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하지 않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다시 말해서 범죄 하지 않는 인간은 아무도 없는데, “제가 뭘 해도 범죄입니다.” 하고 인식하고 돌아온 인간은 따로 존재한다는 거예요. 왜냐 하면, 성전의 취지를 위해서. 성전의 취지를 위해서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게 바로 솔로몬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어제 마지막에, 그러면 그 성전이 계속 남아 있습니까? 없어졌거든요. 성전이 없어지니까, 그렇지 않아도 성전이라 하면, 건물, 거기서 잡는 양, 제사..눈으로 목격하니까 “아, 이 신비로움이 눈으로 목격할 수 있는 신비로움이다.” 라고 되겠는데, 이제는 성전 자체가 제사도 없고, 성전도 없고, 양도 바칠 필요가 없다면, 점점 더 이건 모호하고 모호하기 짝이 없는 그러한 지경에 빠지죠.
성전이 없는데 어떻게 성전을 향하고, 주의 이름이 있는 곳을 향하여 기도하라는데, 주의 이름이 있는 장소 자체가 이미 불타고 없는데 무슨 수로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성전에 나가냔 말이죠. 주님께서 그 신비로움을 함축시켰어요. 뭐냐 하면, 자기 몸에다가 함축시켰어요. 그래서 요한복음 19장 36절에 그 군병들이 죽은 사람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꺾어보는데, 강도 둘 다 꺾었어요. “빨리 하고 퇴근하자.”하면서. 마지막에 예수님을 꺾으려고 하는데 벌써 죽었어요. 그러면 군병들이 예수님의 뼈도 꺾을 수 있단 말이죠.
그럴 수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출애굽기나 민수기 말씀이 그 군병들까지 조정해서 기어이 뼈가 안 꺾이도록 했고, 그것을 평소에 예수님에 대해서 ‘메시아인가’하고 유념해서 말씀과 연관시키던 그 사람이 보고 “저 분은 뼈가 꺾이지 않았기 때문에 메시아 맞다!”는 고백이 나와 버린 거예요.
말씀이 알아서 말씀이 말씀과 차곡차곡 성취되도록 그렇게 조정과 배치를 빈틈없이 해왔다는 사실을 요한복음 19장 36절에서 한 겁니다. (요19:36-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함이라)
그러면 뭐가 신비냐? 오늘날 신비는 뭐냐? 주님이 죽으신 것이 신비죠. 신비고, 그 죽으신 것을 신비로 파악하려면, 그 앞에서 “나는 인간인데, 예수 잘 믿겠습니다.” 이건 신비가 아니고, 꺾어진 뼈와 꺾어지지 않는 뼈, 나 자신을 꺾어야 마땅한, 죽어 마땅한 나와, 죽어서는 안 될 분이 죽었다는, 죽을 필요도 없는 분이 죽었다는 그 대조가 신비입니다. 신비에요. 그게 영이에요
그래서 뼈는 곧 영이다. 뼈가 곧 신비다.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여러분들이 엑스레이 한번 찍어보세요. 엑스레이가 다른 건 관통해도 뼈는 관통안하고, 반지 꼈던 뼈는 반지 낀 채로 보일 거예요. 자기 자신이 아무 의미 없는 뼈인 것을 그리고, 꺾어진 뼈인 것을 안다면, 주님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걸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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