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죽인 것’을 짊어지고 예수님과 한 덩어리되는 과정이 왜 나와 있는 것일까요? 간편한 방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져야 하는 것일까요? 안 짊어지면 구원에서 탈락인가요? 그렇다면 죄 씻어 준다는 십자가의 효과로서 구원에 충분치 않다 는 말이 되어버립니다.
사실은 이러합니다. ‘예수 죽인 것’을 짊어진 그 결과가 ‘죄 씻음’으로 나옵니다. 따라서 ‘예수 죽인 것’하고 상관없이 ‘죄 씻기 위해’ 십자가 앞에서 나서는 것은 자신의 동질성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속셈이 밑에 깔려 있는 겁니다. 즉 ‘나는 나를 죽어도 못놓겠다’는 고집을 말하는 겁니다.
하지만 ‘예수 죽인 것’ 앞에서 이런 고집은 옳은 것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예수 죽인 것’이라는 말씀은, 문법상 ‘여격(與格)’입니다. 여격이라는 말은 자기 쪽으로 부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결과로 죽어야 될 그 죽음은 예수님께서는 밀어내신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껴안으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보통 재수 없고 기분 나쁘고 더러운 것은 본능적으로 밀어내기 급급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밀어내시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십니다. 그래서 발생된 사건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사건입니다. 이제 성도에 있어서도, 그 예수님이 받아내신 바 그것을 껴안게 된다는 겁니다.
이는 곧 구원이 되었으면 본격적으로 죄를 짓게 된다는 겁니다. 구원받았으니 죄를 안 짓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죄를 짓게 되는 상황으로 번지게 됩니다. 그 이유는, 그래서 결코 인간의 개인적 동질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용납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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