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Forasmuch as ye are] manifestly declared to be the epistle of Christ ministered by us, written not with ink, but with the Spirit of the living God; not in tables of stone, but in fleshy tables of the heart.
인간은 어디까지나 인간이고 싶어합니다. 줄곧 인간임을 유지하고 싶어합니다. 중도에 자신의 성격을 변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영원히 ‘나’는 지금의 ‘나’의 본성에 합당한 ‘나’로 남고 싶어합니다. 세상에 나가 온갖 수모와 곤욕과 곤궁에 처한다 할지라도 버티고 또 버틸 수 있는 것은 ‘지금의 나’를 절대로 포기하기 싫어서입니다.
정 버티기 힘들 때면 그때 가서 자살해도 늦지 않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인간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그 인간으로 동의하시지 않습니다. 다른 용도로 일방적으로 사용해버리고 마십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즉 인간들이 그리스도를 편지를 받고 개과천성하는게 아니라 아예 인간 자체가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는 겁니다.
이는 모든 인간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나의 편지’로서 평생을 소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나는 나로 인하여 내가 구원받았음’을 주체로 한 편지를 쓰게 마련입니다. 이것이 ‘거짓’입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거짓의 영’인 사단과 한통속입니다. 죽이 잘 맞습니다. 성경을 보세요. 창세기 3장에 분명 나와 있듯이 인간, 곧 아담의 자손들은 생명나무 있는 곳에 못갑니다.
따라서 어떻게든 그곳에 들어가기를 소원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취지에 대드는 거짓된 마음입니다. 이 마음을 배후에 악마가 자꾸만 부축입니다. 인간은 아무 것도 안할 수가 없어요. 지속적으로 자기를 방치하지 않고 영원히 살리는 방도를 강구하게 마련입니다. 사람은 뭔가 해야 뿌듯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도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입니다. 미래에 잘된 자기를 위한 일이라면 아낌없이 자기에게 투자합니다. 만약에 그것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이미 스스로 자결하는 과정작업에 들어선 자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자살하는 그 작업마저 ‘자기를 위한 자기만의 작업’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니 인간은 무엇을 하든지 ‘거짓됨’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모든 언어가 다 거짓이며 모든 행위나 생각이 다 거짓입니다. 성경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거짓입니다. 성경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나서는 그 결심마저 악마의 부추김을 받은 거짓된 태도입니다. 즉 스스로 살 궁리를 나름대로 늘 고심하고 방안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원래 그렇게 되어야 합당합니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그것밖에 못해야 그게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합니다. 스스로 구원이 길에 나서는 것이 늘 막히고 실패로 끝나야 그게 정상입니다. 인간 자체가 곧 인간의 한계입니다. 인간은 악마의 부추김 속에서 욕망 없이는 한시도 못삽니다.
욕망이 시키는 대로 살 뿐입니다. 억지로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하지만 거기에 숨이 막혀 참을 수 없는 욕망은 다른 식으로 내뱉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소위 ‘복음폐인’되는 겁니다. 마귀와 친구가 아니될래도 아니될 수가 없는 본성으로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야고보서 1:15에 보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평생을 욕심을 친구삼아 살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인간들 중에 천국에 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자신의 거짓을 뜷고 의로운 나라에 갔을까요? 본인이 뚫은게 아닙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성신이 함께 한 겁니다. 즉 오늘 본문에 나와 있듯이 그들 자체가 ‘그리스도를 실린 편지’가 되도록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은 겁니다.
엘리야는 천국에 갔습니다. 그는 어떻게 해서 거기에 가게 되었는지는 누가복음 9:30-31에 보면, “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라고 되어 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본인들이 알아서 구약 때부터 하나님 나라에 다가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께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담아 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까지 이끌고 계셨던 겁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곧 그들의 최후의 모습을 선점에서 보여주신 겁니다. 거짓된 모든 존재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저주받아야 마땅합니다. 이 저주의 마땅함은 이미 마련된 용서의 취지를 계속해서 드러내기 위해 필연적 조치였고 그 조치에 이 엘리야와 모세가 관여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가 감사할 것은 말씀이 스스로 우리 안을 점령한 바로 그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 2:13의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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