 그게 바로 엘리후 (질문에 대한 해석)입니다.

그래서 비록 이 책에서는 그런 이야기 안했지만, 주님께서 허락하는 한 광주 모임을 통해서 전에 질문했던 것을 다시 그 질문의 의도와 그에 대한 성경적 해석을 같이 지금 이 시점에서, 과거는 잊어버리고 이 시점에서 우리 삶 속에서 다시 만들어봅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 앞에서 자기 욕망을 실현하려고 정성을 모을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자체로 말씀에 의해서 지적받는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성도라는 자리가 곧 말씀의 자리인 것을, 내 자리가 아니라 말씀의 자리로 교체된 것을 날마다 점검하고 느끼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