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쪽으로, 성경 말씀을 이야기해도 안 들은 걸로 여기고 밀어내는 쪽으로 자기 인생 또 그대로 살아갑니다. 이게 인간입니다.
왜? 바알 종교는 하나님의 자기 내부가 파괴된 것과 동일한 파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하나님 믿는 종교는, 하나님 믿는 신앙은 ‘하나님이 현실 속에서 인간들로 인하여 파괴된 것처럼 파괴되는 그 길이, 하나님의 마땅히 파괴되어야 할 그 마음이 내 마음’이라고 일치시킬 때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거예요. 구원받은 자가 되는 겁니다.
3년 반 동안 가뭄이 들게 해서 기근이 오니까 여기에 대해서 아합은 개과천선하고 여호와 믿는 게 아니에요. 끝까지 버티기에 들어갑니다.
그 아합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가 미처 알아내지 못 한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우울증과 자살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왜 세상은 내 뜻대로 안 되는가? 나 정말 짜증 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은, 인간이 미처 알지 못하는 여백과 공백으로 이 세상이 가득 차 있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은혜와 긍휼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데 인간들이 정신을 어디다 파느냐 하면 자기가 행한 것, 행해서 노리는 것 거기다가 몰두하고 집착하다 보니까 항상 우리 마음은 어떤 마음이냐? ‘내 뜻대로 안 되면 나 하나님께 원망할 거야.’ 그런 마음 준비 자세로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교회 나와도 마찬가지예요.
도대체 우리의 죄는 멈출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성경에 분명히 범사에 감사하라 했잖아요. 범사에 감사하라 했는데 우리는 모든 일에 불평합니다, 모든 일에. 무슨 권리로요? 왜? 이유는 단 한 가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은 십자가에 파괴되었지만 나는 그 마음 닮기 싫어. 나는 파괴되기 싫어.’ 이 마음이 우리 안 제일 끝부분에 극단적으로 들어있어요.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아합 이야기를 하면서 “너의 끝 대목을 네가 이 말씀 앞에서 털어내 봐라.” 털어내라는 거예요,
엘리야가 이렇게 예언을 했거든요. 이 예언을 듣고 아합이나 이세벨이 회개했습니까? 택도 없는 이야기에요. 이렇게 저주 소리 듣고 회개를 안 하잖아요? 그런데 그 마음이 오늘날 우리 마음이에요. 우리는 말씀을 듣고 회개할 위인들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는가?
우리가 위반자라는 것을 십자가를 통해서 어느 구절 하나 위반되지 않은 게 없다고 성령이 우리에게 통보해 줄 때 우리는 비로소 위반자의 입장에서 기쁘게 성경 보면서 ‘나 닮은 인간이 또 있네? 똑같네, 내 마음하고.’ 이러면서 범사에 감사하고 하나님 은혜에 고마워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감사 안 할 수가 없어요. 왜? 못된 짓밖에 못 했는데 아직도 살아 있잖아요. 이게 누구 덕입니까? 주님의 은혜죠. 범사에 감사하죠. 이게 바로 우리 안에 들어온 예언의 효과입니다.
'만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9/6-대칭성 결여 (0) | 2025.09.06 |
|---|---|
| 9/5-롬12:5 (0) | 2025.09.05 |
| 9/3-인간은 죄를 지을 수 없다 (0) | 2025.09.03 |
| 9/2-딛2:14 (0) | 2025.09.02 |
| 9/1-“나는 한 사람만 보고 설교하고 기적을 베풀었다.” (0) | 2025.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