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개인적인 용도로 다루어지는 것을 기피하십니다. 개인을 전체에 흡수, 통합시켜 버립니다. 즉 “내가 복음을 안다”가 아니라 “복음의 전체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다”로 만들어 버리는 능력이 복음에게 있습니다. 이는 곧 개인보다 복음이 우선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복음을 잘 지켜서 그런 괜찮은 나의 실력으로 복음이 전달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복음을 ‘향기’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향기란 우선되는 몸체가 있게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다가올 때, 악취가 풍기는 것은 이미 그 사람의 몸 자체가 찌든 악취로 변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냄새나는 복음 이미지’는 성도의 몸 자체의 변형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성도의 행동나 말씨와 세상관과 습관 자체가 전체적으로 ‘복음의 향기’에 합당하게 조성시켜준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서 모든 세상 권세를 삭제시킵니다. 즉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힘으로 칭칭 감겨서 살기를 원하지만 성도는 오로지 십자가의 용서함만 쳐다보며 살게 하십니다.
그러니 약하디 약한 권세입니다. 조그마한 힘에도 쉽게 부서지는 얇은 유리잔 같은 모양새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더 위험한 존재입니다. 마태복음 25:40에 보면,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그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쉽게 무시해도 되는 양상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성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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