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 됨이라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지배 아래에 현실이 있다는 것을 거부하고, 현실은 우리들에 의해서 일구어 나가기 나름이라는 것이 짐승입니다.
그들이 나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그들로 하여금 있게 하셨나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걸 보는 사람이 여기에 진짜 이스라엘이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세상이 로마 제국에서 못 벗어나니까 짐승인 것은 맞는데, 무엇이 있느냐는 건데, 무엇이 있느냐 하면, 로마 바깥에는 없고 로마만 있다는 거죠.
이런 것처럼 오늘날 물리학자들은 ‘분자, 원자, 전자만 있다. 나머지는 없다’라고 하는 거죠. 인간까지 분해해서 인간을 로봇화하려고 합니다. 인간을 기계로 분해해서, 쓸모없는 기계 빼내고 제대로 돌아가는 줄기세포로 만든 새로운 기계, 생물학적 기질을 집어넣어서 인간에 의해서 인간을 만들어 보는 겁니다. 왜? 그게 있음이니까. 있다는 거예요.
인간이 있음에, 인간 같은 인간, 발전된 인간도 있다. 그걸 누가 허락했는가. 하나님께서 허락했습니다. 그래서 이 물리학의 입장에서, 나무, 꽃, 동물, 식물, 하늘의 해와 별, 모든 것도 물리학에서는 위치와 운동으로써 모조리 다 설명이 가능한 거예요.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계속 물리학에 정진합니다. 그게 뭐냐 하면, 왜 세상은 우리 물리법칙에 맞아떨어지느냐.
발상이 참 재미있어요. ‘세상은 이런 법칙이 있다’라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고, 왜 세상은 우리 인간이 만든 물리법칙에, 저 먼 안드로메다까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지, 그게 신기하다는 겁니다. 그것은 뭐냐. 이 세상에 인간만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에요. 우리 인간만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고 신이고 그런 거 믿지 말자. 그런 것은 없다. 오직 인간만 있다고 할 때는 하나님은 없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그것은 보지 말고 듣지 말자. 그 시간에 우리는 인간에 대해서 발전할 그것만 탐구하고 연구하자. 그거 연구하면 돈 준다. 그 돈 있으면 너는 행복하고 여유 있게 잘 산다. 어때? 우리 생각들이 동의가 돼? 오케이가 돼? 동의하십니까? 이것을 가지고 오늘 본문에서는 7절에 “바벨론의 금잔”이라고 돼 있어요.
금잔의 특징은 뭐냐 하면, 모든 세상을 바벨론 짐승의 생각으로 동질화시키는 것이 금잔이에요.
성경을 보면서 성경에 나오는 성도를 나라고 억지를 부르고 갖다가 일치시키는데,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 성경 대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냅니다.
㉮우리를 실습장에 보냅니다. 실습을 시켜요. 실습을 시키면 거기에서 나오는 모든 마주침의 모든 일을 통해서,
㉯내가 짐승이며, 나는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똑같다는 거예요. 이미 우리는 막걸리에 취했어요. 짐승이 내민, 권력이 내민 막걸리에 이미 취해 있는데, 아직 젊은 사람은 덜 취하고 나이 많은 사람은 많이 취하고 그렇습니다.
새로운 사태가 발생할 때, 참, 나는 이렇게 나 홀로 완전함을 즐기려고 하는 이러한 욕심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건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해서 우리는 극구 그걸 안 들으려고 하고, 내가 나를 해석한 그걸로 스스로 만족하고 자족하려는 이 심보, 하나님께서는 그걸 그냥 두지 않습니다. 인간들이 신을 믿는 것은 자기가 잘났기 때문에 신을 믿는 거잖아요. 그런데 하나님 쪽에서 멈추지 않고 신이 먼저 우리에게 작업에 나서버립니다. 작업에 나서면 우리의 속에는 탐심이 그득한데, 이 탐심을 우리가 어떻게 조정할 수 없을 정도로 그냥 탐심 덩어리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런 현실을 통해서, 그 현실을 성경 속에 담고, 현실은 자기 해석을 못 해요.
현실이 성경 속에 담길 때, 성경 가운데로 현실이 들어올 때, 사건이 들어올 때, 하나님에 의해서 되는 해석, 현실과 그 해석이 만나면서 우리에게 진리가 전달되는 겁니다. 그 진리가 뭐냐. 하나님은 십자가로부터 하나님께 찾아가는 진리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네가 나 찾아오면 나는 안 받는다. 그러나 네가 십자가의 자리에 있으면 그게 바로 네가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과 영원히 살 수 있는 공간이 된다는 거죠.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확고한 진리를 주었는데, 법칙을 줬는데, 우리가 무슨 이유로 그걸 안 들으려고 애를 쓰는지. 따로 내 인생을 살리는 법칙이 있다고 주장하고 우기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인 줄 압니다. 주여, 우리가 이미 세상과 다를 바 없는 저주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해주시고, 주님의 십자가만이 우리를 살리는 것도 아울러 전파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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