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뭐가 없냐? 대칭성 결여예요. 대칭성이 빠져 있어요.
주님께서는 천국을 정했다~만 아니고 주님께서는 지옥도 정했다. 요렇게 둘 다를 다 같이 아우르는 안목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성령의 세계의 특징은 '인간의 이해와 용서를 능가하는 세계' 예를 들면 바로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을 바치는 거. 이게 인간적으로 이해될 문제입니까? 그리고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하갈을 차갑게 거침없이 너 죽던 말던 나는 모르겠다. 내쫓았죠? 사라가 내쫓는 거에 대해서 하나님이 동의했고 잘했다 하고 아브라함도 동의를 했어야 될 사건. 이거는 뭡니까? 인간의 용서를 능가하죠. 하나님이 용서하지 않았는데 네가 뭔데 건방지게 네가 용서해?
같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도저히 우리는 납득하기가 곤란하죠. 남들이 자기한테 해코지 않해도 남들이 나쁜 짓하면 용서가 안 돼요. 그런데 내 딸이나 내 자식이 남한테 해를 끼쳐도 엄마가 나서서 자식을 감춰줘요. 얼마나 용서라는 게 얼마나 자위적이고 일방적입니까? 이해와 용서를 능가하기 때문에 이 능가하는 것에서 인간이 이 주님의 이런 이해와 용서를 능가하는 주님의 일 때문에 이 영적 일 때문에, 성령에 인하여 하신 주님 때문에 인간은 능가하는 이 능가를 인간은 따라갈 수가 없어서 인간의 대체는 뭐냐 하면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살해하는 겁니다.
대칭성은 모든 존재보다 우선됩니다. 이게 대칭성이에요. 물리학에도 마찬가지지만 모든 존재보다 대칭성이다 이게 뭐냐 하면은 땅콩 강정 깨강정 쌀강정. 강정 할 때 강정 하나 땅콩 하나 이게 전부 다 뭐냐면 이게 입자거든요. 입자를 강정의 엿이 이걸 끈찍끈적한 엿이 이렇게 하나로 만든다고요. 글루온. 이게 풀이에요. 풀로 입자를 딱 묶는 거예요. 그러면 뭐냐? 이렇게 돼요. 물질에서 또 물체에서 힘이 나온다가 아니라 두 물질, 물질과 물질 사이에서 힘이 나오는게 아니고 대칭성에서 뭐가 나오냐? 힘이 나오고요. 이 힘에 대한 결과물이 뭐냐? 이게 바로 입자예요. 입자. 이게 물질이에요. 물질. 물체.
주님이 만든 현실은 무슨 성이다? 대칭성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주님 만든 존재란 나는 대칭성이 없어요. 그러면 내가 바보죠. 내가 전혀 무의미하고 비현실적 존재가 되는 겁니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다. 이게 '비대칭성' 다시 말해서 다른 말로 하면 '불균형'. 슬픔은 '함께'가 깨어지는 거예요. 이 대칭성은 성경적으로 대칭성은 천국과 지옥으로 대칭돼야 돼요. 근데 천국은 어떤 세계라 했습니까? 성령의 세계거든요. 그런데 이 지옥은 어떤 세계냐 하면은 인간의 이해와 서로서로 용서와 인간의 동정과 인간의 이성적으로 다져진 세계가 지옥입니다. 왜? 선악 세계니까. 인간은 이해와 용서를 극복할 수가 없어요. 뛰어넘을 수가 없어요. 니 이만큼 도와줬으니까 내 이만큼 도와주겠지. 상호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같이 정들었던 그 정으로 사는 세계가 인간 세계입니다.
진짜 오신 분은 하늘에 계신 영광과 지상의 고난이 대칭되어있다고요. 왜? 지옥 같은 세상에 왔으니까 고난을 받는 거예요. 그러니까 대칭성 가진 분 누구밖에 없습니까? 예수님밖에 없죠. 아무리 예수님 이해를 해도 결국은 나는 예수님을 붙들어도 갈수록 예수님이 하는 모든 상황과 이 모든 것이 납득이 안 돼. 이 정도 바르게 복음 생활하고 신앙생활하고 오직 복음만 사랑하면 뭔가 주님 쪽에서 뭔가 콩꼬물이라도 내야 되는데 일체 면회도 없고 사식도 없고 뭐 그냥 없어 없어. 이 믿으란 말인지 말라는 말인지 심지어 아브라함는 더 심하게 이야기했죠. "네 아들 바치라" 이삭을 줄 때는 하나님이 나를 우호적으로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이삭이 얼마나 귀합니까? 귀한 자식을 도로 나한테 죽여서 바치라 하면 아브라함이 그걸 그 비이성적인 것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안 되죠. 그래서 지금 여기서 주께서 하는 방식은 뭐냐 하면은 여기서 이게 나옵니다. '자발적 대칭성 깨어짐‘
자발적 대칭성 깨어짐으로써 여기서 없는 데서 천국 백성이 나와요. 죽은 데서 천국 백성이 나오는 방법은 자발적 대칭성을 깨버립니다. 누가? 예수님이 고난을 받음으로써. 그게 이사야 53장에 보면 "우리는 다 양 같으나" 여러분 잘 아시죠? "다 양 같으나 제 갈 길 갔거늘" 5절에 "그의 찔림은" 그 다음에 뭡니까?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우리의 허물은 뭡니까? 안 믿겠는 게 아니고 믿을라고 해도 메시야가 믿을 만한 분이 못 되거든요. 이게 우리의 한계고 허물이에요. 대칭성, 하나님이 알고 있는 대칭성은 우리는 이걸 이거 대칭성은 우리가 없어요. 그게 허물이에요. 우리는 천국만 생각하지. 굳이 지옥 가야 한다는 지옥을 만들 이유에 대해서 우리는 납득이 안 돼. 하나님께서 뭐 성격 이상해~ 그렇게 안 믿는 사람 영원토록 괴롭혀야 속이 시원해? 막 이런 식이다 이 말이죠.
욥은 대칭성을 만났죠. 대칭성 누굽니까? 나는 재, 주님은 나에게 없는 재 같은 나를 살리는 하나님으로 찾아오신 분. 이게 대칭성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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